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으로 사자는 미지의 어떤 한 나라의 은유일 수 있다. 어쩌면 아이들과 희생자들이 어딘가에서 꿈꾸고 있을 나라, 유가족들의 상처가 그 아픔으로 알고 있는 나라, 노란 리본의 애도들이 기억하는 미래의 어느 한 나라의 은유일 수 있다.
김진영 철학아카데미 원장
쿠바의 늙은 어부가 있다. 그의 이름은 산티아고다. 그는 세 달째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하고 있다. 사람들은 그를 ‘살라오’(최악의 불운)라고 부르면서 측은해한다. 그래도 그는 포기하지 않고 더 먼 바다로 나가서 마침내 커다란 청새치를 잡는다. 하지만 집으로 오는 길에 피 냄새를 맡고 몰려든 상어 떼에게 고기를 모두 뜯기고, 거대하고 앙상한 뼈만 끌고 돌아온다. 헤밍웨이의 대표작으로 노벨상을 받기도 했던 해양소설 <노인과 바다>의 대강 줄거리다.
세월호가 3년 만에 인양되었다. 심해에서 끌려나와 선창 위에 모로 누운 거대한 배는 쇳덩이들을 용접한 선체가 아니라 생물체처럼 보인다. 살아있었지만 살점을 상어 떼에게 다 뜯기고 골격만 남은 산티아고 노인의 청새치를 꼭 닮았다. 3년 전 봄 수학여행으로 들뜬 아이들을 가득 싣고 넓고 푸른 바다를 건너던 흔적들은 하나도 없다. 선명했던 도색의 빛들은 다 지워지고 튼튼하고 강건하게 배를 세워주었던 골조들은 다 부식되었다. 곳곳에 검은 구멍들이 뚫리고 뱃속도 내장을 들어낸 것처럼 텅 비어 펄만 가득하다. 서로 웃고 떠들며 사진을 찍고 랩송을 불러서 쇳덩어리 배를 즐거운 생물체로 만들었던 아이들은 물론 어디에도 없다.
고기 뼈와 함께 새벽에 홀로 도착한 산티아고 노인은 지친 몸을 끌고 오두막으로 올라간다. 신문지를 얼굴에 덮고 깊은 잠에 빠진다. 그사이에 아침이 오고 사람들이 거대한 물고기 뼈 주변으로 몰려든다. 모두들 놀라면서 크기를 재어보고 노인을 가엾어한다. 그중에는 마침 그곳을 방문한 관광객들도 있다. 한 여인이 경탄을 금치 못하면서 말한다. 저렇게 큰 고기도 있나요? 아, 정말 살았을 때 보았으면 얼마나 멋졌을까. 그러게 말이야, 그녀의 남편이 고개를 주억이며 대답한다. 그때 ‘동풍이 해변으로 커다란 파도를 밀어 보내 꼬리가 흔들렸다.’
끌려나온 세월호 주변으로 애도의 물결이 밀려들고 있다. 출입을 통제하는 철망 벽에는 노란 하트 리본들이 봄날의 잎들처럼 생생하고 무성하게 날린다. 거기에 가지 못한 어떤 이들은 리본을 매달듯이 저마다 해야 할 일을 공들여 하고 있다. 누군가는 그림을 그리고 누군가는 꼼꼼히 기록을 한다. 누군가는 방송을 하고 칼럼을 쓰고 정성들여 책을 쓰기도 한다. 또 누군가는 영화를 구상하며 시나리오를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하는 일은 능력에 따라서 저마다 다르겠지만 모두가 분하고 안타깝고 아픈 마음들, 애도의 마음들인 건 똑같을 것이다.
해변에 버려진 고기의 잔해 앞에서 사람들이 놀라고 아쉬워하는 동안 산티아고 노인은 오두막 침대에서 깊은 잠을 잔다. 그리고 그 잠 속에서 꿈 하나를 꾼다. 그건 어디선가 나타나 황금빛 갈기를 날리며 아무도 없는 새벽의 해변으로 걸어 내려오는 커다란 사자들의 꿈이다.
그런데 이 사자는 무엇에 대한 문학적 장치일까. 일천한 문학적 상상력을 애써 동원해 보면 그 사자의 은유는 내게 세 가지로 읽힌다. 무엇보다 사자는 유가족들의 마음처럼 여겨진다. 뼈만 남은 세월호의 선체를 바라보는 그들의 눈앞으로 걸어오는 사자들, 그건 꿈처럼 살아서 돌아오는 그리운 아이들의 얼굴일 것이다. 하지만 사자는 그와 반대로 아직도 캄캄한 바닷속에 숨어서 인양되지 않은 것, 살아있던 세월호를 죽음의 배로 침몰시켰던 것, 그것만이 유가족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다시 살아야 하는 이유를 줄 수 있는 것, 즉 침몰의 원인들과 진실들에 대한 어두운 은유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사자는 미지의 어떤 한 나라의 은유일 수 있다. 어쩌면 아이들과 희생자들이 어딘가에서 꿈꾸고 있을 나라, 유가족들의 상처가 그 아픔으로 알고 있는 나라, 노란 리본의 애도들이 기억하는 미래의 어느 한 나라의 은유일 수 있다.
지난 일요일 안산에 다녀왔다. 세월호 3주기 기억제가 열리는 분향소 앞에는 애도의 물결이 그득했다. 잊지 않고 찾아온 대선주자들도 입을 굳게 다물고 나란히 분향을 했다. 애도의 마음을 전하고 저마다 새로운 나라를 약속했다. 그 자리를 떠나서 다시 분향소 안으로 들어가니까 아이들과 희생자들의 얼굴들이 슬픔의 파노라마처럼 찾아온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얼굴들이 그 어떤 한 나라의 얼굴처럼 보였다. 그 얼굴은 대선주자들이 약속하는 나라와는 많이 달라 보였다. 그 나라는 아직 너무 멀기만 한 것 같았다. 그런데 나오면서 잠깐 다시 돌아보았을 때 아이들의 얼굴들이 꿈속의 사자들처럼 말하는 것 같았다. 가장 먼 것이 또한 가장 가까운 것이라고. 손만 뻗으면 지금이라도 당장 그 나라를 붙잡을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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