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천해수욕장 성당(보령지구)
본당설립:1998.9.8 /주보성인:성요나
+ 마르코 복음 10,46-52
<스승님, 제가 다시 볼수 있게 해 주십시오.>
그 무렵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많은 군중과 더불어 예리코를 떠나가실 때에,티매오의 아들 바르티매오라는 눈먼 거지가 길가에 앉아 있다가, 나자렛 사람 예수님이라는 소리를 듣고,"다윗의 자손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하고 외치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많은 이가 그에게 잠자코 있으라고 꾸짖었지만, 그는 더욱 큰 소리로 "다윗의 자손이시여,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하고 외쳤다.
예수님께서 걸음을 멈추시고,"그를 불러오너라." 하셨다. 사람들이 그를 부르며, "용기를 내어 일어나게.예수님께서 당신을 부르시네."하고 말하였다.
그는 겉옷을 벗어 던지고 벌떡 일어나 예수님께 갔다.
예수님께서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하고 물으시자, 그 눈먼 이가 "스승님,제가 다시 볼수 있게 해 주십시오."하였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하고 이르시니,그가 곧 다시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예수님을 따라 길을 나섰다.
<말씀의 향기>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 -구일모 베드로 병원사목 전담
주님,당신 백성 이스라엘을 구원하소서! 우리 남은 자들만이라도 구원하소서1 이것은 예레미야의 간절한 염원의 기도였다.
지금까지는 하느님을 멀리하고 살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레미야들 통해서 이렇게 기도를 드리자. 그 백성의 슬픔을 보시고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하시기 위해서 손을 내밀고 계십니다.
우리 민족도 비슷한 시기가 있었습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약 40년 후에 병자호란이 끝나면서 우리 민족의 자각운동이 일어나게 되는데,북경에서 실학과 함께 천주학을 들여오면서 만인이 평등함을,모든 직업이 평등함을 외치면서 우리나라는 절대적으로 충성을 해야할 임금과 종들이 평등하다는 것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던 기득권층과의 문화충돌이 일어나 천주교를 받아 들이던 많은 이들이 사형을 당하였습니다. (이조왕실록p.403)
그러나 나라의 앞날을 염려하던 실학자들은 정조 임금에게 신분적 차별을 없애고 상공업을 장려하여 국가를 부강하게 하고 이를 위해서 청나라의 선진적인 문물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하였으나,정권을 장악하고 있던 노론벽파는 천주교 금지를 명분으로 남인시파를 완전히 숙청하고 실학파 학자들을 대거 제거하였습니다. 이때 오가작통법을 만들어 다섯 집 가운데 한 집만 천교교인이 있어도 다섯 집 모두가 피해를 입어야 한다는 법이 선포되었습니다.(조선왕조실록 P.398)
그 후 대원군은 1866년부터 1872년까지 6년 동안 8,000여 명의 신자들을 학살하였습니다.(조선왕조실록 P.434) 그리고 1905년에 일본과 을사조약을 맺었고 이어서 1910년에 한일합방이 맺어졌습니다. 1919년 3월 1일 대한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나던 해에 북간도의 천주교인들은 3월 13일 용정성당에서 낮 12시의 삼종기도 종소리에 맞추어 만세운동을 시작했고, 이는 천주교 개신교 천도교 등 북간도 종교단체 인사들이 참여한 조선운동의사회가 주관하였습니다.(참고 : 독립신문 1920년 1월 26일자)28개 천주교 공소와 수천명의 신자들 중에 무명애국의사가 많았습니다. 교우촌 신자들은 천주교 공소회장을 중심으로 독립군의 자금을 지원하였습니다. 또한 소명월구에 있던 방우룡 집과 천주교 건물은 임시정부의 1군사령부였습니다. (평화신문 2009년 8월 23일자)이를 통해서 신자들이 얼마큼 우리나라 독립을 위해서 애썼는가 하는 면이 드러납니다.
우리들은 이러한 일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지켜 오신 하느님,또한 우리나라를 지켜 온 하느님이 신앙을 살펴볼 수가 있습니다. 예레미야에게 회개하지 않아떤 이스라엘 백성이 바빌론의 침공으로 망하였으나,하느님께서 그들의 고뇌를 보시고 구원하시는 오늘의 제1독서를 묵상하면서 우리들도 하느님께 대한 신앙으로 무장해서 살아갔으면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칙서
「자비의 얼굴」 해설(6)
세상을 떠날 때 돈을 가져갈 수 없다. 19항
프란치스코 교황은 하느님 은총의 초대에 회개하며 나아가는 행동이 우리의 삶을 변화시킨다고 말씀하였다. 교황은 삶이 돈에 달려 있지 않고,돈과 대비해서 다른 것의 가치 또는 존엄성이 결여된 것을 생각하는 처절한 올가미에 빠지는 착각을 하지 말 것을 요청한다. 부패는 흐망의 미래를 바라보는 우리를 방해하고,무모한 탐욕으로 우리의 계획을 약화시킨다. 부패는 돈이 힘의 형태로 드러나는 착각이고, 하느님을 배반하는 힘의 형태로 드러나는 착각이고,하느님을 배반하는 마음이 범죄로 경화되는 어두움의 작업이다.
교황은 특히 모든 범죄 조직에 속한 이들을 생각한다. 그들이 자신을 위하여 새로운 삶을 살도록 간절히 요청한다. 세상을 떠날 때 그 돈을 가져갈 수 없다. 피묻은 돈을 긁어모으려고 폭력을 행사해 보아야 그 누구도 강해지거나 영원히 살지도 못한다. 사회의 이러한 곪은 상처는 개인 생활과 사회 생활의 근간을 위협하기 때문에 하늘에서까지 이르는 중대한 죄다. 부패는 우리가 희망을 가지고 미래를 바라보지 못하게 한다. 부패는 우리 마음을 죄로 완고하게 만들어 하느님을 멀리하고 돈이 곧 힘이라는 허상에 빠지게 한다. 부패는 의혹과 음모로 조장되는 어둠의 활동이다. 대 그레고리오 성인은 "최고의 부패는 최고의 악이다."라고 바르게 말하였다.
개인 생활과 사회 생활에서 이 부패를 척결하려면 현명함,경계심,정직성과 투명성 그리고 어떠한 부정행위라도 고발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공개적으로 부패와 맞서 싸우지 않으면,우리는 모두 언젠가 부패에 가담하여 우리의 살을 파괴하고 말 것이다. 교회가 마련한 자비의 특별한 시기에 모두 회개하라는 초대를 받아들이고 정의를 따르기만 하면 된다.
나라마다 부패지수가 다르게 나타난다. 대개는 부패의 원인이 되는 것은 서로 잘 알고 있는 사이의 사랑들 가운데서 발생한다. 아는 자들 사이,친구들 사이에서 편애함으로써 나타난다는 것이다. 공직사회에서도 친인척 혈연,학연,지연 등에서 부패가 발생하는 것과 같다. 기본이 되어야 하는 것은 어떠한 희생이라도 바르고 정의롭게 이루어져야 한다.
율법의 목적은 하느님을 위한 사랑이다. 그런데 그 사랑이 이웃을 위한 사랑과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또 한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 하느님을 배반할 수 있을까?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바라사이의 생각과 반대해서 말하길 "사랑은 계명보다 더 가치가 있습니다." 이웃 사랑으로 하느님 사랑에서 떨어질 수 없다. 하느님께서 이웃을 사랑하듯이 우리가 이웃을 사랑한다면 사랑은 모든 계명보다 더 가치가 있다. 세상의 눈이 아니라 하느님의 눈으로 보아야 그 사랑이 보일 것이다.
-곽승룡 신부/대전가톨릭대학교 총장-
<이충무의 행복나침반(83)>
폼은 일시적이나 클래스는 영원하다
"폼은 일시적이나 클래스는 영원하다."영국 명문 축구팀 '리버풀'의 감독이었던 '빌 샹클리'가 남긴 말입니다. 이 짧은 말 한마디는 사람들에게 깊은 공감을 불러 일으키며 이제는 명언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이 말이 뜻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여기서 '폼'(form)이란 어느 한 순간 반짝이는 '재능'을 의미합니다. 반면에 '클래스'(class)는 오랜 세월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높은 '수준'을 의미합니다.
축구 선수가 어느 한 경기에서 눈부신 활약을 했다고 해서 그 선수의 수준이 높다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따릅니다. 왜냐하면 수준은 한 순간에 측정되거나 완성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한 팀이 꾸준하게 높은 승률을 유지하고자 한다면 '폼'에 투자하기보다 '클래스'에 투자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일 겁니다. 폼은 예측 불가능한 요소이지만,클래스는 한 번 형성되면 지속적인 힘을 발휘하는 원동력이 되어 주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 사회에는 '폼'에만 후한 점수를 주려는 감독들이 점차 많아지고 있습니다. 클래스를 만들 충분한 시간과 합리적인 시스템은 재공하지 않고,오로지 현재의 결과만으로 모든 걸 평가하는 '폼'의 전성시대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폼'의 전성시대에서는 노벨상 수상자가 결코 나올 수 없습니다. '폼'으로 국제 수학경시 대회 1등을 만들어 낼 수는 있어도, 인류의 행복에 기여하는 수준 높은 수학자를 만들어 낼 수는 없습니다.
'폼'으로 돈을 벌 수는 있을지 몰라도,행복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폼'으로 정치를 할 수 있지만,정의를 실현할 수는 없습니다. '폼'으로 현재를 메꿀 수는 있어도,역사를 만들 수는 없습니다.
한 순간의 박수를 위한 '폼생폼사'가 아니라,위기의 순간이 와도 그 위기를 축적된 안목과 수준으로 극복하는 클래스가 남다른 사회... 그 속에서 우리 아이들이 행복하게 자라나는 모습을 하루라도 빨리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충무 바오로/극작가,건양대학교 교수-
길을 가다가
하늘하늘 웃음 짖는
들꽃이 예뻐
그냥
따라 웃어봅니다.
글.그림 이순구 (베네딕도)
<함께 하는 이야기마당>
성체의 신비
세례를 받은 신자들은 미사를 봉헌할 때마다 매번 거룩한 성체를 자신의 몸 속에 모시길 갈망합니다. 과연 살아계신 주님의 성체와 성혈의 신비는 어떠한 것일까요? 성체 안에는 온갖 병을 치유하는 기적의 은총이 있습니다. 자신을 온전히 주님께 의탁하면서 추호의 의심도 품지 않고 확신을 가진 채 성체를 받아 모신다면 치유의 은총을 온전히 받을 것입니다.
가끔씩 제 자신은 그런 체험을 하는데,자신을 잘 성찰하고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갖기를 소망하며 사제께 진솔되이 고해 성사를 받고 통회하면서 자신의 모든 것을 주님께로 향한 채 정성껏 성체를 받아 모시면 영육간의 병이 저절로 치유받음을 느끼게 됩니다.
찌뿌둥하며 무겁고 아프던 몸이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날아갈듯이 가벼워지며 주님과 일치를 이루게 됨을 체험하게 됩니다. 개개인마다 이러저런 차이가 있겠으나 살아계신 주님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는 일이 얼마나 큰 은총으로 다가오는지요.
성체를 받아 모시고 잠시 묵상하는 시간이 필요하나 그렇지 못한 경우도 더러 있는 것 같습니다. 은은하게 들려오는 오르간 반주의 성가 소리를 들으며 주님과 하나 되어 머무는 시간이 꼭 필요한데,미사를 빨리 끝내고 성당을 나서고 싶은 조급한 마음이 들때가 있습니다. 삶을 살아가려면 준비와 노력이 있어야 하듯이 미사를 봉헌하는 것에도 차근차근 준비하여 자신을 비우고 거룩한 성체를 받아 모시면 성령께서도 놀라운 능력으로 역사하실 것입니다. 도저히 믿어지지 않던 기적의 힘이 영혼 속에 깃들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복음서의 여러 곳에 드러내신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라고 하신 말씀을 깊이 믿으며 성체의 힘으로 주님과의 일치를 이루려는 은총을 청해야 되겠습니다. 지존하신 성체로 말미암아 영혼이 건강을 되찾으면 육신의 병은 자연스레 치유를 받고 설령 병을 앓고 있다 해도 그 병을 무감각하게 여기며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성체를 통하여 어떠한 병이라도 치유될 수 있다는 희망으로 놀라운 기적이 깃들기를 바랍니다.
내 안에 오신 주님,당신의 크나크신 권능에 나를 맡기나이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영혼의 구원자시여, 나의 머리에서 발끝까지 당신의 살아계신 영으로 채워주소서. 나는 깨끗하여지리이다. 아멘.
"나를 먹는 사람은 나로 말미암아 살 것이다."(요한 6,57)
-성요한 세례자요한/만년동 성당-
짧은 시 모음
슬픔 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백두산 천지에서 / 정채봉
아!
이렇게 웅장한 산도
이렇게 큰 눈물샘을 안고 있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사랑은 /정채봉
소녀가 나무에게 물었다.
"사랑에 대해 네가 알고 있는 것을 들려다오."
나무가 말했다.
"꽃피는 봄을 보았겠지?"
"그럼,"
"잎 무성한 여름도 보았겠지?"
"그럼"
"잎 지는 가을도 보았겠지?"
"그럼,"
"나목으로 기도하는 겨울도 보았겠지?"
"그럼,"
나무가 먼 산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다면 사랑에 대해 나의 대답도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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