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 기다림」황영준 신부(2013,프랑스 노틀담 성담)
"행복하여라,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1"(루카 12,37)
+ 루카복음 12,32-48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 작은 양 떼야,두려워하지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그 나라를 너희에게 기꺼이 주기로 하셨다. "너희는 가진 것을 팔아 자선을 베풀어라. 너희 자신을 위하여 해지지 않는 돈 주머니와 축나지 않는 보물을 하늘에 마련하여라. 거기에는 도둑이 다가가지도 못하고 좀이 쓸지도 못한다. 사실 너희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희의 마음도 있다.">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 바로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어라.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 주인은 띠를 매고 그들을 식탁에 앉게 한 다음, 그들 곁으로 가서 시중을 들 것이다. 주인이 밤중에 오든 새벽에 오든 종들의 그러한 모습을 보게 되면, 그 종들은 행복하다! 이것을 명심하여라,도둑이 몇 시에 올지 집주인이 알면, 자기 집을 뚫고 들어오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너희가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
<베드로가, "주님,이 비유를 저희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아니면 다른 모든 사람에게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주님께서 이르셨다. "주인이 자기 집 종들을 맡겨 제때에 정해진 양식을 내주게 할 충실하고 슬기로운 집사는 어떻게 하는 사람이겠느냐? 행복하여라, 주인이 돌아와서 볼 때에 그렇게 일하고 있는 종!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주인은 자기의 모든 재산을 그에게 맡길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 종이 마음속으로 '주인이 늦게 오는구나, ' 하고 생각하며, 하인들과 하녀들을 때리고 또 먹고 마시며 술에 취하기 시작하면, 예상하지 못한 날, 짐작하지 못한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와서, 그를 처단하여 불충실한 자들과 같은 운명을 겪게 할 것이다. 주인의 뜻을 알고도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거나 주인의 뜻대로 하지 않은 그 종은 매를 많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주인의 뜻을 모르고서 매 맞을 짓을 한 종은 적게 맞을 것이다. 많이 주신 사람에게는 많이 요구하시고, 많이 맡기신 사람에게는 그만큼 더 청구하신다.">
<말씀의 향기>
준비하고 있어라 "하느님께 돌아가는 우리의 삶" -백광현 세례자요한 부여 성요셉병원 병원장
우리의 삶은 탄생부터 죽음까지 많은 준비들로 이루어진다. 예수님께서는 충성스러운 종은 주인이 언제 올지 늘 준비할 때 행복하다고 말씀하신다.
우리 신앙인들에게 주님을 완전하게 뵈옵는 날은 죽음의 날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죽음의 날을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가?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에게는 부정,분노,타협,우울,순응의 반응이 상황에 따라 준비에 따라 서로 다르게 더러난다.
병원에서 환자를 방문할 때에 서로 다른 준비 속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있는 환자들을 만나게 된다. 말기환자들에게 나타나는 반응 중 가장 많은 시간을 차지하고 있는 반응이 우울한 상태이다. 건강한 사람들의 눈에는 이 반응의 상태가 무의미하고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으니 환자에게는 본질적인 물음의 해답과 정화가 일어나는 소중한 시기임을 확인하게 된다.
내 능력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무엇이 진정으로 소중하고 무엇을 영원히 간직할 수 있는지.
지난날의 삶을 되돌아보며 삶의 전부라 여기고 살아왔던 것이 이 순간에 의미를 잃어버리고 한낱 욕망과 잡착의 산물임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자신의 한계를 체험하며 진정으로 필요한 것을 선택하고 추구하게 된다.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을 직면하고 다가오는 순간을 하느님의 말씀에 순응하게 될 때 죽음을 준비하는 말기환자에게는 하느님을 만나기 위한 준비가 이루어지는 시기가 된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시고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주셨음에도 모든 것이 자신의 능력과 힘으로 얻어졌다고 자만하고 하느님의 뜻에 맞게 관리하지 못하고 자신의 이기적인 욕망을 채우고자 한다면 우리는 불충한 종의 모습으로 하느님을 뵙게 될 것이다.
하지만 "주인이 돌아왔을 때 깨어 있다가 주인은 맞이하는 종들은 행복하다."하신 말씀을 기억하며 모든 것이 내 소유가 아닌 하느님으로부터 와서 하느님께 돌아가는 것임을 알고 잘 보존하고 관리한다면 충실한 종의 모습으로 하느님을 뵙게 될 것이다.
청소년 바로보기(37)
신앙! 아이들을 살려내는 근원적인 힘 1
신앙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큰 희망이 될 수 있는지를 깊이 깨덜은 적이 있습니다. 학교에서 근무할 때의 일입니다. 수능을 한 달쯤 앞둔 어느 날,평일 저녁 미사가 끝나고 아이들이 다 빠져나갔는데 고3 학생 하나가 감실 앞에 혼자 앉아 있습니다. 잠시 후 이 아이는 아주 더러운 울음을 터트렸고, 꽤 오랜 시간을 그렇게 감실 앞에 홀로 앉아 울먹이며 하느님께 자신의 마음을 펼쳐놓고 있었습니다. 흐느끼며 앉아 있는 그 뒷모습이 얼마나 제 마음을 안타깝게 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고 소중하게 느껴졌습니다. 가슴 속에 짓누르고 있는 그 갚은 삶의 무게에 얼마나 지쳤으면 그렇게 홀로 하느님 앞에서 눈물을 터트렸겠습니까? 어쩌면 이 아이에게는 선생님도 부모님도, 친구들도 위로가 되지 못했는지 모릅니다. 자신을 짓누르는 그 깊은 아픔 혹은 두려움을 혼자 감당해낼 수 없었기에 이 아이는 하느님 앞에 나와 자신의 모든 것을 열어놓고 나를 좀 도와달라고 절박하게 올부짖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깊은 눈물을 쏟아내며 이 아이는 하느님께서 주시는 따뜻한 위로와 평화를 찾아가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의 힘입니다. 감당할 수 없는 깊은 아픔이나 두려움에 휩싸일 때 우리는 절망과 좌절이라는 감정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때때로 이 감정들은 인간이라는 존재를 무너뜨리기도 합니다. 이 녀석도 어찌해야 할지 모를 그 낮선 감정들로 인해 혼란을 겪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녀석의 마음 안에는 하느님이 계셨습니다. 이 복잡한 마음을 들고 그분 앞에 나가면 그분이 위로해 주실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이 있었기에 이 아이는 모두가 돌아갈 텅 진 경당에 홀로 앉아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깊은 마음 속 이야기를 펼쳐놓으며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만일 이 아이에게 신앙이 없었다면,과연 이렇게 하느님 앞에서 잔신의 복잡한 마음을 털어놓고 뜨거운 눈물을 쏟아내며 위로를 얻을 수 있었을까요? 학교와 학원이 과연 이렇게 지쳐서 힘겨워하는 아이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전해줄 수 있을까요? 두려움과 아픔에 짓눌린 자신의 깊은 내면과 만나고, 그 안에서 위로와 희망을 찾아갈 수 있도록 영적인 안내를 해 주는 학원이 과연 세상에 있을까요? 그리고, 깊은 삶의 아픔을 끌어안고 그 안에서 희망을 찾아낼 수 있는 시선을 갖지 못한 아이들이 과연 세상을 행복하게 살알 수 있을까요?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두려움과 아픔 속에서 포기하고 주저앉는 것이 아니라 당당하게 일어서서 새로운 희망을 가슴에 담고 도전을 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 이것이 바로 힘겨워하는 아이들을 살려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고, 신앙은 이것을 가능하게 해 주는 근원적인 힘입니다.
-오종진 신부.복수동 주임-
미사 속 숨은 보화
감사기도문의 요소 - 성령강림 기원과 전구
미상의 경우 청원기도는 두 가지 형태로 나뉩니다. 첫째는 성령강림 기원(Eqiciesis)입니다. 하느님의 구원이 재현되려면 최후만찬 때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빵과 포도주의 형상 안에 현존하셔야 합니다. 이러한 능력을 가지신 성령이시기 때문에 교회는 특별한 청원기도를 통해서 교우들이 바친 예물이 축성되어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되고, 이 흠 없는 제물이 영성체 때에 이를 받아 모시는 이들에게 구원이 되도록 하느님의 힘이신 성령감림을 기원합니다. 둘째는 전구(Intercessiones)입니다. 미사는 하늘과 땅의 온 교회가 하나가 되는 예식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통하여 구원에 참여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모든 산 이와 죽은 이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신앙의 해 특집
가톨릭 교리 해설(30) - 김두한 .신부 대전가톨릭대학교 교수
제3편-제1부-제3장-제1절 : 법(法)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로 태어난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의 말씀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삶의 기준으로 삼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의 헛된 우상들을 멀리하고 ''하느님의 법'에 따라 살아가려 노력합니다. 우리의 구원은 하느님께서 내리시는 법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리스도인에게 법(法)이란 무엇인지 살펴봅시다.
먼저 하느님 법(神法)은 일반적으로 우리의 이성으로 자연스럽게 알 수 있습니다.우리는 스스로 선과 악이 무엇이고, 진리와 거짓이 무엇인지 식별할 수 있는 도덕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이것을 자연법(自然法)이라고 합니다. 자연법은 우리 본당에 새겨진 '양심'을 통해 자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선을 행하고 악을 피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하느님께서는 특별히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하시고 당신의 법을 계시하셨습니다. 이 법은 구약 성경의 '율법'이고,십계명에 요약되어 있습니다. 십계명은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에 어긋나는 것을 금(禁)하고,그 사랑을 위한 기본적인 행실을 명(命)합니다. 십계명은 우리에게 하느님의 부르심을 일깨우고 하느님의 길을 밝혀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연법과 구약의 법(옛 법)을 완성하는 새 법,곧 복음의 법을 주셨습니다. 복음의 법은 그리스도의 업적이며, 특별히 산상 설교(마태 5-7장)에 표현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랑의 버'(마태 22,37-40)을 당신의 삶으로 가르쳐 주셨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지킬 새로운 삶의 규범은 사랑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리스도인으로서 산다는 것은 성령의 도우심(로마 5,5 참보)으로 그리스도의 법에 따라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법만이 아니라,우리 사회(국가)에 의해 제정된,정당한 실정법(實定法)을 양심적으로 지킵니다. 또한 천주교 신자는 교회가 정한 교회법을 지킬 의무가 있습니다. 교회는 신앙 공동체일 뿐만 아니라 하나의 조직을 갖춘 가시적 사횡기 때문에 제도상의 권위와 법적 위계를 갖추고 있습니다. 교회법은 하느님의 법에 대한 구체적인 실현 방향을 제시한 것이므로, 우리는 존경과 사랑으로 따라야 할 것입니다.
천주교 신자들이 지켜야 할 '여섯 가지 의무'를 보면,
① 모든 주일과 의무 축일에는 미사에 참석해야 합니다.
② 적어도 일 년에 한 번은 고해성사를 받아야 합니다.
③ 적어도 일 년에 한 번은 부활 시기에 영성체를 해야 합니다.
④ 정해진 날에 단식재와 금육재를 지켜야 합니다.
⑤ 교회의 유지비(교무금)을 부담해야 합니다.
⑥ 교회가 정한 혼인법을 지켜야 합니다.
매일
내가 할 수 있는
한 마디
그대를 사랑합니다.
글.그림 이순구(베네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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