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2013년 주보

연중 제21주일 2013년 8월 25일(다해)

모든 2 2021. 7. 10. 23:28

첫째가 되는 이들」강진영 신부(2013,전동성당)

"지금은 꼴찌지만 첫째가 되는 이들.."(루카 13,30)

 

루카복음 13,22-30

 

<동쪽과 서쪽에서 사람들이 와 하느님 나라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여행을 하시는 동안,여러 고을과 마을을 지나며 가르치셨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주님,구원받을 사람은 적습니까?"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그곳으로 들어가려고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집주인이 일어나 문을 닫아 버리면,너희가 밖에 서서 '주님,문을 열어 주십시오.'하며 문을 두드리기 시작하여도,그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면 너희는 이렇게 말하기 시작할 것이다. '저희는 주님 앞에서 먹고 마셨고,주님께서는 저희가 사는 길거리에서 가르치셨습니다.'그러나 집주인은 '너희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 모두 내게서 물러가라,불의를 일삼는 자들아!'하고 너희에게 말할 것이다.

 

   너희는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모든 예언자가 하느님의 나라 안에 있는데 너희만 밖으로 쫓겨나 있는 것을 보게 되면,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그러나 동쪽과 서쪽,북쪽과 남쪽에서 사람들이 와 하느님 나라의 잔치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 보라,지금은 꼴찌지만 첫째가 되는 이들이 있고,지금은 첫째지만 꼴찌가 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말씀의 향기>

 

꼴찌로 사는 것에 익숙해지기 - "겸손한 마음을 갖게 하소서" -김인호 루카 삼성동 주임

 

  유학 생활 중에 있었던 일이다. 동료와 함께 버스에 탔는데 그가 장애인석에 앉으면서 나에게도 앉으란다. 이 나라는 그래도 되는가 싶었는데 그의 다음 말에 폭소를 금할 수 없었다. "우리도 언어 장애인이잖아"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말로 사람들을 웃기고 울리고 감동도 주었던 사제들이었지만 외국에서 우리들의 모습은 그렇지 못했다. 길을 찾느라 헤매고 식당에서는 엉뚱한 음식을 주문하기도 했으며 남을 변호해주기는커녕 내 억울한 상황조차 해결하지 못했다. 이런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밤낮으로 언어에 매달렸지만 그 방법이 그리 효과적이지 못했던 것 같다. 오히려 다른 곳에 비법이 있었다. 그건 바로 "꼴찌로 사는 것에 익숙해지기"였다. 일하는데 더리고,자존심도 상하며 못 알아듣는 것에 익숙해지기 말이다.

 

  예수님께서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서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쓰라 하시며 꼴찌가 첫째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곧 예수님을 따르고 그분의 말씀을 실천하느라 세상에서 꼴찌가 된 사람들이 결국 하느님 나라에서 첫째가 된다는 것이다. 과연 땅의 꼴찌더러 하늘나라에서만 첫째가 되는 것에 만족하라는 말씀일까?

 

  저마다 가진 것,사는 것,아는 것에서 '꼴찌 탈출'을 꾀하며 남보다 더 빨리 가고 높이 올라가려 애쓴다. 그런 세상에서 점점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면 뒤쳐지고 외면하고 살아가는 이들 사이로 규칙을 지키는 자신이 남보다 늦어지는 것 같아 불안해진다. 남들 신경 쓰고 돕느라 에너지를 소비하는 것은 이 시대의 바보들이나 하는 것 같다. '다들 그렇게 사니 나도 별수 없지 않느냐?"며 자신을 정당화 하는 사람들도 많아진다.

 

  '다들 사는 방법'으로 행복에 이르는 것이 가능하던가? 점점 늘어나는 정신질환 환자들과 살인 및 폭력의 증가,동료와 가족도 믿지 못하게 된 세상의 모습은 첫째가 되는 우리들의 방법에 하자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이제 예수님께서 일러주신 다른 방법을 써보자. 하느님 말씀 때문에 조금 늦어지고 불편하며 수고스러운 그런 꼴찌의 삶에 조금 더 익숙해지는 방법 말이다.

 

 

청소년 바로보기 (39)

 

신앙!아이들을 살려내는 근원적인 힘 3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교육의 위기를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를 잘 들어보면 표면적이고 현상적인 위기 진단이 대부분입니다. 물론 왕따,자살,학교 폭력,비행과 일탈 등이 심각한 문제인 것은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 현상"에 대한 해결책으로 제시하는 것들을 보면 법적인 규제를 통해 문제 현상을 짓누르는 시도일 뿐, 그것이 근본적인 대안이 될 수는 없습니다. 오늘의 심각한 교육문제의 근원은 가치관의 부재 아닐까요? 학교와 학원,가정과 사회에서 아이들에게 우선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도구적인 가치입니다. 즉 아이들이 어떤 능력을 갖추고 있느냐에 따라 그들이 받는 대우가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아이들은 존재론적인 측면에서 자신을 이해하거나 온전히 수용되고 존중받는 경험을 할 기회를  갖지 못합니다. 지식은 넘쳐나지만 지식의 홍수 속에 살아가는 아이들은 정작 자신의 삶을 보는 지혜를 갖추지 못한 채 살아갈 뿐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생각들은 교회 안에도 그대로 스며들어 있습니다. 아이들이 성당에 나오지 않는 "심각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합니다. 그럼데 이 고민이 현상적인 측면의 고민인 경우가 많다보니 당장 문제의 해결을 위해 "재미"라는 요소를 들여오거나 간식,포상 등의 물질적인 공세를 펴기도 합니다.하지만 그렇게 세상의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으로는 결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세상의 프로그램은 전문화된 인력들이 끊임없이 연구하여 아이들의 흥미에 부합하는 새로운 컨텐츠를 지속적으로 공급하고,과감한 자본 투자로 아이들을 끌어들입니다. 재미있는 프로그램으로 말하자면 우리 교회는 이런 세상의 프로그램을 결코 따라갈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 교회는 세상이 줄 수 없는 그리스도의 가치를 갖고 있습니다.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이해와 현실의 어려움을 뛰어 넘는 근원적인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아이들에게 전해주어야 할 것은 세상을 흉내 낸 화려한 프로그램이 아닌 신앙의 본질에 입각한 신앙인의 삶이어야 합니다.

 

  지난주에 말씀드렸듯이 신앙은 세상이 줄 수 없는 놀라운 변화를 만들어 냅니다. 교회에서 어떤 프로그램을 운영 했기에 아이들이 이런 모습을 보이는가를 연구하기 위해 모든 프로글매을 분석한다 해도 아마 그 답을 얻어내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것은 특정 프로그램으로 인해 나타난 결과가 아니라 삶 안에 아로새겨진 신앙의 힘이기 때문이지요. 자신도 모르게 아이들은 그리스도의 시선으로 자신을 들여다봅니다. 조금 귀찮고 힘들어도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고, 뭔가 위미를 찾으려 합니다. 또 지치고 힘들 땐 자신도 모르게 기도를 중얼거리며 희망을 찾습니다. 신앙이 만들어내는 삶의 변화,이것이 심각한 청소년문제를 해결하는 근본적 대안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오종진 신부. 복수동 주임-

 

 

미사 속 숨은 보화

 

감사기도문의 대화

  감사송을 바치기에 앞서 사제는 교우들과 삼중 대화를 나눕니다.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또한 사제와 함께"

  "마음을 더높이"- "주님께 올립니다."

  "우리 주 하느님께 감사합시다."- "마땅하고 옳은 일입니다."

  이 대화는 미사의 핵심기도라고 할 수 있는 감사기도에 공동체가 더욱 적극적인 자세로 함께 하도록 권고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 말 안에는 감사기도를 바치는 자세와 기도 내용이 담겨져 있습니다. 이 대화는 유대 찬양 기도의 시작 형식을 본뜬 것이며 히뽈리또 감사기도를 첫부분에도 나타나는 초대 교회로부터 오랜 전통을 갖고 있는 대화입니다.

 

 

신앙의 해 특집

가톨릭 교리 해설(32) - 김두한 신부. 대전가톨릭대학교 교수

 

제3편 -제2부 : 십계명

 

우리는 「가톨릭 교회 교리서」제3편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해 살펴보고 있습니다. 제1부에서 인간의 존엄성과 소명,인류 공동체,법과 은총을 통해 그리스도인의 삼ㄹ을 이해했다면,이제는 제2부 '십계명'을 통해 이러한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오늘은 십계명을 소개하고 다음주부터 계명 하나하나를 설명하겠습니다.

 

  십계명(十誡命)은 열 가지 계명을 말하지만,원래 하느님의 '열 마디 말씀'을 뜻합니다. 이 말씀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맺으신 계약의 조문이었습니다. 따라서 십계명은 이집트 종살이에서 해방된 지침들입니다.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며 그분의 길을 따라 걷고,그분의 계명과 규정과 법규들을 지키면,너희가 살고 번성할 것이다."(시녕 30,16) 그래서 십계명을 지킨다는 것은 하느님의 백성으로 사는 것이고, 약속된 '생명과 자유'를 누리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십계명을 받아들이셨고, 또한 사랑의 이중 계명으로 십계명의 참 의미를 밝혀 주셨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온 율법가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마태 22,37-40),이처럼 십계명의 정신은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입니다. 따라서 십계명은 이 '사랑의 계명'에 비추어 해석되어야 합니다. 사랑은 율법을 완성하기 때문입니다. (로마 13,10 참조) 그래서 십계명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사랑의 실천을 가르치는 계명입니다.

 

  또한 십계명의 각 계명은 다른 계명들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창조주이신 하느님을 찬미하지 않고서는 다른 사람을 올바로 존중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피조물인 모든 사람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하느님을 흠숭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한 계명을 어기는 것은 다른 계명을 어기는 것입니다.

 

  십계명은 그 자체보다 그 정신을 깨닫고 그대로 실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제가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무슨 선한 일을 해야 합니까?....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켜라"(마태 19-16-17)

 

  일. 한 분이신 하느님을 흠숭하여라.

  이. 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마라.

  삼. 주일을 거룩히 지내라.

  사. 부모에게 효도하여라.

  오. 사람을 죽이지 마라.

  육. 간음하지 마라.

  칠. 도둑질을 하지 마라.

  팔. 거짓 증언을 하지 마라.

  구. 남의 아내를 탐내지 마라.

  십. 남의 재물을 탐내지 마라.

 

 

 

 

오늘은

오롯이  키워 논

어머니의 작은 풍경이

 

그립습니다.

 

글. 그림 이순구(베네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