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 성인」김택민 신부(2012)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루카9,23)
+ 루카 복음 9,23-26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잃거나 해치게 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사람의 아들도 자기의 영광과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에 싸여 올 때에 그를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
<말씀의 향기>
십자가를 져야 한다고? "내 뒤를 따라오려면..." -박남규 요한 보스코 천안 두정동 주임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해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로로와 동료 순교자 대축일'이 되면 이 말씀을 듣는다. 이 말씀을 들을 때 마다 '내 뒤를 따라오려면'과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는 말씀에 머물러 본다. 나는 과연 예수님을 따르려 얼마나 노력하는가? 예수님을 내 앞에 두는 것이 아니라 등에 업은 체 나를 돋보이려 하는 것은 아닌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국어사전을 펴고 '따르다'를 찾아본다. '남의 뒤를 쫓다. 남을 좋아하거나 존경하여 가가이 불좇다' 뭐 여기가지는 해볼 만한 일이다. '예수님의 뒤를 좇다, 예수님을 좋아하거나 존경하여 가까이 붙좇다'가 되니까 말이다 그런데 가장 뒤에 나온 의미를 '앞선 것을 좇아 같은 수준에 이르다'가 나온다. 따른다는 것을 쉽게 생각하며 우쭐대던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앞선 것을 좇는 것이야 어느 정도 한다손 치더라도 같은 수준에 이른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도 따른다는 것은 늘 제 십자가를 지는 일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나보다. 그저 존경하며 따르려면 슬슬 그리고 어영부여 따라도 되지만 같은 수준에 머물려면 보통의 노력으로는 어림도 없기 때문이다.
오늘이 한국 순교자 대축일이다. 우리 신앙의 선조들은 예수님을 좇아 같은 수준에 이른 분들이다. 하찮은 우리 같은 사람들은 감히 실천할 수 없을 정도로 목숨을 걸고 하느님을 향한 믿음을 버리지 않고 그분이 주실 기쁨과 행복 그리고 영원한 생명을 생각했던 분들이니까 말이다.
가끔씩 아니 거의 매일 '내가 왜 이 십자가를 져야 하나?'하는 불평을 하며 산다. 그냥 십자가를 져야 한다면 이러한 불평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우리가 십자가를 져야 하는 까닭이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라고 한다면 '왜'라는 생각보다 '기거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은 당신을 따르려면 '기꺼이'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 하시지 않았는가?
십자가를 왜 져야 하느냐고 물으니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다. '얘야,나도 십자가를 지는 이유는 잘 모른단다. 그런데 아버지를 따르기 위해 나는 기꺼이 지고 올랐단다. 그러니 나처럼 해보지 않겠니>'왜 십자가를 져야 하느냐는 내 질문은 꼬리도 없이 사라지고 하나의 대답만이 떠오른다."아멘"
<노년의 단상(4)>
노년의 가족관계
젊은 사람 중심으로 '급격하게 바뀐 현대사회에서 노년세대는 가정과 사회 양쪽에서 공격 대상이 되기 쉽다. 전통적으로 노인들에게 가족은 경제적,심리적,사회적 안전판 기능을 해왔고 현재도 가족은 최후까지 의지할 수 있는 마지막 보루로 기대되지만 가족관게에서도 노년은 위험고 관련된 새로운 코드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최근 들어 노년의 가족관계에서는 무엇보다도 배우자와의 관계를 중요시하는 추세이다. 부부 사이가 나빠도 자녀에게 마음을 의지하며 노후를 보낼 수 있었던 이전 세대와 달리 요즘의 개인주의적인 자녀들에게 노후의탁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인식을 노인 스스로도 갖고 있다. 부부중심으로,그리고 자녀로부터 심리적인 독립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사회분위기 이면에는 자녀의 관심이나 도무을 실질적으로 기대하기 힘든 현실에 적응하려는 심리가 자리잡고 있다.
반세기만에 농경사회에서 고도산업사회로 전환된 사회변화 속에서 세대 간의 역할기대 차이,인생목표와 가치관의 차이,지나친 관심이나 간섭으로 인한 경계선 혼란 드으로 노부모와 자녀 사이에 갈등이 발생하는 일은 우리 사회에서 흔하다. 갈등 정도를 넘어 아예 아들 혹은 딸과 단절된 채 지내는 노부모들도 있다. 갈등의 골이 너무 깊어서 회복불가능 상태가 된 것이다. 갈등의 원인은 다양하다. 부모가 결사코 반대 하는 결론을 기어이 한 딸에 대한 분노가 단초가 될수도 있고, 직장에서 나와 새로 사업을 시작한 아들이 부족한 사업자금에 경제적 도움을 주지 않는 부모가 야속한 나머지 단단히 틀어졌을 수도 있다. 크건 작건 부모 자녀 간 갈등은 초기에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좋다. 시간이 흐를수록 화해하기가 어려워지기 쉽기 때문이다. 특히 부모자녀 관계가 단절되었을 때 보다 큰 상처를 받는 쪽은 거의 보모이다. 노년학 이론에서는 이를 세개 간 이해관계로 설명한다. 부모가 자녀와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하려 하고 관계에 가치를 더 많이 부여하기 때문에 자녀와 관계가 나바지거나 단절 되었을 때 느끼는 상실감이 훨씬 크다는 것이다.
길어진 노년기의 삶의 질에는 가족 간 소통이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소통능력은 갑자기 키워지지 않는다. 나이들기 전부터 유연하게 사고하고,가족들의 감정을 배려하는 능력을 키워야 노년의 가족관계가 원만하다. 노년의 문제에서도 결코 늦은 때란 없다. 일흔 살,여든 살이 되어서도 변화가 필요하면 변해야 한다. 질적으로 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가족관계 문제가 심각하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것도 좋다. 전문가의 상담과 도움으로 좀 더 나은 가족 내 관계를 형성할 수 있도록 돕는 TV프로그램도 많아졌는데 이를 시청하거나 참여하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겠다.
최해경 아나.충남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미사 속 숨은 보화>
말씀전례⑧:화답송,말씀에 대한 응답
말씀전례는 하느님이 말씀하시고,공동체가 화답하는 대화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 부분은 독서와 복음이고,공동쳉의 화답은 화답송과 복음환호송으로써 이들 노래는 말씀선포를 더욱 발저시키고 심화시키며(화답송),준비하고 강화(복음환호송)시켜 줍니다.
화답송은 "하느님의 말씀을 마응에 새기고 기도로 화답함"을 목표로 1독서를 염두에 두고 선택하여 자연히 복음과 조화를 이루어 줍니다. 이러한 말씀에 대한 응답인 화답송은 주로 시편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화답시편'이라고도 하고,계단에서 부른 노래라고 하여 '층계송'이라고도 부르기도 합니다.
'하느님의 종' 125위 단상(38) 김정환 신부 . 내포교회사연구소장
순교자의 피는 복음의 씨앗:
김희성,고성대,고성운,김화춘
김희성 (프란치스코) |
1765년 12월 경상도 대구에서 참수(51세) |
고성대 (베드로) |
충청도 덕산 출생 김희성과 같은 날 함께 참수(나이미상) |
고성운 (요셉) |
충청도 덕산 출생 김희성과 같은 날 함께 참수(나이 미상) |
김화춘 (야고보) |
충청도 청양 출생 김희성과 같은 날 함께 참수(나이 미상) |
1801년 신유박해로 전국이 요동칠 때까지 경상도에는 아직 신자가 없었다. 하지만 '순교자의 피는 복음의 씨앗"이라는 말을 증명이나 하듯이 박해를 피해 많은 신자들이 경상동의 산골짜기로 숨어들었다. 그중 상당수는 멀고먼 충청도에서 건너간 이들이었다.
김희성(프란치스코)은 충청도 예산 여사울 출신으로 신유박해 순교자 김광옥(안드레아)의 아들이다. 본디 부유한 집안에서 안정적으로 살던 그는 아버지의 순교 이후 모든 재산을 버리고 가족들과 함께 경상도 일원산에 있는 영양의 곧은장이란 곳으로 이사하였다.
고성대(베드로)와 고성운(요셉)형제는 충청도 덕산의 별암(예산군 고덕면 상장리)태생이었다. 전라도 고산의 저구리(완주군 운주면)로 이사하여 살다가 신유박해를 만나 체포되었으나 배교 후에 풀려났다. 이후 두 형제는 경상도의 청송노래산(청송군 안덕면 노래리)로 이사하여 살며 한 때 신앙을 버렸던 잘못을 보속할 때를 기다리며 살았다. 여기 충청도 출신의 김화춘(야고보)은 청양의 수단이(청양군 사양면 신왕리)가 고향인데 보령 청라동(충남 보령시 청라면 청라리)으로이사하여 살다가 좀 더 자유로운 신앙생활을 위해 경상도 청송의 산골짜기에 정착하였다.
이렇게 경상도로 모여든 신자들이 많이 있다는 것이 알려지자 경상 감사는 '어찌 깨끗한 경상도 땅에 천주교를 믿는 사악한 무리들이 숨어 들었느냐'며 1815년 봄 경상도 북부지역 산골짜기에 있는 신자들에 대한 체포령을 내려 대대적인 검거가 시작되었다.
포졸들이 잡으로 왔을 때 김희성은 아들과 함께 산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는 아들에게 "나와 함께 오지 말아라. 나에게는 하느님의 지시하심이 있으니 따라야 한다. 특히 가족과 어머니를 잘 보살펴라."는 말을 남기고 자진 출두하였다. 노래산에 살던 고성대에 고성훈은 포졸들이 들이 닥치자 처음에는 도둑들이 약탈하러 온 줄 알고 마을 사람들을 지휘하여 완강히 저항하였다. 하지만 자신들을 잡으로 온 포졸들임을 알자 온순한 양처럼 아무런 저항을 하지 않았다. 이렇게 잡혀간 이들은 거의 2년 동안 감옥생활 끝에 경상도를 관할하는 대구에서 참수하였다.
이분들의 삶을 보면 사도행전에 나오는 바오로 사도가 떠오른다. 유럽의 곳곳을 돌아다니며 전교하던 그는 많은 고난을 당하다가 마침내 수도인 로마로 끌려가 그곳에서도 복음을 전하는 한 알의 씨앗이 되었다. 충청도 태생의 위의 분들도 작은 씨앗이 되어 천주교 신자가 하나도 없다고 자랑하던 경상도의 수부 대구에까지 끌려가서 신앙을 증거하였다. 그분들을 통해 사도행전의 내용이 우리 땅에서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계절에는
유달리 그리워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이름은
가족입니다.
글.그림 이순구(베네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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