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2012년 주보

한가위 2012년 9월 30일(나해)

모든 2 2021. 4. 26. 23:12

사진:「한가위」임민수 신부(2012)

"우리 하느님이 복을 내리셨네"(시편 67,7)

 

 

+루카 복음 12,15-21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그때에 바리사이들이 "모세는 너희에게 어떻게 하라고 명령하였느냐?"하고 되물으시니,그들이 "'이혼장을 써 주고 아내를 버리는 것'을 모세는 허락하였습니다."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너희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에 모세가 그런 계명을 기록하여 너희에게 남긴 것이다.

창조 때부터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함하여,둘이 한 몸이 될 것이다.'따라서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집에 들어갔을 때에 제자들이 그 일에 관하여 다시 묻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혼인하면, 그 아내를 두고 간음하는 것이다. 또한 아내가 남편을 버리고 다른 남자와 혼인하여도 간음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어린이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그들을 쓰다듬어 달라고 하였다. 그러자 제자들이 사람들을 꾸짖었다.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보시고 언짢아 하시며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어린이들이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말고 그냥 놓아두어라. 사실 하느님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어린이와 같이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 들이지 않는 자는 결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러고 나서 어린이들을 끌어안으시고 그들에게 손을 얹어 축복해 주셨다.

 

 

<말씀의 향기>

 

"하느님이  복을 내리셨네"(시편 67,7)  -찬미와 감사 - 이대재 막시모 도룡동 주임

 

    오늘은 우리 민족의 명절인 한가위입니다. 백 가지가 모두 무르익고 성숙하는 한가위를 우리 조상들은 '좋은 시기'로 불렀으며 일반 백성들 사이에서도 이 날을 가장 중요하게 지냈습니다. 그래서 가난한 시골이라도 상례에 따라서 쌀로 술을 담그고 또 닭을 잡아 찬을 만들며 온잦 과일을 따서 차려 놓고 조상들을 기억하며 가족들과 함께 제자를 지내고 성묘를 했습니다. 그래서 "더 하지도 말고,덜 하지도 말며 늘 한가위 날 같기만 하여ㄹ."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지낸 한가위라는 풍속이 이런 거이라면,우리 조상들은 이미 주님이 쏟아 주신 비와 햇빛으로 풍성한 결실을 얻고 하느님을 찬미한 이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곧 하느님이 복을 내리셨기에 온갖 열매를 땅에서 얻을 수 있고, 그런고로 하느님을 찬송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지낸 한가위 풍속에 의하면 세상만사를 주관하시는 분은 하느님입니다.

 

  그리고 우리 조상들은 누구나 가족들이 함께 모여 조상들을 기리며 제자를 지냈는데,이것은 인간의 삶이 이 세상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더욱 더 완전한 행복을 추구하는 의식에서 나온 것인 만큼 하느님의 은총인 영원한 생명을 기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주님 안에서 죽은 이들이 행복하다.그들이 고생 끝에 이제 안식을 누릴 것'이라는 하느님의 말씀을 따른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조상들이 먼저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하여 영원한 생명을 기도했다는 것은,이 세상의 삶에도 올바른 가치를 두고 생활했지만,다음 세상에 보다 더 큰 가치를 두고 살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우리 조상들은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는 것을 기억하고 생활한 것을 말합니다.

 

  이 모든 것은,오늘 고유 감시송에 의하면,하느님의 위대한 사랑과 섭리가 우리 조상들을 통하여 이 땅에서도 일어난 것이고, 지금은 우리를 통하여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오늘 한가위 명절에 우리 조상들의 얼을 이어받아 모든 것을 주관하시고 은총으로 주신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리면서 조상들을 위하여 영원한 안식을 기도해야 합니다.

 

  "온갖 열매 땅에서 거두었으니,하느님,우리 하느님이 복을 내리셨네/"(시편 67,7)

 

 

<노년에 관한 단상(5)>

 

노년과 자기효능감

 

  중년만 되어도 많은 사람들이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기능이 떨어진다고 느끼면서 노화를 두려워 한다. 그러나 노년의 기능 관련 연구 결과 이에 대한 공포가 과장되어 있다면서 기능상실 중 많은 부분이 예방될 수 있다고 한다.즉,과식,영양부족,흡연,과음,규칙적인 운동부족 등 잘못된 생활방식으로 일어나는 기능상실은 충분히 예방할 수 있고, 뇌를 규칙적으로 사용하지 않거나 새로운 과제로 뇌에 자극을 주지 않는 등 외부요인에 의해 발생하는 기능상실은 회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노후생활에서도 자기효능감은 매우 중요하다. 자기 효능감은 자신이 다양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믿음을 말한다. 자신이 어떤 문제를 해결하거나 도전에 맞설 수 있고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진행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생활 속에서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복잡한 일,자극,선택과 기회를 늘 경험하는 것이 자기효능감 유지에 도움에 된다. 자기지시,자발성,독립적 판단 등은 규칙적인 정신운동이 되기 때문이다. 하버드대학 심리학과 교수인 엘렌 랭어가 요양원 거주 노인을 대상으로 스스로 결정을 더 많이 내리도록  장려하는 실험을 한 연구결과도 이를 뒷받침 해준다. 이 연구는 실험집단 노인들에게 방문객을 맞이할 장소,요양원에서 보여주는 영화를 볼 것인지 여부,본다면 언제 볼 것인지 직접 결정하도록 하고,또 각자 돌볼 화분을 선택하고 그 화분을 방 어디에 둘 것인지,물을 언제 얼마나 줄 것인지 스스로 결정하도록 하였다. 요양원에 사는 노인들이 좀 더 의식을 집중해서 세상과 맞부딪치고 각자의 삶을 보다 충만하게 살도록 돕는데 초점을 둔 실험이었다. 1년 6개월 후 대조군과 비교했을 때 실험군이 더 쾌활하고 활동적이며 민첩했고 사망률은 대조군의 절반도 안될 만큼 낮았다. 선택의 힘과 그로 인한 개인의 통제력 증가가 실험 전 상태가 동일했던 노인들에게서 서로 다른 결과를 낳은 것이다.

 

  노년의 자기효능감은 개인적 차원에서만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사회의 노인에 대한 기대와 태도,공공정책이 노인인구에서 부여하는 기회와 제약들에 의해서도 노인의 자신감은 영향 받는다. 노화와 장수 연구로 잘 알려진 박상철 교수는 노인을 모시는 행위와 제도가 실질적으로는 노인의 수족을 묶어두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으며 노인들을 부양대상화하는것이 노인들의 기능성을 박탈하는 장치가 돼버릴 수도 있다는 경고와 함께 기능적 개념을 강조하였다. 가정과 사회에서 노인을 향해 흔히 말하는 "연세도 있으신데 신경쓰지 마시고 맡겨 놓으세요.""가만히 계시면 알아서 해놓겠습니다."같은 메시지는 노년의 자기효능감 유지를 어렵게 만드는 노년의 기능에 관한 고정관념에서 비롯된다.

 

그 동안 좋은 글을 집필해 주신

최해경 안나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최해경안나.충남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하느님의 종' 125위 단상(39)김정환 신부 . 내포교회사연구소장

 

동정부부와 이웃집 교우:

조숙(베드로),권 데레사

조숙
(베드로)
1787년 경기도 출생
1819년 8월 3일 한양에서 차무(32세)
권 데레사 1784년 경기도 양근 출생
같은 날 참수(35세)

  조숙(베드로)과 권 데레사는 유중철(요한)과 이순이(루갈다)에 이은 또 다른 동정 부부로 20여 년의 세월을 두고 그 계보를 잇는 쌍백합들이다.

 

  경기도 양근에서 태어난 조숙은 일찍 신앙을 받아들여 생활하다가 황해도 무산으로 유배된 조동섬(유스티노)의 손자이다. 조숙은 어려서 신앙을 가졌지만 1801년 신유박해로 강원도의 외가로 피난을 떠나면서부터 신앙생활을 등하시한 채 냉담한 상태에 있었다. 이런 그에게 신앙의 부를 다시 지펴준 것이 아내 권 데레사였다.

 

  권 데레사는 한국 천주교회의 창설 주역으로 꼽히는 권일신(프란치스코 하비에르)의 딸이다 데레사는 여섯 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7살 때인 신유박해 때에는 형제들과 재산마져 다 잃었지만 신앙만은 잃지 않았다. 그녀는 신유박해 이전에 주문모(야고보)신부로부터 성사의 은혜를 받고나서 동정을 지키며 살기로 결심하였는데 조선시대의 풍습 안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조타에게 의지하며 한양에서 살던 데레사는 결혼하지 않고는 살 수 없다는 현실을 절감한 후 만난 사람이 남편 조숙이었다. 당시이 풍습에  따라 둘은 얼굴도 보지 못하고 혼례를 치렀다. 데레사는 남편이 냉담 중인 신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자기의 뜻을 밝혀보려는 용기를 내어 '동정 부부로 살자고 부탁하는 글'을 미리 써 두었다가 첫날밤에 건네주었다. 뜻박에도 남편은 이를 받아들였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남편은 신앙을 되찾아 열심해졌다.

 

  조숙과 권 데레사의 이웃에는 고 바르바라가 살고 있었다.(바르바라는 125위 포함되지 않음) 과부인  그녀는 황해도 재령 사람으로 남편이 무산으로 유배되자 따라서 살다가 마침 그곳으로 유배를 온 조숙의 할아버지 조동섬을 알게 되었다. 그로 인해 신앙을 가졌는데 남편이 죽자 선산에 그들 모시고는 모든 것을 버리고 서울로 올라와 조죽 부부의 집 이웃에 살며 신앙생활에 전념하였다.

 

  1817년 갑작스럽게 박해가 닥쳐왔다. 조숙이 가지고 있던 첨례표(교회 달려)가 우연히 포졸들에게 발각되어 조숙이 잡히게 되었다. 이때 아내 권 데레사는 남편과 떨어지기를 원치 않았고, 이웃의 고 바르바라 역시 그들과 함께 하기를 원했기 때문에 셋이 모두 체포되었다. 그들은 끝까지 신앙을 버리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아무도 밀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 이상 박해가 확대되지 않았다. 셋은 2년 동안의 모진 감옥생활 끝에 1819년 8월 3일에 함께 순교의 월계관을 받았다.

 

  '신앙의 끈'이 참 질기다. 어찌 보면 우연한 만남들이었지만 죽음도 그 끈을 끊어놓지 못하였다.

 

 

 

세상에는 유달리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국에 태어난

우리는 잘 안다.

 

글.그림 이순구(베네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