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2011년 주보

사순 제1주일 2011년 3월 13일 (가해)

모든 2 2021. 4. 4. 00:14

「모든 것을 주겠소」(2009,식장산에서),노승준 신부

"당신이 땅에 엎드려 나에게 경배하면 저 모든 것을 당신에게 주겠소."(마태 4,10)

 

  +  마태오 복음 4,1-11

 

<예수님께서는 사십 일을 단식하시고 유혹을 받으신다.>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성령의 인도로 광야에 나가시어,악마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그분께서는 사십 일을 밤낮으로 단식하신 뒤라 시장하셨다. 그런데 유혹자가 그분께 다가와,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이 돌들에게 빵이 되라고 해 보시오"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

그러자 악마는 예수님을 데리고 거룩한 도성으로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운 다음 그분께 말하였다.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밑으로 몸을 던져 보시오.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지 않소? '그분께서는 너를 위해 당신 천사들에게 명령하시리라.' '해여 네 발이 돌에 차일세라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쳐 주리라.'"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이르셨다. "성경에 이렇게도 기록되어 있다. '주 너의 하느님을 시험하지 마라.'" 악마는 다시 그분을 매우 높은 산으로 데리고 가서,세상의 모든 나라와 그 영광을 보여 주며,"당신이 땅에 엎드려 나에게 경배하면 저 모든 것을 당신에게 주겠소."하고 말하였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사탄아,물러가라,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주 너의 하느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 그러자 악마는 그분을 떠나가고,천사들이 다가와 그분의 시중을 들었다.

 

 

<말씀의 향기>

 

  하느님 말씀 "사람은 빵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  -김용남 힐라리오.탄방동 성당

 

  우리는 지난 재의 수요일에 이마에 재를 받으면서 "사람아,너는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라."(창세 3,19)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는 우리 일상의 삶에 제동을 걸면서, 이미 설정한 가치순위가 과연 올바른가를 재고하도록 촉구하고 있습니다.

 

  사순절은 그리스도의 수난과 고통,십자가의 죽으심을 묵상하고 우리의 신앙과 삶을 재점검하며 잘못한 것을 반성하고 보속하며 고통받는 이들과 우리의 가진 바를 재점검하며 잘못된 것을 반성하고 보속하며 고통받는 이들과 우리의 가진 바를 나누는 회개와 실천의 기간입니다. 즉 사순절은 특별히 우리 신앙을 새롭게 가다듬는 회심의 기간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는 원조의 범죄를 말하고 있습니다. 원조 아담과 하와가 유혹에 빠져 범죄하므로 이 세상에 악과 죽음이 왔음을 말하면서 유혹은 인간 태초부터 인간과 함께 있었음을 상기시킵니다. 제2독서에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거스려 범죄함으로써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갖지 못하게 된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부활을 통하여 구원이 주어졌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님도 회유와 유혹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세례를 받으신 하느님의 예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느님의 구원을 본격적으로 선포하시기 전에 광야에서 40일 간 준비를 하시는데,바로 이때 악마의 속삭임이 들립니다. 우선 악마는 예수께 돌을 빵으로 바꿔 보라고 요구합니다. 이어서 악마는 자신에게 엎드려 절하면 세상 모든 권세와 영광을 주겠다고 약속합니다. 마지막으로 악마는 성서의 말씀까지 인용하면서 예수님을 유혹합니다. 악마의 유혹은 지극히 인간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찾아오는데 예수께서 단식 기도 후 허기진 상태에서 가장 하고 싶은 일은 먹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바로 이럴 때 악마는 빵으로 유혹합니다. 이런 유혹은 여러 모양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데 어떤 때는 교만함으로 어떤 때는 미움과 질투,부정,탐욕,게으름으로 찾아옵니다.

 

  우리도 세례성사로 시작된 신앙의 여정에서 하느님보다는 재물과 권력에 의지하려는 유혹,자기의 명예와 이익을 위해서는 하느님까지도 이용하려는 유혹에 시달리게 됩니다. 우리가 많은 유혹을 받는데 이를 물리치거나 유혹에 빠지거나 하는 것은 오로지 나의 자유의지에 달려 있습니다. 이 자유의지를 잘 사용하는데는 꼭 기도와 희생이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유혹을 하느님의 말씀으로 극복해야 함을 강조합니다. 하느님 말씀은 모든 유혹을 하느님의 말씀으로 극복해야 함을 강조합니다. 하느님 말씀은 그 어느 것보다 중요한 가치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구원이 달린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하느님께 굳은 신뢰를 갖고 그분 말씀에 의지할 때, 교묘하고 끈질긴 유혹의 목소리를 떨쳐 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시복시성을 준비하며>

 

현대 순교자들의 시복 ④

 

  시복 추진의 대상이 되는 현대의 순교자들이 죽임을 당한 때는 크게 세 시기로 구분된다. 첫 번째 시기는 1950년 8월 이전으로 북한이 남침을 준비하거나 남진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다. 두 번째는 9월 말까지의 시기로 북한군이 후퇴를 앞둔 시기이고, 세 번째는 9월 말부터 이듬해 1월까지의 시기이다.

 

  첫 번째 시기에서는 먼저 북한 지역 교회에 속해 있던 신자들이 피살되었다. 6월 25일의 남침을 앞두고 북한은 적대적인 인물로 간주되는 주요 인물들을 처형하였는데,이 과정에서 신자들이 함께 죽임을 당하였다. 이어 북한군이 38선을 넘어 남진하는 과정에서 남한 교회의 신자들이 피살되었다. 이때에는 주로 교회 시설물들을 강제로 징발하거나,성당과 성물을 모독하는 공산주의자들의 행위에 항거하다가 죽임을 당하였다.

 

  두 번째인 8월 중순부터 9월 말까지의 시기는 복잡한 양상을 띠지만 본격적으로 피살이 이루어진 것은 9월 15일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한 이후부터이다. 퇴로가 끊긴 북한군이 그동안 서울 이남 지역에 가두어 두었던 남한의 주요 인사들을 전원 사살하기로 결정하였기 때문에 발생했다.

 

  세 번째 시기인 9월말 이후에 피살되거나 옥사한 이들은 흔히 '죽음의 행진'이라 부르는 억류생활과 관련이 있다. 서울에 갇혀 있던 국내외 성직자와 수도자들,그리고 주요 평신도 지도자들은 이미 7월부터 평양으로 이송되기 시작하였다. 인천상륙작전 이후 이들을  북한의 최북단에 있는 중강진으로 이송하는 대이동이 시작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즉결 처분되거나 옥사하였기에 이를 '죽음의 행진'이라 부른다.

 

  6.25전쟁을 전후하여 죽임을 당한 신자들은 외적으로 보면 일반 '우익'인사들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체포,구금,피살에 이르기까지 구분되는 점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회 내에서도 전쟁 전후의 순교자들에 대한 시복 추진에 회의적인 반응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은 내적으로는 분명히 다른 점을 가지고 있는데 그들이 의지적으로 죽음의 길을 갔다는 것이다. 어떤 정치적인 목적이나 다른 영예를 위해 그건 것이 아니라 신앙과 교회 직무상의 이유로 그 길을 선택했다. 그들 중에는 남다른 덕행과 신앙고백으로 신앙의 증거자들로 삼을 만한 분들이 있기에 그들을 위한 일이 아니라 지상에서 순례의 길을 걷고 있는 우리 교회의 신앙 성숙을 위해 필요한 일이다.

 

-내포 교회사 연구소장 김정환 신부-

 

 

 

 

<이충무의 행복 나침반>

 

외로움,그 고마운 소통의 끈

 

나 여전히 너에게

손을 내민다

 

 

  단절은 분명 고통입니다. 연결되지 못한 채 홀로 외딴 섬처럼 버려진 것에는 절망과 슬픔이 묻어나 있습니다. 그 어떤 것과의 연결고리를 차지 못하고 홀로 서성이는 시간 속에는 한 영혼의 처절한 절규가 각인되어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개인과 집단 사이의, 세대와 세대 간의 점점 더 두터워 가고 있는 단절의 벽..그 단절의 벽 너머에 홀로 외롭게 웅크리고 앉아 있을 사람들의 외로움을 생각하면 가슴은 한없이 무거워집니다.

 

  '외로움'의 기준으로 보면 인간은 누구나 평등할지도 모릅니다. 그 누구도 그것을 피해 갈 수 없기 때문이죠. 생명과 함께 마치 원죄처럼 우리에게 씌워진 고통의 굴레... 치를 떨며 그 고독의 굴레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치면 칠수록 우리는 자꾸만 더 깊은 절망의  늪으로 빠져 들곤 합니다.

 

  하지만, 어느 봄 날 성당에 홀로 앉아 기도를 드리다 문득 알게 되었습니다. 고개를 들어 저기 저 곳에 나 홀로 외롭게 십자가에 매달려 계신 주님을 바라보는 순간 알아들었습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언제나 말씀하고 계십니다. "나 여기 이렇게 세상으로부터 철저하게 외면당하고 버림받았어도,나 여전히 너에게 손을 내민다."

 

  저는 이제 외로움에 감사하려 합니다. '고독'은 타인과의 단절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타인을 향한 소중한 소통의 '끈'이 될 수도 있음을 주님께서 가르쳐 주셨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어쩌면 고독의 핏줄을 함께 나눈 형제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기억하렵니다. 나 혼자라 느낄 때,세상을 향해 화를 낼 것이 아니라, 나의 형제들을 위해 따스한 손을 내밀어야 함을..

 

  사순절이 시작됩니다. 십자가에 홀로 매달리신 주님,이제야 수줍게 당신을 향해 부끄러운 손을 내밀어 봅니다.

 

    -이충무 바오로/극작가,건양대학교 교수-

 

 

 

한 치의 혀로

노래하리

 

새 한 마리

물가에 서 있노라고

 

글.그림 이순구(베네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