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2021년 주보

성령 강림 대축일 2021년 5월 23일(나해)

모든 2 2021. 5. 24. 05:04

논산 대교동 성당 성광원 공소

충청남도 논산시 장마루로 630-12(광석면 율리 산 52-3)

 

 

+ 요한복음 20,19-23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성령을 받아라.>

 

  그날 곧 주간 첫날 저녁이 되자,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당신의 두 손과 옆구리를 그들에게 보여 주셨다.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기뻐하였다.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이렇게 이르시고 나서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남아 있을 것이다."

 

 

<말씀의 향기>

 

우리를 새롭게 하시는 성령  -박상언 그레고리오 성령쇄신 봉사회 보좌

 

 

  오늘은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협조자, 성령께서 내려오심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이후 제자들은 다락방에 모여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계시지 않는다는 두려움에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던 제자들이 성령을 받고 당당히 세상으로 나아가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 성령 강림 대축일은 교회의 시작일입니다. 또한 전례적으로 오늘은 부활 시기의 마지막입니다. 지난 50일간 예수님 부활의 영광과 기쁨을 묵상하는 시기였다면, 성령 강림 대축일을 지내면서 성령으로 탄생한 교회와 그 교회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의 일상을 바라볼 수 있는 연중 시기로 접어들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말씀하십니다. "성령을 받아라."예수님이 돌아가신 줄로만 알았던 제자들은 두려움 속으로 자신들을 함몰시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숨을 불어넣으심으로 다시 활기를 되찾게 해 주십니다. 하느님께서 그저 진흙이었던 인간의 코에 숨을 불어넣으시어 새롭게 창조하신 것처럼 제자들을 새롭게 하십니다.

 

  하느님의 순결을 통해 창조된 인간처럼, 예수님의 숨결로 활기를 찾는 제자들처럼, 성령을 통해 주님을 증언하는 사도로 거듭난 제자들처럼, 우리는 늘 성령과 함께 살아가야 합니다. 또한 그 성령을 통해 새롭게 되기를 청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성령이라고 하면 은사만을 생각하고 그 은사를 청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이미 성령을 받았습니다. 세례를 통해 성령을 받았고, 견진성사를 통해 성령이 더욱 굳건해졌습니다. 그러나 일상을 살아가면서 조금씩 조금씩 잊혀졌을 뿐입니다. 마치 집 안 어딘가에 성경이 분명히 있지만 어디에 두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 것처럼, 우리는 분명히 성령을 받았습니다.

 

 성령께서 내려오심을 기념하는 오늘, 우리 안에 잊고 있었던 성령을 다시 한번 깨워 볼 수 있는 날이 된다면 좋겠습니다. 성령께서 주시는 것은 세례 때의 설렘일 수도, 주님께 용서받은 후의 환희일 수도, 미사 때에 느꼈던 포근한 감동일 수도, 누군가를 향한 뜨거운 사랑일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의 신앙생활 한편에 자리하고 계신 성령을 기억하면서 그 성령께서 우리를 다시금 새롭게 해 주시기를 보는 한 주간되시기 바랍니다.

 

 

<사회와 교회를 잇는 길잡이 >

 

죽음의 소식보다 생명의 소식을 알리자

 

  뉴스의 사회 1면이 언젠가부터 죽음의 소리가 다분히 많다. 그래서 아픔과 슬픔, 고통과 죽음에 익숙해져 가는 우리의 눈과 귀에 우리 삶의 안정도 뒤흔들리기 일쑤다.

 

  그럼에도 어김없이  찾아온 5월의 싱그러움이 느껴지는 어느 날, 아기들이 태어나서 소리가 간간이 들려온다. 송구스럽게도 미리 말하지 못했다는 말부터, 코로나로 조심스럽게 지내다 보니 이제야 연락을 준다면 다들 태중의 아기들이 조만간 탄생한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준다. 당연히 너무나 고마울 뿐이다. 아기의 탄생 그 자체가 축복이거늘, 그 기쁨을 모두가 함께 나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5월 생명 주일을 시작으로 자주 바치는 생명운동 기도문 '생명의 주일이신 하느님', '저희와 온 세상에 자비를 베푸소서', '저희가 생명의 복음을 선포하게 하소서', '생명의 문화를 건설하게 하소서'이다. 이 기도를 처음 바칠 때부터 가졌던 마음이 하나 있다. 생명운동은 아픔과 실의, 절망 속에서도, 기쁨과 평화를 희망하며 찾아 전하는 사랑의 실천이다. 죽음의 문화 속에서도 생명의 외치는 것이며, 주위에 아름답고 희망찬 생명의 소식들을 전해야 한다.

 

  태아는 엄마 뱃속에서 열 달을 보내면서 아주 긴밀하게 교감을 나눈다. 이러한 교감은 태아의 지능적, 정서적 발달에도 도움이 된다. 특히 도움이 되는 태교중 하나가 태담이다. 태아에게 이야기하듯 말하는 것이다. 아기의 뇌는 청각을 통해 성장한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항상 태아에게 상냥하고 좋은 말을 건네는 것이 좋다.

 

 우리는 태중에서부터 '사람을 살리는 소리', '삶의 긍정을 가져다주는 말', '생명을 지키는 소식들'등의 말을 들어왔다. 사람과 사람, 생명과 생명 사이의 좋은 말을 건네는 것도 생명운동의 시작이라는 생각을 다시 가져본다. 당연히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께서 보내주신 사람들과도 좋은 말을 건네며 그들에게 이로움을 가져다주는 생명운동가가 되어 보자

 

  얼마든지 좋다. 아기의 탄생 소식들을 알리는 막달의 산모들이 그 몸을 통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고 알려주고, 자신과 아기를 위해 기도해 달라는 그 말을 통해 생명의 감사함을 느낄 수 있어 너무나 감사하다.

 

  특별히 주변의 아름다운 산모들과, 그들을 돌보는 아빠와 가족들에게 오늘은 축하의 말, 기쁨과 평화의 말을 건네는 것만으로도 생명운동은 시작된다. 또한 본당에서 언제든, <태아와 산모들을 위한 축복 예식>을 통해 축복의 기도와 인사로 더욱 활기찬 생명운동의 장을 만들어가도 좋겠다.

 

-이영일 야고보 신부 주교회의 생명운동본부 대전교구 담당-

 

 

 

스테인드글라스 이야기②

 

부산 가톨릭 대학교 신학대학 대성전 출입구

 

  구약에서부터 하느님은 인간이 당신의 현존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성전을 마련해 주셨다. 따라서 교회 성전의 문은 인간이 세속의 삶에서 발걸음을 돌려 하느님을 만나 대화하고 그분의 자녀로 성장하는 관문으로써의 상징성을 지닌다.

 

  신학교 대성전의 문은 천지를 창조하신 하느님의 말씀 자체이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업을 완성하기 위해 부르심을 받은 미래의 목자들이 세속과 하느님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하기 위해 끊임없이 드나드는 문이다.

 

  천지창조의 히브리어 원문은, 글자 자체가 지닌 미적 감각과 함께 하느님의 말씀을 인간의 글로 옮긴 첫 번째 언어라는 이유만으로도 탁월한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신학의 전당인 신학대학의 대성전 입구에 어울리는 품격을 지녔다고 여겨진다.

 

  유리 모자이크는 하느님 현존의 표징인 성전이 한편으로는 세상과 구별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세상에 열려 있음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다. 즉, 전면 유리를 통해 하느님과 인간의 친교의 장인 성전이 세상을 향해 개방되어 있음을 표현하고, 동시에 모자이크로는 하느님께서 머무르시는 거룩한 집으로 구분됨을 표현하고 있다.

 

  모자이크는 형형색색의 조그만 유리조각들이 모여 조화를 이루고 의미를 창조하는 예술이다. 수많은 인간의 각양각색의 삶이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활동으로 정화되고 조화를 이루며, 아버지의 천지창조의 말씀은 아드님의 "새 창조"로 세상 끝 날에 완성될 것이다. 천지창조의 말씀에 대한 모자이크 작업으로 감히 이 깊은 의미를 담고자 한 유리 모자이크 중앙에 타원형 밝은 색상을 넣음은 창조를 완성하시는 그리스도의 빛이 세상에 침투하여 점점 퍼져나감을 표현하기 위함이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손수 만드신 모든 것이 참 좋았다."는 말씀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도우심으로 목자로 불리운 사람들이 진지한 기도와 공부와 활동을 통해서 모자이크처럼 완성되길 빌면서...

 

  2008년 당시 신학대학교 대성전 문을 제작하며 썼던 작품의 제작 의도이다. 지금은 대구와 부산 신학대학이 합병하여 이제 더 이상 신학생들의 손길을 담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 중 하나가 되었다.

 

-손승희(손소벽 막달레나) 유리화 작가-

 


 * 교구내 공소

  논산대교동성당 성광원공소



  1956년 3월 논산본당의 생제 신부가 양생원(현 성광원)을 설립하면서 전교되어 1958년 김영재 회장을 중심으로 17명이 공소를 시작하였다. 초기에는 나석주의 집에서 공소 예절을 가졌고, 이어서 흙벽돌집을 지어 10여 년간 사용하다가 1973년에 27평 규모의 강당을 건립했다. 그 후 1984년 현재의 강당(50평,철근콘크리트)을 건축하고, 1986년 수녀원을 신축하였는데 건축비는 나사업가연합회의 지원과 공소 교우들,본당지원에 힘입었다. 교세로는 전성기였던 1980년대는 100여 명이 되었으나 현재는 20여 가구에 30여 명의 교우가 정기적인 공소 미사에 참례하고 있다.

 

<해외 유학 사제들의 편지>(1)

 

낯선 곳에 살아계신 하느님과 함께

 

  찬미 예수님, 저는 2011년 1월 사제서품을 받고 2013년 1월까지 대전 대사동 성당에서 행복하게 사제로 살다가, 교의신학을 더 공부했으면 좋겠다는 교구장 주교님의 명을 받고 2013년 2월에 로마에 오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이태리어가 어렵지만, 처음 이태리어를 배울 때 이태리어는 정말 많이 어려웠습니다. 책상, 접시 등의 단어를 하나씩 노트에 적어가며, 잊어버리면 다시 외우고 잊어버리면 다시 외우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2013년 10월에 "천사적 박사"라고 불렸던 주보성인을 기려 "안젤리 쿰"이라 불리는 성 토마스 아퀴나스 대학교 신학부 대학원 과정에 입학하여 공부를 시작했고, 2015년 6월, 토마스 성인의 종말론 가운데 "사후 영혼들은 육신의 부활 전까지 어떤 상태로 지냈는지"를 공부하여 작성한 석사 논문을 제출하였습니다. 논문 제출 몇 달 전, 저로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부름을 받고 그해 9월부터 교황청 인류 복음화성에서 근무하기 시작했습니다.

 

 2016년 가을부터는 주교님의 분부에 따라 퇴근 후에 박사 과정 수업을 들으러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지도 교수님과 상의 후, "성 토마스 아퀴나스 예수님의 세례 신비 주해"를 박사 논문 주제로 정하였습니다.

 

  일을 하면서 퇴근 후에 공부하는 것이 어렵기도 했지만, 순수한 마음으로 하느님의 진리 탐구를 위해 일생을 바치셨던 토마스 성인과 교회의 위대한 교부들, 그리고 진실한 마음으로 그분들의 학문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글을 읽을 때, 제 영혼도 함께 정화되는 것을 느끼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많은 분의 기도 덕분에 지난 2월에 박사 학위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지난 8년간의 타향살이를 돌아보며 가장 기뻤던 순간 중의 하나는 2018년 9월에 스위스 제네바-로잔-프리부르 교구의 한인 공동체 담당 신부로 발령을 받았을 때였습니다. 그때부터 한 달에 두 번, 1박 2일 일정으로 제네바에 가서 교우들을 만나 식사도 같이 하고, 교리도 하고, 성사도 집전할 때 사제로서 가장 큰 행복을 느낍니다.

 

  외국 사람들은 저를 "Father Augustine"혹은 "Padre Agostino"라고 부릅니다. 이 말은 들을 때마다 제가 받은 부르심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네바에 가는 비행기를 탈 때마다 제 모든 것을 주어도 아깝지 않을 자녀들을 만나러 간다는 생생한 기쁨을 느낍니다.

 

  로마는 아직도 제게 낯선 곳입니다 신학생 때 꿈은 만약 신부님이 된다면, 선교사가 되어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이 낯선 곳으로 저를 이끌어 주셨습니다. 이 부족한 종을 불러 주시고 많은 은총을 베풀어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이끌어 주실 길도 믿고 따를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모든 일 안에서, 모든 것 안에서, 주님께서 더 큰 영광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한현택 아오스딩 신부 교황청 인류 복음화성 파견-

 

 

 

가끔은 공든 탑도

무너집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이라면

 

한숨 돌리고,

 

다시 쌓으면 됩니다.

 

글. 그림 이순구(베네딕도)

 

 

제16회 교육 주간

(2021년 5월 24~30일) 담화

 

형제애로 평화를 실천하는 가톨릭 교육

 

 '형제애'는 교회의 오랜 전통이며 인간의 본성입니다. 이 형제애는 하느님의 부성(父性)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에서 비롯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의 아버지는 오직 한 분"(마태 23,9) 하느님이시고, "너희는 모두 형제다"(마태 23,8).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은 모든 이를 진정한 나눔과 연대로 일치시키는 형제애의 원천이자 힘입니다. 형제애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서 가장 잘 드러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구원과 일치를 위하여 몸소 인간 본성을 취하시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인간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필리 2,8 참조).

 

  우리가 말하는 평화는 꿈이나 이상향이 아닙니다. 우리는 진정한 평화를 실현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평화를 위하여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한 처음에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당신 모습으로 창조하시고 피조물을 평화롭게 다스리도록 하셨습니다. 또 끊임없이 새 창조를 이루시고 피조물을 평화롭게 다스리도록 하셨습니다. 또 끊임없이 새 창조를 이루시고 인간과 새 계약을 맺으시어(예레 31,31-34 참조), 우리가 언제나 '새 마음과 새 영'을 지니게 하셨습니다.(에제 36,26 참조), 그리고 참 평화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강생과 부활로 평화의 완성을 보여 주셨습니다(에페 2,14 참조).

 

  그래서 평화의 실현은 먼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늘 새롭게 만나고 복음을 선포하는 데서 비롯합니다. 우리가 평화이신 그리스도의 복음 때문에 평화를 이루어 나간다면 우리는 진정한 하느님의 자녀, 행복한 존재가 됩니다 (마태 5장 참조).

 

  평화를 실현하는 또 다른 방법은 우리 안에서 형제애를 키워 나가는 것입니다. 형제애를 지닌 사람은 다른 이들을 이방인이나 경쟁자, 적으로 여기지 않고 형제자매로 환대하고 사랑할 수 있습니다. <요약>

 

 

화석연료로 만들어지는 가상화폐... 비트코인.

 

  가상화폐 채굴은 컴퓨터로 복잡한 연산을 수행하고 그 대가로 가상화폐를 받는 행위를 뜻하는데 광산에서 금 같은 귀한 광물을 캐는 행위에 빗대'채굴'이라고 부릅니다.

 

  중국에는 대형 가상화폐 채굴장이 몰려 있는데 영국 케임브리지대 대안금융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4월 기준으로 세계 비트코인 채굴 중 65%가 중국에서 이뤄졌습니다.

 

  이 중에서도 기후가 서늘하고 전기 요금이 상대적으로 싼 신장위구르 자치구와 네이멍구자치구에서는 세계 비트코인의 44%가 채굴됩니다.

 

  한편 시진핑 국가 주석이 지난해 유엔 총회에서 2060년 탄소 중립 실현 목표를 제시하고 나서 중국은 에너지 사용 절감과 신에너지 기술 육성을 국가 차원의 의제로 격상시켰습니다.

 

  하지만 지금 중국이 하는 에너지 정책은 석탄산업을 오히려 육성하는 모습이 뚜렷합니다. 화력발전소에서 생산된 전기로 전기자동차에 공급하는 정책을 쓰고 있으니 말입니다.

 

  테슬라 대표 머스크는 비트코인 채굴에 과도한 화석연료가 투입된다면서 앞으로 테슬라 차 결제 수단으로 비트코인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아크인 베스트먼트는 비트코인이 "미래 청정에너지의 열쇠"라면서 머스크와 반대 의견을 낸 바 있습니다.

  환경전문가들은 그렇지 않아도 이산화탄소의 무분별한 배출로 지구 온난화가 심각한 상황에서 비트코인으로 전력 소모가 더 심해지고 있다며 이를 방치할 경우, 기후변화가 더욱 가속화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갈수록 심해지는 지구 온난화가 코 앞에 왔는데도 그저 이익만을 추구하며 살아감이 옳은 일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