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2015년 주보

연중 제 27주일 2015년 10월 4일(나해)

모든 2 2015. 10. 4. 22:11

봉산동 성당(대전북부지구)

본당 설립: 1999.1.26/주보성인:예수 성심

 

+ 루카 복음. 12,15-21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그때에 바리사이들이 "모세는 너희에게 어떻게 하라고 명령하였느냐?"하고 되물으시니, 그들이 "'이혼장을 써 주고 아내를 버리는 것'을 모세는 허락하였습니다."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너희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에 모세가 그런 계명을 기록하여 너희에게 남긴 것이다.

 

창조 때부터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될 것이다.'따라서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집에 들어갔을 때에 제자들이 그 일에 관하여 다시 묻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혼인하면, 그 아내를 두고 간음하는 것이다. 또한 아내가 남편을 버리고 다른 남자와 혼인하여도 간음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어린이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그들을 쓰다듬어 달라고 하였다. 그러자 제자들이 사람들을 꾸짖었다.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보시고 언짢아 하시며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어린이들이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말고 그냥 놓아두어라. 사실 하느님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어린이와 같이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러고 나서 어린이들을 끌어안으시고 그들에게 손을 얹어 축복해 주셨다.

 

 

<말씀의 향기>

 

여기 신부님이 어딨습니까?!!! -최병규 안드레아 특전사, 성 레오 성당

 

  신병교육대를 이제 막 수료한 새내기 이등병에게 눈을 질끈 감아보라고 합니다. "뭐가 보이니?" "아무것도 안 보입니다." "아니야, 지금 보이는 게 너에게 남은 군생활이야.." 논산훈련소나 각 사단 신병교육대의 군문을 들어선 간절함의 대상은 전역입니다. 반면 병사와는 달리 부사관이나 장교들에게 똑같이 절박한 간절함의 대상은 될수록 군에 오래 머무는 것, 바로 진급입니다. 이렇게 저마다의 절박함이 오묘하게 작용하는 군에서, 전투복 속에 로마 칼라를 하는 오묘한 복장으로 대전교구 8명의 신부님들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대전 출신 군종사제단인 우리에게 가장 절박한 것은 무엇일까요? 정든 고향 대전교구로 되돌아가는? 물론 맞습니다만 지금 이 순간 가장 절박한 것은 이들의 어려움을 보듬어 주는 것입니다. 누군가는 이들 안에 머물러 함께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군에서 나 혼자가 아니라 주님께서 함께하고 계시다는 것을 전해주고, 그 표지로 우리 군종사제들이 함께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작년 7월 특수전사령부, 소위 말하는 특전사 공수부대에 부임해 3주간의 공수교육을 받았습니다. 공수란 공중수송을 말하는 것으로 모든 부대원이 낙하산을 다룰 줄 알고, 탈 줄 알아야 하기에 저도 예외 없이 공수교육에 입소하였고, 3년 같은 3주를 그곳에서 보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방한 일정 마지막 날이 제 입소일이었기에 정말 간절한 마음으로 교황님께서 로마로 되돌아가시는 날이 오지 않기를 기도했지만 그날은 왔고 저의 공수훈련은 시작되었습니다. 교육 첫날 오전 시간, 족히 스무 명은 되는 빨간 모자를 쓴 교관들 사이에서 쩌렁쩌렁한 외침이 들려왔습니다. "아! 드디어 신자교관 중 하나가 나를 찾는구나! 하며 오른팔로 하늘을 찔렀습니다. "7번 교육생! 군종신부입니다!!!" 하지만 되돌아온 반응은??? "여기 신부님이 어딨습니까? 여기선 신분도 계급도 없습니다. 열외!!" 열외 다음의 열차려는 교우분들의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저는 그 3주 동안 5kg이 감량되는 기적? 을 체험했고, 사람이 밥 먹은 직후에도 계속 뛸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그러면서 안일한 특권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바리사이 같은 저를 발견했습니다. 사제서품식 때 겸손을 다짐하며 땅에 엎드렸지만, 실제로는 맨 땅 위에 땀 흘리기 싫어하고 낮은 자세로 흙 위에 눕기를 거부했던 자신을 깊이 반성했습니다. 그리고 그해, 매년 10월이면 군종사제들을 격려해주시는 우리 주교님들과의 만남이 어찌나 새롭게 느껴지던지..

 

  사람들은 군을 가리켜 새롭게 태어나는 곳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병사에게도, 간부에게도, 심지어 신부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새롭게 태어나는 이곳에 머무는 모든 이들을 위해 기도해주시고, 특별히 주님과 함께 다시 태어날 수 있도록  전후방 모든 각자의 장병들과 군종사제들을 위해 더 많은 기도 부탁드립니다. 단결!

 

 

프란치스코 교황 칙서

「자비의 얼굴」 해설(3)

 

자비는 교회 삶의 기초이다

 

   교황은 교회의 사목활동이 모두에게 온유할 것을 요청하며, 교회의 신뢰는 자비와 연민의 사랑을 얼마나 보이느냐에 달렸다고 강조하신다. 하지만 우리는 자비를 실천하는 길을 잊은 지 오래된 듯하다. 오직 정의에 초점을 두는 유혹은 자비가 먼저 필요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잊게 만든다. 교회에 자비가 없는 삶은 사막처럼 황폐하다(10항) 교회는 하느님의 자비를 선포하도록 위임받았다. 쇄신된 사목활동의 주제도 자비이고, 새로운 복음화의 과업에서 교회는 자비를 증거하는 신뢰와 책임을 보여야 한다. 교회의 언어와 제스처들이 자비로 전달되어야 한다.

 

  교회의 첫 진리는 그리스도의 사랑이다. 교회가 현존하는 어느 곳에서나 아버지의 자비가 명백히 드러나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이 있는 어느 곳에서나, 자비의 오아시스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12항) 교황은 자비의 성년을 주님 말씀의 빛 안에서 살기를 바란다. "너의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루카 6ㅡ36)(13항)

 

  하느님 자비의 모습이 잃어버린 동전, 잃어버린 양(마태 18,12), 잃어버린 아들 등, 복음의 비유를 통해 볼 수 있다. 착한 사마리아 사람(루카 10,29-37)은 인간의 자비를, 돌아온 아들(루카 15장)은 하느님의 자비를 보여주고 있다. 공통점은 행동으로 자비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결국 최후 심판에서 주님이 판단하시는 기준은 우리가 얼마나 자비하였나이다.

 

  생태계에서 동물은 무리를 지으면서  돌아가는 능력을 가지고 있단다. 하지만 사람은 하느님의 은총 업서이 죄에서 돌아올 수 없다. 곧 은총 없이 회개할 수 없고, 바른 기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 성인도 자신이 치룬 삶의 비용에서 그것을 배웠다. 어떤 죄인도 홀로 회개할 수 없다. 강한 의지를 가졌든 약한 의지를 소유하였든,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어깨 위에 죄인을 둘러매지 않고서는 집으로 돌아올 수 없다. 그러므로 죄인은 은총이 자신을 인도하도록 청해야 한다. 그리고 각자의 힘에 따라 은총에 의해 협력해야 한다. 그러면 그의 의지는 무장될 것이다. 기적이 일어날 것이다.

 

  희망이 없는 중환자에게 생명을 구해주는 의사는 아주 큰 기쁨을 경험한다. 자기 자신이 처한 어려움을 이겨낼 때도 기쁨이다. 그런데 영생을 위해 영혼이 살아난다면 얼마나 더 큰 기쁨이겠는가?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마태 18,14) 요한 금구 성인은 우리가 하는 기도를 가운데 어떤 것은 허락되고, 어떤 것은 안 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당신 뜻에 상응하는 청원에 동의하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당신의 계획에 반하는 원의를 동의하지 않는다.

 

-곽승룡 신부/대전가톨릭대학교 총장-

 

 

<이충무의 행복 나침반(80)>

 

  구름 위의 산책 

뛰면 혼자, 걸으면 둘

 

 

   결혼 생활 10년 차 부부, 저녁 식사 후에 운동 겸 산책을 나갔습니다. 그런데 그 부부 앞에 일흔 살이 넘어 보이는 노부부가 손을 잡고 천천히 걸어가고 계셨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아내가 남편에게 나직하게 묻습니다.

 

아내:당신도 나중에 저렇게 해 줄 거지?

 

남편:어떻게?

 

아내:손을 꼭 잡고 산책할 거냐고?

 

남편:꼭 그렇게 해야 돼?

 

아내: 얼마나 보기 좋아!

 

남편:보기 좋긴? 저렇게 걸으면 운동하는데 도움이 안돼!

 

  결혼 10년차 부부가 빠른 걸음으로 노부부를 앞질러 걸어갑니다. 뒤처진 노부부가 앞서가는 그들을 보고 이런 대화를 나눕니다.

 

아내:우리도 저럴 때가 있었는데...

 

남편:그러게...

 

아내:각자 맘대로 걸을 수 있었으면...

 

남편:무슨 소리야? 손을 놓으면 안 돼!

 

아내:알았어요, 안 넘어지게 꼭 잡을게요.

 

남편:난 지금이 더 좋은 걸...

 

아내:지금이? 왜요?

 

남편:그땐 건강을 위해서 걸었잖아.

 

아내:그랬죠. 땀 뻘뻘 흘리면서...

 

남편:지금은 혼자가 아닌 걸 감사하면서 걸어.

 

   시간이 무한정 남아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게 집중합니다. 옆에 있는 사람들도 당연히 무한정 자신과 함께 할 거라는 확신 때문에 잘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시간이 있다면 그건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한 기회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벌써 10월입니다. 올해도 이제 두 달밖엔 남지 않았습니다. 열 달 동안 혼자 달려왔다면 이제라도 가까운 사람에게 손을 내밀어 보면 어떨까요?

 

  혼자가 아닌 걸 감사하면서 걷는 인생길이 최고로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주는 구름 위의 산책길이기 때문입니다.

 

-이충무 바오로 /극작가, 건양대학교 교수-

 

 

이 계절의

이날에는

참하고 성숙한 마음으로

저희가 저희를

사랑하게 하소서.

 

글. 그림 이순구(베네딕도)

 

 

<함께하는 이야기 마당>

 

신천지에 다녀와서

 

  남편의 이직으로 서울에서 아무도 없는 대전으로 이사 온 저에게 외로움은 너무나 힘든 감정이었습니다. 남편은 그런 저에게 신앙의 도움으로 어려움을 극복했다는 부부를 소개해 주었습니다. 그 부부는 성경에 관한 좋은 공연이 있다며 함께 보기를 권유하였고, 그 공연장에서 다른 전도사를 소개시켜 주었습니다. 공연 관람 후 저희는 신앙과 성경에 대하여 이야기하였고, 제가 성경 내용에 관심이 많음을 알게 된 그들은 저를 좋은 입교 대상자로 보았습니다.

 

  다음 만남은 자연스럽게 가정 방문으로 이루어졌고 종교가 무엇인지와 성경의 말씀에 대한 비밀이 있음을 내세워 호기심을 자극했습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좋은 강의가 열릴 예정인데 종교와 관계없이 성경 말씀을 배울 수 있다고 하며 선화동의 한 강의실로 데려갔습니다.

 

  2인 1조로 움직이는 그들은 전도사와 추수꾼으로 불리며 차량봉사 등을 자청하여 꾸준히 연락해 옵니다. 강의는 성경의 비밀을 하나씩 풀어내듯이 하고, 궁금증을 자극하는 내용들로  이루어집니다. 궁금증을 자극하는 단계를 넘어가면 다른 종교들의 비난으로 이어집니다. 물이 지닌  정화의 의미를 모른 채 천주교 신자들은 성수를 찍는다든지, 불심판의 의미를 모른 채 불교는 연등을 피운다는지 하는 것으로 다른 종교는 잘못된 길을 걷고 있다고 강조합니다.

 

  이것을 배우다 그만두면 다시는 천국으로 갈 수 있는 기회를 얻지 못한다는 협박조의 말을 합니다. 저는 하느님의 자비와 인간의 회개라는 의문에 혼란스러웠고, 그동안의 의심과 혼란 속에서 모든 것을 멈추고 하느님께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하느님의 도우심이었는지 개인적인 일 때문에 다시 서울로 돌아가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그들과 멀어졌지만 그들은 끊임없이 유혹의 손길로 저를 회유하려 들었습니다. 그때서야 그곳이 신천지였으며, 얕은 성경지식을 가진 제가 그들의 좋은 먹잇감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흥미로운 이야기에 귀 기울여 그들과 함께 했던 시간에 대한 반성과 속죄의 기도로 서울에서의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후엔 성서 40주간을 통해 다시 성경을 천천히 읽고 묵상하는 신앙생활을 하고, 매일 미사를 봉헌하면서 천천히, 꾼준히 신앙의 씨앗을 키우고 있습니다.

 

  성경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의 먹잇감이 되고 그들의 이야기에 현혹되었던 저의 경험을 토대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성경 공부에 더 관심을 가지고, 말씀을 듣는 것에 멈추지 말고 성경 쓰기를 통해서 하느님의 말씀에 더 다가가시면 좋겠습니다. 또한 여러분 주위에 잘못된 발길을 디뎠던 이들에게 손가락질을 하기보다는 따뜻한 손길을 내밀어 주시고 보듬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태양의 찬가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지극히 높고 강하며 선하신 주님 / 찬미와 영광과 기림과 축복이 당신의 것이옵니다.

오로지 당신, 지극히 높으신 당신께만이 /합당한 까닭이나이다.

그 누구도 당신의 지존한 이름을 부를 자격이 없나이다.

저의 주님, 당신은 찬미받으소서

 

당신이 지으신 모든 창조물에게서 찬미를 받으소서

특별히 형님인 태양에게서 / 태양은 아름답고 찬란한 광채를 띠우나니

당신의 모습을 지니고 있는 까닭이나이다.

저의 주님, 당신은 찬미를 받으소서

 

누님인 달과 별들에게서 찬미를 받으소서 / 맑고 빛나고 사랑스럽게

하늘에 그들을 지으신 분은 당신이시나이다. /저의 주님, 당신은 찬미를 받으소서

형님인 바람을 통해 찬미를 받으소서 /공기와 구름과 맑고 고요한 날씨와

온갖 기후를 통해 당신은 찬미를 받으소서

 

그들을 통해 / 당신은 손수 지으신 창조물들을 살피시나이다.

저의 주님, 당신은 찬미를 받으소서 /누님인 물을 통해 찬미를 받으소서

물은 쓸모있고 겸손하며 맑고 소중하나이다. / 저의 주님, 당신은 찬미를 받으소서

형님인 불을 통해 찬미를 받으소서

 

불은 아름답고 장난스러우며 활달하고 강하나이다.

저의 주님, 당신은 찬미를 받으소서 / 누님이며 어머니인 대지로부터 찬미를 받으소서

저희를 지켜주며 다스리는 대지는 / 온갖 과일이며 색색의 꽃과 풀들을 자라게 하시나이다.

저의 주님, 당신은 찬미를 받으소서 /당신에 대한 사랑 때문에

남을 용서하는 사람들을 통해 찬미를 받으소서

아픔과 고난을 참아 받는 사람들을 통해 찬미를 받으소서

 

당신을 바라보며

고요히 참아내는 이들은 복되나이다. / 그들은 월계관을 받을 것이옵나이다.

저의 주님, 당신은 찬미를 받으소서 / 주님인 육신의 죽음을 통해서도 찬미를 받으소서

 

아무도 죽음을 피할 이 없나이다.

대죄를 짓고 죽음을 맞는 사람은 불행할 진저! /당신의 지극히 거룩한 뜻 따르며

죽음을 맞는 사람들은 복되나이다. / 두번째 죽음이 그들을 해칠 수 없는 까닭이옵나이다.

저의 주님께 찬미와 축복과 감사를 드리오며 /지극한 겸손으로 당신을 섬기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