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두려워했던 ‘내 나라'는 어떤 나라였을까. 그 나라는 사랑 대신 배신을 선택하고, 약자 대신 강자를 추앙하고, 희생자 대신 영웅을 찬양하고, 평화 대신 전쟁의 위기를 정치화하는 그런 나라가 아니었을까. 나날이 많은 이들이 살 수 없어 떠나고 싶어 하는 또 다른 전쟁과 폐허의 나라가 아니었을까.
김진영 전 철학아카데미 대표
얼마 전 노인분들께 인문학 강의를 하다가 영화 하나를 보게 되었다. 수년 전 소위 국뽕 영화로 구설에 올랐던 <인천상륙작전>이다. 그때는 아예 포기했다가 이제 와 일 때문에 제대로 보니 말 그대로 뻔한 1970년대식 이데올로기가 씁쓸한 영화였다.
그런데도 한 장면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그건 조국을 지키고 싶다고, 싸울 수 있도록 무기를 달라고 맥아더 장군 앞에서 눈물로 외치는 어느 소년병의 얼굴이다. 그 얼굴이 먼 기억 속의 얼굴 하나를 마음 안으로 불러들였다. 아주 오래전 유학 시절의 이야기, 생각하면 슬픈 한 여성에 대한 기억이다. 더 정확히 그녀의 불행한 사랑에 대한 기억이다.
그녀는 나이도 많았지만 사람 만나는 일도 힘들어해서 늘 혼자였다. 어쩌다 학생식당에서 말을 텄는데 서로 처지가 비슷했던지 이후 자주는 아니었어도 연락을 하며 만나곤 했다. 그녀는 어쩐지 늘 울적해 보였고 사연이 있어 보였지만 물어볼 수 없었다. 그런데 자주 보다 보니 조금씩 사정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사랑의 상처를 가지고 있었다. 다른 도시의 유학생과 오랜 연애를 했는데 듣고 보니 미련한 사랑이었다.
나이 차이가 꽤 많은 연하의 남자였고 고전적인 그녀가 그를 위해 많은 희생의 공을 들였던 사랑이었다. 남자는 똑똑했고 얼른 공부를 마치고 귀국했고 돌아가서도 인정을 받아 곧 큰 대학에 취직이 되었다. 그런데 차츰 연락이 뜸해지더니 어느 날 대학 이름과 소속 직위가 찍힌 편지가 도착했다. 결혼한다는 소식이었다. 할 말을 잃었던 나에게 그때 그녀는 웃으면서 말했다. 무서워요, 라고.
어느 해 크리스마스가 되었을 때 그녀와 함께 아일랜드를 방문할 수 있었다. 그사이에 그녀는 아일랜드 남자를 어설프게 만나고 있었고 나도 덩달아 그와 친구로 지내던 중이었다. 남자는 그녀를 몹시 사랑하는 것이 분명했지만 그녀는 아직 엉거주춤인 것 같았다. 나야 깊이 상관할 일이 아니어서 모르는 체했다.
자기 고향으로의 초청은 아일랜드 청년에게 프러포즈 같은 것이었고 그녀도 그것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는 나에게 동반을 제의했고 나야 좋은 기회여서 승낙했다. 말하자면 호위병 자격이라고나 할까. 그런데 그녀는 그때 아일랜드와 코리아 사이에서 망설이고 있었던 것 같다. 남자의 사랑을 받아들일 것인가, 곧 공부를 마치고 귀국해야 할 것인가의 선택 앞에서.
제임스 조이스에게 담뿍 매혹되었던 나에게 아일랜드 방문은 많은 추억을 주었다. 하지만 지금도 기억에 남는 건 조이스의 더블린과 더불어 한 아일랜드 노인이다. 친구의 큰할아버지였던 그는 한국전쟁의 유엔군 참전용사이기도 했다.
그는 함께 식사를 하면서 젊은 시절의 ‘코리아'를 그리워했다. 그의 먼 추억 속에서 지구 저편의 나라 코리아는 비록 전쟁의 폐허이기는 했어도 여전히 아름답고 친절하고 예의 바른 나라였다. 언제고 반드시 한번 다시 찾아가고 싶은 ‘원더풀 랜드’였다.
그녀는 돌아와 공부를 끝냈고 아일랜드 청년 대신 귀국을 선택했다. 출국 준비를 도와주며 폐품들을 쓰레기장으로 옮기다가 그 안에서 우연히 편지 뭉치를 보았다. 꽤 많은 편지들은 오래전 남자와의 연애편지들이었다. 그것들을 쓰레기통에 넣으며 그녀가 그를 잊은 건지 아니면 아직도 그리워하는 건지, 나는 알 수가 없었다.
그 뒤로 몇 번 소식이 오가다가 끊어지기 전에 그녀가 보내온 한 편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여기는 내 나라인데 남의 나라 같아요. 사는 게 너무 무서워요.
그녀가 두려워했던 ‘내 나라’는 어떤 나라였을까. 그 나라는 사랑 대신 배신을 선택하고, 약자 대신 강자를 추앙하고, 희생자 대신 영웅을 찬양하고, 평화 대신 전쟁의 위기를 정치화하는 그런 나라가 아니었을까. 어느 외국인의 원더 랜드가 아니라 나날이 많은 이들이 살 수 없어 떠나고 싶어 하는 또 다른 전쟁과 폐허의 나라가 아니었을까.
마지막으로 슬픈 사실 하나를 여기서 말하는 게 옳겠다. 몇 년 뒤 귀국한 나는 그녀가 긴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친지로부터 들을 수 있었다.
지금도 그녀를 기억하면 마음이 전처럼 아프다. 아일랜드는 아니어도 머나먼 어느 나라에서 그녀가 무서움 없이 편안했으면 좋겠다. 다시 그녀의 명복을 빈다.
*‘김진영, 낯선 기억들’ 연재를 마칩니다. 애독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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