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2021년 주보

주님 수난 성지 주일 2021년 3월 28일(나해)

모든 2 2021. 3. 31. 13:55

공주 중동성당 중장리 공소

충청남도 공주시 갑사로 177(계룡면 중장리 789-9)

 

  +  마르코가 전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기입니다. 14,1-15,47 <또는 15,1-39>

 

○  <파스카와 무교절 이틀 전이었다. 수석 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은 어떻게 하면 속임수를 써서 예수님을 붙잡아 죽일까 궁리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백성이 소동을 일으킬지 모르니 축제 기간에는 안 된다."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 베타니아에 있는 나병 환자 시몬의 집에 계실 때의 일이다. 마침 식탁에 앉아 계시는데, 어떤 여자가 값비싼 순 나르드 향유가 든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려 그분 머리에 향유를 부었다. 몇 사람이 불쾌해하며 저희끼리 말하면서 그 여자를 나무랐다.

◎"왜 저렇게 향유를 허투루 쓰는가? 저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그 돈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줄 수도 있을 터인데."

○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 "이 여자를 가만두어라. 왜 괴롭히느냐? 이 여자는 나에게 좋은 일을 하였다. 시실 가난한 이들은 늘 너희 곁에 있으니, 너희가 원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그들에게 잘해 줄 수 있다. 그러나 나는 늘 너희 곁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 이 여자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였다. 내 장례를 위하여 미리 내 몸에 향유를 바른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온 세상 어디든지 복음이 선포되는 곳마다, 이 여자가 한 일도 전해져서 이 여자를 기억하게 될 것이다."

○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인 유다 이스카리옷이 예수님을 수석 사제들에게 팔아넘기려고 그들을 찾아갔다. 그들은 그의 말을 듣고 기뻐하며 그에게 돈을 주기로 약속하였다. 그래서 유다는 예수님을 넘길 적당한 기회를 노렸다.

  무교절 첫날 파스카 양을 잡는 날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물었다.

◎  "스승님께서 잡수실 파스카 음식을 어디에 가서 차리면 좋겠습니까?"

○  예수님께서 제자두 사람을 보내며 이르셨다.

†  "도성 안으로 가거라, 그러면 물동이를 메고 가는 남자를 만날 터이니 그를 따라가거라. 그리고 그가 들어가는 집의 주인에게, '스승님께서 '내가 제자들과 함께 파스카 음식을 먹을 내 방이 어디 있느냐?'하고 물으십니다. '하여라 그러면 그 사람이 이미 자리를 깔아 준비된 큰 이 층 방을 보여 줄 것이다. 거기에다 차려라."

○  제자들이 떠나 도성 안으로 가서 보니, 예수님께서 일러주신 그대로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파스카 음식을 차렸다. 저녁때가 되자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그곳으로 가셨다. 그들이 식탁에 앉아 음식을 먹고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 나와 함께 음식을 먹고 있는 자가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 그러자 제자들은 근심하며 차례로 묻기 시작하였다.

●  "저는 아니겠지요?"

○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  "그는 열둘 가운데 하나로서 나와 함께 같은 대접에 빵을 적시는 사람이다. 사람의 아들은 자기에 관하여 성경에 기록된 대로 떠나간다. 그러나 불행하여라. 사람의 아들을 팔아 넘기는 그 사람!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자신에게 더 좋았을 것이다."

○  제자들이 음식을 먹고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다.

† "받아라, 이는 내 몸이다."

○  또 잔을 들어 감사를 드리신 다음 제자들에게 주시니 모두 그것을 마셨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  "이는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내 계약의 피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가 하느님 나라에서 새 포도주를 마실 그날까지, 포도나무 열매로 빚은 것을 결코 다시는 마시지 않겠다."

○ 그들은 찬미가를 부르고 나서 올리브산으로 갔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  "너희는 모두 떨어져 나갈 것이다. 성경에,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들이 흩어지리라, '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나는 되살아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래아로 갈 것이다."

○  베드로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  "모두 떨어져 나갈지라도 저는 그러지 않을 것입니다."

○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오늘 이 밤, 닭이 두번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  베드로가 더욱 힘주어 장담하였다.

●  "스승님과 함께 죽는 한이 있더라도, 저는 결코 스승님을 모른다고 하지 않겠습니다."

○  다른 제자들도 모두 그렇게 말하였다.

그들은 겟세마니라는 곳으로 갔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 "내가 기도하는 동안 너희는 여기에 앉아 있어라."

○  그런 다음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가셨다. 그분께서는 공포와 번민에 휩싸이기 시작하셨다. 그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 "내 마음이 너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다. 너희는 여기에 남아서 깨어 있어라."

○  예수님께서는 앞으로 조금 나아가 땅에 엎드리시어, 하실 수만 있으면 그 시간이 당신을 비켜 가게 해 주십사고 기도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 "아빠!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무엇이든 하실 수 있으시니,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가 원하는 것을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것을 하십시오"

○예수님께서 돌아와 보시니 제자들은 자고 있었다. 그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 "시몬아, 자고 있느냐?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란 말이냐? 너희는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여라. 마음은 간절하나 몸이 따르지 못한다."

○  예수님께서 다시 가셔서 같은 말씀으로 기도하셨다. "그리고 다시 와 보시니 그들은 여전히 눈이 무겁게 내리감겨 자고 있었다. 그래서 제자들은 예수님께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몰랐다. 예수님께서는 세 번째 오셔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  "아직도 자고 있느냐? 아직도 쉬고 있느냐? 이제 되었다. 시간이 되어 사람의 아들은 죄인들의 손에 넘어간다. 일어나 가자. 보라, 나를 팔아넘길 자가 가까이 왔다."

  ○  그러자 곧, 예수님께서 아직 말씀하고 계실 때에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인 유다가 다가왔다. 그와 함께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과 원로들이 보낸 무리도 칼과 몽둥이를 들고 왔다. 그분을 팔아넘길 자는, "내가 입 맞추는 이가 바로 그 사람이니 그를 붙잡아 잘 끌고 가시오."하고 그들에게 미리 신호를 일러주었다. 그가 와서는 곧바로 예수님께 다가가 말하였다.

● "스승님!"

○ 그러고 나서 입을 맞추었다. 그러자 그들이 예수님께 손을 대어 그분을 붙잡았다. 그때 곁에 서 있던 이들 가운데 한 사람이 칼을 빼어, 대사제의 종을 내리쳐 그의 귀를 잘라 버렸다. 예수님께서 나서시어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강도라도 잡을 듯이 칼과 몽둥이를 들고 나를 잡으러 나왔단 말이냐? 내가 날마다 너희와 함께 성전에 있으면서 가르쳤지만 너희는 나를 붙잡지 않았다.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이리된 것이다."

○  제자들은 모두 예수님을 버리고 달아났다. 어떤 젊은이가 알몸에 아마포만 두른 채 그분을 따라갔다. 사람들이 그를 붙잡자, 그는 아마포를 버리고 알몸으로 달아났다.

  그들은 예수님을 대사제에게 끌고 갔다. 그러자 수석 사제들과 원로들과 율법 학자들이 모두 모여 왔다. 베드로는 멀찍이 떨어져서 예수님을 뒤따라 대사제의 저택 안뜰까지 들어가, 시종들과 함께 앉아 불을 쬐고 있었다. 수석 사제들과 온 최고 의회는 예수님을 사형에 처하려고 그분에 대한 증언을 찾았으나 찾아내지 못하였다. 사실 많은 사람이 그분께 불리한 거짓 증언을 하였지만, 그 증언들이 서로 들어맞지 않았던 것이다. 더러는 나서서 이렇게 거짓 증언을 하기로 하였다.

◎  우리는 저자가, '나는 사람 손으로 지은 이 성전을 허물고, 손으로 짓지 않는 다른 성전을 사흘 안에 세우겠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 그들의 증언도 서로 들어맞지 않았다. 그러자 대사제가 한가운데로 나서서 예수님께 물었다.

●  "당신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소? 이자들이 당신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는데 어찌 된 일이오?"

○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입을 다무신 채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 대사제는 다시 물었다.

●  "당신이 찬양받으실 분의 아들 메시아요?"

○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  "그렇다.'너희는 사람의 아들이, 전능하신 분의 오른쪽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볼 것이다.'"

○  대사제가 자기 옷을 찢고 이렇게 말하였다.

●  "이제 우리에게 무슨 증인이 더 필요합니까? 여러분도 하느님을 모독하는 말을 듣지 않았습니까? 여러분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  그들은 모두 예수님께서 사형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단죄하였다. 어떤 자들은 예수님께 침을 뱉고 그분의 얼굴을 가린 다음, 주먹으로 치면서 놀려 대기 시작하였다.

◎  "알아맞혀 보아라, "

○  시종들도 예수님의 뺨을 때렸다.

베드로가 안뜰 아래쪽에 있는데 대사제의 하녀 하나가 와서, 불을 쬐고 있는 베드로를 보고 그를 찬찬히 살피면서 말하였다.

●  "당신도 저 나자렛 사람 예수와 함께 있던 사람이지요?"

○  베드로는 부인하였다.

●  "나는 당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도 이해하지도 못하겠소?"

○ 베드로가 바깥뜰로 나가자 닭이 울었다. 그 하녀가 베드로를 보면서 곁에 서 있는 이들에게 다시 말하기 시작하였다.

●  "이 사람은 그들과 한패예요."

○  베드로는 또 부인하였다. 그런데 조금 뒤에 곁에 서 있던 이들이 다시 베드로에게 말하였다.

◎"당신은 갈릴래아 사람이니 그들과 한패임에 틀림없소."

○베드로는 거짓이면 천벌을 받겠다고 맹세하기 시작하며 말하였다.

● "나는 당신들이 말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오."

○ 그러자 곧 닭이 두 번째 울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하신 말씀이 생각나서 울기 시작하였다.>

아침이 되자 수석 사제들은 곧바로 원로들과 율법 학자들, 곧 온 최고 의회와 의논한 끝에, 예수님을 결박하여 끌고 가서 빌라도에게 넘겼다. 빌라도가 예수님께 물었다.

● "당신이 유다인들의 임금이오?"

○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 "네가 그렇게 말하고 있다."

○   그러자 수석 사제들이 여러 가지로 예수님을 고소하였다. 빌라도가 다시 예수님께 물었다.

●  "당신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소? 보시오, 저들이 당신을 갖가지로 고소하고 있지 않소?"

○  예수님께서는 더 이상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빌라도는 이상하게 여겼다. 빌라도는 축제 때마다 사람들이 요구하는 죄수 하나를 풀어 주곤 하였다. 마침 바라빠라고 하는 사람이 반란 때에 살인을 저지른 반란군들과 함께 감옥에 있었다. 그래서 군중은 올라가 자기들에게 해 오던 대로 해 달라고 요청하기 시작하였다. 빌라도가 그들에게 물었다.

●  "유다인들의 임금을 풀어 주기를 바라는 것이오?"

○  빌라도는 수석 사제들이 예수님을 시기하여 자기에게 넘겼음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수석 사제들은 군중을 부추겨 그분이 아니라 바라빠를 풀어 달라고 청하게 하였다. 빌라도가 다시 군중에게 물었다.

● "그러면 여러분이 유다인들의 임금이라고 부르는 이 사람은 어떻게 하기를 바라는 것이오?"

○  그러자 군중은 거듭 소리 질렀다.

◎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  빌라도가 그들에게 물었다.

●  "도대체 그가 무슨 나쁜 짓을 하였다는 말이오?"

○  군중은 더욱 큰 소리로 외쳤다.

◎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  그리하여 빌라도는 군중을 만족시키려고, 바라빠를 풀어 주고 예수님을 채찍질하게 한 다음 십자가에 목 박으라고 넘겨주었다. 군사들은 예수님을 안으로 끌고 갔다. 그곳은 총독 관저였다. 그들은 온 부대를 집합시킨 다음, 그분께 자주색 옷을 입히고 가시관을 엮어 머리에 씌우고서는, 이렇게 말하며 인사하기 시작하였다.

◎  "유다인들의 임금님, 만세!"

○  또 갈대로 그분의 머리를 때리고 침을 뱉고서는, 무릎을 꿇고 엎드려 예수님께 절하였다. 그렇게 예수님을 조롱하고 나서 자주색 옷을 벗기고 그분의 겉옷을 입혔다. 그리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러 끌고 나갔다.

그들은 지나가는 어떤 사람에게 강제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게 하였다. 그는 키레네 사람 시몬으로서 알렉산드로스와 루포스의 아버지였는데, 시골에서 올라오는 길이었다. 그들은 예수님을 골고타라는 곳으로 데리고 갔다. 이는 번역하면 '해골 터'라는 뜻이다. 그들이 몰약을 탄 포도주를 예수님께 건넸지만 그분께서는 받지 않으셨다. 그들은 예수님을 건넸지만 그분께서는 받지 않으셨다.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 그러고 나서, 그분의 겉옷을 나누어 가졌는데, 누가 무엇을 차지할지 제비를 뽑아 결정하였다. 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목 박은 때는 아침 아홉시였다. 그분의 죄명 패에는 '유다인들의 임금'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강도 둘을 십자가에 못 박았는데, 하나는 오른쪽에 다른 하나는 왼쪽에 못 박았다. 지나가는 자들이 머리를 흔들며 그분을 이렇게 모독하였다.

◎  "저런! 성전을 허물고 사흘 안에 다시 짓겠다더니. 십자가에서 내려와 너 자신이나 구해 보아라."

○  수석 사제들도 이런 식으로 율법 학자들과 함께  조롱하며 서로 말하였다.

◎  "다른 이들은 구원하였으면서 자신을 구원하지 못하는군. 우리가 보고 믿게, 이스라엘의 임금 메시아는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시지."

○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자들도 그분께 비아냥거렸다. 낮 열두 시가 되자 어둠이 온 땅에 덮여 오후 세 시까지 계속되었다. 오후 세 시에 예수님께서 큰 소리로 부르짖으셨다.

†  "엘로이 엘로이 레마 사박타니?"

○ 이는 번역하면,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라는 뜻이다. 곁에 서 있던 자들 가운데 몇이 이 말씀을 듣고 말하였다.

◎ "저것 봐! 엘리야를 부르네, "

○ 그러자 어떤 사람이 달려가서 해면을 신 포도주에 적신 다음, 갈대에 꽃아 예수님께 마시라고 갖다 대며 말하였다.

● "자, 엘리야가 와서 그를 내려 주나 봅시다."

○ 예수님께서는 큰 소리를 지르시고 숨을 거두셨다.

○그때에 성전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두 갈래로 찢어졌다. 그리고 예수님을 마주 보고 서 있던 백인대장이 그분께서 그렇게 숨을 거두시는 것을 보고 말하였다.

●"참으로 이 사람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셨다."

○  여자들도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들 가운데에는 마리아 막달레나, 작은 야고보와 요새의 어머니 마리아,그리고 살로메가 있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갈릴래아에 계실 때에 그분을 따르며 시중들던 여자들이었다. 그 밖에도 예수님과 함께 예루살렘에 올라온 다른 여자들도 많이 있었다. 이미 저녁때가 되어 있었다. 그날은 준비일 곧 안식일 전날이었으므로, 아리마태아 출신 요셉이 빌라도에게 당당히 들어가,예수님의 시신을 내 달라고 청하였다. 그는 명망있는 의회 의원으로서 하느님의 나라를 열심히 기다리던 사람이었다. 빌라도는 예수님께서 벌써 돌아가셨을까 의아하게 생각하여,백인대장을 불러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지 오래되었느냐고 물었다. 빌라도는 백인대장에게 알아보고 나서 요셉에게 시신을 내주었다. 요셉은 아마포를 사 가지고 와서, 그분의 시신을 내려 아마포로 싼 다음 바위를 깎아 만든 무덤에 모시고, 무덤 입구에 돌을 굴려 막아 놓았다. 마리아 막달레나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는 그분을 어디에 모시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말씀의 향기>

 

그들의 태도가 돌변한 이유  -박윤재 라우렌시오 사회복지국 차장

 

  오늘은 주님 수난 성지 주일, 예수님의 수난기를 들으며 아파하기도,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태도와 마음을 바라볼 수 있는 날입니다. 우리는 오늘 두 개의 복음을 듣습니다. 주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기념하는 입당예식의 복음과, 말씀 전례 때 듣게 되는 주님의 수난기입니다. 이 두 복음 중 한 복음에 집중을 하고 마음속 깊이 묵상할 수 있지만, 오늘 저는 이 두 복음 속에서 드러난 사람들, 군중의 이중적 태도에 집중을 하게 됩니다. 두 집단이 다른 집단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같은 사람들이 그렇게 다른 태도를 보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어떤 사람이나 단체의 일부분을 보고 들은 후에 반응을 하게 될 경우가 그렇습니다. 사실은 오랫동안 만나본 것도 일해 본 것도 아닌데, 우리 속에는 스쳐 지나간 그 자리에 이미지가 생겨버리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을 직접 만나기 이전에 말이지요.

  오늘 예수님을 맞이 했던 군중들, 백성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좋은 소문, 기적에 대한 것, 죄인들과도 함께 한다는 것, 가르침이 좋다는 것 등과 더불어 메시아, 왕이 될 분이라는 소문을 들었을 때 사람들은 환호하였습니다.

  하지만 신성모독과 민중 선동의 죄목으로 형벌에 처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자 예수님을 바라보는 군중들, 백성들의 시선이 점점 고운 눈길이 아니라 매서운 눈길로 바뀌어졌을 것입니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나서 전에 들었던 이야기들에 속았다고 생각할 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죄인으로, 좋지 않은 사람으로 받아들이며 그 마음속 시선도 꼬여버립니다. 그래서 그들은 마침내 예수님께 사형을 언도하는 이 말을 외치게 됩니다.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그들이 이렇게 이중적으로 돌변한 까닭은 예수님을 직접 만나지 않고 외쳤기 때문은 아닐까요? 그리고 우리도 생활 속에서 사람들이나 단체를 만날 때 그 사람과 직접 지내보지 않았기 때문은 아닐까요?

 

  오늘 복음에 직접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두 복음 속 사람들의 태도를 통해 예수님께서는 소문으로 당신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만나고 대화를 나누는 일들을 하자고 넌지시 이야기하시는 듯합니다. 마치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궁금한 요한의 제자들에게 "와서 보아라."하고 말씀하셨던 것처럼 말이지요. 그리고 나아가 우리 생활 속에서도 소문이나 잠깐 사이에 생긴 이미지가 아니라 사람을 직접 만나고 함께 지내보라고도 이야기하시는 듯합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당신을 제대로 만나기 위해서는 직접 다가와 당신 곁에 머무르라고, 그 사람을 직접 만나 함께 시간을 보내보라고 말이지요. 2000년 전 이스라엘 사람들이 변덕스럽게도 예수님을 맞이하지 못하고 수난과 죽음에 이르게 한 마음 아픈 일이 오늘날도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라시면서 말입니다.

 

 

 

<사회와 교회를 잇는 사잇길 >

 

쉬운 일상으로의 복귀 말고, 생명의 하느님께로 복귀

 

 

 

  얼마 전, 3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이었다. 여성의 날을 맞아 여러 이야기들을 위한 사회 지도층 인사의 말들이 있었다. 그런데 한 사회지도층의 인사가 이런 말을 공식적으로 했다.

 

  1. '"낙태법(죄)'이 대한민국에서 공식적으로 폐지된지 벌써 3개월?"

  -아니다. 폐지되지 않았다. 헌법불합치는 당장 해당조항을 폐지할 경우 사회적 혼란이나 부작용이 생길 것을 막기 위해 국회의 법 개정 전까지만 법률 효력을 유지시키는 결정이다.

 

  2. 안전한 인공임신중지를 위한 후속조치로, "이미 세계적으로 안정성을 보장받은 유산 유도제(인공임신 중지 약, 낙태약) 미프진 도입, 블랙마켓(암시장)에서 중국산 인도산 등의 약을 구하여 인공임신중지가 성행하니, 미프진 도입을 서두르는 것이 여성의 건강을 지키는 것?"

  - 아니다. 2018년 대한산부인과협회에서 "미프진은 여러 위험한 부작용 가능성이 있어 결코 안전한 약품이 아니다."라고 이미 선언했다. 그 이유로 ①임신 10주 이상 지닌 여성이 복용할 경우 수혈이 필요할 만큼의 심각한 출혈 발생 우려.② 임신 7주 이내 여성도 복용시 구토, 설사, 두통, 현기증, 요통 등은 물론 심한 복통과 하혈,③ 복통과 출혈에도 불구하고 유산되지 않거나 불완전 유산될 위험④  만일 불완전 유산의 경우, 임신 초기 인공임신중절 수술보다 더 많은 출혈, 염증 발생, 자궁의 심각한 소산 등으로 심할 경우, 적출의 위험과 더불어 다음 임신에 문제될 휴유증이 생길 수 있다. 결국 전문의 진단과 관찰, 안내가 충분히 필요하다.

  최근 일부 매체에서도 미프진이 이미 합법화된 야, '임신 중단할 권리'의 상징이며, '유레카'를 외치며 홍보하고 있다. 미프진이 들어온다는 말에 많은 여성들이 '의리(?) 매수'라 하여 제약회사 주식을 사들였다. 제약회사는 약물의 부작용이나 주의사항에 대해서는 세부적으로 서술하지 않았다.

  심지어 태아의 생명권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여성의 성과 재생산 권리'만을 말하며, 쉬운 일상으로의 복귀, 불편하지 않은 일상을 보장하겠다고, 평범한 일상을 지키겠다고 말한다. 낙태의 이유로 '학업, 직장 등의 사회생활에 지장'될까 걱정과 '경제상태상 양육이 어려워서'라고 말한다. 하지만 약의 안전성도 보장하지 못 한 채, 어떻게 여성의 건강과 삶의 질을 보장하는가.

 

  3. "인공임신중지는 신념의 문제, 도덕의 문제도 아닌 당연한 의료행위의 문제?"

  - 아니다. 인간과 관련된 그 어떤 문제에서 무조건 쉽게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는 없다. 행위를 위한 선택은 어떤 삶의 가치와 윤리도덕의식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분명 다르다. 자기 결정이 타인(태아)과 무관하지도 않으며, 무슨 일이든 불법(유통과 익명성)과 무관하지도 않으며, 무슨 일이든 불법(유통과 익명성)을 합법화해서라도 개인의 결정을 인정해 줘서는 안 된다. 개인의 자기결정권은 절대적 자유가 아니라 제한적인 권리이다. 여성을 위한 일이라며, 그 일에 총체적이고 전인격적인 판단과 선택이 이루어져야겠다. 전심(全心)으로.

 

 

  내달 부활 제2주일(4월 11일). 한국교회는 2019년 4월 11일. 헌재의 낙태법 헌법불합치 판결한 날을 기억하며 자비하신 하느님께 생명을 위한 미사를 봉헌하기로 결정했다.

 

  -이영일 야고보 신부 주교회의 생명운동본부 대전교구 담당-

 

 

 

스테인드글라스 이야기①

태안성당 편

 

사실적인 퍼포먼스를 담다

 

로마네스크 양식과 비잔틴 양식이 어우러진 전주시 전동성당을 모태로 지어진 태안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작업은 초기 제작 단계부터 접근 방식에 변화를 주었다. 전통적 건축 양식의 자태와 기품을 그대로 담은 성당이지만, 작자로서 공간에 대한 반전을 생각하며 아주 현대적인 이미지의 작품을 제작하고자 마음먹었다. 어쩌면 몸과 마음을 하나로 연결하는 정말 좋은 작품이 탄생할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었는지도 모른다.

  '동정 마리아의 묵주기도 20단', 주제가 이미 정해진 가운데 사실적인 묘사에 집중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나는 잠시나마 들떴던 마음을 가라앉혀야만 했다. 더욱이 성당 내부에 설치된 스테인드글라스이기에 당시 본당 신자들의 정서를 반영해야 하는 것은 물론 전통적인 느낌을 충분히 담아내야만 했다.

  본래 스테인드글라스의 시작은 '그림으로 읽는 성경'이라고 일컬어지며 중세시대에 글을 모르는 신자들을 위해 제작되었다. 그래서 'Poor bible', 즉 '가난한 자들을 위한 성경'이라는 별병까지 얻지 않았던가!

  '동정마리아의 묵주기도 20단'을 어떻게 담아낼 것인가. 게다가 사실성과 작품성을 모두 부여해야만 했다. 하느님, 제발 저에게 영감을 주소서!

  고민 끝에 나는 태안성당 본당의 신자들을 묵주기도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로 등장시켰다. 사실화 중심의 작업임을 고려할 때 과거 명화의 재현이나 서양인의 얼굴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본당 신자들이 직접 참여해 작품 속 주인공이 되는 것이었다.

  기획 초기부터 신자들과 인터뷰를 시작했다. 여기에 의상. 미디어. 사진전공자들이 작품 제작에 참여했다. 본당 신자분들은 스테인드글라스 작업에 모델로 참여하며 비록 짧은 시간이나마 일상생활 속 묵주기도를 몸소 체험 할 수 있었다. 더욱이 신앙적으로 자신을 한 번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고, 그 장면을 연출함으로써 간접적이나마 신앙 체험을 할수 있었다.

  특히 베로니카가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예수님의 얼굴을 닦는 장면을 연출한 자매님이 오랜 시간 기억에 남는다. 그분은 너무 몰입한 나머지 눈물까지 흘려가며 작업에 참여하셨다. 더 놀라웠던 것은 그 모습을 보라 본 스태프들까지 울컥했다는 것이다.'아~ 정말 착하게 살아야겠다.'

  묵주기도 장면이 하나의 퍼포먼스고, 그 퍼포먼스의 과장이 바로 스테인드글라스에 녹아드는 것이다. 이 작업은 본당 신자분들이 직접 참여했던 만큼 나는 작가로서의 혼을 불어넣으며 스테인드글라스에 한국적인 느낌을 최대한 살리고자 노력했다. 인물들의 표정은 물론 선 하나하나에도 정적인 느낌을 살리며.., 그러면서 작품을 통해 진정한 기도의 힘이 다시 살아나기를 간절히 기원했다.

 

 

<사진 1> 고통의 신비 1단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피땀 흘리심을 묵상합시다.

 

3대가 모델이 된 장면이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딸과 사위, 손자 2명이 작업에 참여했다.

그러나 공간 배치상 푸른색 옷을 입은 큰손자를 작품에 넣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입체적으로 붙여 넣어 주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

 

 

-손승희(손소벽 막달레나) 유리화 작가-

 

 * 교구내공소
공주중동성당 중장리공소


중장리(하대리)는 박해가 끝나면서 전교가 된 곳으로, 점촌(하대리3구)마을 신자들10여명이 김성구 회장집에 모여 공소예절을 가졌다. 1946년 고기득(요한)형제가 하대리2구로 이사오면서 활발한 전교가 이루어졌고, 1949년 공주본당의 시잘레 신부가 공소를 방문하였다. 1956년 민가를 매입하여 공소로 사용해 오다가 1979년 신자들의 봉헌과 노력으로 새 공소건물을 신축하고 1987년에는 청소년들을 위한 피정의 집을 건립하였다. 성모상 옆에는 고기득 회장의 공적비가 세워져 있다. 교우수는 134명에 이르렀으나 현재,평균 30여 명의 신자들이 전례에 참례하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코로나 19와 나의 신앙생활 이야기 개인수기 부문 우수작

 

그땐 비었지, 그분 채워주셨지, 이젠 줘야지-김동효 요한보스코 계룡본당

 

  개학이 1주일 연기되었습니다. '. '공동체 미사를 잠정 중단합니다.' 2월 말 대건고 3학년 진급을 앞두고 외박을 나와 있던 내게 앵커가 해 준 첫마디였다. 이 두 문장은 고3을 파이팅 넘치게 시작하려고 했던 나를 뒤흔들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나를 예비신학생으로서 신학교 지원반은 다니던 나에게 공동체 미사의 중단은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공동체 미사 중단과 개학 연기 안에서 나는 나태해져 갔다. 나의 역량과 성적을 믿고 점점 학업을 소홀히 했다. 신앙생활 또한 온라인으로 전환된 미사를 보고 '이거 편하고 좋다.'고 생각하며 몸을 안락한 생활에 적응시켰다. 그러다 뭔가 잘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소홀했던 영성생활을 다시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안셀름 그륀 신부님께서 쓰신 '내면의 샘'묵상집의 도움을 받았다. 머리말은 읽으면서 깊은 묵상을 했다. 첫째 날의 묵상을 통해 교만하고 이기적인 모습을 적나라하게 본다는 것이 너무 괴로웠다. 그리고 과연 내가 살아오는 동안 만족하고 감사드렸던 기억이 있는가 더듬어 보았다. 만족하기보다는 더 얻으려 했고 남들보다 더 뛰어나려고 했다. 반장을 하면서 친구들에게 봉사한다는 생각보다는 힘이 있는 자리로서 대우받길 원하는 마음으로 임무를 하였다. 잘못된 방법으로 나의 욕구를 채우려고 하였다. 영원한 만족을 얻게 해 주시는 분이 주님이라는 사리을 잊고 살아왔다는 후회가 밀려왔다.

 

  며칠 후 성당이 문을 연다는 소식에 자전거를 타고 십자가의 길을 하러 갔다. 십자가의 길을 계속하다 보니 주님은 먼저 가셔서 재촉하시는 분이 아니라 옆에서 십자가를 지고 함께 가시는 분임을 깨달았다. 적막한 성당에서 느낀 주님이 동행은 내가 예비신학생으로 살아가는 데 큰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원동력을 가지고 살아가던 중 방학이 더 연장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오히려 이때는 당황하기보다 주님과 못다 한 이야기를 다 하고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공부 중 쉬는 시간에는 가톨릭 평화방송 유튜브도 보게 되었다. 교황님께서 아무도 없는 바티칸 광장을 혼자 걸으며 서로 연대하자고, 기도하고 성체강복을 하시는 모습은 내가 평소에 상상하던 코로나 시대에 필요한 사제의 모습과 정확히 일치했다. 교황님 말씀에 귀 기울이면서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동안 묵상을 통해 내 상처와 고통에 초점을 두어다면 이제는 기도를 통해 멀리서나마 아픈 이들,내가 너무 보고 싶은 사람들을 만나는 일에 초점을 두고 싶었다. 한국에서 코로나19가 주춤해진 사이 그와 더불어 묵상집도 어느덧 끝을 보이기 시작했다. 묵상집은 내가 메말라 있으면 더더욱 사람들에게 사랑을 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여 주었다. 또 내 스스로 샘물이 마르지 않게 하기 위해선 물의 근원이신 주님께 의지해야 함을 일러 주었다.

 

  코로나19는 정체해 있던 내가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시간을 주었다. 주님과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주님께 이야기하는 시간을 주었다. 또한 나와는 별개라고 생각했던 코로나19가 외할머니의 자가격리로 나의 삶과 동떨어지지 않았음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초창기 서로 연대하며 사랑했던 모습들, 예수님께서 보여 주셨던 이웃에 대한 사람을 우리가 지키고 있었는지를 다시금 반성하는 시간을 주었다. 최악을 전염병인 코로나 시기를 버텨나가며 '빨리'보다 '같이'를 생각할 수 있었다. 공동체의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할 때가 바로 지금이다. 물의 원천이신 주님과 더 가까이 지내려고 노력해야 할 때가 바로 지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