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공 : 대전가톨릭 사진가회
+ 마르코 복음 1,29-39
그들은 회당에서 나와,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곧바로 시몬과 안드레아의 집으로 갔다. 그때에 시몬과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어서, 사람들이 곧바로 예수님께 그 부인의 사정을 이야기하였다.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다가가시어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이 가셨다. 그러자 부인은 그들의 시중을 들었다.
저녁이 되고 해가 지자, 사람들이 병든 이들과 마귀 들린 이들을 모두 예수님께 데려왔다. 온 고을 사람들이 문 앞에 모여들었다. 예수님께서는 갖가지 질병을 앓는 많은 사람을 고쳐 주시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셨다. 그러면서 마귀들이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들이 당신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음날 새벽 아직 캄캄할 때, 예수님께서는 일어나 외딴곳으로 나가시어 그곳에서 기도하셨다. 시몬과 그 일행이 예수님을 찾아 나섰다가 그분을 만나자, "모두 스승님을 찾고 있습니다."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다른 이웃 고을들을 찾아가자, 그곳에도 내가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려고 떠나온 것이다."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온 갈릴래아를 다니시며, 회당에서 복음을 선포하시고 마귀들을 쫓아내셨다.
<말씀의 향기>
고통을 기쁨으로 - 이득규 바오로 청소년 사목국 2 차장
도널드 맥컬로우의「빛나는 인격」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뺨에 난 종양을 제거하면서 얼굴 근육이 절단되어 입술이 비뚤어진 젊은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의사에게 물었지요. "제 입은 앞으로도 계속 이런가요?" "네, 그렇습니다. 신경이 끊어져서 어쩔 수가 없군요."
그러자 곁에서 여인의 얼굴을 어루만지던 남편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마음에 들어, 귀엽기만 하네."
그리고 허리를 굽혀 아내의 비뚤어진 입술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그는 그녀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맞추기 위해, 자신들의 입맞춤에 여전히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을 그녀에게 보여주기 위해 자신의 입술을 비틀었던 것이지요. 바로 사랑하는 아내의 비뚤어진 입술에 맞추어 자신의 입술을 비트는 고통을 참아낸 것입니다.
요즘 세상이 너무나 어렵다는 이야기가 여기저기에서 들려옵니다. 경제부터 정치, 교육 모든 분야에서 어려운 것 투성이인 세상이라고들 하지요. 그렇지만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누군가 나를 위로해주고 어려우을 해결해 줄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그로인해 행복을 느끼고 희망을 얻겠지요.
우리에게는 그리스도께서 바로 그런 분이십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온갖 병자들을 고쳐주는 것을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병자들과 함께 지내시면서 그들을 치유해주시고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게 하십니다. 수많은 고통과 어려움 속에 있는 그들에게 예수님의 치유는 단지 육체적인 치유뿐만 아니라 새로운 희망이었고 기쁨이었던 것입니다.
고통은 누구에게나 오는 것이며 어떤 경우 이런 고통이 감당하기 어려워 보일 수 있습니다. 심지어는 누군가 위로해줘도 감당하기 어렵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고통이 순간이 올 때마다 오늘 복음에 나타난 그분의 모습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께는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가 겪는 이 고통을 그분의 위로와 사랑을 통하여 영원한 기쁨, 영원한 생명의 길로 이끌어 주신다는 사실을...
<임기선 신부와 함께 하는 소공동체(2)>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흔들리고...
임신부 : 지난주에는 '왜' 우리 교구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으로 소공동체를 정하였는지를 알아보았습니다. 기억나세요?
마리아 : 네 , 신부님, 복음화하는 친교의 공동체가 바로 소공동체라는 것을 알았어요.
임신부 : 그럼 이번 시간에는 소공동체가 무엇인지, 그 역할과 가치에 대해 알아보기로 해요. 제가 그림으로 한 번 그려보겠습니다.
마리아 : 나무를 보니 「용비어천가」에 나오는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흔들린다.'는 글이 생각나요.
임신부 : 맞습니다. 뿌리가 튼튼하고 깊어야 큰 나무로 자랄 수 있고 좋은 나무가 될 수 있지요. 땅에 드러난 뿌리는 본당, 줄기는 교구, 나뭇가지와 잎들은 보편교회를 나타낸다고 한다면 소공동체는 땅 속에 있는 잔뿌리에 해당합니다. 잔뿌리가 튼실하고 그 역할을 해야 본당, 교구, 보편교회가 굳건하게 되겠지요.
마리아 : 잔뿌리가 소공동체라면.. 소공동체가 이렇게 중요한 것인 줄 미처 몰랐어요. 신부님,
임신부 : 그렇지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친교에 바탕을 둔 공동체 구성원 각자가 책임과 역할을 나누며 자율적이고도 창조적으로 복음을 살아내는 교회 삶의 방식"이 소공동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또한 아시아 주교 대의원회의 교부들은 그들의 사목 경험을 바탕으로 본당과 교구의 친교와 참여를 증진시키는 효과적인 방법으로 그리고 복음화의 진정한 힘으로서 소공동체의 가치를 강조하였습니다.
마리아 : 교회에서 소공동체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임신부 : 그렇죠? 소공동체는 교회운동이나 교회단체처럼 선택적인 것이 아니라 세례 받은 우리 모두가 참여해야 하는 필수적인 기초교회입니다.
마리아 : 신부님, 다음 시간엔 뭘 배울지 벌써 궁금해지는데요.
임신부 : 하하, 소공동체는 뭘 배울지 보다는 무엇을 실천할 지가 더 중요하죠. 다음 시간에는 소공동체와 교회운동 및 단체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기로 해요.
<환경과 생명>
또다시, 새해 결심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었습니다. 매년 그러했듯이, 금년에도 환경과 생명을 살리는 일 한 가지를 일 년 내내 실천하고자 제안합니다. 작년에도 패스트푸드점에서 생일파티를 하지 말자고 했습니다. 패스트푸드가 건강에 나쁘다도 하고는 패스트푸드점에서 아이 생일파티를 해주면 결국 패스트푸드에 대한 행복한 추억을 만들어주게 된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금년에도 아이들을 위한 제안인데요. 아이들에게 장난감을 적게 사줬으면 합니다. 이렇게 말하면 어린이들이 싫어할까요? 다시 말하면 제대로 만든 장난감만 사주자는 말입니다.
자식이 원하는 것은 다 들어주고 싶은 게 부모 마음입니다. 머리핀 예쁘다고 하나 사달라는데 그거 가지고 타박할 부모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일이천원 짜리는 싼 맛에 사주고 일이만원 짜리는 맘먹고 사주고 그럽니다. 기껏 사줬더니 잘 간수하지 않거나 쉽게 싫증 낸다면 몰라도 장난감 가지고 곧 잘 노는 아이를 타박하지는 않습니다.
정작 문제는 다른 곳에서 발생합니다. 장난감이 아이들 건강을 해친다는 것입니다. 장난감 도색에 사용하는 페인트를 납이 함유된 것으로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가의 장난감이 특히 그렇고 고가의 장난감에서도 심심찮게 검출되곤 합니다. 아이들이 조물딱거려서 무언가를 만들기 시작할 때 사주는 인조점토에서도 납이 나옵니다. 가지고 놀 것이 못됩니다.
정교하게 성형한 장난감에는 프탈레이트라는 물질이 들어가는데 이게 암을 일으키고 생식 기능을 저하시키는 환경호르몬 물질입니다. 이제 막 걷기 시작하는 아이가 넘어지면 다칠까 봐 바닥에 가는 메트에도 프탈레이트가 들어갑니다. 아이방에 둘 것이 못 됩니다.
장난감 하나 사면서 어떤 물질이 들어갔는지 매번 확인하는 건 사실 힘든 일입니다. 그래서 만든 제도가 KPS 마크 제도입니다. KPS 마크가 붙은 제품은 안전하다는 것인데, 업체에서 안전한 제품을 생산했다고 스스로 인정하는 경우에 부착하는 마크입니다. 가끔씩 KPS 마크가 붙은 제품도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플라스틱으로 만든 장난감을 산다면 KPS 제품이 그나마 나을 겁니다.
-대전가톨릭 환경회의(042-626-3211-
모두
삶의 스승님을 찾고 있습니다.
맑은
당신을 보여주세요.
글. 그림 이순구(베네딕도)
<이충무의 행복 나침반>
욕심없이 기다리는 마음이 유기농 사랑법입니다.
사랑도 유기농이다
'유기농'의 인기가 대단합니다. 얄팍한 상술로 건강을 위협하는 먹거리들이 넘쳐나는 시대니까요. 이미 '유기농'에 이끌린 발길은 결국 비산 가격 때문에 못내 아쉽게 돌아서고 말지만, 자꾸 눈길은 '유기농'이라는 글자에 꽂힙니다.
그런데, 사실 '유기농'이 별건가요? 아주 단순하게 말하자면 있는 그래도 만든 것, 그게 바로 유기농이 아닐까요? 인공 첨가물이나 화학제품을 투입해서 그저 빠르고 많이 생산하려는 인간의 마음이 '억지'음식을 만들어 냅니다.
유기농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욕심 없이 기다리는 것 뿐입니다. 군데군데 벌레 먹은 곳이 있어도, 생긴 모습이 그렇게 예쁘지 않아도, 지나치게 화려한 색상이 아니어도 그걸 자연의 일부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됩니다.
억지로 만들어진 먹거리들은 빠르고 쉽게 만들어진 약점을 자극적인 맛으로 메우려 하죠. 그 맛에 길들여진 우리들은 진짜 맛의 깊이를 모른 채 건강을 잃어 갑니다. 요즘 우리들 사랑도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진실한 마음을 만들어 가는 과정보다 자극적인 맛의 결과에 더 매달리고, 그러면 그럴수록 서로의 영혼이 망가져 가는 오늘의 사랑법..
사랑도 유기농이면 좋겠습니다. 아무리 욕심내고 서두른다고 사랑이 그렇게 쉽게 완성되는 건 아니니까요. 기다려야 합니다. 햇살과 바람에 저절로 조금씩 익어 가도록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자판기에서 툭 튀어 나오듯, 팝콘이 순식간에 튀겨지듯, 그렇게 손쉽게 얻어지는 게 사랑이라면, 그것이 어찌 그 모든 것 중에 제일일 수 있었을까요? 하느님은 우리 모두가 평생 유기농 사랑을 일궈내는 성실한 일꾼이기를 소망하십니다.
-극작가, 건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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