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성당(홍성지구)
본당 설립:1027.9. / 주보성인:예수 성심
+ 요한복음. 18,33-37
<내가 임금이라고 네가 말하고 있다.>
그때에 빌라도가 예수님께 "당신이 유다인들의 임금이오?"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는 "그것은 네 생각으로 하는 말이냐?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나에 관하여 너에게 말해 준 것이냐?"하고 되물으셨다.
"나야 유다인이 아니잖소? 당신의 동족과 수석 사제들이 무슨 일을 저질렀소?"하고 빌라도가 다시 물었다.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다면, 내 신하들이 싸워 내가 유다인들에게 넘어가지 않게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하지 않는다."
빌라도가"아무튼 당신이 임금이라는 말 아니오?"하고 묻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임금이라고 네가 말하고 있다. 나는 진리를 증언하려고 태어났으며, 진리를 증언하려고 세상에 왔다.
진리에 속한 사람은 누구나 내 목소리를 듣는다."
<말씀의 향기>
모습은 농부이지만 음성은 내 주님이십니다. - 민병섭 바오로 법동 주임
오늘은 연준 제34주일이자 그리스도 왕 대축일이다. 교황 비오 11 세께서는 1925년에 연중 시기의 마지막 주일을 그리스도 왕 대축일로 제정하셨고, 우리로 하여금 일 년을 마무리하면서 예수님이 왕이시을 다시 한번 더 크게 외치며 우리들의 신앙과 믿음을 고백하도록 한다.
그리스도는 사랑의 왕이시다.
그리스도는 하느님과 본질이 같은 분이시지만 바로 우리를 위하여 당신의 모든 것을 버리시고 우리와 같은 사람이 되심으로 당신의 위대한 사랑을 드러내셨으며, 우리와 똑같은 생활을 하시고 나중에는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써 당신의 사랑이 말뿐만이 아님을 우리들에게 드러내 보이셨다. 진정 그분은 사랑의 왕이시며, 우리들로 하여금 참된 사랑을 간직하여 그분 나라의 시민이 되도록 초대하시는 분이시다.
그리스도는 진리의 왕이시다.
그리스도의 왕국에는 결코 속임수가 없다. 우리들이 진실한 사람이 될 때만이 우리들은 주님을 알 수가 있다. 왜냐하면 주님은 진리를 증거하러 오셨으며 진리 편에 선 사람만이 그분을 알아볼 수가 있기 때문이다. 오늘의 우리도 빌라도처럼 "진리가 무엇이냐?"하고 반문하고 있지만, 그 진리를 찾으려고 하지는 않는 것 같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 그러면 너희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8,31)라고 말씀하셨다. 이처럼 주님께서 말씀하신 진리란 바로 주님 자신을 말하고 있으며, 우리가 주님을 알게 되는 곧, 진리를 알 수 있는 방법은 바로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생활하는 것이다.
사랑과 진실이 결핍된 이 세상에 그리스도의 왕국을 건설하기 위하여 제일 필요한 것은 주님의 음성을 알아듣고 그분을 따르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교회는 이번 주간을 성서주간으로 정하여 주님이 음성을 듣도록 우리를 초대하고 있다.
옛날 러시아의 위대하고 선한 황제가 어느 날 밤 농부의 차림을 하고 어느 주막집 문을 두드렸다. 주막 주인은 어떤 시골 '농부"가 와서 방을 구하는 줄 알고 '오늘 밤 이곳은 귀족들이 많이 묵고 계시기 때문에 방이 없으니 다른 곳에 가서 방을 구해 보시죠"하고 거절하고 있는데 마침 한 공작이 자기 왕의 말씨를 알아차리고 문밖으로 뛰쳐나오며 왕을 맞아들였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차림이어야 농부의 차림일지 모르지만 음성은 나의 주님, 나의 왕의 음성이라오." 하는 것이었다.
우리도 주님의 말씀이 담긴 성경과 친숙해져 사랑과 진리의 왕이신 주님을 영접하며,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가 우리의 주님이며 우리의 왕이십니다."라고 외칠 수 있는 한 주간이 되도록 하자.
프란치스코 교황 칙서
「자비의 얼굴」 해설(10)
사랑이 꽃이라면 자비는 열매입니다. 23항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하느님의 자비를 거행하는 희년이 다른 숭고한 종교 전승들과 함께 만나고 서로 돌보는 것을 신뢰한다. 서로 이해하고 알 수 있는 열렬한 대화로 서로의 문들이 열리고, 경멸하는 모든 형태의 닫힌 마음을 제거할 것이며, 폭력과 차별의 모든 형태를 배격할 수 있다고 바란다.
모든 종교의 가르침은 사랑, 자비라고 말할 수 있다. 다만 그것을 실천하는 방법이 다르다. 만일 하느님의 사랑이 꽃이라면 하느님의 자비는 열매이다. 공자도 수제자인 자공이 인(仁)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기소불욕己所不慾, 물시어인 勿施於人"이라고 말하였다. 이것은 "자신이 바라지 않는 것을 남에게 행하지 말라"는 뜻으로 논어 안연편에 나오는 말이다. 중국의 최고 지도자 시진핑의 신조어이기도 하다.
기원후 2세기 랍비 유대교 경전 미쉬나를 한마디로 요약하라는 이방인의 질문에 랍비 힐렐은 "당신이 싫어하는 일을 이웃에게 하지 마시오. 이것이 토라의 전부이며 나머지는 그저 각주일 뿐입니다. 가서 이것을 공부하고 실천하십이오."라고 말했다. 자신이 당하기 싫어하는 일을 남에게 하지 않겠다는 마음이 토라의 전부이며 핵심이다.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나, 토라와 논어의 말은 배려와 이해가 그 가르침의 중심에 있다. 그런데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황금률을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마태 7,12 :루카 6,31) '하지 말라'는 부정문 대신 예수님께서는 '하라'는 긍정문으로 사랑과 자비의 실천을 요청하신다.
이와 같이 자비는 교회 밖에서도 그 힘을 발휘한다. 자비는 우리를 유대교와 이슬람교와 관계를 맺게 해 준다. 이 두 종교는 자비를 하느님의 가장 중요한 속성으로 여긴다. 이스라엘은 이 계시를 처음으로 받았다. 이 계시는 온 인류와 나누어야 하는 헤아릴 수 없는 풍요의 원천으로 역사 안에 남아 있다. 잘 알려진 것처럼 구약 성경의 내용은 자비로 가득 차 있다. 주님께서 당신의 백성이 가장 어려운 시기에 처해 있을 때 그들을 위하여 하신 활동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이슬람교는 창조주를 자비로우시고 인자하신 분이라고 부른다. 무슬림들은 그들을 지지하여 준다고 느끼며 이 호칭으로 자주 기도한다. 무슬림들도 하느님 자비의 문이 늘 열려 있기에 그 누구도 그 자비에 한계를 둘 수 없다고 믿는다.
교황님은 이 자비의 희면에 이 종교들과 또한 다른 고귀한 종교 전통과의 만남이 촉진될 것이라고 믿는다. 이 희년에 우리가 더 활발한 대화를 나누어 서로를 더욱 잘 알고 이해하게 되기를 바란다. 이 희년에 모두 닫힌 마음과 서로 무시하는 마음을 없애고 모든 폭력과 차별을 몰아내기를 바란다.
-곽승룡 신부/대전가톨릭대학교 총장-
<이충무의 행복 나침반 (86)>
효자의 기준
며칠 전 제가 존경하고 따르는 선배 노교수님과 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식사 중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가 화제에 올랐습니다. 요즘 언론을 통해서 유산 상속 때문에 벌어진 심각한 사회적 문제들을 자주 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말씀 중에 제게 이런 질문을 하셨습니다.
"효자와 불효자를 구분하는 기준이 무엇인지 아세요?"
선뜻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라 잠시 망설이다 저는 너무도 뻔한 답을 하고 말았습니다. "부모님께 잘해 드리면 효자고, 섭섭하게 해 드리면 불효자 아닐까요?"
그러자 교수님께서는 빙그레 웃으시면서 참으로 명쾌한 효자의 기준을 알려 주셨습니다. "부모님께 열 번 잘하다 한 번 잘못하면, 그 한 번의 잘못으로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은 효자, 부모님께 열 번 잘못하다 한 번 잘하면, 두고두고 생색내기에 바쁜 사람은 불효자"
가슴이 뜨끔해지는 말씀에 저도 모르게 얼굴이 빨개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부모님께 못 해 드리는 것 하나에라도 가슴 아파하기보다, 부모님께 해 드린 것 하나에만 만족하면서 스스로 효자라고 착각한 제 자신이 한없이 작아 보였기 때문이었죠.
부모님의 든든한 사랑에 기대어 성장하면서 늘어난 것은 몸무게만이 아니었습니다. 자신만 생각하는 이기심 또한 제 마음속에서 자라나고 있었습니다. 늘어난 뱃살이 문제가 아니라, 늘어난 자만심이 문제였던 것입니다.
요즘 '금수저''흙수저'라는 말이 유행입니다. 이미 부모님으로부터 '생명'이라는 최고의 '금'을 받았는데 우리에게 또 얼마만큼의 '금'이 필요하다고 '금' 타령일까요? 부모의 사랑보다 재산의 크기가 중요해지는 우리 사회의 민낯을 보는 것 같아 쓸쓸해집니다.
날씨가 추워지면 부모님께 보일러라도 놓아 드리자는 광고가 생각납니다. 부모님이 진정 원하는 따뜻함은 자식이 지펴주는 식지 않는 배려와 사랑임을 기억하는 겨울을 준비해 보렵니다.
-이충무 바오로/극작가, 건양대학교 교수-
진리를 증언하고
진리에 속한
예수 그리스도님
우리 곁에 늘
함께하소서.
글, 그림 이순구(베네딕도)
<함께 하는 이야기 마당>
한 알씩, 한 알씩 익어가는 나의 신앙생활
사색과 결실의 계절을 보내고 있다.
오늘도 우리 부부는 하느님의 사랑으로 다정하게 두 손을 잡고 산책길에 나섰다. 많은 차량과 소음을 피해 산속 전원주택이 있는 오솔길을 택했다. 길가에는 토마토 밭도 있고 호박이 크고 누렇게 익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잠시 사색에 잠겨 본다.
어느새 나의 시선은 해가 지는 서산 너머로 향하고 있었다. 나의 인생은 서산에 지는 태양처럼 황혼길에 있지만, 그러나 나의 신앙생활은 신혼생활이 아닌가! 이미 세례성사를 받았고 지난 9월 13일에는 견진성사를 받았기 때문이다.
견진성사는 유흥식 라자로 주교님께 받았다. 견진성사를 받던 날 성당 안 경건한 분위기 속에서 성령의 도움으로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차분해지면서 무엇이 뛰쳐나가는 듯한 짜릿한 느낌을 받았다.
그동안 몸 안에 잔재한 마귀가 모두 놀라 다 떨어져 달아났나보다. 그래서 마음을 비울 수 있었고 번뇌도 모두 사라져 갔다. 주교님의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강론을 들으면서 나의 마음은 더욱 새로운 결심과 다짐으로 굳어만 가고 있었다. 하느님의 가르침을 평생 어김없이 생활화해야 한다고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다짐을 했다.
수시로 성령과 하나 되어 주님의 현존을 체험하고 느끼면서 밤이 깊은 줄 모르고 매일 잊지 않고 밭에 묻힌 보물책을 탐독하면서 나의 신앙심은 점점 익어만 가고 있다.
첫째 사랑과 기쁨, 평화로 하느님을 향한 대신적 열매를 지향하고, 둘째 인내, 친절, 선행으로 다른 사람을 향한 대인적 열매를 맺을 것이며, 셋째 진실, 온유, 절제로써 자신을 향한 대아적 열매를 맺기 위함이다. 항상 주님께 머물러 있어 주님께 구원을 간청하면서 내일의 영원한 생명을 위하여 주님의 품으로 오늘도 내일도 변함없이 달려가고 싶어라.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정정로 라파엘/하기동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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