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의 징후란 결국 자연과 역사 사이의 암호문이다. 날씨의 징후를 읽는 일은 다름 아닌 이 암호문을 해독하는 일이다. 아도르노는 이 암호문을 변증법적으로 번역해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자연은 자연이 가장 역사적일 때 자연이며, 역사는 역사가 가장 자연적일 때 역사다.”
김진영 전 철학아카데미 대표
오늘의 날씨:“연휴의 마지막 날인 오늘 전국의 하늘은 구름 한점 없이 쾌청하겠습니다. 기온도 포근해서 나들이하시기에 좋겠습니다. 다만 맑은 날씨 속에 대기가 점점 더 메마르고 있어서 불이 날 가능성이 높은 만큼 불씨 관리 잘해주시기 바랍니다. 전국에 비 소식도 있습니다. 내일부터 주말까지 길게 비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됩니다.”
날씨는 정보만이 아니다. 징후이기도 하다. 정보가 사실 내용을 말한다면, 징후는 진리 내용을 말한다. 정보와 징후의 내용은 외연상 크게 차이가 없다. 둘은 동일한 현상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오늘 날씨는 쾌청하지만 대기가 메말라서 화재 위험이 있으며 이어서 긴 비가 시작될 것이다’라는 일기예보는 정보와 징후를 다 같이 가능케 하는 팩트다. 그러나 정보와 징후를 읽어내는 독법은 서로 다르다.
정보는 단속적이고 파편적인 독법, 현상적 사실들의 연결일 뿐이다. 징후는 연속적이고 종합적인 독법, 단순한 현상들을 수수께끼로 응시하고 그 답을 얻으려고 하는 독서법이다. 정보는 즉각 읽혀도 징후는 쉽게 읽히지 않는다. 정보는 과일처럼 한겹을 벗겨내면 곧 속살이지만 징후는 양파처럼 겹을 벗기면 속살이 아니라 또 다른 징후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징후는 그래서 징후다).
마찬가지로 날씨와 같은 자연의 징후 또한 자연의 법칙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 법칙이 또 다른 것의 징후를 내포한다. 날씨의 징후는 무엇에 대한 징후인가? 여기에 답하는 건 어렵다. 분명한 건 그 답을 얻자면 자연은 제 범주를 떠나서 자기와는 무관한 영역과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역사다. 날씨의 징후란 결국 자연과 역사 사이의 암호문이다. 날씨의 징후를 읽는 일은 다름 아닌 이 암호문을 해독하는 일이다. 아도르노는 이 암호문을 변증법적으로 번역해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자연은 자연이 가장 역사적일 때 자연이며, 역사는 역사가 가장 자연적일 때 역사다.
”오늘의 날씨:
“인간다움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에요. 그것은 확고하고 명쾌하며 명랑하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그래요. 무슨 일이 있더라도 명랑하다는 것을요. 흐느끼는 것은 약하다는 표시예요. 인간답다는 것은, 꼭 그래야 한다면, 자신의 전 삶을 운명의 거대한 저울에 기꺼이 던져버리는 것을 의미해요.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화창한 날을 맞을 때마다, 아름다운 구름을 볼 때마다 그것들을 즐기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지요.”(로자 룩셈부르크, <편지>)
법, 복수, 돈의 관계는 복잡하다. 절대 법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면 그중에 복수와 돈이 있다. 법은 정의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이야말로 복수와 돈과 착종되어 있다. 그것을 베냐민은 ‘죄의 굴레’(Schuldzusammenhang)라고 불렀다. 죄의 굴레란 속죄를 할수록 죄가 가중된다는 것이다. 법은 정의이고 복수는 죄이며 돈은 대속이다. 죄는 속죄를 요구하고 속죄는 대속을 요구하고 대속은 구원을 불러온다. 그런데 대속은 구원이 아니라 오히려 죄를 다시 불러낸다. 대속이 정의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즉 대속의 요구가 법의 정의를 구현하는 건 아니다. 정의는 교환가치가 아니기 때문이다. 정의가 교환가치일 때 법은 정의가 아니라 복수의 수단이 된다. 정의가 수단이 될 때 정의는 죄가 된다. 법이 끊임없이 죄의 축적만을 가져오는 건 그 때문이다.
오늘의 날씨:
“봄이 실종된 듯한 날씨입니다. 때 이른 한여름 날씨가 길게 이어지고 있는데, 오늘도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겠습니다. 서울 낮 기온이 33도까지 올라 올해 들어 가장 높은 기온을 기록하겠고요. 그 밖의 서쪽 지방도 대부분 30도 안팎까지 오르겠습니다. 때 이른 더위는 내일까지 이어집니다. 모레 전국에 비가 내리면서 수그러들 전망입니다.
”날씨는 때로 자기를 초과한다. 그리고 다시 자기에게로 돌아온다. 그러자면 반드시 비가 내려야 한다. 비는 그렇게 늘 무언가를 말한다.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러나 비가 내려도 세상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누군가가 죽어도 세상은 하나도 안 변하듯이. 그래도 비는 계속 내릴 것이다. 그래도 사람들은 계속 이름 없이 죽을 것이다. 이 덧없고 끝없는 반복만이 어쩌면 유일한 희망인지 모른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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