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이십니다」김택민 신부(2012)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딸라야 한다."(마르 8,34)
+ 마르코 복음 8,27-35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어야 한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카이사리아 필리피 근처 마을을 향하여 길을 떠나셨다. 그리고 길에서 제자들에게,"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는냐?"하고 물으셨다.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고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예언자 가운데 한분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다시,"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베드로가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당신에 관하여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엄중히 이르셨다.
예수님께서는 그 뒤에,사람의 아들이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으시고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명백히 하셨다.
그러자 베드로가 예수님을 꼭 붙들고 반박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제자들을 보신 다음 베드로에게,"사탄아,네게서 물러가라.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하며 꾸짖으셨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군중을 가까이 부르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나와 복음 때문에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말씀의 향기>
잊혀진 산막골의 신앙 "스승님은 그리스도" -정성용 세례자요한 서천서면 주임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라고 물으시는 주님의 말씀에 베드로는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해 주실 분,우리를 가난으로부터 구원해 주실 분,온갖 질병과 고통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켜 주실 분,베드로의 생각은 빗나가지 않았습니다.
시대를 초월하여 누구든지 간절히 바라는 구세주 예수님이 눈앞에 함께하고 계십니다. 우리 조상들 역시 똑같은 마음으로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였고,부조리한 세상과 싸웠습니다.
오늘은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이 새남터에서 치명하신 날입니다. 신부님의 순교는 당시 조선 신자들의 신앙 고백을 담고 있습니다.
"나의 생명은 최후 시각에 당도하였습니다. 나는 천주를 위하여 죽으니,내 앞에서 영원한 생명이 시작된 것입니다."
"나와 복음 때문에 목숨을 잃는 자는 목숨을 구할 것이다."말씀하셨던 주님 말씀에 따라,우리의 신앙 선조들은 기꺼이 자신에게 주어졌던 시대의 십자가를 지고 구세주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병인년 대박해 때에 갈매못에서 순교의 화관을 쓰셨던 황석두 루카는 자신의 신앙을 지키기 위하여 참으로 모진 세월을 살았습니다. 우연히 접하게 된 천주학으로부터 진리를 얻게 된 황석두 루카는 가던 발길을 돌려 천상 과거 길을 향해 자신의 남은 생을 복음 전파에 투신합니다. 세상 유혹에 잠시 교회 공동체를 곤경에 빠뜨리기도 하지만,모든 세속적 인연을 끊기 위하여 고향 연풍에서 서천 산막골로 이주합니다. 이후 회개와 보속의 삶을 살면서 복음 전파와 교회 일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바칩니다.
서천의 숨겨진 마을 산막골은 신앙 선조들의 믿음이 배어 있는 터전입니다. 병인년이 순교하신 만여 명의 치명자 가운데 877명의 약전이 치명일기에 기록되어 있는데,그 중 56명이 서천 산막골과 관련이 있습니다. 차령산맥의 끝자락에 위치한 교우촌에 의해 복음을 전하는 터전이 되었습니다.
"믿음에 실천이 없으면 그러한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라는 야고보의 말씀대로 이 가난한 교우촌은 자신의 생명을 바쳐 복음을 전하고 복음을 실청했던 숨겨진 터전입니다. 산막골의 황석두 루카는 평소 교우들에게 "큰 군란이 아닐지라도 작은 군란이 일어나면,주님을 위해 순교하기를 바란다."라고 말했고, 그의 여랑대로 순교의 화관을 쓰게 되었습니다.
이시대의 우리는 어떤 믿음의 열망을 가져야 할까요?
<노년에 관한 단상(3)>
노년에 대한 제도적 지원
사회복지는 사회구성원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일상의 위험으로부터 안전하도록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를 일컫는다. 노인복지 측면에서 우리나라의 제도적 틀은 대체적으로 잘 갖춘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우리나라 노인복지체계는 취약계층 노인에 대한 공공부조가 전부였던 초기 수준에서 출발해 그동안 노인복지제도에 있어서 양적,질적 전환이라 할 수 있는 변화가 발생했는데 기초노령연금,장기요양보험제도가 대표적이다.
문제는 제도적 틀은 갖추었지만 그 보장수준이나 질이 충분하지 못하다는 점이다. 양대 선거가 같은 해에 있는 올해 노년층의 표심을 겨냥한 다양한 노인복지 정책이 활발하게 거로되고 있어 많은 사람들이 보장수준과 질적 보완이 이루어지길 크게 기대하고 있다. 다가오는 대통령 선거에서 정년연장,기초노령연금 지급액 인정,장기요양보험제도 확대 등 노인복지정책은 핵심 득표 정책으로 꼽힌다. 그런데 그러한 정책들은 운영할 비용과 비용부담의 주체에 관한 타당하고 구체적인 청사진을 가졌느냐에 대한 전문가 평가는 구다지 긍정적이지 못하다.
북유럽을 중심으로 하는 복지국가의 노인복지정책은 기본적으로 개인이 평생 부담해온 세금과 사회보험료에 기초하고 있고 그 부담이 개인 소득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반면 우리나라의 노인복지체계는 저부담 저복지의 특성을 지녔다. 그러다 보니 그동안 가족부양이 노후생활의 주된 도움원이어다. 전통적인 가족부양 의식이 크게 약화되었다지만 거의 과반수에 달하며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 우리나라에서 노인 빈곤문제가 그동안 심각한 사회문제로 등장하지 않은 배경에는 가족에 의한 사적 소득이전이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 통계에서도 전체 노인 중 75%가 자녀 등 가족으로부터 사적 소득이전을 받고 있다. 이같은 가족부양은 공적 사회보장 체계의 미비를 역설적으로 나타낸 것이라 할 수 있다. 2010년도 고령화패널 조사결과에 따르면 국민연금,공무원연금,사립학교 교직원 연금,군인연금 등 공적연금을 수급하고 있는 65세 이상 노인은 14.2%에 불과하다.
노년에 대한 제도적 지원은 국가의 현실적인 재정부담 능력을 감안할 때 일정 정도의 가족부양과 공존 할 수밖에 없다. 결국 가족부양과 사회적 부양 간의 절충과 타협이 필요한데 어떻게 해야 하는가는 우리모두가 풀어야 할 숙제가 될 것이다.
-최해경 안나.충남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미사 속 숨은 보화>
⑦독서가 봉독될 때
말씀을 듣는 자세는 어떠해야 하나요?
"성경이 봉독될 때에는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에게 말씀하시며 말씀 안에 현존하시는 그리스도께서 복음을 선포하신다."(미사경본 총지침 29항) 이처럼 성경이 봉독될 때 공동체는 하느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면서 성서의 한 장면 한 장면의 신비와 장소를 상기함으로써 하느님께서 공동체의 면전에 말씀하시는 것이라 생각하며 들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단순하게 과거의 일을 설명하거나 ,정보를 제공하는 차원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을 향해 벌어지는 구원의 사건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성경이 봉독될 때 회중은 선포되는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성경을 눈으로 보거나 독서 말씀을 회중이 함께 읽어서는 안됩니다.
'하느님의 종' 125위 단상(37) 김정환 신부 . 내포교회사연구소장
청산에 살어리랏다:
김시우(알렉시오),김강이(시몬)
김시우 (알렉시오) |
1782년 충청도 청양 출생 1815년 경상도 대구에서 옥사(33세) |
김강이 (시몬) |
충청도 서산 출생 1815년 강원도 원주에서 옥사(50대) |
잘 알려진 <청산별곡>의 노랫말은 이러하다. "살어리 살어리랏다 청산에 살어리랏다. 머루랑 다래랑 먹고 청산에 살어리랏다." 이 노랫말은 오늘 소개하는 두 분 순교자들을 위해 만들어진 것처럼 딱 들어맞는다. 머루가 많이 나서 머루산이라 불리는 궁벽한 산골에서 신앙생활을 하다가 순교한 분들이기 때문이다.
김시우(알렉시오)은 청양 출신이다.신분은 양반이고 성품이 어질었으나 어른쪽 몸이 반신불수인 탓에 생계를 꾸리기가 어려워 가난하게 살았다.일찍이 고향에서 입교한 그는 신앙생활을 위해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녔다. 그는 교우들의 신세를 지며 살면서도 학식이 풍부하였기에 남들을 가르치고 왼손으로 신앙 서적들을 필사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곤 하였다. 그러다가 좀 더 나은 신앙생활을 위해 진보 머루산(경북 영양군 석보면 포산리)로 갔다. 머루가 많이 나 포산(葡山,포도 산)이라고 불리던 이곳은 박해를 피해 신자들이 모여든 교우촌이었다.
충청도 서산 출신의 김강이(시몬)도 김시우처럼 신앙생활을 위해 머루산으로 온 인물이었다. 처음에 그는 전라도 고산으로 가서 살았었다. 하지만 그가 천주교의 우두머리로 알려져 수배령이 떨어지자 상인으로 변장하여 전국을 떠돌다가가 결국 머루산으로 왔던 것이다. 그것도 얼마가지 않았고 또 한 차례 이사하여 울진으로 갔으니 그 고단함이 여간 아니었다.
1815년 경상도 감사가 도내에서 천주교를 소탕하라는 명령을 내리자 머루산에 있던 김시우가 먼저 체포되었는데 그 과정이 참 애달프다. 포졸들이 다른 신자들을 체포하면서 불구자인 김시우는 그냥 놔두자 그가 울면서,"나도 역시 천주교 신자인데 신체장애 때문에 나를 잡지 않으니 낙담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고 말하였다. 포졸들이 이 말을 듣고 체포하자 김시우는 기쁘게 끌려가 안동을 거쳐 대구로 이송되어 감옥에 갇혔다. 당시 감옥에서는 자기가 먹을 것을 스스로 해결해야 했는데 김시우는 몸이 불편하여 남들처럼 짚신을 삼을 수가 없어 굶주리다가 약 두 달 후 34세의 나이로 옥사하였다.
한편 울진에 살던 김강이는 머루산에 살던 한사람의 고발에 의해 체포되었다. 그는 안동을 거쳐 강원도 원주로 끌려갔고 거기서 신앙을 고백하고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형벌에 의한 상처와 이질로 인해 감옥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이렇게 머루산에서 머루를 먹으며 신앙생활을 하던 두분은 하느님의 품으로 갔다.
국어 시간에 배웠던 <청산별곡>의 가사에서는 외로움이 묻어난다. 홀로 초연하게 있는 듯하지만 누군가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히 묻어있기 때문이다. 머루산에서 신앙생활을 하던 분들 안에서는 그것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분들은 하느님 아버지를 더 잘 알아 공경하기 위해 그곳에 가셨으므로 홀로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영혼의
벗 되시는 주님
오늘도
그 길을 따르리
-글.그림 이순구(베네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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