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2015년 주보

연중 제33주일 평신도 주일 2015년 11월 15일 (나해)

모든 2 2015. 11. 15. 12:51

천안 불당동 성당(천안 서부지구)

본당 설립:2005.1.25 / 주보성인:성가정

 

+ 마르코 복음. 13,24-32

 

<사람의 아들은 자기가 선택한 이들을 사방에서 모을 것이다.>

 

"그 무렵 큰 환난에 뒤이어 해는 어두워지고, 달은 빛을 내지 않으며, 별들은 하늘에서 떨어지고, 하늘의 세력들은 흔들릴 것이다.

그때에 '사람의 아들이'큰 권능과 영광을 떨치며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사람들이 볼 것이다. 그때에 사람의 아들은 천사들을 보내어,

자기가 선택한 이들을 땅끝에서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모을 것이다.

너희는 무화과나무를 보고 그 비유를 깨달아라. 어느덧 가지가 부드러워지고 잎이 돋으면 여름이 가까이 온 줄 알게 된다.

이와 같이 너희도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사람의 아들이 문 가까이 온 줄 알아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가 지나기 전에 이 모든 일이 일어날 것이다. 하늘과 땅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신다."

 

 

<말씀의 향기>

 

믿음을 찾고 듣고 실천하는 삶을 삽시다 - 박원규 T. 아퀴나스 대전교구 평신도 사도직 단체협의회 회장

 

  사랑하고 존경하는 형제자매님, 평화를 빕니다.

 

  오늘 제48회 평신도 주일을 맞이하여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하느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드립니다. 평신도 주일은 평신도가 '거룩한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확인하고 우리가 받은 하느님 사랑의 부르심에 대한 응답으로 각자가 지닌 소명에 합당한 삶을 살아갈 것을 다짐하는 뜻깊은 날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작년에 한국 교회를 '평신도들에게서 시작되어 여러 세대에 걸쳐 끊임없는 노고로 크게 자라난 매우 비범한 전통의 상속자'라고 칭송하시고, 우리에게 자랑스러운 하느님 백성이 된 행복과 기쁨을 느끼게 해 주셨습니다. 선조들의 신앙 전통을 이어받은 우리가 신앙의 긍지와 기쁨, 행복이 길이 이어지기를 희망합니다.

 

  특별히 우리 대전교구는 2018년에 교구 설정 70주년을 맞이하게 됩니다. 주보이신 루르드의 성모님과 순교성인들의 전구로 교구 설정 70주년을 정성껏 맞이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이를 휘해 다음의 세 가지를 함께 나눠봅니다.

 

  1. '말씀이신 그리스도'와 친교를 이루도록  합시다. 존경 하올 교구장 주교님은 올해 사목지표를 '말씀이신 그리스도와 친교를 이루는 해'로 삼으시고, 우리가 하느님 말씀을 마음에 깊이 새기고 살아가기를 바라셨습니다. 올 한 해 저는 우리 교구 곳곳에서 많은 신자들이 하느님 말씀을 읽고, 공부하며, 써 나가는 아름다운 일들을 보았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하느님 말씀 안에서 우리에게 뜻깊은 한 해였습니다. 하느님은 말씀으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듣는 우리에게 친히 말씀을 건네시고, 실천하는 사람에게 당신 자신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하느님 말씀으로 하느님과 더욱 친해지시길 희망합니다.

 

  2. '자비의 특별 희년'을 기쁘게 맞이합시다.

  우리는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선포하신 자비의 특별 희년을 2015년 12월 8일(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부터 2016년 11월 20일(그리스도 왕 대축일)까지 지낼 것입니다. 자비의 희년은 우리 시대에 절실히 요구되는 하느님 자비의 의미와 중요성을 깨닫고 실천하는데 더욱 복된 해가 될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먼저 진실한 참회와 화해로 하느님의 자비를 체험하고 자비로우신 하느님을 닮아 이웃에게 자비를 실천하며 세상에 기쁜 소식을 전합시다.

 

  3. '한생명운동'에 적극적인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천주교 대전교구 평신도 사도직 단체협의회에서 주관하는 '카리타스 한생명운동'은 생명의 복음으로 이 나라에 올바른 생명존중문화를 이룩하는 운동입니다. 하느님은 모든 생명의 주인이십니다. 모든 생명은 하느님께서 보내주신 또 다른 생명의 도움과 헌신을 받으며 '더불어, 함께 ' 살아갑니다. 따라서 모든 생명이 유일하며, 또한 하느님의 다양한 예술작품으로 바라볼 수 있다면, 이 세상이 더욱 하느님 나라에 가까워질 것입니다. 우리 모두 모든 인간 생명의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존중하는 '한생명운동'에 관심과 참여로 하느님 자비를 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칙서

「자비의 얼굴」 해설(9)

 

자비의 성년에는 대사도 수여됩니다. 22장

 

  희년에는 대사도 수여된다. 자비의 성년에 대사는 훨씬 더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죄인들에게 한없이 자비를 베풀어 주신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하느님께서 모든 인간의 죄를 없애 주시는 당신의 사랑과 그 사랑의 힘을 더욱 분명히 드러내 보이신다. 우리는 파스카의 신비와 교회의 중개로 하느님과 화해할 수 있다.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용서하여 주실 준비가 되어 계시고 또한 늘 새롭고 놀라운 방법으로 끊임없이 용서하여 주신다 그렇지만 우리는 모두 죄를 저지른다. 우리는 완전하게 되라는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또한 죄의 무게를 무겁게 느낀다. "그러므로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태 5,48)

 

 우리는 우리를 변화시키는 은총의 힘을 느끼지만, 우리에게 영향을 주는 죄의 힘도 느끼고 있다. 우리는 용서를 받았지만 우리가 지은 죄의 결과로 그에 맞갖은 삶을 살지 못하고 있다. 고해성사로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며 그 죄를 완전히 없애 주신다. 그런데 죄는 우리의 행동과 생각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러나 자비의 하느님께서는 훨씬 더 강하시다. 그 자비가 하느님 아버지의 대사가 된다.  하느님의 용서는 한계를 알지 못한다. 곧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를 통하여 이미 용서받은 죄인에게 다가가시어 죄의 결과로 남은 모든 것에서 그를 해방시켜 주시어, 다시는 죄에 빠지지 않고 자비롭게 행동하고 사랑을 키울 수 있게 해 주신다.

 

  교회는 성인의 통공(通功)으로 살아간다. 통공(commnunio sanctorum)은 하늘의 교회, 땅의 교회, 연옥의 교회의 모든 구성원이 공로(공로)를 서로 나누고 공유함을 뜻한다. 곧 삼중 교회 공동체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결합하여 오직 하나의 교회를 이루면서 자신의 선과 공로를 나누고, 기도 안에서 영적 도움을 주고받음을 말한다. 성찬례에서 하느님께서 주시는 은총인 이 통공은 우리를 성인들과 복자들과 묶어주는 영적인 결합을 이루게 한다. "나는 인장을 받은 이들의 수가 십사만 사천 명이라고 들었습니다. 인장을 받은 이들은 이스라엘 자손들의 모든 지파에서 나온 사람들이었습니다."(묵시 7,4)

 

  성인과 복자들의 거룩함은 우리의 나약함에 도움을 준다. 그래서 어머니인 교회가 기도와 삶으로 거룩한 이들이 나약한 이들을 도울 수 있게 한다. 그러므로 성년의 대사는 하느님 아버지의 용서가 믿는 이의 삶 전체에서 이른다는 확신으로 우리가 당신의 자비에 다가가는 것을 의미한다. 대사는 교회의 거룩함을 체험하는 것이다. 교회는 그리스도 구원의 열매를 모든 이에게 전하여 하느님의 사랑과 용서가 땅 끝까지 이르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이들은 이 희년을 충실히 살아가며 하느님 아버지께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당신의 자비로운 대사로 우리를 깨끗이 씻어 주시기를 간청한다.

 

-곽성룡 신부/대전가톨릭대학교 총장-

 

 

<이충무의 행복 나침반(86)>

 

    벌레의 전성시대

  달라도 사람이다

 

  담임선생님과 면담을 하던 중학생 현수, 잠시 머뭇거리더니 선생님께 며칠 전 있었던 황당한 일을 털어놓기 시작했습니다.

 

       현수: 선생님, 애들이 저를 벌레 취급해요.

담임: 벌레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현수: 혹시 '진지충'이라고 들어 보셨어요?

담임:진지충? 그런 벌레도 있어?

현수:애들이 저를 그렇게 부르며 놀려요.

담임:너를? 왜?

현수:웃자고 한 말에 제가 자꾸 진지한 말만 한다고...

담임:그렇다고 벌레 취급한단 말이야?

현수:분위기 다 망친다고 저를 싫어해요.

 

   여름이 다 지나가고 쌀쌀한 날씨에 어깨가 웅크러지는 겨울이 코 앞인데 웬 벌레 이야기냐고요? 겨울이 와도 줄기는 커녕 점점 더 늘어만 가는 벌레들이 있어 마음이 심란하기 때문입니다.

 

  혹시 이런 단어를 들어 보셨나요? '맘충' '설명충''급식충'... 특정한 집단, 특정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일종의 비속어입니다. 상식 밖의 언행을 일삼는 엄마들을 '맘충'이러고 하고, 가볍게 단 댓글에 길고 지루한 설명을 하는 네티즌들을 '설명충'이라고 합니다.

 

  어린 시절 '기생충'이나 '기계충'이란 단어 외에는 들어 본 적이 없는 저로서는 이 생소한 단어들을 접하면서 쓸쓸해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무리 내 마음에 안 들고, 아무리 분위기를 망친다고 사람을'벌레'의 일종으로 분류하다니요?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주님 말씀이 무색해집니다. 사람의 향기는 사라지고 서로 물어뜯는 벌레가 우글거릴까 봐 걱정스럽습니다. 이런 걱정을 하고 있는 저마저도 '진지충'으로 분류될까 봐 쓸쓸해집니다.

 

  타인을 벌레 취급하면 자신도 또 하나의 외로운 괴물 같은 벌레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부디 벌레를 양산하는 사회가 아니라, 포옹과 사랑으로 사람이 사람다워지는 사회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해 봅니다

 

-이충무 바오로 / 극작가, 건양대학교 교수-

 

 

 

수평(水平)의 이치

중심에선 무게에 따라

 

한쪽이 길어지면

한쪽은 짧아진다.

 

글. 그림 이순구(베네딕도)

 

 

<함께 하는 이야기 마당>

 

줄탁동시(崪啄同時) 신앙생활

 

  알 속에서 병아리가 나오기 위해서는 어미닭과 병아리가 서로 안팎에서 껍질을 쪼아야 한다. 이 두 작업이 동시에 일어나야 한 생명이 탄생한다. 병아리가 안에서 쪼는 것을 한자어로 '줄(崪)'이라 하고 밖에서 어미닭이 그 소리를 듣고 화답하는 것을 '탁(啄)'이라 한다. 그리고 이 일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을 '줄탁동시(崪啄同時)'라고 한다.

 

  교육에서 학생과 교사 사이도 줄탁동시가 이루어져야 학습의 효과나 전이가 극대화된다는 뜻에서 자주 인용되곤 한다. 그런데 병아리가 부화하는 과정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병아리와 어미닭이 동시에 쫀다고 하지만 사실은 병아리가 하나의 생명체가 되어 새로운 세상에 태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며 두드릴 때 어미닭이 그 소리를 귀담아듣고 응대하는 것이다. 어미닭이 알을 품고 부화를 하지만 새끼 병아리를 보고 싶다고 해서 절대로 먼저 알을 깨지는 않는다. 즉 줄(崪)이 없이 절대로 탁(啄)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하느님은 모든 사람에게 골고루 은총을 내려 주지만 자유의지에 의해 본인 스스로 적극적으로 갈구하고 노력해야만 주님께서 수시는 그 은총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신앙생활에도 적극성이 필요하다. 세례를 받고 시계추처럼 주일미사만 참여하던 청년시절을 돌이켜 보면 당시에는 나의 믿음 정도가 항상 평행선이었다. 미사는 물론 구역회 참석, 각종 피정, 레지오 활동, 주일 학교 교사, 전례분과 위원, ME교육, 꾸르실료 교육, 사목 위원 등 교회 안에서 나에게 주어지는 여러 가지 활동들을 적극적으로 수행하였기에 그때마다 주님을 내 안에 조금씩 품을 수 있었고 그것이 바로 주님의 은총이었음을 실감한다.

 

  평신도 하나하나가 모두 하느님 구원 사업을 위한 작은 교회임을 느끼면서 그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크(崪)할 때 주님은 기꺼이 응대(啄)하여 우리 안에 하느님이 보시기에 참으로 예쁜 성전을 지어 주실 것이다.

 

-맹동술 시몬 /내동성당-

 

 

엉뚱한 데서 찾기(종교 박람회 中) - 앤소니 드 멜로 -

 

이웃 사람이 보니 나스룻딘이 땅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뭔가를 찾고 있었다.

 

"뭘 찾고 계십니까, 물라님?"

"열쇠를 잃어버렸다오."

 

둘이 함께 쭈그리고 앉아 잃은 열쇠를 계속 찾았다.

그러다가 이웃 사람이 물었다.

 

"열쇠를 어디서 잃어버리셨지요?"

"집에서요."

"허! 그런데 어째서 여기서 찾고 있습니까?"

"여기가 더 밝으니까요."

 

내 마음 안에서 하느님을 잃어버렸을 진대,

어느 성소에 가서 하느님을 찾아 본들 무슨 소용이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