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2015년 주보

대림 제3주일 자선주일 2015년 12월 13일(다해)

모든 2 2015. 12. 13. 16:45

규암 성당(논산지구)

본당 설립:1955.9.21/주보성인:성요셉

 

+ 루카복음. 3.10-18

 

<저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때에 군중이 요한에게 물었다. "그러면 저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요한이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옷을 두 벌 가진 사람은 못 가진 이에게 나누어 주어라, 먹을 것을 가진 사람도 그렇게 하여라."

세리들도 세례를 받으러 와서 그에게, "스승님, 저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자, 요한은 그들에게 "정해진 것보다 더 요구하지 마라."

하고 일렀다. 군사들도 그에게 "저희는 또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고 묻자.

요한은 그들에게 "아무도 강탈하거나 갈취하지 말고 너희 봉급으로 만족하여라."하고 일렀다.

백성은 기대에 차 있었으므로, 모두 마음속으로 요한이 메시아가 아닐까 하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요한은 모든 사람에게 말하였다.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러나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 오신다.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다.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

또 손에 키를 드시고 당신의 타작마당을 깨끗이 치우시어, 알곡은 당신의 곡간에 모아들이시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워 버리실 것이다."

요한은 그 밖에도 여러 가지로 권고하면서 백성에게 기쁜 소식을 저하였다.

 

<말씀의 향기>

 

참된 자선 - 지경준 시몬 가수원 주임

 

  자선은 베푸는 생활입니다. 남모르게 베풀 때 진정한 의미의 자선이 됩니다. 요한은 '먹을 것'과 '입을 것'을 나누라고 합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에 대한 기본적인 가르침입니다. 그런데도 '베풀라고'하면 너무나 자연스럽게 물질을 생각합니다. 있어야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많이 가졌다고 베풀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언제나 마음이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경우에도 물질이 자선을 좌우해서는 안됩니다. 언제라도 중심은 마음입니다.

 

  어떤 가정주부가 남편의 수입이 적어서 동네에 구멍가게를 내고 정직하고 친절하게 물건을 팔았습니다. 그래서 점점 손님이 많아지고 물건이 딸리게 되어 이제는 트럭으로 들여놓고 하루 종일 정신없이 팔아야 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하루는 남편이 퇴근하여 바쁘게 물건을 팔고 있는 부인을 보고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우리 동네 다른 가게들은 이제 손님이 거의 없대, 건너편 가게는 이제 곧 문을 닫아야 한다는군, " 이 말을 듣고 부인은 물건을 트럭으로 주문하지 않았고, 파는 물건도 줄여서 손님들이 찾아오면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물건은 우리 집에 없고 건너편 가게에 가시면 살 수 있습니다." 그 후 시간이 많아져서 부인은 자기가 좋아하던 책도 읽고 글도 쓰기 시작했습니다. 이 부인이 '빙점'이라는 유명한 소설을 남긴 소설가 미우라입니다.

 

  여유 있게 사는 사람을 부러워하기 전에 내가 사는 모습을 돌아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너무 많은 욕심이 나를 바쁘게 하는 것은 아닌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위대한 사람이 되라고 하지 않고 오히려 '작은 자가 되라.' '꼴찌가 되라.' '어린이가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왜? 이들은 '더'라는 욕심에 물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지금 우리는 '더 많이'라는 욕구에 병들어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 병을 치유하는 약은 '희생'과 '자선'입니다.

 

  바오로 사도가 Roma교회를 위하여 모금운동을 벌이면서 코린토 교회의 신자들에게 호소한 설교를 보면 이러한 희생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적게 뿌리는 이는 적게 거두어들이고, 많이 뿌리는 이는 많이 거두어들입니다. 저마다 마음에 작성한 대로 해야지, 마지못해 하거나 억지로 해서는 안됩니다. 하느님께서는 기쁘게 주는 이를 사랑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에게 모든 은총을 넘치게 주실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은 언제나 모든 면에서 모든 것을 넉넉히 가져 온갖 선행을 넘치도록 할 수 있게 됩니다."(2 코린토 9,6-8)

 

  이웃을 위해 자신의 것을 바치는 행동에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합니다. 이제 예수님을 봅시다. 죽음을 앞둔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 때 취하신 행동을 보면 놀랍기만 합니다. 숙연한 그 시간에 예수님은 빵을 들어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다음 제자들에게 떼어주시며 말씀하십니다. "받아먹어라. 이것은 내 몸이다. 모두 이 잔을 마셔라. 내 계약의 피다." 당신 몸을 내놓으며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것입니다. 이제 제자들은 그분의 몸을 먹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당신에게 먹을 것이 주어졌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을 먹을 것으로 내어 줄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합니다. 당신이 살아남게 되어서가 아니라 남을 위해 죽을 수 있게 된 것에, 고통을 피할 수 있어서가 아니라 남을 위하여 고통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에, 섬김을 받을 수 있어서가 아니라 그들의 발을 씻어주게 된 것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도움을 받아서가 아니라 도울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자비의 희년'안내(상)

 

하느님 아버지처럼 자비로이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2015년 3월 13일, 베드로의 후계자로 선출되신 지 2주년을 기념하는 날에 특별 성년(聖年)을 반포하셨습니다. 이는 평범한 기념일이 아니라, 하느님 아버지의 속성 가운데 구약과 신약 안에서 가장 높이 찬미되는 주님의 자비를 기념하는 첫 번째 성년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직무에서 자비가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는 것은 회칙 「복음의 기쁨」에서 교황께서 하신 말씀을 보면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교회는 "하느님 아버지의 자비와 그 무한한 힘을 경험하였기에 자비를 베풀려는 끝없는 열망을 지니고 있습니다."(「복음의 기쁨」,24항)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자비를 신학적으로 충실하게 종합한 「자비의 얼굴」을 통하여 이 희년의 길과 방향 자체의 개요를 보여주십니다. 자비는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하느님의 얼굴, 나자렛 예수님께서 날마다 구체적으로 하신 일, 교회의 신뢰성에 대한 확실한 표현 방식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 각자, 모든 곳에서 모든 방식으로 드러나는 하느님의 표징들에 충실하도록 부르심을 받았음을 의미합니다. 교황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교회는 용서와 헌신으로 이끄는 이러한 사랑의 봉사자요 전달자가 됩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있는 곳 어디에서나 하느님 아버지의 자비가 드러나야 합니다. 우리 본당과 공동체, 단체와 운동, 곧 그리스도인들이 있는 곳에서는 누구든지 자비의 안식처를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자비의 얼굴」,12항)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자비의 특별 희년'이 바티칸에서 뿐만 아니라 모든 지역 교회에서도 일치와 사랑의 표지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십니다. "특별히 주님의 자비에 주의를 기울여 우리 자신이 자비를 베푸시는 아버지의 뚜렷한 표지가 되라는"(칙서 「자비의 얼굴」 3항) 요청에 대하여 우리 교구 안에서도 각 본당과 우리의 생활에서 구체적인 응답이 따라야 합니다.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인 12월 8일(화), 바티칸 베드로 대성전에서 '자비의 문'이 열리는 것을 시작으로 '자비의 특별 희년'이 성대하게 시작됩니다. 우리 교구에서도 이날 주교좌 대흥동성당에서 '자비의 희년 개막과 교구 시노드 선포 미사'가 거행됩니다. 이어 대림 3주일인 12월 13일, 전 세계의 개별 교회에서는 주교좌성당과 교구장 주교가 지정한 성당과 성지에서 자비의 문이 열리며, 우리 교구는 이날 주교좌 대흥동성당, 갈매못성지, 솔뫼성지, 해미성지에서 자비의 문 개문 미사가 거행됩니다.

 

  바티칸 베드로 대성전과 세계의 모든 개별 교회에서 열리는 자비의 문은 세상 모든 곳의 신자들이 하느님 아버지의 자비를 충만하게 경험할 수 있도록  모든 교구에서 이 특별 성년 동안 열어두라고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부탁하신 특별한 성문(聖門)입니다. 희년의 성문은 진실로 하느님의 자비를 원하고 청하는 ㅏ람들에게 열려 있는 하느님의 자비를 뜻합니다. 구세주이시고 목자이시며 스승이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 아버지께로 나아갈 수 있는 것처럼,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기도하며 성문이 열린 곳을 순례하는 신자들은 희년의 전대사 은총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의현 신부/성소국장 겸 교구 자비의 희년 담당-

 

 

<이충무의 행복 나침반(89)>

 

짜장면과 통닭

 

  짜장면이나 치킨을 먹을 때까지 저는 슬그머니 웃음이 납니다. 짜장면이 어쩌다 먹는 특별 외식 메뉴였던 어린 시절,

어머님은 부부싸움 하실 때마다 홧김에 저와 동생을 중국음식점이나 통닭집에 데려가셨기 때문입니다.

 

   평소 외식은 엄두조차 내지 않으셨던 알뜰함의 여왕이신 어머님... 그런 분이 짜장면에 탕수육까지 주문하시고,

유리창 너머 그림의 떡이었던 통닭을 한 마리도 아니고 두 마리씩이나 시키시다니...

 

   그 당시 짜장면과 통닭에 눈이 멀어 어머님 심정이 어떠했을지는 전혀 헤아리지 못한 채, 저와 동생은 최고의 만찬을 만끽하곤 했었습니다. 그러면서 앞으로 종종 엄마와 아빠가 다투시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철없는 상상마저 했었죠.

 

   얼마의 세월이 흐르고 짜장면 은 이제 더 이상 특별한 외식거리가 아니라 누구나 손쉽게 먹을 수 있는 먹거리로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습니다. 통닭 또한 수없이 많은 종류의 치킨 메뉴로 거듭나며 사람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제게 짜장면과 치킨은 흔한 음식이 아니라 그 맛이 더 깊어지는 나만의 특식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철이 들기 시작하자 비로소 그 맛이 살아나기 시작하며 제 마음까지 울리는 음식이 될 것입니다.

 

   화가 나신 순간에도 그 화를 당신 자신이 아니라, 자식에게 도움이 되는 방법으로 풀어내려고 하셨던 어머니... 그 마음이 짜장면을 먹을 때마다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추억은 씁쓸하면서도 달콤한 맛을 내는 오묘한 조미료가 되어 제 짜장면을 특별하게 만들어 줍니다.

 

   겨울이 오면 중국음식점 한가운데 난로가 보이고, 그 난로 위에서 끓고 있는 보리차 주전자 소리가 들리고, 허겁지겁 짜장면을 먹고 있는 저와 동생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따뜻한 눈길이 느껴집니다.

 

   음식은 음식의 맛으로만 기억되는 것 같지 않습니다. 음식을 사이에 두고 어떤 것이 오고 갔는지에 의해 기억될 뿐입니다. 혼자 간편하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많아지고 있는 오늘, 우리 마음에는 어떤 맛이 남아 있을까요?

 

-이충무 바오로/극작가, 건양대학교 교수-

 

 

 

매일

눈뜨는 아침부터

잠들은 꿈에까지

사랑과 배려가

온 세상

가득하기를

기도합니다.

 

글. 그림 이순구(베네딕도)

 

 

 

자비의 특별 희년 선포 칙서"자비의 얼굴(Misericordiae Vultus)"

 

하느님의 종들의 종

로마 주교 프란치스코가

이 편지를 읽는 모든 이에게

은총과 자비와 평화를 빕니다.

 

1.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 아버지의 자비의 얼굴이십니다. 그리스도 신앙의 신비는 이 말로 잘 요약되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자비는 나자렛 예수님 안에서 생생하게 드러나 그 정점에 이르렀습니다. "자비가 풍성하신"(에페 2,4) 아버지께서는 모세에게 "자비하고 너그러운 하느님, 분노에 더디고 자애와 진실이 충만한 하느님"(탈출 34,6 참조)이라고 당신 이름을 알려 주시고 역사를 통하여 여러 가지 방법으로 당신의 거룩하신 본성을 끊임없이 보여 주십니다. 구원 계획에 따라 모든 것을 마련하시고 "때가 차자"(갈라 4,4) 아버지께서는 당신 아드님을 보내시어 동정 마리아에게 태어나게 하시고 우리에게 완전한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뵌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입니다.(요한 14,9 참조) 나자렛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과 행동, 당신의 온 인격으로 하느님의 자비를 드러내십니다. 1)

 

2. 우리는 언제나 자비의 신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 신비는 기쁨과 고요와 평화의 샘입니다. 여기에 우리 구원이 달려 있습니다. 자비라는 말은 거룩한 삼위일체 하느님의 신비를 보여 줍니다. 자비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만나러 오시는 궁극적인 최고의 행위입니다. 자비는 인생길에서 만나는 형제자매를 진실한 눈으로 바라보는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자리 잡는 근본 법칙입니다. 자비는 하느님과 사람을 이어 주는 길이 되어 우리가 죄인임에도 영원히 사랑받으리라는 희망을 품게 해 줍니다.

 

3. 우리는 특별히 주님의 자비에 주의를 기울여 우리 자신이 자비를 베푸시는 아버지의 뚜렷한 표지가 되도록 부름 받을 때가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저는 자비의 특별 희년을 선포합니다. 이 특별 희년에 신자들이 더욱 힘차고 효과적인 증언을 하여 교회에 은총의 때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