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새바위 순교성지(3)
하느님의 종 김화숙 베드로
성 손자선 토마스
하느님의 종,김화숙 베드로(1808-1867)는 충청도 결성 머리실의 중인 출신으로, 고향에서 교리를 배워 입교한 후,전라도 산속으로 이주해 옹기점을 운영하며 살았다. 그러다가 충청도 지역으로 이주하여 여러 해 교우촌 회장으로 활동하며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했다. 이후 공주 국실(현 충남 공주시 반포면 국곡리)옹기점 교우촌에 이주해 정착한 그는,회장 소임을 다시 맡아 교우들에게 교리를 가르치고 냉담자 권면에 열중했다. 그러던 중 1867년 5월 8일 포교들이 국실로 들이닥쳐 신자 20여 명을 체포했다. 포교들은 신자들을 마구 때리며 '누구에게 천주학을 배웠느냐?"고 심문하자 모두가 하나같이 "김화숙 베드로 회장에게 배웠다."라고 답했다. 그러자 포교들은 체포된 이들 가운데 김화숙을 색축해 무차별로 때린 다음 공주 진영으로 압송했다. 김화숙은 옥에 갇혀있는 동안 동료 교우들을 독려하며 날마다 기도했다. 그들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옥졸들이 돼지 밥통에서 술지게미를 가져다줘도 '감사하다."라며 서로 나누어 먹었다. 김화숙 베드로는 순교 전날 교우들과 함께 저녁 기도를 바친다음 "나는 내일이면 죽을 것이니,당신들도 모두 임종 준비를 잘해 내 뒤를 따라와 함께 천당 복락을 누리자.'라고 권면했다. 그는 1867년 5월 12일 교우들과 함께 교수형으로 순교했다.
성 손사전 토마스(1844-1866)는 충청도 덕산군 홍주면 신리 마을 거더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3대째 천주교를 믿는 열심한 신앙 가정에서 태어났다. 성품이 부지런하고 침착하였고, 신심이 두터워 명성이 높았으며,자기 부인과 함께 아침,저녁 기도를 한 번도 거르는 일이 없었다. 그는 오랫동안 내포 지방을 중심으로 전교했고, 순교 자료를 모아 성직자들에게 전하였으며,공소 예절도 그의 집에서 하였다.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나자,포졸들이 거더리 마을의 신자들 집을 샅샅이 뒤져 많은 물건을 빼앗아 가면서, "손씨 집안에서 누구든 사람을 보내 몰수된 물건을 찾아가라."라는 편지를 보냈다. 이에 용감한 손 토마스는 자진하여 덕산 관아에 찾아갔고, 천주교인이냐는 물음에 신자임을 밝히고 체포되었다. 관에서 갖은 고문으로 그의 의지를 꺾으려 애썼으나 모두 허사였고, 곤장을 치다 못해 다리를 묶어 거꾸로 매달았다. 그리고 손 토마스를 해미로 압송하였고, 해미에서 더 심한 형벌이 가해졌다. 참혹한 형벌에도 태연히 버티는 그의 모습이 가증스러워,더 고생시키기 위해 수많은 고문을 했으나,그의 신앙은 변함이 없었다. 결국,1866년 부활 전날인 3월 31일 공주 감영에서 교수형을 받아 순교하였다.
황새바위순교성지는 순교자의 처절하고 용기 있는 신앙심으로서의 삶의 모범을 통하여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신앙이 무엇인지,신앙인으로 무엇을 바라보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삶의 자리를 돌아보고 새로 나는 장소이자 은총의 배움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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