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신관동성당 정안공소
충청남도 공주시 아래양지말길 21(정안면 내촌리 229)
+ 요한복음 12,20-33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축제때에 예배를 드리러 올라온 이들 가운데 그리스 사람도 몇 명 있었다. 그들은 갈릴래아의 벳사이다 출신 필립보에게 다가가, "선생님, 예수님을 뵙고 싶습니다." 하고 청하였다.
필립보는 안드레아에게 가서 말하고 안드레아와 필립보가 예수님께 가서 말씀드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될 때가 왔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 내가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사람도 함께 있을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아버지께서 그를 존중해 주실 것이다."
"이제 제 마음이 산란합니다.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합니까? '아버지, 이때를 벗어나게 해 주십시오.'하고 말할까요? 그러나 저는 바로 이때를 위하여 온 것입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십시오." 그러자 하늘에서 "나는 이미 그것을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 다시 영광스럽게 하겠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곳에 서 있다가 이 소리를 들은 군중은 천둥이 울렸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천사가 저분에게 말하였다." 하는 이들도 있었다.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그 소리는 내가 아니라 너희를 위하여 내린 것이다. 이제 이 세상은 심판을 받는다. 이제 이 세상의 우두머리가 밖으로 쫓겨날 것이다. 나는 땅에서 들어 올려지면 모든 사람을 나에게 이끌어 들일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으로, 당신께서 어떻게 죽임을 당하실 것인지 가리키신 것이다.
<말씀의 향기>
십자가 앞에 선 예수님 -김수형 필립보 솔뫼성지 보좌-
이제 사순 시기의 주일도 마지막을 향해 왔습니다. 곧 다가오는 주님 수난 성지 주일을 맞이하면 본격적으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길을 걸어 가시게 됩니다. 우리도 그 길에 동참하는 마음으로 다가올 성주간을 기다릴것입니다.
오늘 첫 번째 독서에서 예레미야 예언자는 이스라엘 집안과 유다 집안 사이에 하느님과 새로운 계약을 맺을 날이 온다고 선포합니다. 계약을 맺는다는 건 서로의 기억을 잊어버리지 않게 하기 위함이며, 이 계약을 지키는 이들에게 하느님은 '나의 하느님'이 되어 주신다고 하십니다. 이렇게 기억은 계약을 통해 완전해집니다.
그런데 우리는 완전하시고, 선이신 하느님께 충실하지 못합니다. 자주 의무를 소홀히 하였고, 하느님을 나의 삶에서 기억하지 못하는 날도 있습니다. 하느님은 우리들과 맺은 사람의 기억을 잊지 않으시려고 상호간의 약속 계약을 맺었지만 늘 계약을 파괴하는 건 일방적인 편에서 우리들이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그랬고, 탈출을 체험한 이들이 수송아지를 만든 것도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우리들이 하느님과 맺은 계약을 기억하지 못하고 당신을 배반하더라도 용서해 주고, 우리의 죄를 더 이상 기억하지 않으신다고 하십니다. 죄와 허물 대신 사랑을 기억하시겠다고 약속해 주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죽음을 예고하시며 아프지만 당신이 만나야 할 죽음을 기억합니다. 그러면서 죽음 뒤에 있을 영원한 생명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오늘 말씀하셨던 그 밀알은 땅에 떨어져 완전히 죽었기 때문에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완전히 죽으셨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 부활이라는 선물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밀알이 되어 주십니다. 그로써 새로운 계약을 맺어 주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 새로운 열매로 태어난 우리들이 해야 할 건 죽음 뒤에 있는 부활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이로써 죽음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으로 가는 것이었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저는 200년 전부터 김대건 신부의 탄생을 지켜보았을 소나무 숲을 걸어봅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십자가를 묵묵히 바라보고 계신 예수님의 길을 바라봅니다.
우리 또한 이번 사순 시기를 마치면서 예수님께서 보셨던 그 자리에 서서 예수님이 하신 그 사랑의 행위를 기억하는 지킴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삶의 변화...(품격 있는 검소함)
결코 보편화될 수 없는 방식으로 소비할 권리가 있다고 믿는 소수가 있습니다.
게다가 우리는 생산된 식량 전체의 1/3이 버려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음식을 버릴 때마다, 그 음식은
마치 가난한 사람들의 식탁에서
훔쳐 온 것과 같은 것입니다."
(찬미 받으소서 50항)
-무료 급식소 안나의 집 김하종 신부님-
이러한 문제들은 버리는 문화와 밀접하게 관련됩니다.
버리는 문화는 물건을 쉽게 쓰레기로 만들어 버리는 것처럼 소외된 이들에게 악영향을 미칩니다.(찬미받으소서 22항)
<사회와 교회를 잇는 길잡이>
우리는 하느님이 아니다!
원자력 발전은 심각한 윤리적 문제를 안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찬미받으소서」 67항에 '우리는 하느님이 아닙니다.'라고 전제하면서,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를 '서로 책임을 지는 관계'라고 정의하고 있다.
원자력발전의 문제는 인간이 책임을 질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는 것이다. 핵폐기물의 경우가 그렇다. 인간에게 치명적인 위해를 가하는 고준위 핵폐기물의 경우 몇만 년을 땅속에 묻어두어야만 하는데, 몇십 년 밖에 살지 못하는 인간이 자자손손에 걸쳐 후손들에게 막대한 부담을 안겨주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좀 편하자고 후손들에게 처리 불가능한 쓰레기를 넘겨주는 것은 명확하게 "세데 간의 불평등"을 야기하는 일이기에 무책임하고 비윤리적인 행태이다.
사고가 날 가능성이 제로라고 강변하고 있는 원자력발전이지만, 실제로는 10년 전 후쿠시마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방사능 피폭으로 인해 태어나면서부터 고통을 당하는 생명들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않다고 외면하고 왜곡하고 은폐하는 것을 보면서 바벨탑의 죄과를 이미 우리가 겪고 있다고 본다. 핵발전은 인간이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고 하느님의 영역을 넘보다가 서로 갈라져 뿔뿔이 흩어지게 되는 벌을 받았던 바벨탑 사건을 되풀이 하고 있는 것이다.
대전교구 생태환경위원으로 활동하고 있고 원자로를 직접 설계하고 운전을 감독하는 일을 하는 이정윤 박사는 "원자력 발전은 우리의 작은 실수에도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기에 끝없는 관심과 투명성 확보를 위한 노력과 함께 끊임없는 감시와 의심이 요구된다.'알아서 잘하겠지.'하고 믿고 맡겨만 놓을 수가 없다."라고 주장한다.
탈핵을 대선공약으로 내세웠던 현 정부가 여론의 눈치를 보느라 점점 탈핵에서 멀어지는 결정을 내리고 있다. 노쇠해져 사고의 위험성이 높은 핵발전소 운전을 연장하고, 심지어 새로운 원자력 발전소를 착공하고 또 우리는 탈핵을 하겠다고 해놓고 다른 나라에 원전기술을 수출한다든가 하는 무책임하고 위험한 선택을 하고 있어 걱정이다.
-강승수 요셉 신부 대전교구 생태환경위원회-
'교회와 나' 새롭게 알기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신앙과 삶을 배웁시다!>
1. 새로운 시대의 태동:공의회 전(前) 역사 ③ -누구를 위한 변화인가?
지난 회에 새로운 신학으로의 세 가지 대전환을 살펴보면서, 누군가는 이미 눈치챘을지도 모르겠다. 그 세 가지 전환이 결국은 공의회 소집의 단초가 된 물음, '인간'과 '교회'란 무엇인가와 깊이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그 물음들은 역으로 당시 사람들에게 인간과 교회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이 너무 추상적이어서 받아들이기 어려웠고, 무엇보다 실제 삶과 관련해서 체험할 수 없는 것이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것은 크게 보아, 교회의 가르침이 그 시대 사람들과 또 현대 사고의 조류와의 진지한 대질(對質) 없이 일방적으로 머릿속에 주입시키려 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새로운 시대는 결코 우연이 아니라 필연의 산물이었다고 해야겠다.
오늘은 공의회 전(前) 역사의 마지막으로 공의회 개최 이전의 교회와 신자들의 움직임과 분위기를 살펴보자.
우선, 1차 세계대전 이후, 특히 독일을 중심으로 교회에 대한 새로운 의식이 깨어나기 시작한다. 이것은 독일 신학자 과르디니(R. Guardini)의 명언, "교회가 영혼들 안에서 깨어난다."는 말에서도 잘 드러난다. 과르디니는, 교회는 인간의 맞은편에서 개인의 자유와 자율을 통제하는 영적 감독기관이 아니라 신자들과 한 몸을 이루며 인간의 삶 전체를 충만하게 하는, 한 인격체라고 보았다. 교회는 종교적 삶을 제약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내용을 체험하게 하는 것이다. 이런 통찰에 의해 '우리가 교회다'라는 의식이 점차 생기게 되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종전까지 교회를 '제도'로 보아왔던 시각이 '인격체'로 바뀐다는 것에 있다. 곧 '인간 모습을 한 교회'에 비로소 눈뜨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 이해의 토대가 된다.
이는 교회가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 이후 '쇄신'이라는 단어조차 금기시할 만큼 완전하고 흠 없는 교회임을 일관되게 주장해 온 사실에 비춰볼 때 실로 엄청난 변화라 할 수 있다. 곧 교회의 구조나 교회에 대한 이해가 달라지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신학의 대전환으로 새로이 깨어난 의식과 함께, 20세기 교회는 현대 세계가 던지는 의문들을 단죄하기보다 가톨릭 신앙을 확립하는 방법으로 그에 대한 해답 찾기에 돌입한다. 그리하여 청소년 운동, 전례 운동, 성서 운동, 종교교육운동, 교회일치운동 등 여러 가톨릭 운동이 일어나게 되고, 특히 이런 운동과 함께 활발히 전개된 평신도의 교회사도직 참여는 그 자체로 살아있는 교회의 표지이요, 사람들 마음(영혼) 안에서 교회가 깨어나고 있다는 징표가 되기에 이른다.
결국 이 모든 변화는 '왜 그런가?', '교회의 그 가르침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에 대한 물음에서 시작되었다고 하겠다. 교회 가르침을 내가 삶 속에서 어떻게 체험하고 실현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이러한 새로운 자각은 점점 더, '나'와 '남'을 한데 아우르는, 한 공동체로서의 '우리'(교회)로 지평이 확장되면서, 마침내 나와 교회의 삶을 위한 변화를 창출해 내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변화는 늘 나의 깨어남에서, 내가 새롭게 태어나는 것에서 시작되고, 그 일은 혼자가 아니라 언제나 하느님과 함께 일어난다. 이 변화는 결국 교회와 나를 위한 것이니.
-서명옥 로사 대전가톨릭대학교 기초신학 강사-
* 교구내 공소 공주신관동성당 정안공소 1887년 안말(광정)은 두세 신부의 사목담당 지역으로 47명의 신자가 있었다. 공소예절은 1963년경 조희길 요셉 회장 집에 이어서 김해동 요한 집에서 거행되었다. 현재의 공소 건물은 김선식 형제가 대지를 희사하고 본당 및 공소신자들의 헌금과 희생으로 1970년 건축되었다. 신자수는 전교에 힘입어 1980년대 초 116명에 이르렀으나 1990년대에 이르러 급격히 감소하였다. 1999년 공소건물에 연결된 부속실을 증축하고 공소지붕 마감재를 교체하였다. 공소에는 철제 종탑과 작은 성모상정원이 있어 시골 공소의 정취를 보여준다. 현재,이 공소에는 50여 명의 신자들이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
코로나19와 나의 신앙생활 이야기 개인수기 부문 우수작
코로나19아 수산나의 죽음 - 서경선 란돌프 정림동본당
수산나가 입원한 날은 2020년 3월 중순이었다. 음식물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상처 난 다리는 계속 부어오르고 있었다. 수산나를 간신히 달래어 요양병원에 눕히고 3일이 지났다. 병원 앞에는 '코라나 19로 인하여 보호자의 면회를 금지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나는 매일같이 간호실 입구에 굳게 닫힌 문밖에서 병실만 바라보고 있었다. 종종 간호사가 남편이 왔다고 전했지만 서로 볼 수 없는 환경은 너무도 답답했다. 더구나 나만 생각하며 지내는 수산나는 어땠을 까? 코로나19는 한순간에 잠시만이라도 볼 수 있는 시간마저 뺏앗고 우리를 단절시키는 참혹한 현실로 바꾸어 놓았다. "주님, 수산나의 외로움을 안아주시고 위로하소서!" 창밖의 내 기도는 매일 같은 말만 계속되었다. 간호사가 그런 내 모습이 보기 딱했는지 핸드폰으로 수산나의 모습을 동영상으로 촬영해서 보여 주었다. "맙소사!" "여보 나 집에 갈래, 왜 여기에 가두고 오지도 않고 나를 고생시켜? 나 좀 살려 주오!" 손을 저으며 절규하는 소리를 뒤로하고 허탈한 마음에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지만 내 가슴은 찢어지는 듯 아팠다. 수산나가 얼마나 집이 그립고 가족을 보고 싶어 하는지 알기에 그 애절한 절규에 가슴이 미어졌다.
수산나는 전직 교사로 퇴임해 류머티스와 갑상선암수술을 받았으나 걸음걸이가 좀 불편했을 뿐 건강한 편이었다. 불편한 걸음걸이 때문에 수산나는 요양원 생활을 했고 얼마 전까지 우리는 점심 후에는 함께 다과를 하며 담소를 나누는 일상을 살았었는데.. 그녀의 다리가 심하게 부어서 요양병원으로 가게 되었고 결국엔 요양병원에서 대학병원으로 옮겨졌다. 그 사이 다리가 점점 썩어 발가락 두 개를 잘랐으나 몸속에 패혈증이 생겨 염증으로 시달리는 수산나를 보며 나는 소리 높여 기도했으나 아무런 효험이 없었다. 점점 악화되는 수산나를 보면서 나는 텅 빈 성당에 가 제대에 못 박혀 계신 주님의 다리를 어루만지며 "주님! 수산나의 다리를 보충해 주세요." 하면서 여러 번 외쳤지만, 주님은 아무 말씀이 없으셨고 성당 안은 적막하기만 했다. '과연 주님은 계시는 걸까? 답답하고 애처로운 마음이 가시질 않았다.
한 달 후 수산나는 중환자실로 옮겨졌고 마침내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날, 나는 수산나의 얼굴에 대고 "나 남편 란돌프야."하고 말하였다. 수산나는 슬그머니 눈을 뜨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고개를 떨구었다. 2020년 4월 8일 주님 수난 성지 주일, 수산나는 죽음을 맞이했다. 그나마 관전 1 동본당 주임신부님의 마지막 기도를 받고 떠난 수산나! 코로나19로 성당 친구들이나 친척들의 조문없이 가족들끼리 조촐하게 장례를 치루었다. 나는 납골함을 든 채 수산나와 함께 다녔던 정든 정림동 성당에 들어가 고상을 바라보며 한참을 울었다. 그리고 그토록 그녀가 오고 싶어 했던 집에 왔다. 3일 동안 자녀들과 함께 지냈고 밤에는 유골함을 품고 잤다. 유골함에 그녀가 즐겨 쓰던 묵주와 기도서를 담아 양지 바른 가족 묘소에 안치했다.
나는 수산나를 위해 100일 동안 연도와 미사를 봉헌하며 수산나에게 주님의 자비로 평화의 안식을 주시라는 기도만 되풀이하는 바보가 되었다. 그때 성당 안 주님의 미소가 보이며 마음의 평화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고통을 잊고 평화로운 곳으로 간 수산나, 그리고 내게도 평화를 안겨 주신 주님 감사합니다."감사의 눈물이 한없이 흘렀다.
'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 > 2021년 주보'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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