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2021년 주보

주님 승천 대축일(홍보 주일) 2021년 5월 16일(나해)

모든 2 2021. 5. 17. 17:54

논산 대교동 성당 상월 공소

충청남도 논산시 계룡산로 331-6(상월면 석종리 266-1)

 

  + 마르코 복음 16,15-20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어 하느님 오른쪽에 앉으셨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열한 제자에게 나타나시어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믿고 세례를 받는 이는 구원을 받고 믿지 않는 자는 단죄를 받을 것이다.

 

  믿는 이들에게는 이러한 표징들이 따를 것이다. 곧 내 이름으로 마귀들을 쫓아내고 새로운 언어들을 말하며, 손으로 뱀을 집어 들고 독을 마셔도 아무런 해도 입지 않으며, 또 병자들에게 손을 얹으면 병이 나을 것이다." 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다음 승천하시어 하느님 오른쪽에 앉으셨다.

 

  제자들은 떠나가서 곳곳에 복음을 선포하였다. 주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일하시면서 표징들이 뒤따르게 하시어, 그들이 전하는 말씀을 확증해 주셨다.

 

<말씀의 향기>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 16,15) -강대원 즈카르야 홍보국장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승천하시기 전 사도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이 말씀은 사도들에게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해당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모든 피조물에게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시고 보여 주셨던 기쁜 소식을 전해야 하는 의무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특별히 이 의무를 가진 한 사람으로서, 사제로서, 홍보국장으로서 살아가는 저에게는 이 말씀이 더 깊이 다가옵니다.

 

 코로나로 인하여 본당에서의 전례와 신심생활이 어려워졌을 당시, 본당 신부로서 본당 신자들의 영신 생활을 어떻게 이끌어 줄 수 있을지 많은 생각을 하였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매일 보고 있던 동영상 어플을 이용할 방법을 찾제 되었고, 비록 함께할 수 없지만 방송을 통한 미사를 봉헌하고, 부를 수 없는 성가를 올리며 함께 찬양하며 지냈었습니다. 이 방송을 하며 본당 신자들과의 영적 유대관계를 이어나갈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신앙을 갖고 있지 않은 이들과 소통할 수 있는 계기도 되었습니다.

 

  홍보국장이 된 지금 '어떻게 하면 모든 이들에게 예수님의 기쁜 소식을 전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저의 삶의 중요한 축이 되었습니다. 복음을 선포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무엇일까요? 단순히 머릿속에 들어 있는 것을 전하는 것이 복음선포일까? 게시물을 들고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에서 외치는 한 방법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내가 하느님의 말씀을 살아가는 것, 기쁘게 받아들이고 기쁘게 살아가는 모습이 가장 중요하고도 확실한 복음 선포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홍보국에서는 우리 교회가 살아가는 기쁜 모습들을 전하려고 합니다. 본당으로서의 교회의 모습뿐만 아니라 사회 안에서 빛과 소금으로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전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코로나로 인해 자주,많이 만날 수 있는 계획을 세우고 추진해 나가고 있는 중입니다. 이 모든  작업들은 제가 지금의 상황 안에서 저에게 주어진 의무를 살아가는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앞으로 교구 유튜브 채널을 통해 이루어지는 복음 선포의 역사를 함께 해 주시기를 부탁드리며, 우리의 신앙을 다질 수 있고 그로 인해 우리도 복음을 선포하는 기쁜 소식의 전달자가 되기를 희망해 봅니다.

 

 

<사회와 교회를 잇는 길잡이>

 

말과 혀로는 하느님

 

  말과 혀로는 하느님,하느님 하면서 아침마다 본의 아니게 거짓말을 반복한다.

  아침기도 때마다 "주님께 받은 몸과 마음을 오롯이 도로 바쳐.."

  아버지께서는 죄 많은 우리에게 지극한 사랑을 주셨지만 우리는 게으름과 무지로 아버지께서 주신 피조물을 너무 함부로 쓰고 나서 이제는 아껴 쓰고 제대로 사용하자고 반성하는 체한다.

  왜? 말로만 떠들고 행동으로 옮기지는 못하나?

  인간의 욕심은 스포츠를 통해서는 "더 빨리, 더 멀리, 더 높이"를 외치며 경쟁하고, 경제활동을 통해서는 "더 많이, 더 싸게, 더 좋게"를 외치며 풍요를 누리고 재벌그룹, 다국적 기업 등 규모의 확장을 통해 부와 권력을 더 많이 독점하려고 경쟁을 하다 보니 하느님이 주신 창조물을 함부로 쓰고 인류의 건강과 미래는 무책임으로 일관했다.

 

  이제부터라도 진정 반성한다면!

 행동으로 하느님의 선물인 피조물을 원상 복원하겠다고 맹세하고 실천해야겠다.

 

  우리 후손들에게 못난 조상이 되지 않으려면, 하느님의 선물을 잘 복원하여 우리만이 아니라 후손 대대로 잘 이용할 수 있도록 우리가 저지른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청해야겠다.

 

  하느님,죄송합니다!

 

  지금 이 시각부터, 저 자신부터 악마들의 도구(일회용품, 유독성 화학제품 등)를 배척하고, 일상에서 조금 불편하더라도 천사들의 도구(친환경제품, 유기농 제품 등)를 애용하고 이웃과도 즐겁게 나누며 진정으로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와 흠숭을 영원히 바치겠습니다.

  -김희철 스테파노 대전교구 생태환경위원회-

 

 

'교회와 나'새롭게 알기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신앙과 삶을 배웁시다!>

 

3. 교회 쇄신의 시작 : 공의회의 교회 이해 ③-왜 하느님의 백성인가?(하)

 

  셋째 , '하느님의 백성'은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와 인간 상호 간의 관계를 서로 포괄한다. 하느님은 "사람들을 서로 아무런 연결도 없이 개별적으로 거룩하게 하시거나 구원하시려 하지 않으시고, 오직 사람들이 백성을 이루어 진리 안에서 당신을 알고 당신을 거룩히 섬기도록"(교회헌장 9장)하셨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예수님을 믿고 바라보는 이들의 무리를 불러 모으시어 교회를 세우시고, 모든 사람과 개인의 구원을 이룩하셨다. 사실 '하느님의 백성'이란 말 자체에, 하느님과 백성(인간)의 관계, 그리고 '백성'이라는 복수 개념에 이미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가 함께 들어있다. 그런데 이 백성이 그리스도 안에 한 공동체를 이룬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공의회 스스로 그 공동체를 이룬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공의회 스스로 그 중심을 그리스도 안의 모임에 두고,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메시아 백성', '한 나라를 이루어 당신의 아버지 하느님을 섬기는 사제들이 되게 하신 대사제 그리스도의 새 백성', 그리고 '그리스도의 예언직에 참여하는 거룩한 백성'에 대하여 말한다(교회헌장 9,10,12항), 이렇게 하느님의 백성은 그리스도의 직무에 참여하는 것 자체로 그리스도와의 긴밀하고도 인격적인 관계와 백성들 상호 간의 밀접한 관계의 중요성을 동시에 나타낸다.(이는 이후에 다룰 하느님 백성의 삼중 직무를 그대로 나타내고 있다.)

 

  넷째, '하느님의 백성'개념은 교회가 종전의 '교의의 교회'로만 머물러 있을 것이 아니라 '사목의 교회'로 나아가야 함을 인식하게 한다. 공의회는 사목을 성직자가 평신도를 돌보는 교회 안의 일로만 여기던 종전의 사고를 벗어나서 성직자와 평신도가 함께 온 인류에게 봉사하는 차원으로 폭넓게 이해하도록 그 지평을 열어준다. 곧 이 공의회에서 새롭게 발견한 사목의 개념은 '인간과 사회에 대한 봉사'이며 '모든 인간과의 교회의 연대'이고 '인간과 사회에 대한 봉사'이며 '모든 인간과의 연대'이고 사목의 주체는 성직자와 평신도를 포함한 교회의 모든 구성원이며, 사목의 대상 역시(성직자와 평신도를 포함한) 교회 안 사람들과 교회 밖 사람들까지를 모두 아우르는 전체 인류이다.

 

  이같이 하느님 백성의 가장 기본적인 네 가지 특징적 의미들을 살펴보았는데, 이 모든 것으로부터 공의회 이전까지 행해진 교회의 자기중심적 이해에 대하여 무언가 본질적으로 새로운 변화가 일어난 것을 알 수 있다. 곧 '완전한 사회'(지난 회 참조)를 근본적으로 넘어서게 된 것이다. 교회는 이제 (교회) 자신으로부터가 아니라, 하느님과 인간으로부터 자신을 이해한다. 곧 교회는 하느님과 인간과의 관계와 인간 서로와의 관계라는 이중의 관계에 봉사하며, 이 봉사 안에서 교회의 가장 진정한 정체성인 복음화를 실현해 나간다. 공의회는 결국 교회를 하느님과 인간에게 봉사하는 표지이자 도구로 이해하며, 이것을 기초로 교회의 새로운 자아개념, '하느님의 백성'을 이끌어 낸 것이다.  이렇듯 '하느님의 백성'은 더 중요한 것은 이 교리를 공식처럼 머릿속에 외워둘 것이 아니라 마음에 새겨 행위로써 드러내는 것에 있다. 내가 변화하지 않고, 변화된 교회 모습을 기대하는 것은 그 자체로 모순이다. 과연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 그분 백성, 바로 교회이기 때문이다.

 

-서명옥 로사 대전가톨릭대학교 기초신학 강사-

 


* 교구내 공소

논산대교동성당 상월공소



상월(돌분이)공소는 병인박해때 전라도에서 피신해 온 김광일 요한에 의해 전교되었고,뮈텔 주교가 지방 관리들을 만나면서 신자들은 더 이상 피해를 받지 않았다고 한다. 이곳은 기낭 신부의 사목 담당 지역으로 1897년에 58명의 신자가 있었다. 옛공소건물은 1949년에 착공하여 6.25한국전쟁을 거쳐 1954년 22평 규모로 완공되었다. 건축에는 쌀 150가마를 모금하였고 목수는 이승근 씨가 담당하였다. 옛건물은 도로 부지로 편입되어 1988년에 철거되고,이후 공소예절은 가정집에서 실시하다가 2002년 경량철골조 공소를 신축하게 되었다. 현재는 15명 정도의 교우가 정기적인 공소 미사에 참례하고 있다.

 

<이충무의 숨은 행복 찾기(7)>

 

사람 꽃말

 

  식사를 마치고 오랜만에 산책에 나섰습니다. 한가로이 길을 걷다가 이름 모를 예쁜 꽃 한 송이를 보았습니다. 그냥 스쳐 지나가기 아쉬워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런데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휴대폰 화면에 사진과 함께 그 꽃에 대한 수많은 정보가 한가득 올라온 것입니다.

 

  요청한 것도 아니고, 뭘 잘못 누른 것도 아닌데, 휴대폰이 스스로 알아서 '스마트'하게 궁금한 모든 정보를 이렇게 신속하게 찾아주는 서비스가 있는 줄 미처 몰랐습니다.

 

 그저 사진  한 장 찍었을 뿐인데, 마치 식물도감을 제 눈앞에 펼쳐 놓은 듯 꽃의 학명, 원산지, 개화 시기, 어떤 계, 문, 강, 목에 속하는지도 알려주다니 참으로 신기했습니다.

 

  그런데 더 신기한 건 수많은 정보 중에 유독 그 꽃의 '꽃말'이 기억에 가장 오래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마가레트'라는 그 꽃의 꽃말은 '진실한 사랑'사랑을 점치자.'등이었습니다.

 

  누가 어떤 이유로 꽃 한 송이에 그런 멋진 말을 붙였는지 모르지만, 분명한 건 그 꽃말로 그 꽃이 더 생생하게 살아있음을, 그 꽃의 향기가 더욱 짙어짐을 느낄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도 하나의 광대한 꽃밭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꽃밭에 사람이란 꽃을 정성스레 심으셨습니다. 저마다의 아름다움으로 멋진 세상을 만들라고 우리를 이 땅에 뿌리내리게 하신 겁니다.

 

  사람꽃의 이름은 부모님으로부터 받습니다. 하지만, 그 꽃말은 하느님으로부터 받게 됩니다. 우리를 지켜보시며 지금 이 순간에도 하느님은 우리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꽃말을 찾고 계실지 모릅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던데, 한 단어로 요약될 나의 꽃말은 무엇이 될까요? 내 삶을 가장 잘 함축하고 내 삶의 본질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한마디 꽃말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일까요?

 

  기왕이면 그 사람 꽃말이 따뜻하고, 오래 기억되고, 향기롭기를 소망하면서 오늘의 내 모습을 가만히 돌아봅니다.

 

-이충무 바오로 /극작가, 건양대학교 교수

 

 

 

질주를 하다 보면

주변에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됩니다.

 

혼자 달리게 되면

 

외롭습니다.

 

글. 그림 이순구(베네딕도)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2021년 제55차 홍보 주일 담화(2021년 5월 16일) 요약


"와서 보시오"(요한 1,46).
사람들을 있는 그 자리에서 그대로 만나 소통하기

  저는 올해 담화에서 예수님께서 당신의 첫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와서 보시오." 라는 초대에 주목하고자 합니다. 이 말씀은 언론,인터넷,교회의 일상적 설교,정치적 사회적 소통 등 투명하고 정직하려고 노력하는 모든 소통에 영감이 됩니다.

  요한 복음사가는 복음서를 쓸 때 그가 사건 현장에 직접 있었음을 밝히고 그의 삶에 영향을 준 체험들에 대하여 설명합니다. 복음서에는 필립보가 나타나엘에게 메시아를 만났다고 말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부정적인 나타나엘에게 필립보는 다만 "와서 보시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말씀에 따라 직접 본 나타나엘은 벼화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신앙이 시작되는 방법이며,전해지는 방법입니다. 신앙은 마로 전해 들은 것이 아니라 체험에서 비롯된 직접적인 앎입니다.

  뉴스 보도를 살펴보면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작성한 보도는,만들어진 보도로 이어질 위험이 있습니다. 직접 사람을 만나지 않으면 우리는 방관자가 될 뿐입니다. 언론은 누구도 가려고 생각하지 않는 곳에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가서 자신의 임무를 수행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들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이들의 노력으로 우리는 박해받는 이들의 아픔과 수많은 억압과 불의를 알게 됩니다. 지금 감염병의 세계적 유행 시기에 언론이 부유한 나라들의 시가으로만 보도한다면 가난한 이들은 더욱 소외될 위험이 있습니다.

  인터넷은 유용한 두구로써 뉴스가 가장 먼저 보도되는 큰 영향력을 지닌 도구입니다. 인터넷 덕분에 우리는 우리가 목격하는 것,곧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알리고, 이를 다른 이들과 공유할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잘못된 정보가 인터넷을 통해 러질 위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전하고 듣는 내용을 더욱 신중하게 판단하고 책임감을 가져야 합니다. 케뮤니케이션에서 그 무엇도 직접 보는 행위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 어떤 것은 직접 체험하여햐 배울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분 말씀에 귀기울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말씀하시는 그분을 지켜보았습니다. 말씀은 눈에 보일 때,처험과 대화로 우리를 이끌어 들일 때 효과적입니다. 이러한 까닭에 "와서 보시오."라는 초대는 지금도 계속해서 중요합니다.

  복음의 기쁜 소식은 "와서 보시오."라는 초대를 받아들여 세상에 널리 퍼져나갔습니다. 바오로 사도가 지금 지대에 살고 있다면 이메일과 소셜 네트워크 메세지를 이용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오로 사도의 설교를 듣고,만나고,대화를 나눈 사람들이 감동한 것은 바로 그의 믿음과 희망과 사랑이었습니다. 이처럼 복음은 예수님을 만나 삶의 변화를 체험한 사람들의 증언을 우리가 받아들이는 그 자리에서 생생하게 되살아납니다.

-프란치스코-

 

 

5월 날씨 왜 이래?... 지구온난화로 인한 이상기후

 

  한반도가 더워지고 있다. 기상청은 지난 4월 28일 서울, 인천, 부산, 대구, 강릉, 목포, 등 6개 도시를 기준으로 한반도 기후변화를 분석해 발표했다. 최근 30년간 연평균 기온은 13.7도로 과거 29년간 연평균 대비 1.6도 상승했다.

 

  같은 기간 지구 표면온도가 0.8도 정도 상승한 것에 반해 국내 기온 상승 속도가 2배나 빠르게 나타난 것, 기상청 관계자는 "온난화와 급속한 도시화로 인한 열성현상 등이 기온상승 폭을 키웠다."라고 설명했다.

 

  우리나라는 '기후 악당'으로 불린다. 이산화탄소 배출량 세계 7위, 대기질은 CECD 36국 중 36위, 기후변화 대응 지수는 61개국 가운데 58위, 우리 세대는 온실가스를 배출하면서 자동차를 타고 공장을 돌리면서 여러 편익을 봤지만 다음 세대는 그렇지 않습니다. 위험의 원인 제공자와 위험을 처리해야 되는 세대가 다르다는 게 문제입니다.

  "우리는 기후 위기를 인식한 첫 번째 세대이자 기후 위기를 막을 수 있는 마지막 세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