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2010년 주보

연중 제27주일(군인주일) 2010년 10월 3일(다해)

모든 2 2021. 9. 3. 11:45

 

지금 이 순간도 국토 방위를 위해 젊음을

온전히 봉헌하고 있는 많은 장병들에게

주님의 평화와 축복을 간구합니다.

-제 43회 군인주일 담화문 중에서-

 

 

+ 루카복음 17,5-10

 

<너희가 믿음이 있으면!>

 

   그때에 사도들이 주님께,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주님께서 이르셨다.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돌무화과나무더러 뽑혀서 바다에 심겨라. 하더라도, 그것이 너희에게 복종할 것이다.

 

   너희 가운데 누가 밭을 갈거나 양을 치는 종이 있으면,들에서 돌아오는 그 종에게 '어서 와 식탁에 앉아라.' 하겠느냐" 오히려 '내가 먹을 것을 준비하여라. 그리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 허리에 띠를 매고 시중을 들어라. 그런 다음에 먹고 마셔라. 하지 않겠느냐? 종이 분부를 받은 대로 하였다고 해서 주인이 그에게 고마워하겠느냐?

 

  이와 같이 너희도 분부를 받은 대로 다 하고 나서,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하고 말하여라."

 

 

<말씀의 향기>

 

어느 군종 신부의 일기  -길기문 T.아퀴나스 육군 천보 성당

 

  부활이 끝나고 교통사고가 났습니다. 신호등에 서 있었는데 뒤에서 오는 차가 내차를 받고 내 차가 다시 앞차를 받았습니다. 머리를 핸들에 부딪혔고 온몸에는 멍이 들었습니다. 병원에서는 6주 진단이 나왔습니다. 이렇게 크게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 두 번째입니다. 첫 번째는 10년 전 사병으로 군 생활할 때였고, 이번에는 군종신부로서 다시 교통사고가 났습니다. 10년 전 일기장에는 다음과 같이 써 있습니다.

 

 "당신 눈동자처럼 저를 지켜 주소서." "김동진 상병과 교통하고가 났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경황이 없었다." 그 긴박한 상황에서도 저는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상황이 조금 달랐습니다. 사고가 나고 첫 번째 한 일은 기도 하는 일이 아니라 힘겹게 휴대폰을 꺼내 헌병대에 연락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한일은 담배를 사서 뒤 차 아저씨와 함께 담배를 피운 것입니다. 나 보다는 가해자 아저씨가 더 놀란 듯해 그 아저씨를 진정시킬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고 생각해 봤습니다. 왜 첫번째로 한일이 헌병대에 전화한 일인가? 기도를 할 수도 있었고 아니면 부모님이나 동료 사제한테 도움을 청하는 전화를 할 수도 있는데 헌병대라니...

 

  처음에는 내가 군인이라 그렇게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번에 사고가 나서 쓴 일기장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습니다. '사고가 났을 때 머릿속에 첫 번째로  떠 오른 것, 그것은 헌병대에 빨리 전화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군인 신자들이 좋고 내가 무언가 그들에게 주고 싶다는 막연한 이유 때문에 다시 군대를 선택해 군종 사제가 됐는데, 나의 교통하고 때문에 혹 우리 65사단과 신자들이 곤란해지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에 헌병대에 먼저 전화를 걸게 되었다."

 

  사실 지금은 제가 그들에게 더 많은 것을 받고 살아갑니다. 성주간 부활전례가 모두 끝나고 너무 좋은 그들에게 더 많은 것을 받고 살아갑니다. 성주간 부활전례가 모두 끝나고 너무 좋은 경험이었다고 이야기해 주던 상병들, 감동받았다고 이야기 해주던 사목위원들이 있기 때문에 정말 내가 이곳에 존재해야 하다는 느낌을 갖습니다. 자신의 존재 가치를 확인시켜 주는 것, 자신의 존재 가치를 느끼며 사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존재 가치가 되어 주어야 합니다.

 

  지금도 많은 군종 사제들이 자신의 소임지에서 자신의 존재 가치를 느끼며 또 그들에게 존재의 가치를 확인시켜주며 오늘도 열심히 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시니어 칼럼>

 

노인 복지 -한동성 갈리스토. 노인 사목부 전담 신부

 

우리 나라 보건복지부에서 발간한 노인복지법 1조에는 노인 복지(Elderly Wdlfare)를 "노인의 심신의 건강을 유지하고, 노후의 생활안정을 위하여 필요한 조치를 강구"(노인복지법, 2008) 하기 위해 국가에서 추진하는 여러 가지 활동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이를 "노인이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하면서 자기가 속한 가족과 사회에 적응하고 통합할 수 있도록 필요한 자원과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관련된 공적 및 사적 차원에서의 조직과 제반 활동"(최성재, 2008)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왜 어르신들에게 사회적 차원에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가?

  첫째,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해 주기 위해서이다. 노년들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대부분 생산성이 약화되고, 유병률이 비노년층보다 200~300% 높고 대부분의 경우 진료에 고액의 비용이 필요하게 된다. 한 사회의 성원 특히 노년에 있어서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가 무시되고 기본적인 권리가 침해될 때는 따뜻한 인간애로써 이들을 물질적 및 정신적으로 도와주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 이전에 인류의 당위적 활동이다. 따라서 사회는 노년들을  포함한 모든 사람에게 기쁨과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동등하게 인정하고 이의 신장을 위해 노력하며, 모든 사람의 불행과 고통을 제거하고자 적극 힘써야 한다. 우리 민족의 건국이념인 홍익인간(弘益人間), 동학의 사인여천(事人如天)의 사상과 우리 나라 헌법 제 10조에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라는 내용도 인도주의적 가치관을 천명하고 있다.

 

  둘째, 상부상조의 정신이다. 이는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이 재해나 불행을 당했을 때 물질과 서비스로써 상호 도움을 주고 받으려는 정신을 말한다. 이 정신은 공동체에 속한 개인 집단, 또는 지역 사회의 욕구나 문제 해결을 위하여 공동체 전체가 책임을 지려는 사회 연대의식을 말한다. 인간은 혼자 살 수 없고 국가 사회와 공동체 속에서 삶을 영위하는 사회적 동물이다. 사회의 분업화와 전문화에 따라 개인은 더욱 기능적인 인간이 됨으로써 전체 사회에 대한 의존성이 증대되고 있다. 인간복지 구성요소의 많은 부분에 대해서 점차 개인이 통제할 수 없게 되고, 그 원인도 사회적 요인에 의한 것이 많아지게 되었다. 따라서 빈곤과 여러 가지의 불행은 개인이나 가족의 힘으로는 그 해결이 어려워지고  국가사회의 연대책임에 의해서만 해결이 가능하게 되고 있다. 두레는 고조선 시대부터 있었던 소농경영(小農經營)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조직된 공동노동 조직으로 진취성과 농민들의 자주적 성격이 매우 강한 상부상조 조직이었다. 향약(鄕約)은 조선 중기 이후 향통의 질서유지를 위한 향촌민의 교화 기능과 교화의 보조수단으로서 상부상조의 기능을 수행하기 위하여 향촌에 도입된 자치적 제도이다. 계(契)는 조선조에 성행하던 혈연 및 지연 중심의 관행이었는데 친척간 혹은 지역주민들 간에 상호 도움을 주고받는 가장 보편적인 상부상조의 전통으로 오늘날까지도 많은 농촌 사회에 그 유형이 남아있다.

 

  셋째,평등주의이다. 우리나라 헌법 제11조에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 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로 규정되어 있다. 이러한 평등주의적 가치관은 비록 우리의 전통적인 가치관은 아니지만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정치적, 경제적 및 사회적 체제 속에서 새롭게 받아들여져 우리 사회에서 뿌리를 내리고 있으며 앞으로 더욱 강화될 수 있는 주요한 사회적 가치관이다. 이외에도 경로효친 사상은 가족 내에서 부모를 부양하고 경로효친 사상은 가족 내에서 부모를 부양하고 가족 외의 사회에 있으서 웃어른 또는 노인을 존경하는 윤리적 가치관 등이 그 이유가 된다.

 

 

<함께 만드는 이야기 마당>

 

지성(至聖)이면 감천(感天) -김동원 하상바오로 .만년동 성당

 

  '지성이면 감천'이란,하느님께 지성으로 기도 드리고 하느님의 뜻에 순응하면 하느님도 감동하시어 내가 가야 할 나의 길을 인도하여 주실것이라는 '믿음의 표현'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나의 하루 일과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주님 오늘 하루도 건강과 지혜를 주시고.."라는 기도로 시작합시다. 어디 건강과 지혜뿐이겠습니까? '"주위의 모든 분들과 나의 가족들에게도 건강과 행복을 주십시오."라고 하는 간청의 말씀도 드리게 됩니다. 비록 나에게는 조촐한 기도를 올리는 시간이기는 하지만 다시 없는 행복이 주어지는 순간입니다. 하루의 시작 기도를 주님께 드린 다음, 매일 미사책의 오늘 날짜 미사 내용을 읽으면서 나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나서야 하루를 시작합니다.

 

  집 가까운 곳에 갈마 공원이 있는데 이곳에서 아침 운동을 시작합니다. 이 공원이야 말로 시민의 건강 유지를 위해 하느님께서 내려주신 천혜의 운동 장소입니다. 이른 아침 시간에 집을 나와 공원에 도착하면 많은 형제, 자매들이 한데 어우러져 제각각 나름대로의 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나는 맨손 체조로 몸을 품고 난 다음 균형 있게 설치되어 있는 각종 운동 기구에 몸을 맡겨 운동을 계속합니다. 기구 운동이 끝나면 공원 내의 산을 중심으로 숲으로 우거진 길을 따라 걷기 운동을 하며, 여기서부터 묵주기도를 하면서 운동을 하게 됩니다.

 

  기도와 운동을 함께 하는 동안 몸과 마음은 주님에게로 다가가고 있음을 느낍니다. 운동도하고 기도도 올리게 되니 이를 두고 '일석이조(一石二鳥)'아니, '금상첨화(錦上添花)'라고 했던가요?

 

  오늘도 밝오는 새 아침을 맞아 경건한 마음으로 주님 앞에 설 수 있게 해 주시고 어려운 일들을 맞을 때마다 이를 극복할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주시고, 버팀목이 되어 주시는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이러한 오늘의 삶에서 내일의 희망을 바라볼 수 있으며 신앙인의 본분에 충실할 수 있게 해 주시는 주님께 의탁하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가을

 

해가 뜨니

동쪽 하늘이 깨어나고

 

해가 기울어

서쪽 하늘이 잠이 들다.

 

하늘이 열린

 

글.그림 이순구(베네딕도)

 

 

 

<이충무의 행복 나침반>

 

당신은 몇 퍼센트 하느님을 닮았습니까?

 

60% 백일섭과 70% 왕종근 

 

  '스마트 폰 아시죠? 참 대단한 물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게 얼마나 대단하냐면 손금도 봐주더라고요. 손바닥을 최대한 벌리고 스마트 폰으로 촬영하면 무슨 공상과학 영화의 한 장면처럼 스마트 폰이 손바닥을 신속하게 스캔해 줍니다. 그리고 바로 결과가 나오죠. 결과도 대충 나오는 것이 아니라 아주 상세하게 나오니 제가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며칠 전 저는 스마트 폰 때문에 또 한번 뒤로 넘어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번엔 손금이 아니라 관상이었습니다. 스마트 폰으로 얼굴 사진을 찍고 잠시 기다리면 스마트 폰이 정말 스마트하게 분석해서 그 결과를 알려 줍니다. 당신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몇 살인지, 그리고 유명인사 가운데 누구를 몇 퍼센트 닮았는지까지 알려 주는 겁니다.

 

  저요? 당연히 해봤죠. 어찌 안 해볼 수 있었겠어요? 누구랑 닮았다고 나왔냐고요? 배우 '백일섭'씨와 60% 닮은꼴이라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60% 백일섭? 백일섭씨보다는 제가 더 잘생겼다는 저만의 오기로 다시 한 번 도전해 봤습니다.

 

  이번엔 안경을 벗고 찍어 봤죠. 그랬더니 이번엔 '왕종근'아나운서가 나오더군요. 70%라고 합니다. 백일섭씨나 왕종근 아나운서가 멋지지 않아서가 아니라, 좀 더 젊고 멋진 배우가 나오길 바랐기에 왠지 마음은 씁쓸해 졌습니다. 옆에서 저의 제자들은 제 속도 모르고 난리가 났더군요. 난 1% 김태희, 난 7% 장동건, 난 16% 소지섭...

 

  그런데, 그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혹시 스마트 폰으로 우리 얼굴이 하느님 얼굴과 몇 퍼센트나 일치할지 알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호기심에 그런 스마트 폰 하나쯤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바로 그 생각을 접었습니다. 감히 1%도 닮을 수 없는 삶을 살면서 어찌 그런 무모한 바람을 가질 수 있을까 싶어서요. 그래도 혹시 만약 그런 스마트 폰이 나온다면, 여러분은 과연 몇 퍼센트 하느님과 닮았을지 궁금해지진 않으시나요?

 

-이충무 바오로/극작가. 건양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