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2010년 주보

연중 제 24주일 2010년 9월 12일(다해)

모든 2 2021. 9. 2. 12:05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내 양을 찾았습니다."(루카 15,5)

 

 

+ 루카 복음 15,1-32

 

<하늘에서는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그때에 세리들과 죄인들이 모두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가까이 모여들고 있었다. 그러자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저 사람은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또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군, "하고 투덜거렸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너희 가운데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에서 한 마리를 잃으면, 아흔아흔 마리를 광야에 놓아둔 채 잃은 양을 찾을 때까지 뒤쫓아 가지 않느냐? 그러다가 양을 찾으면 기뻐하며 어깨에 메고 집으로 가서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내 양을 찾았습니다.'하고 말한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흔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분에 더 기뻐할 것이다.

 

   또 어떤 부인이 은전 열 닢을 가지고 있었는데 한 닢을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 안을 쓸며 그것을 찾을 때까지 샅샅이 뒤지지 않느냐? 그러다가 그것을 찾으면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은전을 찾았습니다.' 하고 말한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하느님의 천사들이 기뻐한다."

 

   예수님께서 또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에게 아들이 둘이 있었다. 그런데 작은아들이, '아버지, 재산 가운데에서 저에게 돌아올 몫을 주십시오.'하고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그래서 아버지는 아들들에게 가산을 나누어 주었다. 며칠 뒤에 작은아들은 자기 것을 모두 챙겨서 먼 고장으로 떠났다.

 

   그러고는 그곳에서 방종한 생활을 하며 자기 재산을 허비하였다. 모든 것을 탕진하였을 즈음 그 고장에 심한 기근이 들어, 그가 곤궁에 허덕이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그 고장 주민을 찾아가서 매달렸다. 그 주민은 그를 자기 소유의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다. 그는 돼지들이 먹는 열매 꼬투리로라도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아무도 주지 않았다.

 

   그제야 제정신이 든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내 아버지의 그 많은 품팔이꾼들은 먹을 것이 남아도는데, 나는 여기에서 굶어 죽는구나.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렇게 말씀드려야지.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저를 아버지의 품팔이꾼 가운데 하나로 삼아 주십시오.'

 

   그리하여 그는 일어나 아버지에게로 갔다. 그가 아직도 멀리 떨어져 있을 때에 아버지가 그를 보고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달려가 아들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일렀다. '어서 가장 좋은 옷을 가져다 입히고 손에 반지를 끼우고 발에 신발을 신겨 주어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아라. 먹고 즐기자. 나의 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도로 찾았다.' 그리하여 그들은 즐거운 잔치를 벌이기 시작하였다.

 

   그때에 큰아들은 들에 나가 있었다. 그가 집에 가까이 이르러 노래하며 춤추는 소리를 들었다. 그래서 하인 하나를 불러 무슨 일이냐고 묻자. 하인이 그에게 말하였다. '아우님이 오셨습니다. 아우님이 몸성히 돌아오셨다고 하여 아버님이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습니다. ' 큰 아들은 화가 나서 들어가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버지가 나와 그를 타이르자, 그가 아버지에게 대답하였다.'보십시오, 저는 여러 해 동안 종처럼 아버지를 섬기며 아버지의 명을 한번도 어기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저에게 아버지는 친구들과 즐기라고 염소 한 마리 주신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창녀들과 어울려 아버지의 가산을 들어먹은 저 아들이 오니까, 살진 송아지를 잡아 주시는군요.'

 

   그러자 아버지가 그에게 일렀다.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너의 저 아우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다. 그러니 즐기고 기뻐해야 한다.'"

 

 

<말씀의 향기>

 

하느님 앞에 좀 뻔뻔해집시다 - 이진욱 미카엘 공주신관동 보좌

 

  오늘 우리는 예수님으로부터 세 가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잃었던 양 한 마리, 잃었던 은전, 잃었던 아들 이야기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 세 가지 이야기는 사로 다른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잃음과 되찾음'입니다. 주제가 '잃음과 되찾음'이라고 해서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이 잃어다가 되찾은 양 한 마리와 은전 한 닢, 작은 아들은 분명 아닙니다. 진짜 주인공이자 핵심은 양 한 마리를 잃었다 찾아 기뻐하는 양의 주인과 잃었던 은전 한 닢을 찾아 기뻐하는 여주인과 잃었던 아들을 다시 찾아 기뻐하는 아버지가 바로 그 진짜 주인공입니다.

 

  좀 엉뚱한 표현이지만 우리는 하느님께 더 뻔뻔스러워질 필요가 있습니다. 메일 넘어지는 지신의 모습을 보면, 도저히 하느님 앞에 나갈만한 위인이 못되지만, 그래도 우리는 자신의 하느님께 담대히 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 보기에는 그곳이 뻔뻔스러운 모습 같아도 하느님만은 우리의 그러한 모습을 기다리고 계셨고 기뻐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직접적으로 아버지를 떠나 방탕한 생활을 했던 작은 아들과 같은 우리였다 할지라도 아버지는 우리가 돌아오기를 기다리십니다. 또는 아버지 곁에  머물긴 했었지만 정작 아버지의 사랑을 냉소적이며 경쟁적인 큰아들의 모습을 우리가 지녔었다 할지라도 아버지는 우리가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리십니다.

 

  우리는 때론 작은 아들로서 때론 큰 아들로서 하느님 앞에 살아갑니다. 두 아들 어느 하나 아버지 앞에 잘한 것 없고 잘난 것 없는 부족하고 못난 아들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두 아들 어느 하나 잘못을 나무라지 않고 사랑으로 대하고 계십니다. 그 아버지가 바로 우리가 믿는 하느님이십니다. 그 아버지께 바로 우리가 그 사랑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하느님이십니다. 그 아버지가 바로 우리가 그 사랑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하느님이십니다. 그 아버지가 바로 우리들의 진짜 아버지, 그 이름 하느님이십니다.

 

 

<시니어 칼럼>

 

노년기의 여가활동  -한동성 갈리스토 . 노인 사목부 전담 신부

 

  인간의 활동은 일과 여가로 구분할 수 있다. 일은 하기로 동의하였거나 하도록  부여된 활동으로서, 의무적이고 시간 제약적이다. 여가는 자유로운 시간의 활동으로 임의적이다. 여가와 관련된 개념으로 놀이(play)와 레크리에이션(recreation)이 있는데 놀이는 여가활동의 한 형태이고, 레크리에이션은 여가활동이다. 아무리 많은 시간이 주어져 있다 하더라고 실제로 그 시간을 이용할 수 있는 기술과 지식이 없으면 유용한 여가활동을 할 수 없게 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여가활동에 필요한 학습은 가능하면 일찍 배워두는 것이 바람직하다.(Atchley,1980) 다시 말해 젊은 시절부터 여가활동(등산, 낚시, 악기, 노래, 바둑, 장기, 운동) 기술을 배워야 한다.

 

  여가활동의 능력은 학습을 통하여 획득되지만 성격적인 요인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즉 낙관적인 태도, 자신감, 자신의 환경에 대한 통제의 감정을 갖는 등의 성격적 요인들은 여가활동 능력을 발전시키는 주요한 요인이 된다. 개인의 생활 목표가 많으면 많을수록 여가활동의 수가 많아지게 된다. 노년기 활동의 다양성은 목표가 다양할수록, 사회적 지위가 높을수록, 건강이 나타나는데 이 가운데 생활 목표의 다양성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므로 다양한 여가활동을 가지며 지내는 것이 노년기의 삶을 충만하게 한다.

 

  여가활동을 유형별로 살펴보면 다카히시몬지(高橋紋士)의 구분에 따라 다섯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단독 충실형 : 미술, 음악 감상, 서예, 다도, 사진, 우표, 골동수집 등으로 차분하고 내성적이며, 홀로 집을 잘 꾸미며 생활하는 성격의 소유자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둘째, 우인(友人) 충실함 : 사교적인 성격으로 친구들과 어울리는데 만은 시간을 소모한다. 홀로 있는 것을 싫어하며 동료들과 어울려 식사, 대화, 게임들을 즐기는 것을 인생의 낙으로 생각한다. 남을 돕는데 적극적이며, 특히 관혼상제들에 적극 참여한다.

 

  셋째, 독서형 : 자신의 서재에서 글을 쓰거나 독서하는 것을 인생의 가치로 생각하며, 발전적이고 창조적인 활동에 적극적이다. 이 유형은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며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홀로 이루어진다는 데 특징이 있다.

 

  넷째, 가족 충실형 : 정원 가구기, 가옥수리 및 꾸미기, 가구를 이동하여 실내 구조에 변화를 주고 환경을 신선하게 하는 것을 좋아하고, 음악회 전람회, 운동경기 등을 구경하기 위해 가족과 함께 외출하는 것을 즐긴다.

 

  다섯째, 사회 참여형 : 지역사회를 위한 봉사활동에 자신의 가치를 부여하고 동창회, 향우회, 친목회, 때로 정치활동 단체 등에 참여하는 것을 좋아하는 형이다.(최순남, 1999)

 

  2004년 한국보건사회 연구원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가장 보람있는 여가활동의 비율은 가족과 함께하는 일(외식, 쇼핑, 주말농장) 다음으로는 친구 만남, 친가 방문, 동호인 모임 등 사교활동, TV 시청, 라디오 청취, 신문보기, 관광, 낚시, 여행 그리고 종교활동 순이었다. 65세 이상 노인의 사회단체 가입률을 보면 전체 응답자 중 47.9%가 종교활동 단체에 가입하고 있으며, 사교단체에는 35.5% 운동단체에는 3.9% 순이다. 성별로 종교활동에 있어서 여성  노인의 가입률이 57.7%로 남성 노인의 가입율 32.3%보다 높으며, 사교단체는 남성 노인의 가입율이 50.6%로 여성 노인의 26.1%보다 높아 성별에 따라 가입하고 있는 사회단체의 종류에 차이가 나타났다. 이러한 가입율은 75세 이상에서는 현저하게 감소했다. 자원봉사활동에 대한 경험은 85.3%가 참가경험이 없다고 응답하였고, 현재 활동 중에 있는 어르신들은  4.0%이며 13.0%였다. 연령이 적을수록, 교육수준과 가구소득이 높을수록 자원봉사 활동 경험률과 향후 참여의향이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함께 만드는 이야기 마당>

 

겨자씨 같은 믿음  -김항일 예비자. 문창동 성당

 

  주님의 은총이 이렇게도 내리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지난 1월 25일 오전 10시 40분쯤 됐을 것이다.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는데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지금 병원 응급실로 가고 있다고 했다.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고 그냥 돌아오려고 뚜벅뚜벅 걸어갔다. 그러나 병원에 도착한 이후 약 일주일간을 병원에 머물러 있어야만 했다.

 

  아내가 수년 전부터 무척이나 힘들고 피곤해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아보라고 누차 말을 해도 아내는 바보스럽게도 그냥 지나치고 말았다. 진단 결과는 만성신부전증이었다. 콩팥기능이 약화되어 평생 일주일에 3일씩 정기적으로 투석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다른 사람의 콩팥을 이식받은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했다.

 

  내가 없으면 아내가 외롭고, 아내가 없으면 내가 외롭다. 아내의 신체의 일부분에 혈액투석용 관을 꼽아 놔 더워도 제대로 목욕도 하지 못하고 음식도 가려서 먹어야 하는 불편, 그리고 무엇보다 평생 주 3일씩 병원에 가야 한다는 현실이 나의 마음을 무겁게 하여 결과적으로 나의 콩팥을 아내에게 주기로 마음을 굳히는 계기가 됐다. 다행히 아내와 내가 혈액형이 동일하고 유전자 검사 결과 별다른 문제점이 없어 이식이 가능하다는 주치의 판정에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혈액투석치료를 받으면서 아내에게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이것은 기적에 가까웠다. 사실 나는 1985년쯤에 군대생활을 하면서 개척교회에서 침례를 받은 적이 있지만 1991년 결혼과 동시에 아내의 뜻대로 신앙생활을 중단했었다.

 

  성경책도 못 보게 하고 교회 근처에는 얼씬도 못하게 하던 아내가 웬일인지 마음을 바꾸었다. 지난 6월 마지막 주부터 나와 함께 문창동 성당에 다니고 있고 예비자 교리와 미사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고 있다.

 

  나도 더 이상 아내의 눈치를 보지 않고 집에서 마음 놓고 성경책을 읽을 수 있게 됐다. 우리 부부는 문창동 성당으로 이끌기 위해 하느님께서 아내에게 이런 고통을 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가끔은 힘들다며 예비자 교리에는 참석하지만 미사는 빠지고 싶다는 말을 한다. 그래도 지금까지 미사에 빠진 적은 한 번도 없다. 집에 돌아오면 평소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평화방송을 시청하곤 한다.

 

  겨자씨 같은 작은 믿음의 씨앗이 아내에게 뿌려졌는데 새들이 먹지 않고 바위 위도 아니고, 가시덤불도 아닌 옥토에서 무럭무럭 잘 자라서 10배 20배의 결실을 볼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드린다.

 

 

 

주께서 만든

이 아름다운 세상

 

이치와 순리로 움직이는

그런

사회였으면 좋겠습니다.

 

글. 그림 이순구(베네딕도)

 

 

 

<지요하와 함께 보는 믿음살이 풍경>

 

수호천사, 수호성인과 함께

 

  누구에게나 '수호천사'가 있습니다. 옛날에는 '호수 천신'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수호천사가 각 사람에게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각 사람의 삶의 내용이 말해줄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기에, 그 자유의지 자체가 수호천사의 역할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또 천주교 신자는 누구에게나 '수호성인'이 있습니다. 옛날에는 '주보성인'이라고 많이 불렀는데, 지금도 '주보'라는 말은 널리 통용되고 있습니다. 이 수호성인의 역할 역시 각 사람의 삶의 내용, 또는 자유의지 안에서 그 존재가 드러날 수 있으리라고 생각됩니다.

 

  과거의 '가톨릭 기도서' 안에는 '수호천사께 드리는 기도'와 '수호성인께 드리는 기도'가 있었습니다. 현재의 기도서에는 그 두 기도가 없어서 많이 아쉽습니다.

 

  오래전부터 내게 수호천사가 계시다면, 또 영세를 통해 수호성인과 영적인 인연을 맺게 되었다면, 그들의 존재와 영적인 인연을 좀 더 적극적으로 확인하며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것은 일상생활 속에서 얼마든지 구원이 가능하리라는 생각이었지요.

 

  가족과 기도를 할 때 반드시 맨 마지막에는 수호천사께 드리는 기도와 수호성인께 드리는 기도를 바쳐 버릇했습니다. 나도 외우고 아이들에게도 외우게 했습니다. 그런데 수호천사께 드리는 기도문은 짧아서 외우기가 쉬운데, 수호성인께 드리는 기도문은 꽤 길어서 외우기도 어렵고 매일 바치는 것도 지루하여 싫증이 납니다. 그래서 수호성인께 바치는 기도문을 내가 짧게 지어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가족과 함께 수호천사와 수호성인께 기도를 할 때는 단수(單數)가 아닌 복수(複數) 용어를 사용합니다. 소개하자면 이렇습니다. "언제나 저희를 지켜주시는 수호천사님들 이시여, 인자하신 주님께서 저희를 당신들께 맡기셨으니 오늘 저희를 비추시고 인도하시며 다스리소서 아멘, "/"저희 가족들의 주보이신 성인 성녀님들이시여, 오늘 또 하루의 삶을 당신들께 의탁하오니, 저희들이 하느님의  품 안에서 바르고 착하고 성실하게 살도록 도와주시고 이끌어주소서, 아멘, "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나 혼자 기도를 할 때도 단수가 아닌 복수 용어를 사용한다는 사실입니다. 아침에는 기도를 가족이 함께하지 못하고 각자 하는데, 아침기도와 삼종기도 다음에 하는 그 두 가지 기도를 가족이 함께할 때처럼 하는 것이지요. 내 가족뿐만 아니라 많은 이웃들도 생각하면서...

 

-지요하(소설가, 태안성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