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침묵의 현자를 닮았다. 시끄러운 말 대신 다만 텅 빈 하늘로 오래 잊고 살았던 귀한 것들을 다시 기억시킨다. 그건 잃었던 나일 수도 있고, 차가운 타자가 되어버린 이웃일 수도 있고, 심지어 먼 과거의 시간 속에서 지금도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는 얼굴 없는 존재들일 수도 있다.
김진영 철학아카데미 대표
요양병원의 하루는 아침 산책으로 시작한다. 가을이 깊어지면서 길지 않은 산책은 병동이 가깝고 나날이 붉은빛이 젖어드는 단풍나무 아래 벤치에서 끝나곤 한다. 거기에 등 기대고 앉아 잠시 숨 고르며 고개를 들면 맑고 깊은 가을 하늘이 눈 안에 가득해진다. 그러면 엉뚱한 질문이 떠오르기도 한다. 예컨대 이런 질문: 가을 하늘은 왜 저토록 텅 비어 있는 걸까.
텅 빔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그야말로 공허만이 가득한 텅 빔. 그 무엇도 다정하지 않은 삭막한 마음, 돌보지 않아서 아이들이 버리고 떠나버린 놀이터, 불도저와 용역들이 휩쓸고 간 철거 현장 같은 것들이 그런 폐허의 텅 빔이다. 하지만 또 하나의 텅 빔, 그 어떤 기대와 그리움으로 가득한 텅 빔도 있다. 내일이면 배우들과 관객들로 채워질 빈 무대와 극장, 이제 곧 아이들의 재잘거림으로 가득할 새벽의 학교 운동장, 카페에서 사랑하는 이를 기다리며 잠시 마주 바라보는 탁자 저편의 빈 의자는 텅 비었지만 얼마나 가득하고 충만한가. 가을 하늘에서 쉽게 눈을 떼지 못하는 것도 물론 그런 텅 빈 충만함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텅 빈 가을 하늘을 오래 보노라면 저절로 떠오르는 얼굴들이 있다. 우선 나의 젊은 날을 자주 잠 못 들게 했던 어느 싱어 송 라이터의 얼굴-고은의 짧은 시를 낙엽 같은 음표들의 멜로디로 바꾼 노래, 문득 발밑으로 다가온 가을을 느낄 때 누구나 한번쯤 낮은 목소리로 따라 부르게 되는 ‘가을편지’의 작곡가 김민기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런데 엄혹한 1970년대의 주변부를 헤매던 젊은 가객, 그래서 암울한 기지촌과 꽃이 피지 못하는 꽃밭과 공장의 어두운 불빛만을 우울하게 노래하던 그의 가슴 안으로 왜 갑자기 그토록 맑고 관대한 사랑의 멜로디가 찾아들었을까. 혹시 그는 어두운 곳들을 헤매던 어느 가을날 우연히 고개를 들고 텅 비어 충만한 하늘을 바라보았던 건 아닐까. 그 순간 모르는 여자가 아름다워지고 세상의 누구라도 받아볼 수 있는 경계 없는 사랑의 가을편지를 노래하고 싶어지지 않았을까.
또 롤랑 바르트가 있다. 텍스트와 이미지의 문화 비평가였던 그는 말년의 사진 에세이에서 대강 이렇게 말한다: ‘자본주의 시대 우리의 삶은 둘로 분열된다. 하나는 존재의 삶이고 또 하나는 소유의 삶이다. 현대인들은 누구나 소유의 삶을 살아가고 더 많은 소유를 위해 심지어 나 자신마저 외면하고 내버린다. 그 결과 생 안에는 마치 지하실처럼 버려지고 망각된 나들이 쌓여 있는 고독의 빈방이 존재한다. 그러다가 사진 한장이 돌연 그 망각된 방의 초인종을 누르는 순간 우리는 고통스럽게 내 안에 있는 고독한 빈방을 기억하게 된다. 그것이 사진의 힘이다.' 그러나 내가 버린 고독한 나의 존재들을 다시 만나게 하는 것이 왜 특별한 사진의 체험만인가. 그건 지금처럼 텅 빈 채 묵묵히 나를 내려다보는 가을 하늘이기도 하다.
끝으로 발터 베냐민이 있다. 역사 철학자였던 그가 평생의 과업으로 삼았던 건 새로운 역사의 도래라는 화두였다. 그러나 새로움을 기술적 미래에서만 찾았던 이들과 달리 그에게 새로운 역사의 가능성은 과거의 시간들과 그 억압의 시간들 속에서 살고 죽어갔던 이름 없는 사람들에게 있었다. 유서처럼 남겨진 아포리즘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안에 담겨 있는 새로운 역사관의 본질적 내용도 다르지 않다: ‘지금 우리가 여기에 살고 있는 건 우연이 아니다. 그건 지난 시대가 우리에게 남겨놓은 소명 때문이다. 과거의 사람들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다만 잊혔을 뿐이다. 그들은 오늘 여기의 우리와 연대하고 있다. 우리가 기억하면 그들은 지금이라도 나의 연인과 친구 심지어 형제자매가 될 수 있지 않은가. 새로운 역사의 희망은 공허하게 반복되는 미래가 아니라 현재 속으로 깨어나는 충만한 과거의 시간 속에 있다.'
가을은 침묵의 현자를 닮았다. 시끄러운 말 대신 다만 텅 빈 하늘로 오래 잊고 살았던 귀한 것들을 다시 기억시킨다. 그건 잃었던 나일 수도 있고, 차가운 타자가 되어버린 이웃일 수도 있고, 심지어 먼 과거의 시간 속에서 지금도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는 얼굴 없는 존재들일 수도 있다. 하지만 텅 빈 가을 하늘을 가득 채우는 것이 다만 아쉬움 속에서 돌아오는 기억의 시간들만은 아닐 것이다. 그건 오히려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아픈 기억 속에서 오늘의 시간 안으로 도래하는 것, 누구나 간절히 기다리는 지배 없는 세상과 고통 없는 삶에 대한 기대와 그리움일 것이다. 가을의 현자가 텅 빈 하늘의 충만함으로 묵묵히 환기시키는 것 또한 그 어떤 세력도 막을 수 없이 도래하는 미래의 진실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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