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2015년 주보

대림1주일 2015년 11월 29일(다해)

모든 2 2015. 11. 29. 19:28

운산 성당(서산지구)

본당 설립:1974.11.20 / 주보성인:성 안드레아

 

+ 루카 복음. 21,25-28,34-36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해와 달과 별들에는 표징들이 나타나고, 땅에서는 바다와 거센 파도 소리에 자지러진 민족들이 공포에 휩싸일 것이다. 사람들은 세상에 닥쳐오는 것들에 대한 두려운 예감으로 까무러칠 것이다. 하늘의 세력들이 흔들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에 '사람의 아들이'권능과 큰 영광을 떨치며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사람들이 볼 것이다.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기 때문이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여, 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으로 너희 마음이 물러지는 일이 없게 조심하여라. 그리고 그날이 너희를 덫처럼 갑자기 덮치지 않게 하여라. 그날은 온 땅 위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들이닥칠 것이다.

너희는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나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

 

 

<말씀의 향기>

 

늘  깨어 기도하여라(루카 21,16)  -이경렬 베드로 가오동 주임

 

  드디어 전례력으로 새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천 년 동안 구세주를 기다리던 것을 상징하는 4개의 초에 하나씩 불을 밝히면서 우리는 성탄을 준비하게 됩니다. 대림시기는 구세주가 오시기를 기다리는 시기입니다. 첫 기다림은 구약에서 예언자들을 통해 약속했던 구세주가 오실 것을 기다리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기쁜 마음으로 예수님 성탄을 기다리는 것이고, 두 번째 기다림은 나의 종말인 죽음과 마지막 날에 심판하러 오실 심판주로서의 예수님을 조금은 두려운 마음으로 기다리는 시기입니다. 이 기다림은 무작정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준비하면서 기다리는 것입니다. 첫 기다림은 당연히 좋은 희망의 기다림이기에 예레미아 예언자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그날과 그때에 내가 다윗을 위하여 정의를 이룰 것이다."(예레 33,15)

 

  기다림에는 두 종류의 기다림이 있습니다. 좋은 소식을 기다리는 희망의 기다림과 나쁜 소식이 전해질까 봐 두려움에 떨면서 기다리는 기다림이 있습니다. 똑같은 기다림이라고 하더라도 준비된 기다림은 항상 희망의 기다림이고 준비되지 않은 채 갑작스럽게 맞는 기다림은 두려움의 기다림입니다.

 

  드디어 대학을 들어가기 위한 수능 시험이 끝났습니다. 이미 이날과 시간은 정해져 있었고 시험 범위도 정해져 있었지만 결과는 전혀 다를 것입니다. 똑같이 같은 과목을 공부하고 수능을 준비했지만 철저히 준비한 학생들은 희망으로 수능 결과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고, 준비가 부족했던 학생들은 조바심 속에 결과를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똑같이 결과를 기다리고 있지만 내가 얼마나 준비 했느냐에 따라 기다림의 형태는 이렇게 다른 것입니다.

 

  우리는 개인적인 종말인 죽음과 마지막 날에 오실 구세주의 재림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날은 날자가 언제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깨어 있으면서 준비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오늘복음에서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여, 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으로 너희 마음이 물러지는 일이 없게 하여라."라고 말하면서 항상 깨어 있을 것을 권고합니다. 마지막 날에 심판하러 오실 예수님이 오시기를 준비하며 기다리는 방법은 회개와 기도입니다. 나 중심의 삶의 방법에서 예수님 중심의 삶으로 옮겨가는 것이 회개입니다. 이 회개만이 완전한 기다림의 준비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나 믿음이 약하고 흔들리는 나약한 인간이기에 언제나 주님의 은총을 필요로 합니다. 이 은총을 받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오로지 기도입니다.

 

  대림 4주간을 지내며 다시 한번 나 자신을 돌아보면서 기도와 성사 생활을 하며 은총 속에 머문다면 금년 대림시기는 은총의 시기가 될 것이고, 그날과 시간이 갑자기 닥칠지라도 우리는 주님을 기쁜 마음으로 영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은총이 대림시기이기를 기원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칙서

「자비의 얼굴」 해설(11)

 

하느님 자비의 신비에 가장 깊게 참여하신 마리아 24항

 

  프란치스코 교황은 자비의 칙서 마지막에서 자비의 어머니를 생각한다. 어머니께서 다정한 모습으로 이성년에 우리와 함께하시어 우리가 모두 하느님의 온유함이 주는 기쁨을 다시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신 강생의 심오한 신비를 마리아만큼 꿰뚫어 본 분은 없다. 마리아의 온 생에는 사람이 되신 자비의 현존을 따라서 이루어졌다.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신 분의 어머니께서는 하느님 자비의 지성소로 들어가셨다. 어머니께서는 하느님 사람의 신비에 가장 깊게 참여하셨기 때문이다. 이처럼 프란치스코 교황은 자비의 성년에 성모 마리아의 부드럽고, 친절하며, 신선한 표정이 우리를 바라볼 수 있다고 희망한다. 그 희망은 마리아의 전 생애가 '살이 된 자비의 현존'을 모방한 것처럼 우리에게도 그러한 하느님 자비의 현존을 따름으로써 가능하다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강조한다.

 

  하느님 아드님의 어머니가 되도록 선택되신 마리아께서는 처음부터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으로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맺은 계약의 궤가 되도록 준비되셨다. 마리아께서는 당신 아드님이신 예수님과 완전한 일치를 이루어 당신 마음 안에 하느님 자비를 고이 간직하셨다. 엘리사벳의 집에 들어서시며 부르신 마리아의 노래는 "대대로"(루카 1,50)베푸시는 하느님의 자비에 바쳐진 것이다. 동정 마리아의 예언자적 말씀 안에 우리도 있다. 하느님 자비의 열매를 얻고자 성문을 지나가는 우리에게 이 노래는 위안과 도움이 될 것이다.

 

  십자가 아래에서 마리아께서 사랑의 제자인 요한사도와 함께 예수님의 입에서 나온 용서의 말씀을 직접 들으셨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이들에게 하신 최고의 용서는 하느님 자비가 어디까지 이를 수 있는지를 우리에게 보여 준다. 마리아께서는 하느님 아드님의 자비에는 그 끝이 없으며 모든 이에게 예외 없이 이른다는 것을 증언하신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오래되었지만 언제나 새로운 기도인 모후이시며 사랑이 넘친 어머니(Salve Regina)를 부르며 성모님께 다가갈 것을 제안하시며 다음과 같이 기도하신다. '성모님께서 자비로운 눈길로 우리를 끊임없이 바라보시며 우리가 당신 아드님이신 예수님의 자비의 얼굴을 바라보게 해 주시도록 기도합시다. 하느님 자비를 자신의 평생 사명으로 삼은 성인과 복자들에게도 기도합시다."

 

  특별히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하느님 자비의 위대한 사도인 마리아 파우스티나 코발스카 성녀를 기억한다. 하느님의 깊은 자비 안으로 들어오라고 부름 받은 성녀가 우리를 위해 전구하여 우리가 언제나 하느님의 용서와 사랑으로 얻는 확고한 믿음 안에서 살아가게 해 주기를 비신다. 교황은 신적 자비의 깊은 곳으로 들어가도록 불린 자비의 사도 성녀 파우스티나가 우리를 중재하고 그의 사랑을 신뢰하는 확고함과 함께 하느님의 자비에 따라 생활하는 은총을 우리 모두에게 전구한다.

 

-곽승룡 신부 /대전가톨릭대학교 총장-

 

 

 

2016년 사목교서  말씀과 성사 안에서 자비를 실천하는 해

 

  사랑하는 사제, 수도자, 형제자매님!

  자비하신 하느님께서 세상과 인간을 창조하시고 구원으로 이끌어 오신 역사는 참으로 신비롭습니다. 태초에 하느님을 닮은 모습으로 창조된 인간이  자기중심의 세상을 만들려는 욕심을 부리자 오히려 생명의 하느님을 떠나 죽음의 기로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이러한 인간을 구원으로 이끌어 가시는 하느님의 자비로운 역사입니다.

 

  그리고 하느님 자비의 역사의 역사의 정점에 계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느님과 같은 분이시지만 우리와 똑같은 인간으로 사시며 우리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신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는 사랑의 새 계명과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마태 28,19)는 선교의 사명을 남겨 주셨습니다.

 

 물질주의의 유혹이 거세고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교회가 이 사명을 충실하게 살아가기 위해서 늘 복음 정신으로 깨어 있는 자기 쇄신이 필요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전 세계적으로 큰 문제로 대두된 인류 모두의 '공동의 집'인 지구 환경과 생태계에 대한 보호와 관리를 호소하는 회칙 '찬미받으소서'를 발표하시면서 교회와 인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셨습니다. 또한 204년과 2015년 두 차례에 걸쳐 '가정'을 주제로 세계주교 대의원회의를 개최하였습니다. 우리의 삶을 변화시켜 나아가는 데에 있어서 가정이 바로 서는 것이 가장 중요한 기초입니다. 최근에 우리나라에서도 사제성소와 수도성소 지원자가 감소하고 있는 현상은 더 미룰 수 없는 큰 숙제를 던져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들은 교회가 당면하고 있는 과제들입니다. 다가올 2018년의 '대전교구 설정 70주년'을 준비하면서 교구 시노드를 열게 된 것도 주님께서 주신 복음적인 명령과 우리가 현실적으로 부딪치고 있는 이러한 문제들을 전 교구민이 함께 고민하고 시도 있게 논의하면서 교구의 앞길을 열어가자는 뜻입니다. 교구 시노드는 약 3년간에 걸쳐 진행되고 여기에 사제, 수도자, 평신도가 함께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 백성 모두가 마음을 열고 관심과 기도는 물론 적극 동참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요한복음과 함께하는 해

 

  2015년 사목교서를 내면서 2018년까지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 모두 매년 복음서 하나씩 필사하면서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삶 속에 실천하는 내적인 힘을 길러 가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2015년의 마태오복음에 이어 2016년은 '요한복음의 해'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대하는 첫째 지향은 말씀이신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인 만남입니다. 가족이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공부하고 필사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런 관계가 형성될 수 있습니다. 2016년 역시 본당 혹은 특별한 직무를 수행하고 있는 신부님들께서 사목계획에 신자들과 함께 요한복음을 공부하고 필사하는 계획을 결합시켜 주시기를 바랍니다.

 

전례와 성사

 

  작년에 2016년 사목지표를 '전례와 성사'로 이미 제시하였습니다. 우리가 믿는 대로 가톨릭 신앙은 성사생활로 표현됩니다. 그중에서도 성체성사는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기억하고 체험하는 성사로 그 중심에 있습니다. 전례규정에 따라 거행되는 장엄한 미사전례 안에서 신자들의 마음에 감동을 주는 말씀과 강론 그리고 주님과의 일치를 이루는 영성체가 온전히 이루어지는 것은 가톨릭 신앙의 가장 중요한 기초입니다.

 

  우선 신부님께서 2016년에 '미사경본 총 지침'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가져주기를 부탁드립니다. '총 지침'은 단순히 미사를 드리는 행위에 대한 획일적 규정이 아닙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결정에 따라 개정된 미사경본 총지침은 과거의 규정을 단순화하여 미사성제를 거룩하게 지낼 수 있는 최소한의 교정을 제시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거룩한 전례 거행을 위해서 '총 지침'과 함께 전례 정신을 신부님 개인적으로 그리고 지구에서 함께 연구하는 계획을 가져주시기를 희망합니다. 그래서 기계적인 반복이 아니라 하느님 백성이 믿음과 희망과 사랑으로 의식적으로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가운데 거룩함을 완성해 가는 미사가 되도록 이끌어 주시길 바랍니다.

 

  미사에 참여하는 모든 신자들에게도 미사 준비에 대한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는 미사성제 안에서 말씀과 성체 두 가지 양식을 받아먹습니다. 미사에 오시기 전에 먼저 그날의 독서와 복음을 읽어 마음에 담고, 미사 중에 선포되는 그 말씀을 고요한 마음으로 잘 받아들인다면 말씀의 큰 은총과 더불어 성체를 잘 받아 모시는 준비도 될 것입니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매일 미사에 참여하기 어려운 신자들도 매일 그날 미사의 독서와 복음 말씀을 주님께서 주시는 일용할 양식으로 삼으시기를 바랍니다. 2016년이 모든 신자들이 이러한 좋은 습관을 갖고 주님의 은총에 더 가까이 가는 시작이 되기를 바랍니다.

 

 자비의 희년과 관련하여 고해성사에 대해서도, 말씀을 드립니다. 교황님께서 선포하신 자비의 희년은 2015년 12월 8일(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부터 2016년 11월 20일(그리스도 왕 대축일)까지 이어집니다. 희년은 모든 것을 주님의 뜻에 맞게 온전히 회복시켜주시는 은혜로운 해로서(레위 25,8-22 : 루카 4,16-22 참조) 그 중심에는 화해와 용서가 있습니다. 이에 맞추어 사목 일선에 계신 신부님들께서도 자비로운 아버지의 모습을 지닐 뿐만 아니라 신자들이 화해의 고해성사를 보다 잘 받을 수 있도록 사목적인 계획과 배려에 힘써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사랑하는 사제, 수도자, 형제자매님!

  '대전교구 설정 70주년'이 되는 2018년까지 이어지는 교구 시노드가 성령의 인도하심 그리고 성모님과 순교자들의 전구에 힘입어 하느님 뜻에 맞는 참된 쇄신의 시작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모든 사제들과 수도자와 형제자매님들이 기도와 함께 한마음으로 이루어가기를 당부드립니다. 2016년에 우리 손으로 요한복음을 필사하는 일이 주님과의 인격적인 친교는 물론 시노드를 주님 뜻 안에 이루어가는 기도의 힘이 도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다시 한번 교구의 신부님들께서 '미사경본 총 지침'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갖고, 우리 신앙의 중심인 성체성사를 교회의 전승과 가르침을 따라 거룩하게 거행하는 데에 힘써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교황님께서 선포하신 '자비의 희년'은 많은 이들에게 큰 은총의 기회가 될 것입니다. 신부님들께서 사목현장에서 신자들이 희년의 은총을 받으며, 삶 속에서 서로 화해와 용서를 체험하는 시기가 될 수 있도록 사목계획에 잘 반영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구의 주보이신 '루르드의 성모 마리아'와 우리의 장한 순교자님들의 전구를 청합시다.

  고맙습니다.

 

천주강생 2015년 11월 29일 대림 첫 주일에

+ 유 라자로

천주교 대전교구 교구장 주교 유 흥 식 라자로

 

 

 

 

12월의 촛불기도 - 이해인 수녀님

 

향기 나는 소나무를 엮어

둥근 관을 만들고

4개의 초를 준비하는 12월

사랑으로 오시는 예수님을 기다리며

우리 함께 촛불을 밝혀야지요?

 

그리운 벗님

해마다 12월 한 달은 4주 동안

4개의 촛불을 차례로 켜고,

날마다 새롭게 기다림을 배우는

한 자루의 촛불이 되어 기도합니다.

 

첫 번째는 감사의 촛불을 켭니다.

올 한 해 동안 받은 모든 은혜에 대해서

아직 이렇게 살아 있음에 대해서

감사를 드립니다.

 

기뻤던 일, 슬펐던 일, 억울했던 일,

노여웠던 일들을 힘들었지만 모두

받아들이고 모두 견뎌왔음을 그리고

이젠 모든 것을 오히려 '유익한 체험'으로

다시 알아듣게 됨을 감사드리면서

촛불 속에 환히 웃는 저를 봅니다.

 

두 번째는 참회의 촛불을 켭니다.

말로만 용서하고 마음으로 용서 못한 적이

많은 저의 옹졸함을 부끄러워합니다.

 

말로만 기도하고 마음은 다른 곳을 헤매거나

일상의 삶 자체를 기도로 승화시키지 못한

저의 게으름과 불충실을 부끄러워합니다.

늘상 섬김과 나눔의 삶을 부르짖으면서도

하찮은 일에서조차 고집을 꺽지 않으며

교만하고 이기적으로 행동했던 날들을

뉘우치고 뉘우치면서

촛불 속에 녹아 흐르는

저의 눈물을 봅니다.

 

세 번째는 평화의 촛불을 켭니다.

세계의 평화, 나라의 평화,

가정의 평화를 기원하면서 촛불을 켜면

이 세상 사람들이 가까운 촛불로 펄럭입니다.

 

사소한 일에서도 양보하는 법을 배우고

선과 온유함으로 사람을 대하는

평화의 길이 되겠다고 다짐하면서

촛불 속에 빛을 내는

저의 단단한 꿈을 봅니다.

 

네 번째는 희망의 촛불을 켭니다.

한 해가 왜 이리 빠를까?

한숨을 쉬다가 또 새로운 한 해가 오네

반가워하면서 다시 시작하는

셀렘으로 희망의 노래를

힘찬 목소리로 부르렵니다.

 

겸손히 불러야만 오는 희망

꾸준히 갈고 닦아야만 선물이 되는 희망을

더 깊이 끌어안으며

촛불 속에 춤추는 저를 봅니다.

 

사랑하는 벗님

성서를 읽으며 기도하고 싶을 때

좋은 책을 읽거나 쓸 때

마음을 가다듬고 촛불을 켜세요.

하느님과 이웃에게 깊이 감사하고 싶은데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을 때

촛불을 켜고 기도하세요.

마음이 불안하고 답답하고 힘들 때

촛불을 켜고 기도하세요,

 

촛불 속으로 열리는 빛을 따라

변함없이 따스한 우정을 나누며

또 한 해를 보낸 길에서

또 한 해의 길을 달려갈 준비를

우리 함께 해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