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2011년 주보

사순 제2주일 2011년 3월 20일(가해)

모든 2 2021. 4. 4. 00:17

갈 길이 멀다」(2003),이진욱 신부

"주님의 거룩한 변모..그것은 희망입니다. 기운 냅시다"

 

 

  + 마태오 복음 17,1-9

 

<예수님의 얼굴은 해처럼 빛났다.>

 

그 무렵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만 따로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셨다. 그리고 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하셨는데,그분의 얼굴은 해처럼 빛나고 그분의 옷은 빛처럼 하얘졌다.

그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그들 앞에 나타나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자 베드로가 나서서 예수님께 말하였다. '주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원하시면 제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주님께,하나는 모세께,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

베드로가 말을 채 끝나기도 전에 빛나는 구름이 그들을 덮었다. 그리고 그구름 속에서,"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하는 소리가 났다.

이 소리를 들은 제자들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린 채 몹시 두려워하였다.

예수님께서 다가오시어 그들에게 손을 대시며,"일어나라,그리고 두려워하지 마라."하고 이르셨다.

그들이 눈을 들어 보니 예수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사람의 아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날 때까지,지금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하고 명령하셨다.

 

 

  <말씀의 향기>

 

  거룩한 변모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 황선영 라우렌시오.신평 주임

 

  타볼산은 거룩한 장소다. 모세가 백성에게 마지막 축복을 한 곳이다. 주님도 당신이 떠날 날이 가까워지자 제자들을 염려하면서, 당신과 함께 굳건히 성부 하느님의 뜻을 따르자고 격려하기 위해 이 산에 오르셨다.

 

  이곳에서 거룩하게 변모하신 예수님께서는 엘리야와 모세를 만난다. 모세는 율법을 엘리야는 예언을 상징하고, 예수님은 새 계약을 이루시는  분이다. 이는 곧 구약과 신약의 만남이며,모든 율법과 예언이 주님 안에서 성취됨을 암시한다.

 

 한편 황홀경에 빠진 베드로에게 하늘로부터 "이는 선택한 아들이니,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하는 말씀이 들려온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뜻을 온전히 실천하신 분이자, 모든 사람들이 따라야 할 말씀 자체이시다. 그러므로 그분의 삶은 곧 우리가 지켜야 할 말씀이 되신다.

 

  베드로는 다시 초라한 행색의 주님을 보게 되지만,이전처럼 마음이 약해지거나 흔들리지 않고, 그분의 수난을 지켜봐야 할 이유를 발견하게 된다. 죽음을 물리치기 위해 생명이 죽음을 선택하고, 태초의 약속을 성취하기 위해 말씀께서 피땀 흘리시며,피조물이 영광을 입도록 창조주께서 십자가를 지시는 것이다. 죽음조차도 가를 수 없는 위대한 사랑이 우리를 향해 쏟아진다. 주님의 거룩한 모습은 믿음과 희망과 사랑을 간직하고 그분 뒤를 따른 이들의 모습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순종해야 한다.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반드시 이루어지리라 믿어야 한다. 십자가 없는 부활을 없다.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생명의 길도 없다.

 "이는 내가 선택한 아들이니,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나눔살이 풍경>

 

사회사목국의 단골손님

 

  사회사목국에는 단골손님이 많습니다. 일 년에 한번 오시는 손님부터 한 달에 한두번 꼭 들르시는 손님들까지..오셔서 허리도 아프고 관절도 안좋다고 말씀하시지만 쌀 한포 드리면 너끈히 들고 가시는 분,오실 때마다 전국 유람이라도 하시려는지 부산 간다.목포 간다. 강릉 간다며 차비 달라고 하시는 분,술 한잔 걸치고 와서 라면 하나 끓여달라고 하시는 분(라면 하나 끓여드렸더니 김치는 왜 안 주냐고 따지시더군요), 처음엔 혼자 오셨는데 다음에 오실 땐 다른 손님 꼭 한분씩 모시고 오시는 분들,밤늦게 사무실에 불쑥 찾아와 재워달라고 하시는 분들까지..저마다 살아온 사연도 다르고 도움 받으러 오시는 이유도 다르지만 그분들 모두는 우리에게 소중한 단골 손님입니다. 사회사목국은 가장 은총이 넘치는 곳입니다. 이렇게 작은 예수님들이 단골 손님으로 오시는 곳이니까요.

 

  우리 교구의 사회사목국은 1995년 관리국 산하에서 분리되면서 시작되었고, 1999년 교구청 조직 개편에 따라 사회복지국이 사회복지전담사목으로 변경되었다가,2001년에 다시 사회사목국으로 변경되면서 사회복음화는 물론 사회복지 업무까지 총괄해 오고 있습니다. 사회사목이란 교회 밖(사회)을 향한 사목을 의미하며 사회복지를 통해 세상을 복음적으로 변화시키는 일을 뜻합니다. 이러한 사회복음화를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우리 사회사목국에서는 가톨릭사회복지의 이념과 정신에 따라 교구 내의 어렵고 소외된 이웃들을 위해 다양한 사회복지활동을 실천해 오고 있습니다.

 

  사회사목을 구체적으로 이주사목부 등 전담사목부를 통해 활동하고 있으며, 세상과 함께하는 사회복지사업의 실천을 위해 대전과 충남에 2개의 전문 사회복지법인을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사회복지법인에서는 사회복지법령에 따른 시설의 설치및 관리운영을 하고 있으며 지방자치단체와의 협조체계를 통해 20여 개소의 위수탁 시설과 30여개소의 자체 설립한 사회복지시설들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아직 시설의 소나 규모 면에서 다른 교구에 비해 작지만 열과 성을 다해 이웃들을 위한 사랑의 삶을 실천함에는 조금고 부족하거나 모자람이 없습니다.

  또한 지난 2006년에는 본당 자체적으로 활동하던 본당사회복지분과를 각 지구와 교구라는 체계로 결속하면서 협의회를 구성하여 매월 지구협의회를 통한 사례와 활동의 공유가 가능하도록 하였고, 본당사회복지활동이 지역사회 안에서 풀부리복지로 뿌리내리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앞으로도 우리 사회사목국에서는 정부나 지역사회가 하지 못하는 일에 대한 우선적 배려와 관심을 통해 더 많은 사회사목 활동을 펼쳐나갈 것이며,우리 교구의 상황과 지역 특성에 맞는 사회복지를 실천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일 것입니다. 사회사목 활동을 통해 사람 사는 세상에 더 가갑게 나아가며,어는 누구도 소외됨 없이 가난함 없이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갈 것입니다.

 

  교구 사회복지를 대표하는 후원회 "나눔의 샘"을 통한 후원이든,교구에서 운영하고 있는 시설에 대한 봉사이든,본당사회복지분과 활동이든 이젠 진심이 담긴 관심과 참여가 필요한 때입니다. 도움을 주시고자 하시는 분들,또는 도움의 손길이 필요하신 분들은 언제든 어디서든 사회사목국으로 다가와 주세요. 이제 사회사목국의 단골 손님이 되어 주실거죠?

 

-대전교구 사회사목국(635-5111)/www.djcaritas.or.kr

 

 

 

<지요하와 함께 보는 믿음살이 풍경>

 

사순절 '십자가의 길'기도 때마다

 

사순절 동안 전 세계의 모든 가톨릭 신자들은 '십자가의길'기도를 바칩니다. 그리고 모든 본당들은 매주 금요일 공식적으로 '십자가의 길'예절을 행합니다. 이 예절에 참여할 때마다 생각나는 게 하나 있습니다.

 

  오래 전 어느 지면에 '십자가의 길'기도에 관한 글을 한번 쓴 적이 있습니다. 옛날에는 '십자가의 길'기도를 '성로신공(聖路神功)',또는 '성로선공(聖路善功)',이라고 불렀지요. 그 얘기를 하면서 나는 성로신공의 '神功'을 '身功'으로 잘못 적었습니다. 육필로 쓴 원고를 우편으로 보내놓고 나서 확인을 해보니 '聖路身功'이 아닌 '聖路神功',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크게 당황하면서 급히 편집자에게 전화를 걸어 인쇄로 넘어가기 직전에 잘못된 원고 표기를 바로잡을 수 있었습니다.

 

  그 후 나는 내가 왜 '聖路神功'을 '聖路身功'으로 잘못 알고 있었는지 되우 궁금하였습니다.내가 오랜 세월 아무 의심 없이 '神功'을 '辛功'으로 기억하며 철석같이 믿어왔다는 사실이 재미있기도 하면서,그렇게 알아왔던 이유 같은 건 없을까 깊이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그러자니 자연 태안본당의 공소 시절,내 어렸을 적 일들이 떠올랐습니다. 사순절에는 공소에서도 금요일과 주일마다 모든 신자가 함께 '성로신공'을 바쳤습니다. 공소의 경당은 의자도 없고 그냥 마룻바닥이었습니다. 미사를 지내건 공소예절을 하건 마룻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는 것은 기본이었습니다. 마룻바닥에 엉덩이를 붙이고 편히 앉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미사나 공소예절은 그런대로 견딜 만했습니다. 하지만 '성로신공'을 할 때는 죽을 맛이었습니다. 같은 자리에서 두 무릎을 꿇었다가 일어서고,잠시 한쪽 무릎을 꿇었다가 일어서고, 다시 오래 두 무릎을 꿇고 있어야 하는 그 '고행'이 한없이 반복되는 것이었습니다.

 

 내 두 무릎의 거죽은 다른 사람들보다 다소 두꺼운 편입니다. 굳은살이 잡혔던 흔적이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1974년 새 성전이 지어지고 의자들이 놓인 이후로는 '십자가의 길'기도로 별로 힘들지 않게 되었는데,나는 공소시절 경당의 마룻바닥에서 성로신공을 바치던 때의 그 '고달픔'에 대한 기억이 워낙 명료해서 '身功'이라는 인식이 내 머리에 쉽사리 자리 잡지 않았나 싶습니다. 지금도 '십자가의 길'기도를 할 때는 그렇게 옛날 생각이 나곤 합니다.

 

  -지요하 (소설가.태안성당)-

 

 

 

 

 

맑은 안개

시원한 바람

 

그래

 

오늘이 참 좋구나

 

-글.그림 이순구(베네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