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2012년 주보

연중 제29주일 2012년 10월 21일(나해)

모든 2 2021. 4. 26. 23:19

「세례」김용호 신부(2012)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어라."(마태 28,19)

 

+ 마태오 복음 28,16-20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라.>

 

그때에 열한 제자는 갈릴래아로 떠나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산으로 갔다.

그들은 예수님을 뵙고 엎드려 경배하였다. 그러나 더러는 의심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다가가 이르셨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말씀의 향기>

 

초대보다 사람의 상태가 먼저입니다. "책임있는 초대" -임상교 대건안드레아 청양 주임

 

  공동체 속에서 살아갑니다. 사제직이라는 직무를    부여받고 공동체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공동체에 들어오면 사제관이라는 장소를 개인 공간으로 받습니다. 제 집이 아니라 거처입니다. 거처는 떠남을 전제하는 장소입니다. 그래서 늘 떠날 준비를 하고 삽니다. 그래서 거처가 너무 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작은 공동체 안에서 큰 거처를 사용한다는 사실이 불편하기만 합니다.

 

  공동체 안으로 사람들을 초대합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선교하른 하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을 공동체 안으로 초대하는 행위는 한 가지 사실을 전제합니다. 내가 속한 공동체에 대한 자부심 혹은 시뇌,믿음입니다. 내가 속해 있는 공동체에 대한 자부심 없이 사람들을 초대하는 것은 사기입니다. 그래서 사람에 대한 초대는 공동체에 속한 자아에 대한 확신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공동체 안으로 사람을 초대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숫자 놀음 혹은 성과주의는 아닐 것입니다. 내가 속한 공동체가 이만큼 크다는 것을 자랑하고  사회적인 영향력을 크게 형성하기 위한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사람들을 공동체에 초대하는 이유는 공동체 안에 세상에서 찾기 어려운 가치가 상존하기 때문입니다. 세상 속에서 체험하고 찾기 어려운 가치의 상존,그래서 사람들은 공동체 안에서 치유 받고 행복을 만납니다. 그런데 공동체 안에 상존하는 가치를 전하는 방법을 모른다면 초대는 완성되지 않습니다.

 

  사람을 초대하기 위해서는 사람에 대한 앎이 필요합니다. 사람에 대한 앎은 그 사라을 둘러싸고 있는 현실과 직접적으로 연결됩니다. 즉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의 현재 상태에 대해 인식하지 못한 채 초대를 하는 것은 부정적 결과를 발생시킬 수도 있습니다.

 

  초대보다 사람의 상태가 우선되어야 합니다. 초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이 처한 상태와 연대하기 위해서 만나야 합니다. 사람의 삶의 상태를 알려고  하지 않고 행해지는 초대는 거짓입니다. 수를 불리기 위한 꼼수입니다. 사람이 살고 있는 현장으로 가야 합니다. 그리고 보아야 합니다. 그 다음이 초대입니다.

 

  복음을 선포하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그리고 복음을 살아가는 사람은 하느님 나라를 완성시킵니다. 가난하고 갇힌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신 예수의 발자국을 따라서 오늘 사람이 살고 있는 현장으로 가 보시기를 희망합니다.

 

 

<신앙의 해(3)>

 

한국사회와 새로운 복음화

 

  한국사회는 급속한 산업화 과정을 달려가면서 현세주의,물질주의 가치관을 추구하는 실천적으로 세속화된 사회질서를 형성하여 왔다. 부패와 불의,분열과 대립이 고질화되면서,윤리도덕의 공동화와 경박화 현상이 확산되고 특히 생명과 자연생태가 심하게 파괴되는 폭력의 병리현상을 만들어내고 있는 실정에 있다. 한국천주교회의 복음화 현장으로 눈을 돌려보면 오백만 신자 시대라고 하지만 주일 미사에 나오는 신자는 점점 줄어들고, 냉담 교우는 계속해서 늘고 있는 현실이다. 냉담 교우들에 대한 관심과 비책이 본당과  교구 차원에서 마련되어야  하지만,먼저 신앙생활을 하는 신자들도 냉담 교우들이 발생하고 있는 데에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마르12,31)는 말씀처럼 공동책임을 일정 절감하며,그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보여 그들의 말을 경청하고 공감하며,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이웃사랑을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 사실 새로운 사람을 입교,세례하는 것도,필요하지만 냉담 교우들이 신앙생활을 다시 하도록 하기에는 몇 배 어려움이 있다. 그러므로 본당은 먼저 신자들과 냉담 교우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프로그램을 성실하게 마련해야 한다.

 

  복음화란 무엇인가? 교회의 선교신앙은 "복음의 힘으로 인류를 내부로부터 변화시켜 새롭게 하는 것"(18항) 이락 말한다. 복음화란 단순히 사람을 그리스도교로 개종시키는 것만이 아니고 "하느님의 말씀과 구원계획에 상반되는 인간의 판단 기준,가치관,관심사항,사고방식,영감의 원천,생활양식 등에 복음의 힘으로 영향을 미쳐 그것을 변화시키고 바로잡는 것"(19항)을 뜻한다. 한마디로 개인과 집단의 모든 것을 복음의 가치에 맞게 바로 잡는 것을 의미한다.

 

  교회의 선교사명이 강조하는 복음의 힘으로 한국교회는 인류를 변화시키는 새롭게 하기 위해 노력하지만,사목현장에서는 선교활동을 통한 입교,세례,견진 그리고 각종 신심 운동체 프로그램과 소공동체및 레지오 등 많은 활동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세계 어느 교회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많은 에너지와 든든한 조직력 그리고 열정을 지닌 한국교회의 모습이지만 삼천년기를 향해가면서 열정과 힘이 넘치는 다양한 사목 현장만으로는 진정한 복음화가 준비될 수 없는 바,그 열정과 에너지의 활동력이 성찰된 복음화의 본질과 함께 성령 안에서 일치하는 새로운 복음화가 준비되어야 한다.

 

  다변화하고 급성장하는 한국사회에서 교회와 신앙인들은 참으로 세상과 더불어 역동적으로 새로운 열정,새로운 방법,새로운 표현으로 복음의 가치를 전파하고 살고 있는가를 질문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교회는 근본적으로 '새로운 복음화' 곧 복음의 가치가 늘 새롭게 우리 안에서 타인과 세상을 향해 움직이고 있는지를 살려야 할 것이다.

 

곽승룡 신부.대전가톨릭대학교 교수

 

 

<미사 속 숨은 보화>

 

말씀의전례 (11): ○○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주님 영광받으소서.

 

  복음을 봉독하기에 앞서 부제나 사제는 복음의 저자에 대해 밝히며 "( )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라고 말하는데 이는 "복음서의 참 저자는 하느님이시고, 복음사가는 오직 그 말씀을 전달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 )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라고 말합니다.또한 부제나 사제는 복음서와 이마,입술,가슴에,신자들은 이마와 입술,가슴에 작은 십다를 그으며 "주님 영광 받으소서"라고 말하는데 이는 복음 말씀을 믿고(이마),고백하며(입),실천한다(가슴)는 의미와 복음 말씀을 받아들여(이마),고백하고(입),마음 속에 보존한다.(가슴)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종' 125위 단상(42) 정환 신부 . 내포교회사연구소장

 

고독마저 감미롭게: 김세박(암브로시오),안군심(리카르도)

김세박
(암브로시오)
1761년 한양 출생
1828년 대구에서 순교(67세)
안군심

(리카르도)
1774년 충청도 보령 출생
1835년 대구에서 순교(61세)

 

   한국천주교회 역사에 있어서 1802년부터 1836년까지 30여 년은 고독한 기간이었다. 1801년 신유박해로 많은 신자들이 주거나 유배를 갔고,살아있는 신자들도 더 이상 동네에는 살 수 없어 뿔뿔이 흩어져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부 한 명도,특별한 지도자도 없는 상황에서 20년,30년을 변치 않고 살아가는 신앙인들이 계속 있었다.

 

  김세박(암브로시오)은 한양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어린이들에게 교리를 가르치고,식생활을 절제하고 금욕생활을 하였으며,한밤중에 일어나 기도하는 것도 잊지 않는 분이었다. 마치 오늘날 봉쇄수도원에 사는 수도자들의 삶을 보든 듯하다. 1827년 경상도에서 살고 있던 그는 박해가 일어나 더 이상 피할 길이 없다고 판단되자 안동 관아로 가서 자수하였다. 그는 대구로 이송되어 옥살이를 계속하는 동안 음식 먹는 것을 거절한 적이 있었다. 당시에는가족들이 감옥으로 음식을 가져다주는 것이 관례였고 그럴 가족이 없는 사람에게는 아주 적은 양의 음식이 공급되었다. 김세박은 그것이 인근의 가난한 주민들에게 거둔 세금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알고는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한동안 음식을 끊어버렸다. 이로 인해 몸이 허약해져 1828년 12월 3일 대구 옥에서 67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충청도 보령에서 태어난 안군심(리카르도)은 명랑한 사람으로 애덕을 실천하고 다른 사람에게 교리를 가르치는 것을 낙으로 삼았다. 언젠가 그는 관가로 끌려간 적이 있는데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다. 관장이 "너는 어찌 사악한 종교(천주교)를 믿었느냐?"고 물었고,안군심은 "나는 결코 사악한 종교를 믿지 않았습니다."고 대답하였더니 관장은 두 번 문지 않고 풀어줬다. 천주교는 '사악한 종교'가 아니므로 자신은 그런 종교를 믿는 바가 없다고 대답한 것인데 그것을 배교한 것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군심은 늘 마음이 편치않아 언젠가 기회가 오면 아주 명확하게 신앙을 고백하기로 결심하였다. 아주 오랜 세월이 흘러 1827년이 되어서야 그 기회가 왔다. 그는 관장 앞에서 자신이 믿는 바를 확실히 고백한 후에 8년 더 옥살이를 하다가 대구 감옥에서 61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이분들의 삶을 보며 예전에 "○○과 함께라면 고독마저 감미롭다"라는 초콜릿 광고를 떠올려본다. 두 분은 오랜 세월 고독한 삶속에서도 자신을 감미롭게 해주는 분을 끝까지 알아 공경하다가 그분의 품으로 갔다.

 

 

 

주님

이 계절

 

우리의 몸과 맘

새로나게 하소서.

 

글.그림 이순구(베네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