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선교 지역에 뿌려진
복음의 씨앗들이
풍성히 열매
맺을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 루카 복음 18,9-14
<바리사이가 아니라 세리가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의롭다고 자신하며 다른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자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다. 한 사람은 바리사이였고 다른 사람은 세리였다. 바리사이는 꼿꼿이 서서 혼잣말로 이렇게 기도하였다. '오, 하느님! 제가 다른 사람들, 강도 짓을 하는 자나 불의를 저지르는 자나 간음을 하는 자와 같지 않고 저 세리와 같지 않으니,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일주일에 두 번 단식하고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바칩니다.'
그러나 세리는 멀찍이 서서 하늘을 향하여 눈을 뜰 엄두도 내지 못하고 가슴을 치며 말하였다.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바리사이가 아니라 이 세리가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말씀의 향기>
오늘은 전교주일입니다. -백성수 시몬 해미성지 주임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시어 "기쁜 소식"을 선포하셨습니다. 그 기쁜 소식은 곧 "하느님 나라"입니다. 그래서 그분은 첫 선교를 '하느님 나라가 가가이 왔다.'(마르 1,15)고 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우리에게 "사랑"을 새 생명으로 주셨고(요한 13,34), 그분은 우리를 죽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마지막으로 '세상 끝까지 복음을 선포하라'(마르 16,15)고 명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분의 말씀을 따라 "사랑"을 살아가며 복음 선포에 앞장서야 할 입장입니다. 그런데 새 계명인 "사랑"을 실천하며 복음 선포를 한다는 것은 곧 전교를 뜻하는 것이며 그러므로 전교는 사랑입니다. 전교야말로 선포를 큰 사랑의 삶인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전교의 이런 큰 의미를 잊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전교를 부담스러워하고 있고, 심지어 전교는 나와는 관계없는 별개사항으로 여기는 신자들도 있습니다. 이것은 사실 예수님의 삶을 살기를 거부하는 것이며 스스로 예수님을 따르는 신앙인임을 포기하는 행위입니다. 오죽하면 전교는 교회 본연의 사명이요 신앙인의 기본 삶인데도 "전교주일"이라는 날이 따로 정해졌을까요?
오늘 복음은 바리사이와 세리의 기도 자세에 대한 내용입니다. 바리사이의 기도는 사랑이 없습니다. 그런 세리의 기도는 사랑의 기도입니다. 무엇보다도 '이 조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하며 자신의 성화를 위해 자기를 사랑하는 기도 즉 스스로 자신에게 전교하는 기도의 모습입니다. 세리는 자기사랑의 전교를 이루었습니다. 그런 모범을 사신 분들이 바로 순교자님들이십니다.
전교는 자신을 포함한 세상의 복음화를 위한 사랑의 삶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복음화 없이는 세상의 복음화도 없습니다.
<함께 만드는 이야기 마당>
거룩한 독서 - 김영애 스테파니아. 신탄진 성당
말씀으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고 온 누리의 열굴을 새롭게 하시는 아버지 하느님 찬미 받으소서! 거룩한 독서를 시작하는 저의 마음을 당신의 성령으로 비추시어 성령의 숨결이 가득 서린 성서 말씀 안에서 생명과 빛을 발견하고 당신의 사랑을 온 마음으로 느끼게 하소서.
오늘도 거룩한 독서의 시작기도를 서두로 TV 앞에 앉아있을 시간에 남편 스테파노와 식탁에 마주 앉아 거룩한 독서 일정표에 맞춰 오늘 분량의 성경을 읽으며 둘만의 행복 속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느낀다.
9일부터 시작해 총 63주간 동안 성경은 읽어 내던 12월 성탄에 마칠 예정인 거룩한 독서 모임에 신탄진 본당 형제, 자매 90여 명이 참여했다.
매일의 분량을 집에서 일고 일주일에 한 번식 각 조원들이 만나 그날의 성경을 함께 읽고 마음에 와 닿았던 단어나 문장을 발표하고 왜 마음에 닿았는지 나눔 시간을 갖고 묵상하며 각자 선택한 말씀을 넣어 돌아가며 하느님께 자유기도를 바친다. 자유기도 속에서 각 가정에 고민과 아픔을 이해하게 되고 하느님 치유의 기쁨을 맛보게 된다. 모임을 마치고 나오는 형제, 자매님의 얼굴에서 환한 미소를 엿본다.
우리 본당은 내년 5월 22일 본당 설립 40주년을 맞아 작년부터 시작한 '전 신자 로사리오기도 100만 단 봉헌'과 '전 신자 성경필사'를 끝냈다. 9월부터 시작한 '함께하는 거룩한 독서 운동'에 이어 '참 신앙인 고리 기도 운동'을 10월 29일 9일 기도를 시작으로 11월 7일부터 각 구역별로 저녁 8시에 매일 각 가정에서 12월 5일까지 이어갈 예정이다.
이 운동을 통해 쉬는 교우 화두와 새 가족 찾기에 본당 공동체 모두가 하나 되어 사랑이 충만한 활기찬 공동체로 거듭나길 기대해 본다.
손수 저희를 빚어 만드시고 생명의 숨과 말씀으로 저희를 살아나게 하신 아버지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자비로우신 하느님! 지금까지 베풀어 주신 은혜에 감사 드리며 이 거룩한 독서의 끝기도처럼 저희가 하느님 말씀으로 살아가며 본당 설립 40주년을 맞이하여 미지근한 저희 마음에 성령의 불을 넣어주시어 이 지역 사회에 복음을 전하는 사독 되어 당신의 사랑 받는 자녀가 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소서. 아멘!
우리의 마음 어디엔가
누구나 와서 앉을 수 있는
그런
의자가 있습니다.
-글. 그림 이순구(베네딕도)-
<지요하와 함께 보는 믿음살이 풍경>
작은 일에도 늘 참견하시고 개입하시는 하느님
지난 2월 병상 하나를 장만하여 집의 거실에 들여 놓았습니다. 요양병원에 계신 노친이 가끔 잠깐씩 집에 와서 머무실 경우와 퇴원 이후를 생각해서 마련한 병상이요, 노친의 방에는 두껍고 무거운 전기매트가 있어서 그걸 치울 데도 마땅치 않고, 병상을 들여놓으면 방이 너무 좁아지는 데다가 우리 부부의 눈과 귀에서 멀어지는 문제도 있어서 병상을 굳이 거실에다 놓게 되었지요.
그런데 몸이 완쾌되어 7월 5일 퇴원하신 노친은 집에서도 병상에서 생활하기는 싫다고 하셨습니다. 병상이 없어도 괜찮다고, 방바닥에 앉고 일어서고 하는 것이 좀 힘들긴 하지만 그것도 차차 몸에 익을 거라고 자신감을 표했습니다. 나는 불안한 마음이면서도 병상 때문에 거실이 좁아져서 여러 가지로 불편할 것을 염려하시는 노친의 뜻이 워낙 완강하여 결국 병상을 처분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그리고 노친의 뜻에 따라 노친이 계시던 요양병원에 기증하기로 하고, 요양병원에 전화로 병상 기증 의사를 표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저녁 때까지 병상을 가져가지 않아서 다시 전화를 걸었더니 담당 직원에게 무슨 일이 생겨서 출타를 했다며 다음날 일찍 가져가겠다는 말이 왔습니다.
그날 밤, 노친께서 팔과 다리의 통증을 호소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방바닥에 앉고 일어서는 동작을 거듭하다 보니, 팔과 다리에 가지 않던 힘이 갑자기 가게 된 연유로 팔과 다리는 물론이고 허리까지 아프다는 말씀이었습니다. 도저히 병상을 이용하지 않고는 살지 못할 것 같다는 호소였지요.
방학을 맞아 집에 와 있던 아들, 녀석과 함께 즉시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어머니 방의 전기매트를 들어내고 병상을 들여놓았습니다. 병상 양옆으로 장롱 문도 열 수 있고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좁은 공간이 생겼습니다. 작은 방에 있던 가벼운 전기 매트를 병상 위에 올렸습니다. 그 병상에서 노친은 아무 때고 마음대로 쉽게 일어서고 앉고 할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나는 요양병원의 담담 직원에게 갑자가 무슨 일이 생겨서 병상을 처음 약속한 날에 가져가지 않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문득 '하느님께서 또 한 번 개입해주셨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더군요.
-지요하(소설가, 태안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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