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영의 낯선 기억들

[김진영, 낯선 기억들] 할아버지의 큰 숨

모든 2 2022. 2. 25. 06:49

김진영 철학아카데미 대표

 

나는 서울의 변두리 망우동에 산다. 행정지명보다는 오래전부터 망우리 고개 또는 망우리 공동묘지로 더 잘 알려진 곳이다. 근자에 한동안 일을 쉬게 된 탓에 주변 공원으로 아침 산책을 하는 일이 꽤 오래되었다. 그러다 보니 두 가지 사실도 절로 알게 되었다. 우선 근심을 잊는다는 ‘망우’라는 지명의 역사적 사연이다. 그야말로 걱정근심이 많았던 말년의 태조 이성계가 근처 동구릉에 능지를 정하고 돌아오던 고개 위에서 주변을 둘러보며 ‘이제는 모든 근심을 잊을 수 있겠구나'라고 말했던 것에서 그 이름이 유래했다는 것이다.

 

또 하나 알게 된 것은 이곳 공동묘지에 우리 근대사의 곳곳에서 족적을 남겼던 많은 인물이 잠들어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인문학 공원’이라는 현판이 걸린 공원 입구의 쉼터에는 안창호, 조봉암, 한용운, 박인환, 계용묵 등등 익숙한 근대사 인물들의 이름과 사진이 전시되어 있었다. 하지만 내가 새삼 놀란 건 그들의 이름과 얼굴들이 아니라 그 아래 표기되어 있는 생몰기간의 짧음 때문이었다. 전부는 아니지만 그들은 거의가 육십의 세월을 채 넘기지 못하고 저마다의 이유로 생을 마감하고 있었다.

 

육십의 나이가 불러일으키는 기억의 연상 작용 때문인 걸까. 문득 까마득한 기억 속에서 큰 잔치 풍경 하나가 눈앞으로 떠올랐다. 그건 유년의 먼 시간 안에 들어 있던 조부의 환갑잔치 모습이다. 희미하기는 해도 친족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당시로는 쉽지 않았을 육십 세월을 무사히 건너온 조부의 장수를 기뻐하던 대가족 잔치의 광경이 지금도 눈에 선했다. 그런데 그때는 몰랐지만 그 자리가 그토록 커다란 기쁨의 집안 잔치였던 까닭이 비단 조부의 장수만이 아니라 그분이 살아오신 삶 때문이라는 걸 지금의 나는 잘 안다.

 

19세기가 마감되던 즈음에 태어난 조부의 평생은 가난과 입지의 삶이었다. 하지만 그 삶은 당시 모든 가장의 삶이 그러했듯 자신이 아니라 가족을 위한 희생의 삶이었다. 농촌 대가족의 종손이셨던 당신은 일찍 시대의 경향을 읽으셨던지 고향을 버리고 홀로 상경해 당시 경성 전차 회사에서 말단 공무원의 삶을 시작하셨다. 그리고 박봉을 아끼며 자식들은 물론 동생들까지 서울로 불러들여 소위 신식 교육을 시켰다. 전통적인 농업경제에 매여 있던 집안의 가계가 일찍이 도시 시장경제로 편입된 덕으로 오늘 저마다 중산층의 삶을 영위하게 된 건 모두가 조부의 희생 덕이다. 조부의 환갑잔치가 그토록 크고 풍성한 대가족 잔치가 되었던 이유도 물론 거기에 있었다.

 

하지만 나 자신에게는 사적인 조부의 기억도 있다. 그건 할아버지가 아니라 스승으로서의 당신 모습이다. 장손인 나를 남달리 아꼈던 조부는 자주 내게 고문과 고사를 읽어주며 그 뜻을 익히게 하셨다. 당연히 가족사가 중심에 있었지만 그 내용은 사람의 삶과 그 가치에 대한 보편적 교양이었다. 돌아보면 이후 성장한 나의 삶이 문자와 책의 영역에 뿌리를 내리게 되었던 데는 조부로부터 훈습된 글 냄새의 영향이 무엇보다 컸음을 부인하지 못한다.

 

하지만 내게 남아 있는 더 결정적인 기억은 다른 사건에 있다. 그건 조부의 임종 장면이다. 조부는 애연가였고 그 때문인지 말년에 폐암을 얻어 심한 기침으로 숨쉬기를 힘들어하셨다. 기침은 조부의 삶 안에 침묵으로 묻혀 있던 애환인 듯 끝이 없어서 밤에도 멈출 줄 몰랐다. 그리고 어느 이른 아침에 모든 가족들이 조부의 곁을 지켰다. 그토록 집요하게 이어지던 기침이 한순간 거짓말처럼 멈추더니 그 적막 안에서 조부는 큰 숨을 한번 내쉬고 조용히 임종하셨다. 임종이 너무 편해서 그 큰 숨이 모든 근심걱정을 다 내려놓는 망우의 숨만 같았다.

 

물론 사람은 누구나 오래 살기를 바란다. 그러나 사람의 생이 곧 나이의 총량만은 아닐 것이다. 생이 양이기에 앞서 질이기도 하다는 것이 인간의 삶을 남다른 것으로 만드는 한 조건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인간의 조건이 오늘에는 나날이 잊혀가는 것 같다. 그것이 물질이든 나이이든 가능한 한 많은 양을 축적하는 것만이 생의 가치로 여겨지는 것 같다. 그런데 그런 생의 마지막 숨은 어떠할까. 생전에 많은 양을 얻고 채웠으니 망우의 큰 숨을 쉴까. 그럴 수도 있겠지만 큰 양적 성취를 이룬 사람을 곁에 둔 바 없어 확신은 못하겠다. 하지만 내 눈이 직접 보아서 확실한 것이 있다. 그건 조부의 마지막 큰 숨이다. 그 숨은 분명 가난하고 신산했지만 정직하고 성실했던 조부가 생의 선물처럼 얻었던 망우의 큰 숨이었다. 비록 그 생이 후세에 기록되는 역사적 삶도 아니고 왕의 삶은 더더구나 아니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