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2022년 주보

연중 제 28주일 2022년 10월 9일(다해)

모든 2 2022. 10. 13. 14:14

 

연무성당 은진공소

충청남도 논산시 매죽헌로 16번 길 12 (은진면 교촌리 230-1)

 

 

+ 루카복음 17,11-19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사마리아와 갈릴래아 사이를 지나가시게 되었다. 그분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시는데 나병 환자 열 사람이 그분께 마주 왔다. 그들은 멀찍이 서서 소리를 높여 말하였다. "예수님, 스승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보시고, "가서 사제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하고 이르셨다. 그들이 가는 동안에 몸이 깨끗해졌다.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병이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며 돌아와,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다.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 이어서 그에게 이르셨다.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말씀의 향기>

 

"하느님을 찬양하고 감사를 드렸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 유현식 바오로 당진수정 주임

 

  오늘 복음에 의하면 예수님께서 열 명의 나병환자를 치유해 주셨습니다. 당시 나병환자들은 죄인 취급을 받았고 격리된 생활을 하는 죽음과 같은 상황에 있었습니다. 이제 열 명의 나병환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사제에게 몸을 보이려고 가는 도중에 치유를 받았습니다.

 

  이는 나병환자들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은 기적이었습니다. 이것은 그들에게 고통과 슬픔, 그리고 죽음의 삶에서 아름답고 행복한 삶, 곧 생명의 삶으로 전환되는 놀라운 기적이었습니다. 이에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병이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며, 곧 하느님께 감사 드리며 돌아와,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습니다.” 이런 상황을 보시고 예수님께서는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라고 슬픔이 가득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것은 당신의 기적의 지향은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것인데, 그렇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예수님은 감사를 드리는 사마리아인에게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감사하는 마음, 곧 감사를 느끼는 사랑에는 구원 가치가 있음을 알게 됩니다. 감사는 우리에게 있어서 구원의 길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 말씀대로 행하여 육체적 치유를 얻고, 그리고 감사드린 사마리아인은 구원자이신 예수님과 사랑의 관계를 맺고, 또 예수님을 통하여 하느님께 영광을 드림으로써 생명의 주관자이신 하느님과 인격적 관계를 맺고 은총으로 육신과 영혼이 온전히 구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내가 당신에게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받고 다시 주는 것 같지만, 오히려 감사하는 사람이 행복과 기쁨, 평화를 더 많이 받는 것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도 이방인 나아만이 하느님의 사람인 엘리사 예언자를 통해 치유를 받은 후 “이제 저는 알았습니다. 온 세상에서 이스라엘 밖에는 하느님께서 계시지 않습니다. 이 종은 이제부터 주님 말고는 다른 어 떤 신에게도 번제물이나 희생제물을 드리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감사를 드리는데, 이 말에도 감사가 생명의 주관자이신 하느님과의 인격적 관계를 맺게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 감사를 드림은 우리가 다시 선물을 받는 것이므로 우리에게 은총입니다. 이런 차원에서 사도 바오로는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 때문에 받는 고통도 은총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 제2독서에서 그는 예수님과 함께 살기 위해서는 예수님과 함께 죽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모든 이의 구원을 위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모든 상황에서 하느님께 감사를 드림은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우리의 도리요 구원의 길이고 우리의 기쁨이고 행복입니다! 아멘!

 

 

 

교구 전담 사목을 소개합니다

 

이주사목 천안모이세

 

+ 찬미 예수님.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나는 있는 나다.” 하고 대답하시고, 이어서 말씀하셨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있는 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여 라”(탈출 3,14).」

 

  2003년 대전교구에서 하나의 기관으로 시작한 ‘모이세’는, 천안 지역 이주노동자들의 증가로 인해 2004년 4월 27일 대전과 천안 두 지역을 거점지로 분리하였습니다. 이후 “천안 모이세”는 사각지대 이주민의 종교적 활동과 사회복지의 다양한 분야 곳곳에서 봉사하는 기관으로 자리매김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가톨릭 종교의 특성상 신자의 비율이 높은 필리핀과 베트남 민족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그 외 동티모르, 인도네시아, 인도, 미얀마, 몽골, 케냐 등 다양한 국적의 이주민이 각 공동체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주민들에게 정말로 필요한 도움을 드리기 위해 국가별 인원을 구성하여 지금에 이르러서는 영 어를 할 수 있는 한국인 사제 2명, 베트남 사제 2명, 필리핀 사제 2명, 인도네시아 사제 1명으로 7명의 사 제와, 베트남 수녀 2명, 미얀마 수녀 1명, 한국 수녀 1명으로 4명의 수도자, 그리고 필리핀인 1명, 한국인 1명의 직원으로 총 13명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조금씩 공동체가 커지고 사람이 많아지니 사연이 쌓여갔습니다. 그래서 이주민들의 어려움도 함께하기 시작했습니다. 일터에서 생기는 어려움을 돕고, 일상 생활에서의 불편함을 돕게 되었습니다. 아플 때도 곁에 있었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그러나 꾸준히 20년을 지내 오늘의 모이세가 되었습니다.

 

  여러분의 도움과 하느님의 은총으로 여기까지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저희가 노력해야 할 부분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많이 기도해 주시고 앞으로도 지켜봐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저희도 여러분들을 위해 기도하고 성실히 소명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가톨릭 신자로서 알아야 하는 <미사>

 

23. 미사 예절 - 시작 예식(8) : 본기도에 대해서(1)

 

미사의 시작 예식 

입당 - 성호경 - 인사 - 참회 - 자비송 - 대영광송 - 본기도

 

  여덟 번째, 본기도입니다. 대영광송이 끝나면 사제는 본기도로 들어갑니다. 로마 미사 경본에서는 본기 도의 전례의 형태를 다음과 같이 제시합니다.

 

  9. 대영광송이 끝나면 사제는 손을 모으고 말한다.

  ✚ 기도합시다.

  모두 사제와 함께 잠깐 침묵하며 기도한다. 이어서 사제는 팔을 벌리고 본기도를 바친다. 기도가 끝나면 교우들은 환호한다.

◎ 아멘.

 

  본기도는 미사 중 공동체의 대표인 사제가 공동체와 함께 바치는 미사의 첫 번째 기도이며, 당일 미사의 성격을 표현하는 기도입니다. 따라서 당일 미사가 지향하는 바를 알기 위해서는 본기도의 기도문에 집 중해야 합니다.

 

  로마 미사 경본에서 “모두 사제와 함께 잠깐 침묵하며 기도한다.”라고 인도합니다. 이는 거룩한 침묵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부분입니다. “본기도”라는 단어는 라틴어 “Colletta”를 번역한 것으로써 “모으다”라 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모으는 것일까요? 그것은 우리들이 하느님 앞에 있음을 깨 닫고, 주님께 올리는 우리의 기도를 모으는 시간입니다. 곧, 마음을 “모으고”, 우리의 기도를 “모으는” 시간이 바로 본기도 시간입니다. 이러한 의미로 본기도에서의 침묵은 매우 중요한 시간입니다. 공동체의 침 묵 이후, 사제가 기도에 들어가면, 이제는 마음을 모아 사제가 바치는 기도에 집중해야 합니다. 이때 바치는 기도는 사제의 개인기도가 아닌, 하느님 백성의 기 도이자, 주님께 올리는 공적기도이며, 교회의 기도임 을 인식해야 합니다. 바오로 6세 교황은 본기도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사제는 신자들을 잠시 침묵 중에 함께 기도하도록 초대하는데, 이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개인 기도와 하느님의 현존을 의식하기 위해서이다. 이때 사제는 서서 팔을 벌리고 하느님을 향해 공동체의 이름으로 기도한다.”

 

  본기도는 교회의 오랜 전통에 따라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바치는 기도”이며, 삼위일체를 나타내는 장엄한 맺음으로 봉헌됩니다. 공동체의 기도와 개인의 기도,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한데 모아 삼위일체 하느님께 올리는 기도라는 차원에서 기도문에 마음을 담아 온전히 하느님께 우리의 기도가 봉헌될 수 있도록 이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시작 예식을 마무리하며 봉헌되는 본기도는 하나 된 마음으로 이 거룩한 만찬을 시작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이러한 지향은 우리에게 성사적 은총으로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도록 도와주며, 나아가 거룩한 만찬에 참여하고 있는 우리들을 깨닫도록 도와줍니다.

(다음 시간에도 본기도에 대한 해설이 계속됩니다)

 

 - 윤진우 세례자요한 신부 사목국 차장 -

 

 

 

* 교구 내 공소

 

연무성당 은진공소

  1885년 방고개(은진)는 두세 신부의 담당 공소로 당시 신자수는 131명에 달했다. 강영성(발라바, 1913년 출생)의 부친이 고산 되재본당에서 영세를 받고 은진으로 돌아와 전교가 되었고 장명선(바오로)이 1912년경 초대 회장을 맡았다. 공소는 나바위본당(1897), 논산본당(1921), 연무본당(1958)에 차례로 이관되었다. 현 공소건물은 1949년 성탄 때 상량하였으나 6.25 한국전쟁으로 공사가 중단되었다가 1954년에 완 공하였다. 공소는 한식목구조(연면적 66.11㎡)로 정면 2칸, 측면 4칸 반 규모다. 내부 에는 목구조 가구가 노출되어 있어 아름다운 공소로 보존 가치가 크다. 현재 판공 때 미 사가 있으며 45세대 94명의 신자 중에 25명이 연무성당 미사에 참여하고 있다.

 

 

 

<이충무의 숨은 행복 찾기(42)

 

예민에서 세심에 이르는 길

 

  주변을 살펴보면 유독 다른 사람에게 신경을 많이 쓰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 중에 어떤 사람은 세심하다는 말을 듣고, 어떤 사람은 예민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똑같이 상대방에 대해 더 많은 마음을 썼는데, 왜 서로 다른 사람으로 분류되고 평가를 받게 되는 걸까? 그건 아마도 마음의 방향이 누구를 향해 있느냐에 달려 있는 것 같다.

 

  가령 세심한 사람은 타인을 중심으로 자신의 마음의 방향을 설정한다. 그 사람이 무엇을 원하고, 어떤 상태에 있는지 면밀하게 살피고 거기에 맞는 최선의 말과 행동을 선택하려 한다.

 

  이럴 경우 그러한 배려를 받게 되는 상대방은 감동하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누군가가 나의 입장에 서서 오랜 시간 나와 함께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큰 위로를 주고도 남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예민한 사람의 경우는 어떨까? 사실 예민한 사람도 타인에 대해 엄청난 관심과 신경을 쓴다는 점에서 섬세한 사람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예민한 사람은 처음부터 끝까지 마음의 방향이 오로지 자기 자신을 향해 있다는 점에서 다르다. 이런 사람의 특징은 타인보다 자기 자신에 대해 더 민감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민한 사람 가까이 있으면 위로를 받기보다 상처를 받기 쉽다. 예민한 사람은 자신이 남을 이해하려는 것보다 남이 자신을 얼마나 더 이해하는지에 관심이 더 크기 때문이다.

 

  또한 세심한 사람은 감정적이기보다 사려가 깊어 일관된 애정을 보여 주지만, 예민한 사람은 사려보다 감정에 민감하기에 늘 불안정하고 일관성 없는 과도함으로 부담을 준다.

 

  세심한 사람과 대화를 나누면 내 스스로가 편안해지고 어느새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지만, 예민한 사람과 대화를 나누면 자꾸만 대화가 꼬이고, 결국 나 자신마저도 예민해지게 된다.

 

  세심한 사람과는 조금씩 따뜻해져 가는 안온함을 나눠 갖지만, 예민한 사람과 함께 있으면 차라리 서로 무심하기를 바라는 냉랭함으로 마음이 식어 간다.

 

  예민한 사람에서 세심한 사람으로 변모해 가는 삶... 주님이 보시기에 참 좋은 삶이란 그런 삶이 아닐까? 세심함과 예민함은 어쩌면 종이 한 장 차이일 뿐이다. 하지만 그 종이 한 장의 차이를 넘으려면 먼저 자기중심의 두터운 벽을 넘어야 할 것 같다.

 

이충무 바오로 /극작가, 건양대학교 교수

 

 

<1분 교리>

 

Q-1) '십계명'이란 무엇인가요?

A) '십계명'이란 모세가 시나이산에서 하느님께 받은 열 가지 계명을 말합니다.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사랑의 내용이 축을 이루는데 1~3 계명 내용인 '하느님 사랑'과 4~10 계명 내용인 '이웃 사랑'이 그것입니다. 십계명은 믿을 교리와 함께 가톨릭 신자들이 지켜야 할 수계 생활의 핵심입니다.

 

Q-2) 미사 드릴 때 취하는 동작들은 어떤 의미가 있나요?

A) 미사 성제를 봉헌할 때에는 하느님께 드리는 경배와 찬미를 드러내도록 경신례에 따른 여러 가지 동작을 취하게 됩니다. 예를 들면, 무릎을 꿇는 동작은 하느님께 흠승과 찬미를 드리며 그분의 은총을 간청하는 표시이며, 앉는 동작은 하느님의 말씀을 잘 경청하고자 함이고, 서는 동작은 주님을 대리하는 사제를 맞을 때와 하느님께 대한 감사를 드러낼 때 취하는 행동입니다.

 

또한 사제와 연관된 동작들에는 경건과 주님과의 일치를 표시하는 '손 모음', 개방과 수용의 표시인 '손 벌림', 봉헌과 간청의 표시의 '손 올림', 겸손과 낮춤의 표시인 '몸 숙임' 등이 있습니다.

 

 

남은 시간 6년

 

  올해도 이상기후의 현상은 여전히 일어놨었고 앞으로도 더 자주 더 심각한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합니다. 지구기온 1.5℃ 상승이 앞으로 6년 정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탄소중립 실천을 생활화하는데 전력을 다해야겠습니다.

 

  올 한 해 기후 이상 현상은 여러 곳에서 일어났는데요.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놀라울 따름입니다. 미국 중부를 쑥대밭으로 만든 12월의 토네이도, 100명에 가까운 목숨을 앗아간 지 일주일 뒤 이번에 폭설에 모래 폭풍까지 동반한 시속 12km의 허리케인급 돌풍이 덮쳤습니다. 미국 역사상 두 번째로 강력했던 산불, 아무리 물을 부어도 폭염 탓에 꺼지지 않아 3개월이 지나서야 완전히 진압됐습니다. 올 들어 9월까지 미국에서 발생한 초대형 자연재해는 18건 피해액과 사망자는 이미 지난해 수준을 넘었습니다.

 

  히말라야 산맥에서는 빙하가 녹아내리며 거대한 흙탕물이 마을을 덮쳤습니다. 캐나다 서부에선 한낮 기온이 50도까지 오르는 '100년 만의 폭염'을 기록했고, 독일과 벨기에 등 서유럽에선 '1000년 만의 폭우'가 쏟아졌습니다.

 

  최근 20년간 지구촌 자연재해는 7천3백여 건, 그 이전 같은 기간보다 2배 가까이 급증했습니다. 남태평양의 섬나라 투발루, 해수면이 높아져 허벅지까지 차오른 바닷물  속에서 외교장관이 "말뿐인 약속을 기다릴 수 없다"라고 호소합니다.

 

  [사이먼 코레/투발루 외교장관]

  "(해수면 상승으로) 투발루는 가라앉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머잖은 전 세계가 위기에 놓일 것입니다."

전 세계 해수면은 1993년부터 2002년까지 연평균 0.21cm 상승했는데 최근엔 매년 0.44cm씩 높아지고 있습니다. 해수면 상승 속도가 두 배 이상 빨라지고 있는 것입니다. 전 세계가 탄소 배출량을 줄이자고 모였던 지난달 유엔 기후변화협약 총회도 선진국과 개도국의 입장 차이만 확인한 채 끝났습니다.

 

  [제니퍼 모건/ 그린피스 사무총장]

  "선진국들은 개발도상국들이 기후변화에 대처하며 '탄소 제로'에 동참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합니다."

서로 해결을 미루는 사이 코앞까지 다가온 기후 재앙, 지구 온도가 1.5도 높아지기 전에 손 쓸 수 있는 시간이 6년밖에 안 남았습니다.

 

  -글, 사회복음화 분과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