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곧 다시 볼 수 있게 되었다」변윤철 신부(2012)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마르 10,51)
+마르코 복음 10,46-52
<스승님, 제가 다시 볼수 있게 해 주십시오.>
그 무렵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많은 군중과 더불어 예리코를 떠나가실 때에,티매오의 아들 바르티매오라는 눈먼 거지가 길가에 앉아 있다가, 나자렛 사람 예수님이라는 소리를 듣고,"다윗의 자손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하고 외치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많은 이가 그에게 잠자코 있으라고 꾸짖었지만, 그는 더욱 큰 소리로 "다윗의 자손이시여,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하고 외쳤다.
예수님께서 걸음을 멈추시고,"그를 불러오너라." 하셨다. 사람들이 그를 부르며, "용기를 내어 일어나게.예수님께서 당신을 부르시네."하고 말하였다.
그는 겉옷을 벗어 던지고 벌떡 일어나 예수님께 갔다.
예수님께서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하고 물으시자, 그 눈먼 이가 "스승님,제가 다시 볼수 있게 해 주십시오."하였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하고 이르시니,그가 곧 다시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예수님을 따라 길을 나섰다.
<말씀의 향기>
기회는 붙잡고,누더기는 던지고 "잔잔히 다가오는 기회" -김정환 세례자요한 내포교회사연구소장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향해 가시다가 예리코라는 동네에 잠시 들르신 후 다시 길을 떠나는 순간의 이야기다. 길가에 앉아 있던 눈먼 거지 바르티메오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힘껏 소리를 쳤다. "예수님,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그에게는 기회가 왔고, 그는 그것을 놓치지 않으려 절박하게 소리쳤다.
주변의 반응은 싸늘했다. 잠자코 있으라고 꾸짖었다. "저 거룩하신 예수님은 너 같은 죄인의 차지가 아니다."는 속내가 깔려 있는 반응이다. 불구자나 병자는 그가 (혹은 그의 부모가) 지은 죄의 결과로 벌을 받은 것이라는 생각이 팽배했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사실 지금도 이런 생각은 여전하여 안 그래도 힘든 사람들을 더 힘들게 만들곤 한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그런 반응을 단숨에 일축해 버리시며,"그를 불러오너라."고 말씀하신다.그러자 바르티메오는 겉옷을 벗어 던지고 벌덕 일어나 예수님께 갔다. 이 장면은 웅크리고 있던 사슴이 뛰어오르는 것처럼 역동적이다. 인디언들이 이것을 보고 바르티메오에게 자기들 식으로 새 이름을 지어준다면,'주먹 쥐고 일어서'라고 했을 것이다. 그는 일어서면서 그를 짓누르고 있던 모든 누더기를 던져버렸다.
예수님 앞에 다라르니 물으신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바르티메오의 대답은 분명하다. "스승닌,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그러자 예수님의 대답은 분명하다. "가거라,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사실 많은 사람들은 자기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모른다. 대개 남들이 좋다고 여기는 것들을 자신도 모르게 좋다고 여기고 살아가니 엉뚱한 것만을 청한다.그러니 무슨 응답이 있겠는다.
바르티메오는 지나가는 예수님을 붙잡는 장면을 보며 내게도 언젠가 다가올 '큰 기회'에 대해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 생활에 있어서는 '작은 기회'가 우리 곁에 늘상 있고, 실제로 그것이 더 중요하다. 그 기회들을 놓치지 않으면 우리를 짓누르는 누더기를 쉽게 던져버릴 수 있다.
부부 사이에 어떤 다툼이 있었다면 지금 이 순간 잔잔히 다가오는 기회를 놓치지 말고 먼저 손을 내밀어라. 이웃에게,자녀들과 무엇인가 언짠은 일이 있었다면 지금 문자를 보내 보라.그것이 길을 가시던 예수님이 주시는 기회이고 내게 걸쳐진 누더기를 던져버릴 순간이다.
"용기를 내어 일어나게,예수님께서 당신을 부르시네."(마르 10.49)
<신앙의 해(4)>
새로운 복음화의 시작,회개
새로운 복음화는 스스로 교회에서 멀어진 많은 대중을 세련된 새로운 방법을 사용해서 당장 끌어 들이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새로운 복음화는 겨자 씨 한 알에서 보편 교회라는 큰 나무가 자랐다는 사실을 결코 만족하지 않는 것이다. 새로운 복음화는 온갖 새들이 그 나무가지 가운데 앉을 자리를 찾을 수 있으니 충분하다는 생각을 결코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오히려 그것은 다시 한 번 작은 낱알의 겸손함으로 언제 어떻게 자랄 것인지를 하느님의 겸손함으로 언제 어떻게 자랄 것인지를 하느님께 맡기는 것을 의미한다.(마르 4,26-29)
"성공은 하느님의 이름이 아니다."라는 옛말이 있다. 새로운 복음화는 겨자씨 한 알의 신비에 맡겨야 하며 당장 큰 나무를 만들겠다고 믿을 만큼 허세를 부리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지나칠 정도로 이미 존재하는 큰 나무에 안심하고 살거니 더 크로 더 필수적인 나무를 갖겠다고 조바심하며 살고 있다. 그 보자 우리는 교회가 큰 나무인 동시에 아주 작은 낱알이라는 신비를 받아들여야 한다. 구원의 역사에서 성금요일과 부활주일은 항상 동시에 있기 때문이다.
이제 교황 베네딕토 16세께서 성찰한 새로운 복음화의 본질을 하나씩 살펴보는 것으로 글을 진행하고자 한다. 교황께서 강조하시는 새로운 복음화의 본질 내용은 네 가지로 회개,하느님 나라,예수 그리스도,영원한 생명이다.
회개
새로운 복음화의 내용은 먼저 구약의 근본을 요약하는 세례자 요한의 선언 "회개하라."(마르1,4)는 것이다. 세례자 요한 없이 예수님께서 접근할 길이 없다. 선구자의 부름에 응답하지 않고 예수님께 갈 가능성이 없다. 예수님은 자신의 선포에 요한의 메시지를 이어 받으신다."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 1,15)는 말씀에서 '회개'라는 그리스 단어는 '다시 생각한다'는 뜻이 있다. 자신의 생활 양식에 의문을 품는 것,하느님이 자신 삶의 기준에 들어오실 수 있게 해 드리는 것이 회개다. 이는 자기 충족감에서 벗어나 하느님의 용서,그분의 우정을 발견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회개는 사회적 측면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매우 개인적인 행위인 회개는 개인마다 다름 것이지만,진정한 개인화는 언제나 새롭고 더 철저한 사회화이기도 하다. 온 세상에 퍼저 있는 생활 방식이 탈개인화의 위험,자기 자신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다른 모든 사람들의 삶을 사는 위험을 암시한다면,이제 신앙인은 회개 안에서 하느님께로 가는 공통경로에 있는 새로운 "우리"가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는 말만 복음화할 수 없다. 복음은 삶을 창조하고 진보의 공동체를 창조한다. 그저 개인적인 회개는 일관성이 없기 때문이다.
-곽승룡 신부.대전가톨릭 대학교 교수-
<미사 속 숨은 보화>
말씀전례(12): 하느님 감사합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독서와 복음 봉독을 마치면서 독서자와 사제는 "주님의 말씀입니다."라고 말하는데 이는 "지금까지 봉독한 독서와 복음은 독서자와 사제의 음성을 빌려 직접 선포한 참 주님의 말씀입니다."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독서 후에는 "하느님 감사합니다."라고,복음선포 후에는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라고 말하며,직접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는 하느님께 감사하고, 그리스도께서 찬미를 올리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이 응답이 상부적인 소리로가 아니라 지금 나에게 말씀해 주신 그 말씀을 깊이 음미하고,진정으로 감사할 수 있는 응답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의 종' 125위 단상(43) 김정환 신부 . 내포교회사연구소장
감옥에서 정을 나눈 사람들: 이재행,박사의,김사건
이재행 (안드레아) |
1776년 충청도 홍주 출생 1839년 5월 대구에서 참수(63세) |
박사의 (안드레아) |
1792년 충청도 홍주 출생 이재행과 함께 참수(47세) |
김사건 (안드레아) |
1794년 충청도 서산 출생 이재행과 함께 참수(45세) |
오늘 소개하는 세 분은 12년간의 긴 감옥생활 동안 자신들뿐 아니라 주변의 사람들과도 정을 나누다가 거룩한 죽음을 맞이한 분들이다. 공교롭게도 세 분 모두 안드레아 본명을 가지고 있었으니 인연도 참 묘하다.
세분 모두 충청도 출신이지만 고향은 각기 달라 알고 지내던 사이는아니었다. 가장 연장자인 이재행(안드레아)은 홍주 출신으로 20세가 넘어 입교한 후에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 여러 곳을 떠돌다 경상도 순흥의 곰직이란 곳에 정착하였다. 역시 홍주 출신의 박사의(안드레아)는 어려서부터 신앙생활을 하였는데 충청도 단양에 이사하여 살다가 경상도 상주 멩에목이란 곳에 정착하였다. 서산 출신의 김사건(안드레아)은 부유한 중인 집안이었으나 신앙생활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여러 곳을 전전하다 경상도의 산골로 이주하여 살았다.
1827년 경상도에 박해가 일어나자 셋 모두 체포되어 대구 감옥에서 서로 만나게 되었다. 신앙을 버리지 않아 모두 사형 판결을 받았으나 정부로부터 집행 허가가 나지 않았기게 기나긴 옥살이를 하였다. 천주교 신자들은 순교하는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한다는 것을 알고 정부에서는 무작정 형을 지연시켰다. 그러자 많은 신자들이 오랜 감옥생활에 지쳐 배교하여 나갔고,몸이 약한 이들은 병들어 죽었다. 하지만 세 분은 1839년 기해박해로 사형이 집행될 때까지 12년간을 꿋꿋이 신앙을 지키며 살았다.
감옥에서 세분의 행적은 자못 감동스럽다. 짚신을 엮어 팔아서 자기 먹을 것을 마련하는 것이 당시의 관례였는데, 세 분은 그렇게 일하여 먹을 것이 생기면 한 끼만 먹고 나머지는 감옥에서 가장 배고픈 사람에게 나눠 주었다.
이부들 중 박사의는 효성이 지극하여 주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그는 아버지와 함께 옥에 갇혀 있었는데 자청하여 아버지와 더불어 심문을 받았다. 조선의 관례상 아버지와 아들을 함께 심문하는 경우는 없었으나 한시도 아버지와 떨어지면 안 된다고 간청하였기 때문에 관장도 이를 허락하였다.그는 매를 맞아 만신창이 된 상황에서도 아버지가 힘이 들세라 형벌을 받는 아버지의 칼을 옆에서 받쳐드리곤 하여 형리들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1839년 5월 26일 마침내 세 분은 같은 날 함께 순교하였다. 12년 만에 이 결정이 내려졌을 때 서로 기뻐하며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것을 모두 감옥의 친구들에게 나눠 주었다. 그리고는 형장으로 가 참수되었는데 대구 감옥의 아전들이 와서 직접 그들이 시신을 수습하여 정중하게 장사를 지내주었다. 이것은 일찍이 없었던 일로 세 분이 긴 감옥생활을 하는 동안 나눈 정이 어느새 우정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주님!
한 말씀만 하소서
빈곤한 이 마음
곧 채워지리다.
글.그림 이순구(베네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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