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영의 낯선 기억들

[김진영, 낯선 기억들] 무지개 김밥

모든 2 2022. 2. 25. 06:42

김진영 철학아카데미 대표

 

언제부터인가 일찍 일어나는 일이 습관이 되었다. 서둘러 작은 아침을 챙겨 먹고 작업실로 향한다. 잔뜩 밀린 일들을 치우기 위해서다. 그런 중에 습관이 또 하나 생겼다. 작업실 가는 길에 김밥 한 줄을 챙기는 일이다. 되도록 점심때를 미루고 아침 일을 오래 하기 위해 미리 준비하는 간식이다. 오늘은 아침부터 낮게 비가 내린다. 이런 날에는 뜻도 없이 주변의 이것저것들을 오래 응시하게 되는데 마침 열어놓은 김밥에 눈이 닿았다. 문득 그 위로 잊었던 얼굴 하나가 떠올랐다. 오래전 유학 시절 잠깐 알고 지냈던 한 부인의 얼굴이다.

 

그분은 간호사로 독일에 왔다. 광부였던 한 남자를 만나서 결혼을 했고 그때 시작한 작은 한식당을 지금까지 하고 있었다. 오가다 친해졌는데 자연스레 이런저런 속사정들도 알게 되었다. 짐작처럼 그분의 삶은 편치가 않았다. 남편과도 불편하고 독일 사람으로 성장한 아이들과도 갈등이 있었다. 소심한 성격 때문에 주변에 이웃도 없었다. 게다가 지병마저 있어서 건강도 여의치 않았다. 어느 날 병원에서 처방전을 받아 가까운 곳으로 한 달 정도 요양을 간다고 했다. 얼마 뒤에 엽서 한 장이 도착했다. 산풍경이 아름다운 엽서는 무사한 일상을 전하고 있었지만 외롭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마침 부활절 휴가기간이어서 방문하기로 했다. 가져갈 것이 없어서 나름 김밥을 공들여 만들어 도시락에 담았다. 도착하니 마침 점심때라 김밥 도시락을 열었다. 그런데 한동안 김밥들을 내려다보던 그분이 손으로 눈가를 훔쳤다. 왜요? 나는 당황해서 물었다. 그분이 씩 웃더니 말했다. 김밥이 너무 예쁘네요. 꼭 무지개처럼….

 

정말 도시락 안에 가득한 김밥이 너무 예뻤다. 노란 계란, 빨간 홍당무, 초록 오이, 핑크빛 햄들의 색깔이 무지개처럼 고와서 얼른 손이 가지 않았다. 몇 줄 나누어 먹고 밖으로 나와 산책을 했다. 사람들이 여기저기 벤치에 앉아서 따뜻한 햇볕을 즐기고 있었다. 모두가 건강하고 평화롭게만 보여서 요양원이라기보다는 리조트 풍경만 같았다. 그래도 다들 아픈 사람들이에요. 알고 보면 저마다 속 상하는 일들도 많고…. 그분이 말했다. 날은 이렇게 좋고 김밥도 너무 예쁘고 맛있는데 사는 건 왜 그렇게 힘들까. 그래도 김 선생은 별문제 없는 거죠? 그분이 웃으면서 내게 물었다. 아마 그때 나는 그냥 따라 웃고 말았을 거다.

 

김밥의 존재론이라는 걸 생각해 볼 수도 있겠다. 김밥을 가만히 바라보면 통 가늠이 안 되던 산다는 일이 의외로 일목요연하게 이해되기도 한다. 김밥의 모양은 인생의 모양을 꼭 닮았다. 까만 김, 하얀 쌀, 그 안에 촘촘한 오색의 내용물들은 인생의 요소들이고 색깔들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김의 블랙은 소멸, 쌀밥의 화이트는 시간, 컬러풀한 내용물은 변화무쌍한 생의 꿈과 사건들이라는 식으로 말이다. 예정된 죽음 앞에 주어진 일정량의 시간과 그 안에서 펼쳐지는 꿈들과 사건들의 총합, 그것이 인생이라고 김밥은 현자처럼 가르쳐주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 현자는 김밥이 더없이 예쁘고 맛있듯, 인생도 본래 그렇게 즐겁고 행복한 것이라고 가르치는지 모른다. 

 

그런데 그럴까? 김밥은 달고 맛있어도 우리의 인생은 쓰고 엄혹하고 불행하다. 고래로 그랬고 지금도 여전하고 또 새 세상이 온다는 앞날에도 별반 달라질 것이 없을 것 같다. 물론 그 까닭 중에는 몹쓸 병이나 자연재해처럼 받아들여야 하는 운명적 불행성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김밥의 행복을 빼앗고 불가능하게 만드는 더 많은 삶의 고통과 불행들은 분명 정의롭지 못하게 고착된 시대와 세상의 구조로부터 온다. 돌아보면 쓸데없이 겪어야 하는 고통과 불행들이 세상에는 너무 많고 그것들은 마땅히 없어져야 할 터인데 그런 시절의 도래는 아직도 까마득해서 요원하기만 하다. 새 정권에 대한 남다른 기대와 희망 속에서도 여전히 치열한 역사의식과 정치의식으로 눈 뜨고 있어야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그런데 모든 큰 꿈 앞에는 언제나 이름 없는 작은 꿈들이 먼저 있다고 했던가. 생각해 보면 무지개 김밥의 아름다움과 따뜻함은 그 모양새가 아니라 그분의 깊은 마음에서 왔던 것 같다. 김 선생은 문제가 없는 거죠, 라고 묻던 그분의 물음 안에는 지금 기억해 보니 또 다른 목소리가 들어 있었다. 그건 꼭 말하지 않아도 다 안다, 라는 염려와 위로의 음성이다. 내가 그분의 애환을 나름 이해했듯 그분도 당시 내가 처했던 여러 어려움을 이미 다 알고 있었을 것이다. 다름 아닌 그 마음의 손길이 투박한 김밥을 무지개로 만들고 별맛도 없었을 그것을 더없이 맛난 김밥이 되게 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김밥과 인생이 다 같이 무지개가 되는 길이 그렇게 멀고 험난한 것만은 아닌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