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말씀 고통 속에서도 위로가 되나이다."
-오늘 '영성체송' 중에서-
「부자와 라자로」Jacopo Bassano,1554
+ 루카복음 16,19-31
<너는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다. 그래서 그는 이제 여기에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초를 겪는 것이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그는 자주색 옷과 고운 아마포 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다. 그의 집 대문 앞에는 라자로라는 가난한 이가 종기투성이 몸으로 누워 있었다.
그는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개들까지 와서 그의 종기를 핥곤 하였다.
그러다 그 가난한 이가 죽자 천사들이 그를 아브라함 곁으로 데려갔다. 부자도 죽어 묻혔다. 부자가 저승에서 고통을 받으며 눈을 뜨니,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곁에 있는 라자로가 보였다.
그래서 그가 소리를 질러 말하였다. '아브라함 할아버지,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라자로를 보내시어 그 손자락을 끝에 물을 찍어 제 혀를 식히게 해 주십시오. 제가 이 불길 속에서 고초를 겪고 있습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이 말하였다. '얘야, 너는 살아 있는 동안에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음을 기억하여라. 그래서 그는 이제 여기에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초를 겪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와 너희 사이에는 큰 구렁이 가로놓여 있어, 여기에서 너희 쪽으로 건너가려 해도 갈 수 없고 거기에서 우리 쪽으로 건너오려해도 올 수 없다.
부자가 말하였다. '그렇다면 할아버지,제발 라자로를 제 아버지 집으로 보내 주십시오. 저에게 다섯 형제가 있는데, 라자로가 그들에게 경고하여 그들만은 이 고통스러운 곳에 오지 않게 해 주십시오.' 아브라함이, '그들에게는 모세와 예언자들이 있으니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하고 대답하자, 부자가 다시 '안 됩니다, 아브라함 할아버지!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가야 그들이 회개할 것입니다.' 하였다. 그에게 아브라함이 이렇게 일렀다.'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다시 살아나도 믿지 않을 것이다..'"
<말씀의 향기>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신상옥 토마스 천안오룡동 주임
부자가 왜 불행합니까? 하느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부터 사람이 풍요롭게 편안히 사는 것은 질투하시는 하느님이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사랑이신 우리 아버지 하느님께서는 그런 하느님이 절대로 아니십니다. 그러면 왜 풍요롭게 편안히 사는 사람들이 불행합니까? 보편적으로 풍요롭게 편안히 살다보면 돈과 재물에 묶이게 되고 그러다 보면 부모, 형제도 몰라보고 친척, 이웃사람들뿐 아니라 하느님까지도 이용하려 들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돈과 재물은 이 세상에 사는동안 필요하고 소중한 것이란 그것에 묶이게 되면 그 사람의 마음을 병들게 하고 타락하게 되기에 불행합니다.
가난한 사람은 행복합니다. 가난한 사람이 왜 행복합니까? 가진 것이 없어 가난한 것 그 자체가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가난한 사람이 행복하다는 것은 가진 것 없이 부족한 가운데 살면서 깨끗한 영혼으로 살게 되고 부모 형제가 귀하고 소중하게 보이며 이웃사람들도 모두 자기보다 더 존경스럽고 귀하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하느님만이 그들의 희망이요 믿음의 대상이기에 천국이 그들의 목적지요 천국으로 가고 있는 사람들이기에 이 세상에서도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금년 초( 2010년) 이 세상을 떠나 하느님께 돌아가신 이태석(요한) 신부의 저서 「친구가 되어 주실래요」의 행복의 정석에서 "이곳 수단은 거꾸로 가는 세상"이라며 "우리 한국은 없는 것이 없는 세상인데 이곳 수단은 있는 것이 없는 세상"이며 기온이 40℃,50℃ 오르내리는 곳이라 시원한 냉수도 한 컵 마실 수 없는 곳이라 따뜻한 물이긴 하지만 마실 물이 있어 감사하게 마신다고 했습니다.
또한 그곳에 사는 여섯 살 정도의 아이가 입원했는데 병원 가까이 사는 친척이 가져 온 옥수수죽 한 그릇을 놓고 여섯 살 박이 아이가 아침부터 배가 고픈 아버지와 서로 먹으라고 눈싸움을 벌이고 있는 아름다운 광경을 전해주며, 더 많은 걸 가져야 하고, 더 많은 걸 누려야 하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우리의 행복관이야 말로 시작부터 잘못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고 전해주고 있습니다.
가진 것이 없어 가난한 사람, 부모 형제 이웃의 소중함을 알고 하느님께 믿음을 두고 희망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진실로 이 세상에서도 저 세상에서도 행복한 사람들이 아니겠습니까?
<시니어 칼럼>
노년기의 자원봉사 활동 - 한동성 갈리스코 . 노인 사목부 전담 신부
일반적으로 노년기는 서비스를 주는 시기보다는 서비스를 받거나 도움을 받는 시기로 인식되어왔다. 대부분의 어르신들은 생각보다는 건강하고 활발히 활동할 수 있으며 평생을 통하여 축척한 많은 지식과 기술을 갖고 있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봉사자가 될 수 있다. 또한 이들 중에는 많은 사람들이 봉사활동하기를 원하고 있으나 그러한 여건이나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
자원봉사활동은 자원봉사자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봉사활동이다. 자원봉사자는 "사회복지활동을 하고 있는 공적 기관 또는 민간기관에 자유롭게 제공하는 개인"(Encyclopedia of Social Work,1977)이다. 금전적인 보상 없이 자신의 자유 의식에 의해 특정 활동에 대한 시간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이러한 자원봉사활동은 개인적으로 자신의 소외감을 벗어날 수 있게 도와준다. 또 구체적인 조직 속에서 새로운 지위를 획득하게 한다. 더불어 그 지위에 상응하는 맡겨진 일을 자발적이고 기쁜 마음으로 할 수 있게 해 준다. 자신이 사회 속에서 가치 있는 존재라는 자긍심과 심리적 만족감을 줌으로써 긍정적인 자아상을 지니게 이끌어 주기도 한다. 또한 자기 성장과 자아실현의 욕구로 노년기에도 충족시키는데 도움을 준다. 창의적이고 책임성 있는 일처리 기회를 통하여 스스로의 능력을 검증있는 일처리 기회를 통하여 스스로의 능력을 검증받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사회적 차원에서 얻는 유익으로는 노년들에 대한 인식을 긍정적으로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즉 노년기에도 왕성한 활동을 보여줌으로써, 노년에 대한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태도를 불식시킬 뿐만 아니라, 사회가 필요로 하는 복지 요원을 충당하게 한다. 특히 노년들이 노년들을 더 잘 이해하고 적절한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이점을 활용함으로써 봉사자와 수혜자 사이의 상호 친근감과 심리적 안정감을 나눌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기도 한다.
노년들 스스로에 대한 부정적 인상도 지울 수 있다. 한 조사에 의하면 한국, 일본, 태국, 미국, 영국, 프랑스 6개국의 60세 이상된 사람들 중 외국의 고령자 특히 서구의 고령자들은 자신이 "젊은이에 비해서 못할 바가 없다"라고 대부분 대답한데 반하여 우리나라 고령자들은 15% 정도만 이를 긍정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과 건강 상태에 대해 부정적으로 답하고 있다.(한국갤럽조사연구소, 1984), 활발한 자원봉사활동은 자신은 능력 확인과 생기 있는 노후 생활을 보장해주는 촉매 역할을 한다.
봉사활동은 개인적으로도 할 수 있지만 단체를 통하여 계획하고 수행하는 것이 노년들에게 있어서 효과적이다. 사실 집단활동을 통하여 자원봉사활동에 참여하는 것은 청년기와 중년기에 경험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현재의 노년들은 사회적으로 역사적으로 어려운 가운데서 생업에만 쫓겼을 뿐 여가를 단체 봉사활동으로 보낼 수 있는 기회와 여유가 없었다.
또한 지도층에 있는 노년들은 단체적 자원봉사활동의 유효성을 인식하고 물러나 있는 노년들을 격려하여 단체 활동을 통한 자원봉사활동의 현장에 끌어들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오늘날의 노년들에게 주어진 또 하나의 십자가는 산업사회에 맞이하게 되는 긴 노년기에 바람직한 노년상을 정립하는 일이다. 사회와 정부가 이를 위해 노력하지만 현 단계에서는 노년들 스스로의 노력이 더욱 절실히 요구된다.
지역사회의 노년들과 지도급 인사 특히 교회는 노년들의 무한한 능력들을 활용하는 노력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 새로운 자원봉사자 모집과 교육 배치 관리에 대한 모형을 개발하고 이를 확대하려는 노력의 하나로 "대전 시니어 아카데미"가 설립되었다. 교구 내 유일한 노년 봉사자 교육 기관이 9월 7일 2기생 70명을 맞이하였다. 많은 관심과 배려를 겸손한 마음으로 머리 숙여 청한다.
<함께 만드는 이야기 마당>
하느님이 제게 보여 주신 또 다른 사랑 - 신정자 카타리나. 모산 성당
저는 "성서와 함께'에서 매년 주최하는 인터넷 "성경 100일 통독"에 5회째 참석해 오고, 끝나면 희망하는 분들과 함께 '성경통독'을 해오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1월 1일부터 4월 부활 대축일까지 봉독 기간이었는데, 3월부터 담이 들어 찢어지는 것 같은 통증을 느끼며 가까스로 통독을 마쳤습니다.
정형외과, 한의원, 신경외과 등등 병원마다 X-Ray상으로는 아무 이상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나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 참을 수 없는 통증을 의사 선생님께 말씀드리니까 그때서야 "그 아픔은 뼈 골절 때 오는 것"이라며 MRI를 찍어 보자고 했습니다.
"90%는 암입니다. 그리고 척추는 다른 장기에서 전이 되었을 확률이 큽니다. 조직검사 후 다른 장기도 검사해 봐야 합니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환자가 숨 돌린 시간 여우도 주지 않고, 다짜고짜 100% 암이라는 확신으로 필름 설명을 하셨습니다. 갑자기 태산준령이 앞을 가로막은 것 같아 막막하고 아무 생각도 할 수 없는 정지된 순간이 지나갔습니다. 척추 조직 검사를 상상할 수 없는 아픔과 통증을 겪는 그 순간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 상에 못 박히신 예수님"이 영화 필름처럼 한 순간 획 지나갔습니다. 그때 나를 위해서 하는 일이지만, 견딜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주시기를 간구하며 통증을 견뎠습니다.
일주일이 천년 같았던 긴 기다림 뒤의 결과는 암이 아니고 뼈의 염증이라고 했습니다. 암이 아닌 지금은 약 먹은 것을 어려워하는 제가 약의 양이 많은 것을 아무렇지 않은 듯 기쁜 마음으로 견뎌낼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입니다. 약을 복용하고 진통제를 먹으며 20일이 지나니까 언제 그랬냐는 듯이 서서히 통증이 멎었고 꿈만 같았습니다.
여지껏 부활 대축일을 40번을 넘게 지냈는데도 부활해서 또 다른 새로운 세상을 사는 것 같은 이 기쁜 마음을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마음으로는 왜 받아들이지 못했었는지 모릅니다. 약을 복용하며 긴 시간을 보내야 하지만 통증없는 제 몸짓 하나하나에도 부족하기만 한 제가 받은 하느님의 크신 사랑이 느껴졌고 하느님께서 제게 보여주신 변함없는 그 사랑이 얼마나 감사한지 세상에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습니다. 제가 여태껏 배운 말이라고는 "주님! 감사합니다."라는 말 뿐인 것처럼 , 자나 깨나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가슴 깊은 곳에서 샘물처럼 터져 나옵니다.
병이 깊어지면 할 수 없으리라 생각했던 30명이 넘는 "새 영세자들과 구역 식구들과의 성경 통독"을 위해 새롭게 마음을 다잡으며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과도 나누어야 할 사랑을 거룩한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의 것이 되기를 소원하며 따뜻한 "사랑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통해서 사마리아에서 우물물을 길러온 한 여인을 만나게 하셨듯이, 하느님께서는 저를 통해서도 "찾으시는 사람"이 있으실 것이라는 마음으로 더욱 "사랑의 말씀"을 전하는 데 소홀하지 않고, 있는 힘을 닿고, 제 마음을 다해 보려고 합니다. 또 다시 새 삶을 살게 하신 하느님! 감사합니다.
이 가을은
평화!
아픔과 설움이
아름다움으로 결실을 맺는
그런 평화!
글. 그림 이순구(베네딕도)
<지요하와 함께 보는 믿음살이 풍경>
신자 아닌 이들과 식사를 할 때도
외식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집에서 가족과 함께 식사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되도록 식사 약속을 하지 않고, 식사 제의를 사절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건강 문제 때문에 금기하거나 제한해야 하는 음식이 많은데, 집에서 식사를 하면 별로 어려움을 겪지 않지요.
하지만 세상을 내 맘대로만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니 부득이 외식을 해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대개는 단체 활동 때문에 회식을 하는 경우인데, 몇 년 전부터 '본전'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외식을 할 바에는 그에 상응하는 자리에서는 천주교의 '식사 전/후 기도'를 하기로 하였습니다. 가령 문학회 모임이나 예총 이사회 등 몇 사람이 함께하는 자리에서는 식사 전에 이런 말을 합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천주 학생입니다. 종교가 없으신 분들이 많지만, 부처님 믿는 분들도 계실 테고, 또 개신교 신자 분들과 천주학쟁이들도 몇 명 있으니, 우리 다 같이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혼자 기도하기보다는 다 같이 기도를 하고 밥을 먹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그러고는 또렷한 소리로 성호경을 하고 '식사전 기도'를 합니다. "하느님, 저희에게 은혜로이 베풀어주신 이 음식과 이 자리에 함께하고 있는 저희 모두에게 축복하시며, 이 000과/와 이 집에서 일하시는 종업원들의 가정에도 축복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아멘, " 이런 내용의 기도를 귀담아듣는다면 그것을 싫어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또 식사 후에는 이런 말을 합니다. "맛있게 또 즐겁게 식사를 잘했으니 하느님을 믿는 사람이든 믿지 않는 사람이든 하늘에 감사하면서, 우리보다 먼저 세상 떠난 이들을 생각해보는 것도 좋은 일이겠지요. 이 고마운 자리를 기도로 마치겠습니다." 하고는 우리 천주교회의 공식 기도로 '식사 후 기도'를 합니다. 역시 기도 내용을 귀담아듣는 사람이라면 그것을 싫어할 비이성적인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이렇게 '식사 후 기도'를 합니다. 역시 기도 내용을 귀담아듣는 사람이라면 그것을 싫어할 비이성적인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이렇게 '식사 전/후 기도'를 하면 부담스러운 외식도 즐거워지고 착실히 본전을 뺀 기분이 듭니다. 가려야 할 음식이 많아 하기 싫은 외식을 하면서, 매번 이런 식으로 본전을 뽑고 있답니다.
-지요하(소설가). 태안성당)-
'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 > 2010년 주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연중 제28주일 2010년 10월 10일(다해) (0) | 2021.09.03 |
---|---|
연중 제27주일(군인주일) 2010년 10월 3일(다해) (0) | 2021.09.03 |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경축 이동 2010년 9월 19일(다해) (0) | 2021.09.03 |
연중 제 24주일 2010년 9월 12일(다해) (0) | 2021.09.02 |
연중 제23주일 2010년 9월 5일(다해) (0) | 2021.08.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