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
(루카 19,5)
+ 루카 복음 19,1-10
<사람의 아들은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예리코에 들어가시어 거리를 지나가고 계셨다. 마침 거기에 자캐오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세관장이고 또 부자였다. 그는 예수님께서 어떠한 분이신지 보려고 애썼지만, 군중에 가려 볼 수가 없었다. 키가 작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앞질러 달려가 돌무화과나무로 올라갔다. 그곳을 지나시는 예수님을 보려는 것이었다.
예수님께서 거리에 이르러 위를 쳐다보시며 그에게 이르셨다. "자캐오야,얼른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 자캐오는 얼른 내려와 예수님을 기쁘게 맞아들였다. 그것을 보고 사람들은 모두 "저이가 죄인의 집에 들어가 묵는군."하고 투덜거렸다.
그러나 자캐오는 일어서서 주님께 말하였다. "보십시오, 주님!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른 사람 것을 횡령하였다면 네 곱절로 갚겠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아들은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
<말씀의 향기>
지금 우린 무엇을 하고 있는가? - 양동혁 가브리엘 공세리 보좌
예수님은 종종 예상치 못한 시간에, 그것도 나병환자나 가난한 사람들,혹은 세리와 같이 초대받지 못하던 사람들과 함께하셨다. 더군다나 오늘은 보통 세리도 아니고 세관 '장'이다. 당시 세리들은 사람들에게 과한 세금을 징수하여 부를 축적하였기 때문에 온갖 모욕과 사회적 따돌림을 받았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자태오는 그러한 세리들 중에서도 으뜸인 세관 '장'이었으니, 그가 받았을 사회적 대우가 어떤 것이었는지는 누구나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그가 갖고 살았을 외로움과 증오, 그리고 응어리진 아픔이 어떤 것이었는지도 충분히 이해할 수가 있다.
그런 자캐오가 오늘 나무에 올라간다. 다름 아닌 예수님을 보기 위해서다. 물론 나무 위에 오르는 것이 예수님을 만나기에 가장 좋은 방법은 아니었다. 예수님을 만나고 싶다면 군중 속을 파고 들어가 예수님의 옷자락이라도 만져보는 것이 좋았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키가 작은 사람이었다. 멀리서는 사람들 어깨에 가려 아무것도 볼 수 없고,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려 해도 이리저리 밀려다니기 일수였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단지 예수님께서 지나가실 길가에 있던 돌무화가 나무에 오르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그가 그렇게 나무에 올랐다.
예수님께서 그 길을 지나가실 때 즈음,그분의 주변에 몰려있던 사람들은 나무 위에 매달린 자캐오의 옹색한 모습을 비웃기 시작한다. 잘 차려입은 옷을 입고 나무에 올라간 자캐오의 모습은 그간의 부정했던 행실들과 그의 작고 나약한 모습을 한데 묶어 매달아 놓은 듯 초라하기 짝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예수님의 선택은 단 한 사람 자캐오였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그의 집을 방문하신다.
지금 우리가 주님을 만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리 보잘 것 없고, 부끄러운 일이라 할지라도, 그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우리에게 있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모른다. '이걸 한다고 무엇이 바뀌겠는가...' '내가 이러면 남들이 날 어떻게 볼까...'라는 생각들에 사로잡혀 주지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 주님을 가장 깊이 체험할 수 있는 일생일대의 순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남들 때문에 부끄러워 긋지 못했던 성호경이,어색해서 미뤄왔던 가족과의 기도시간이, 귀찮아서 피해왔던 작은 봉사의 노력이, 우리의 판단으로 볼 땐 최고의 방법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것이 주님을 만나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고 우리가 이를 행하고 있다면, 우리의 그 모습은 사랑어린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시는 주님의 눈동자 위에 선명하게 맺혀질 것이다. 마치 나무 위에 오른 자캐오의 모습처럼...
<함께 만드는 이야기 마당>
본당 나들이 -정경일 벨라뎃다. 금산 성당
지난 달 본당 신부님이 미사 때마다 간곡히 당부하시는 소공동체 모임을 위한 전 신자를 대상으로 한 단합대회를 겸한 야유회가 있었다. 행성지는 지리산 둘레길, 전국적으로 비가 내린다는 일기예보 탓인지 그리 많은 교우가 참석하지는 못했지만, 삼십대에서부터 팔순을 넘긴 자매님까지 동참하였으니 올 사람은 거의 온 것 같다.
두 대의 버스에 둘레길을 오를 수 있는 교우와 걷기 어려운 교우들로 나누어 타고 성당을 출발 했다. 예상은 했지만 출발한 지 20여 분이 지나면서부터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하더니 시간이 지날수록 빗줄기가 굵어졌다. 그러나 '우리가 기도하면 비도 우리를 비켜갈 것이니 걱정 마라'는 총회장님의 장담과, 기왕이면 바람도 같이 재워달라고 하라는 신부님의 부탁 말씀에 버스 안은 화기애애했다.
지리산 뱀사골에 들어선 우리 일행은 두 길로 갈라졌다. 둘레길을 포기한 나는 등산로를 따라 잠시 걷기로 했다. 순탄한 길이려니 하고 멋모르고 따라나선 등산로가 내겐 역부족이었다. 장맛비에 불어난 뱀사골 계곡물이 소용돌이치고 발밑에는 비에 젖은 바위조각들이 제멋대로 박혀있어 나는 한 발짝 떼어 놓을 때마다 진땀이 났다. 되돌아 갈 수도 앞으로 갈 수도 없어 난감했다. 앞서 가던 우리 일행이 보이지 않은지 오래다. 미끄럽고 뾰족한 돌을 비켜가며 조심스레 걷느라 시간은 지체됐지만 그래도 우리는 목적을 달성하고 무사히 집합장소에 올 수 있었다.
다시 만난 우리 일행은 점심밥을 감사히 먹고 귀가길에 올랐다. 버스는 빗줄기를 가르며 고속도로를 신나게 달렸다. 나는 문득 내 머리 속이 저 도로처럼 거칠 것 없이 휑하니 뚫려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 마음 속에 남을 이해하려는 마음, 배려하는 마음, 용서하려는 마음이 등산길에 놓인 돌처럼 이리저리 불거져 나와 있다면 그것을 비켜나오느라 사소한 일에도 그리 빨리 튀어나와 흥분하지도 남에게 상처 주는 언행도 조금은 참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고속도로를 지나가버린 자동차를 되돌리기 어렵듯이 언제나 잘못을 저지르고 난 후에 후회하는 내 자신을 잠시나마 뒤돌아볼 수 있는 즐겁고 유익한 시간이었다. 이 시간을 마련하느라 수고하신 신부님과 사목 위원들께 감사를 드린다.
주님!
이
한끼의 식사를
감사히 할 수 있어
행복합니다.
글. 그림 이순구(베네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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