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2015년 주보

연중 제 28주일 2015년 10월 11일(나해)

모든 2 2015. 10. 11. 18:52

괴정동 성당(대전서부지구)

본당 설립 : 1977.2.7/ 주보성인 : 성 베드로

 

+ 루카 복음. 12,15-21

 

<가진 것을 팔고 나를 따라라.>

 

그때에 예수님께서 길을 떠나시는데 어떤 사람이 달려와 그분 앞에 무릎을 꿇고, "선하신 스승님, 제가 영원한 생명을 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고 하느냐? 하느님 한 분 외에는 아무도 선하지 않다.

 

너는 계명들을 알고 있지 않느냐? 하느님 한 분 외에는 아무도 선하지 않다. 너는 계명들을 알고 있지 않느냐? '살인해서는 안 된다. 간음해서는 안 된다. 도둑질해서는 안 된다. 거짓 증언을 해서는 안 된다. 횡령해서는 안 된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그가 예수님께 '스승님, 그런 것들은 제가 어려서부터 다 지켜 왔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사랑스럽게 바라보시며 이르셨다. "너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그러나 그는 이 말씀 때문에 울상이 되어 슬퍼하며 떠나갔다. 그가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주위를 둘러보시며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재물을 많이 가진 자들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참으로 어렵다!" 제자들은 그분의 말씀에 놀랐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거듭 말씀하셨다. "얘들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참으로 어렵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그러자 제자들이 더욱 놀라서, "그러면 누가 구원받을 수 있는가?"하고 서로 말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바라보며 이르셨다. "사람에게는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그렇지 않다.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그때에 베드로가 나서서 예수님께 말하였다.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나 때문에, 또 복음 때문에 집이나 형제나 자매, 어머니나 아버지,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현세에서 박해도 받겠지만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녀와 토지를 백 배나 받을 것이고,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

 

 

<말씀의 향기>

 

하느님과 재물  -권대웅 안셀모 주교좌 대흥동 성당

 

  오늘 지혜서는 지혜가 왕홀과 왕좌보다도 좋고 세상의 어떤 귀한 재화보다 좋다고 가르칩니다. 지혜는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은 세상의 그 어떤 보화보다도 좋습니다. 그러나 송구스럽게도 돈이 하느님보다 더 매력적으로 보일 때가 많습니다. 하느님과 돈은 우리 신앙인들을 끊임없이 괴롭히는 도전이요 갈등입니다.

 

  돈은 참으로 묘한 힘을 갖고 있어서 사람을 기쁘게도 하고, 사람을 슬프게도 합니다. 사람을 우쭐하게 만들기도 하고, 사람을 비굴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사람과 재물은 떼어놓을래야 떠어놓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재물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라고 항변하는 이도 있지만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면 돈을 위해 살아가는 듯한 느낌을 떨쳐 버릴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우리에게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하늘에서 보화를 얻게 될 것이다."라는 말씀은 큰 걱정을 안겨 줍니다. 왜냐하면 재물을 모두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주고 빈손으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예수님의 말씀대로라면 오늘 성당에 오면서 금반지를 손에 끼고 온 사람은 날라리 신자이거나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이에게 주라는 이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 거지가 되라는 말씀일까? 내가 가진 모든 것을 팔아 남에게 주면 이제 나는 아무것도 없는 빈털털이가 되어, 내가 살아가려면 이제 남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거지신세가 됩니다. 거지신세가 되어야 천국에 갈 수 있고 그리스도를 따를 자격이 있다는 뜻은 분명 아닐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란 하느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그분만 바라보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오늘의 말씀은 하느님을 따르고 그분만을 바라보고 사는데 방해가 되는 것은 무엇이든지 희생하라는 뜻입니다.

 

  분명히 우리는 재물이 인생의 전부가 아님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뿐만 어니라 재물이 하느님보다 더 우위에 있는 것이 아님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좀처럼 재물이 하느님 보다 못하다는 행동이 보이기 힘듭니다. 이러한 우리에게 예수님은 결단을 요구하십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예수님을 따르는 데 방해가 된다면, 하느님을 믿는 데 재물이 방해가 된다면 팔아서 가난한 이에게 주는 편이 훨씬 낫다는 말씀입니다.

 

  어떤 사람이 집에 큰 보석을 사놓고 도둑맞을까 봐 성당에도 못 나오고 집을 지킨다면 팔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주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중에 혹시 TV 때문에 저녁기도를 바치지 못하는 사람 있습니까? 그렇다면 TV는 나와 하느님 관계를 떼어놓는 재물입니다. 아예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라는 말씀입니다. "나에게 오는데 방해가 되는 것은 모두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라, 그러면 하늘에서 보화를 얻게 될 것이다." 아멘

 

 

프란치스코 교황 칙서

「자비의 얼굴」 해설(4)

 

특별한 회개의 은총을 선사하는 자비의 성년

 

  프란치스코 교황은 판단과 단죄를 내려놓도록 요청한다. 하느님의 심판을 피하려면 형제, 자매를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 판단은 겉에서 못 보는 아버지 영혼의 아주 깊은 시선을 회피하는 것이다. 우리가 자비의 도구가 되는 것은 먼저 하느님으로부터 자비를 받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버지와 같이 자비로운 자가 되는 것이 성년의 모토다.

 

  자비 속에서 하느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발견한다. 주님께서는 언제나 대가를 바라지 않으시고 당신을 온전히 거저 내어 주신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부르면 언제든지 우리를 도와주러 오신다. 우리가 간청하는 도움은 이미 우리를 향한 하느님 자비의 첫 단계다.

 

  그분께서는 우리가 놓인 나약한 상황에서 우리를 구하러 오신다. 그분의 도우심은 당신의 현존과 가까이 계심을 우리가 깨닫도록 도움을 주신다. 주님의 자비가 우리를 어루만져 주시어 우리도 나날이 다른 사람들에게 자비로워질 수 있다.(14항)

 

  고해소는 죄를 고백할 때 사제를 통해 하느님께서 자비와 용서를 베푸는 은총의 거룩한 장소가 된다. 은총의 매력은 우리가 자격은 없지만 죄인에게 필요 이상의 과분한 것을 주시는 하느님의 사랑이다. 하지만 오늘날 무자비한 세상에 가장 아쉬운 것은 자비다. 특히 제도가 무자비한 듯해서 정말 마음이 불편하다. 자비 없는 자본주의 제도, 약한 자에 대한 배려가 없는 소유와 배척의 경제를 프란치스코 교황은 경계하라고 지적한다.

 

  한국사회 역시 오십 년 동안 경제성장이라는 목표를 향해 자비와 멀게 달려왔다. 인간의 존엄성과 품위 있는 생명의 가치보다는 돈이면 모든 것이 가능한 사회가 되어 버렸다. 이제는 마음과 영혼의 성장, 인격의 성장을 위해 모두가 힘을 합쳐야 한다. 한국사람 열 명 가운데 반 이상 분노조절장애 증상을 가지고 있고, 그중 10%의 사람은 분노조절장애 병을 앓고 있다고 한다. 특히 인간관계에서 이런 일들이 종종 발생하고 있다. 도로에서는 보복운전으로, 집에서는 층간소음문제로 심한 갈등을 겪고 있다. 보복운전이 성에 차지 않자, 차를 세우고 트렁크에서 흉기를 들고 보복을 하고 심지어 가만히 서 있는 사람을 자동차로 밀어붙이기도 한다. 층간소음문제로 무림의 검객, 서부활극 같은 이루 말할 수 없는 현상들이 발생하고 있다.

 

  세상은 자비로운 사람을 원하고 자비롭게 생활하기를 바란다. 그래야 성장이 가능하고 깊은 연민을 느낄 수 있다. 연민을 느끼지만 상처를 준 자, 해친 자에게 풍부하게 믿음을 주는 것은 하느님의 선물을 아는 자 곧 자비로운 사람이 할 수 있는 용서다. 특히 공동체의 용서는 동료들 사이에서 드러나는 하느님의 자비다. 자비를 입은 사람이 자비를 베풀 수 있다.

 

-곽승룡 신부/대전가톨릭대학교 총장-

 

 

<이충무의 행복 나침반(81)>

 

휴대폰은 생각보다 무섭다

진짜 도구는 마음의 도구

 

휴대폰... 오늘날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 도구. 이 도구를 사용할 시 다음과 같은 증상이 나타날 수 있으니 행복하길 원하시는 분들은 각별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 단절 증상 : 먼 곳에 있는 사람은 가까이, 가까이 있는 사람은 멀게 느끼게 하는 증상

 

휴대폰은 언제 어디에서든 먼 곳에 있는 사람들과 실시간으로 소통할 수 있게 하는 편리한 도구가 되어 줍니다.

하지만 바로 앞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쉽게 소외시키는 부작용 또한 큽니다.

 

휴대폰을 갖고 한 자리에 모이면, 사람끼리 한 자리에 있어도 서로 각자가 됩니다. 몸은 함께 있어도 마음은 자꾸만 분산됩니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가 서서히 망가져 갈 수 있으니 주의를 요망합니다.

 

이야기는 자꾸만 단절되고, 눈을 마주치며 상대방의 마음을 느껴 보는 시간은 줄어듭니다. 상대방이 휴대폰을 바라보면 나도 휴대폰을 바라보다야 어색하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30분 정도만 만날 것과 같은 효과밖에 얻지 못합니다.

 

가족끼리 한 자리에 모여 외식하면서 각자 자신의 휴대폰에 눈길이 갈 수 있으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엄마 아빠나 자녀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지고 마치 집에서 각자 방안에 들어가서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는 것과 똑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먼 곳에 있는 사람은 그리움으로 만나고, 눈앞에 있는 사람은 진심으로 만나시길 바랍니다.

 

소통을 더 잘하기 위해 만든 기계가 정작 소통에 방해되는 도구로 바뀌어 가는 모순된 상황... 몸으로는 자신이 어디엔가 소속되어 있음을 느끼며, 정신적으로는 각자 독립적이길 원하는 요즘 우리의 모습을 무어라 불러야 할까요?

 

눈과 눈이 마주치는 짜릿함으로 무엇이든 함께 진심으로 공유했던 그때를 우리는 종종 그리워하곤 합니다. 그러면서 오늘도 우리는 누군가를 만나면 습관적으로 제일 먼저 휴대폰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습니다.

 

-이충무 바오로 /극작가, 건양대학교 교수-

 

 

 

귀 기울여

 

하늘은 구름에게

바람은 이슬에게

나무는 새에게

빨간 잠자리는 코스모스에게

고운 노을 예쁜 마음으로

소곤소곤 들었으면 좋겠다.

 

글. 그림 이순구(베네딕도)

 

 

<함께하는 이야기 마당>

 

그대 이름은 그리스도의 꽃

 

그대 이름은 꽃

온누리에 피어나는 꽃

영원히 피어나는 그리스도의 꽃

 

이른 아침 이웃들의 가슴에

영롱한 이슬 머금고 피어나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르는 꽃

 

돌같이 찬 우리 마음속에

포근한 사랑 품고 피어나

봄처럼 따스함을 입혀주는 꽃

 

힘들고 지친 이들 가슴에

희망의 꽃으로 피어나

힘차게 일으켜 세우는 꽃

 

마음이 부서진 이들의 가슴에

치유의 꽃으로 조용히 피어나

기쁨을 선사하는 사랑의 꽃

 

기댈 곳 없어 서성이는 마음에

온전한 기쁨 아낌없이 나누어주며

버팀목으로 피어나는 꽃

 

가장 작은이 들 가슴에 피어나

말씀의 진리로 행복을 주고

십자가의 사랑을 속삭이는 꽃

 

어둠 안에서 헤매는 양들에게

빛과 사랑을 채워주는 꽃

그대 이름은 곱게 피는 그리스도의 꽃

 

오혜림 루치아 / 괴정동 성당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도종환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저녁 숲에 내리는 황금빛 노을이기보다는

구름 사이에 뜬 별이었으면 좋겠어.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버드나무 실가지 가볍게 딛으며 오르는 만월이기보다는

동짓달 스무날 빈 논길을 쓰다듬는 달빛이었음 싶어.

꽃분에 가꾼 국화의 우아함보다는

해가 뜨고 지는 일에 고개를 끄덕일 줄 하는 구절초이었음 해.

 

내 사랑하는 당신이 꽃이라면

꽃피우는 일이 곧 살아가는 일인

콩꽃 팥꽃이었음 좋겠어.

 

이 세상의 어느 한 계절 화사히 피었다.

시들면 자취없는 사랑말고

저무는 들녘일수록 더욱 은은히 아름다운

억새풀처럼 늙어갈 순 없을까

 

바람 많은 가을 강가에서 서로 어깨를 기댄 채

우리 서로 물이 되어 흐른다면

바위를 깎거나 갯벌 허무는 밀물썰물보다는

물오리 떼 쉬어가는 저녁 강물이었음 좋겠어

 

이렇게 손을 잡고 한 세상을 흐르는 동안

갈대가 하늘로 크고 먼 바다에 이르는 강물이었음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