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룡성당(대전남부지구)
본당설립:1999.1.26 / 주보성인: 예수 성심
+ 루카 복음.9,23-26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잏거나 해치게 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사람의 아들도 자기의 영광과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에 싸여 올 때에 그를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
<말씀의 향기>
솔뫼로 가는 길-윤세병 세례자요한 옥계동 주임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은 모진 박해 속에서도 굴복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오히려 박해자들을 향하여 정의를 말하고, 감옥 안에 있는 신자들을 격려하시면서까지 하느님을 증거할 수 있었던 힘고 용기는 어디에서 생겼을까> 오늘 1독서를 보면 "의인들의 영혼은 하느님의 손안에 있어 어떠한 고통도 겪지 않을 것이다. 어리석은 자들의 눈에는 이인들이 죽은 것처럼 보이고 그들의 말로가 고난으로 생각되며 우리에게서 떠나는 것이 파멸로 여겨지지만 그들은 평화를 누리고 있다."(지혜 3,1~3)라는 말씀에서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신앙인은 순교 성인들처럼 성숙한 신앙인이 도기기 위해 열심히 기도하면 노력한다.
김대건 신부님이 탄생하신 솔뫼에 성지 조성을 위해 합덕성당 신자들이 1906년 김대건 신부님 순교 60주년 기념 땅 매임 그리고 100주년 기념으로 1946년 9월에 작은 석고 동상과 기념비석을 건립했다.
필자의 어린 시절 주일학교에서는 매년 9월~10월 소풍 겸 보도성지 순례를 위해 서들 강문 황금물결 출러이는 합덕 평야를 바라보면서 약4km나 되는 좁은 논두렁 밭두렁에 걸려 넘어져도 때로 지름길인 밤나무밭 사잇길로 뛰어가다 밤송이로 머리를 맞아 눈물을 글썽이면서도 신이 나서 솔뫼로 달려가 김 신부님 동상 앞에서 기도하고,순교 교리를 듣고,그 자리에서 시험도 보고 상도 받고 한 기억이 난다.
세 살 습관이 여든 살까지 간다고..그런 까닭에 고향마을에선 신부님,수녀님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필자는 주일학교 3학년 무렵 첫영성체 기념사진을 보면 어릴 적 모습에 미소가 저절로 지어진다. 당시에는 주일학교 교리반에 한번이라도 빠지거나,판공 때 320조목 교리 문답사를 암기하지 못해 호랑이 신부님 앞에서 퇴짜 맞으면 못난 자식 때문에 부모 성사길 막힌다고 밥을 주지 않았다. 판공 교리 퇴짜 맞아서 다시 판공 받으려고 학교 빠지는 바람에 초등학교 졸업식 때 6년 정근상을 받았다.
성당 가까이 사는 까닭에 365일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부모님 따라 새벽 평일 미사는 물론 복사 당번 빠지면 스페아 복사까지,아마도 부모님 생각은 어렸을 때부터 성소의 싹을 제대로 키울 마음을 정하신 듯하다. 어려서부터 호랑이 신부님과 부모님의 스파르타식 신앙교육 덕분에 외국생활에서 모든 구두시험을 한 번도 재시험 맞아 본 적이 없었다.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다녀가신 후,본당 여름 신앙학교에서 중.고등부 학생들을 솔뫼 성지 중심으로 인근에 여러 성지를 순례하며 순교정신을 일깨워주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실행하였다.
주일학교 초등부 어린이들이 더 많은 도보순례를 통하여 순교 정신을 배우는 산 교육의 장으로 느끼도록 해준다면 영원하신 하느님의 은총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오늘 2독서에서 "영원한 사랑이신 하느님을 믿는 우리는 우리를 사랑해 주신 분의 도움에 힘입어 이 모든 것을 이겨 내고도 남습니다."(로마8,37)하신 말씀을 어려서부터 마음속 깊이 새겨 건강하고 훌륭한 순교자적 강인한 신앙인으로 성장해 나간다면 사회에서도 목표를 향해 자신 있게 달려갈 수 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루카9,24)
프란치스코 교황 칙서
「자비의 얼굴」 해설(1)
자비,형제를 향한 따스한 얼굴
프란치스코 교황은 4월 11일 '자비의 희년'칙서 「자비의 얼굴」을 발표했다. 「자비의 얼굴」은 오는 12월 8일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에 막에 올려 2016년 11월 20일 그리스도 왕 대축일까지 이어지는 '자비의 희년'선포 배경과 실천 지침 등을 담고 있다. 그리스도가 하느님 자비의 얼굴이라면 그리스도인은 당연히 그리스도 자비의 얼굴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 자비가 드러났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자비는 그리스도인을 통해 드러나야 한다.
앞으로 열두 번에 걸쳐 「자비의 얼굴」해설을 통해 자비에 관한 교황 가르침의 정수를 들여다보고자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의 자비의 얼굴이다. 25항으로 구성된 「자비의 얼굴」에서 교황은 자비의 신비가 그리스도교 신앙의 요약이며,나자렛 예수 안에서 아버지의 자비가 정점에 도달하는 가시적인 표지(1항)라고 말한다.
교황은 기쁨과 평화,평화의 원천인 자비의 신비를 계속 관상하도록 우리를 초대한다. 자비는 인간을 죄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과 연결하는 사랑과 희망의 다리이다.(2항)
자비는 늘 어떤 죄보다 크다. 교황은 우리가 하느님 자비의 전능을 드러내는 훈련을 하도록 제안한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하느님의 자비가 약함보다 전능의 표지라고 말한다. 구약은 하느님의 본질을 인내와 자비로 가득히 묘사한다. 하느님의 자비는 추상적 이념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을 구체적으로 계시한다.(6항)
하느님의 자비는 이스라엘을 당신의 구원역사로 초대하고,아버지의 자비로운 시선을 선사한다. 수난 전 예수는 자비의 시편을 기도하였고, 자비의 빛으로 파스카 희생과 그 영원한 기억의 성체성사를 세웠다. 자비와 함께 예수는 수난과 죽음으로 들어갔다.(7항) 행복하여라,자비로운 사람들!(마태5,7) 인간의 사랑은 확실히 자신으로부터 출발한다. 내가 느낄 때,내가 원할 때,내가 선을 베풀 때 나는 사랑한다. 하지만 하느님께는 필요한 것이 없다. "하느님께서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요한 3,16)에서 같이 그분의 사랑은 받지 않고 선물하는 데 있다.
세상에서 우리는 한 마디로 불의와 억압과 폭력이 넘친 인간의 무자비한 모습이 자행된 시기를 지난 세기에 보냈다. 두 번에 걸친 세계대전이 이를 증명하고 그후로 수많은 크고 작은 전쟁들이 인간은 무자비하다는 등식이 성립될 정도였다. 우리는 어떤 관점에서 모두 지구의 고통과 어려움에 한몫을 하고 있다. 인류가 저지른 엄청난 죄와 고통 앞에서 우리는 깊은 의식성찰과 무한히 자비로우신 하느님을 필요로 한다. "아버지,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루카23,34)
자비로운 사람이 된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보고 속이 쓰릴 줄 아는 마음을 열고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성경은 말한다. 자비는 예수님이 백성들에게 선포한 교회 정체성의 구체적인 목표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교회는 야전병원이라고 표현한 것은 하느님의 자비가 교회 안에서 구체적으로 즉시 실현되어야 하는 것을 말한다.
-곽승룡 신부/대전가톨릭대학교 총장-
<이충무의 행복나침반(78)>
# 사랑을 도청하고 마음이 부활한 남자
한가닥 양심이 구원의 생명줄
피도 눈물도 없어 보이는 냉혈인간 '비즐러'는 동독의 비밀경찰'슈타지'소속 요원입니다. 독일이 통일되기 5년 전 그는 한 가지 중요한 비밀 임무를 맡게 됩니다. 동독 최고의 극작가인'드라이만'과 그의 애인인 인기 여배우 '크리스타'의 삶을 감시하는 일이었죠.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매일 드라이만의 아파트에 설치해 놓은 도청장치를 통해 비즐러는 두 사람의 모든 사생활을 엿듣고 그것을 상부에 보고합니다. 처음엔 드라이만의 약점을 찾아내기 위해 냉정하게 그들의 대화 한마디 한마디를 꼼꼼하게 기록하던 비즐러...
그런 그에게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도 모르는 변화가 조금씩 생겨납니다. 비정하기 짝이 없던 그의 마음에 사랑과 진실에 대한 꿈틀거림이 시작된 거죠.
그들의 대화를 도청하면서 그는 두 사람이 얼마나 진실되게 사랑하고 있는지 느낄 수 있었으니까요.
그 누구도 믿지않고 그 누구도 사랑한 적이 없던 그에게 드라이만과 크리스타의 삶은 충격으로 다가옵니다. 상대방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내놓을 수 있을 만큼 사랑한다는 것이 충분히 가능한 일이고 동시에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깨닫게 됩니다.
그러면서 그는 변해 갑니다. 그들을 감시하고 옭아매는 역할에서 그들을 보호하고 도와주는 조력자로서 변해 갑니다. 심지어는 드라이만이 체포당할 결정적 증거가 되어줄 타이프라이터를 몰래 빼돌려 그를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게끔 합니다.
오랜만에 다시 보게 된 "타인의 삶"이라는 제목의 독일 영화 이야기입니다. 이 영화는 다시 봐도 그 감동이 여전했습니다. 아니 예전에 봤을 때보다 지금의 감동은 몇 배로 불어나고 있음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타인의 삶에 대해 관심조차 없고,타인의 삶에 대해 결점만 찾아내려는 제게 이 영화는 '부활'의 의미를 새롭게 각인시켜 줍니다. 타인의 삶에서 발견되는 한 가닥 진실의 끈을 인내심을 갖고 부여잡는 일... 그것이 부활의 시작임을 깨닫습니다.
진정한 부활은 어느 한 순간에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얼어붙은 겨울 땅이 결코 어느 한 순간 봄날 땅으로 변모할 수 없습니다. 부활은 어쩌면 오랜 세월 누적되어 온 사람과 사랑에 대한 믿음의 논리적 결과일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충무 바오로/극작가,건양대학교 교수
한 움큼 찾아드는
빛처럼
작은 소망 하나
주님
저희에게
계시어 주소서!
글 .그림 이순구(베네딕도)
무명(無名)의 순교자 앞에 - 이해인 수녀 -
오래 전에
흙 속에 묻힌
당신의 눈물은
이제 내게 와서
살아 있는 꽃이 됩니다.
당신이 바라보던
강산과 하늘을
나도 바라보며 서 있는 땅
당신이 믿고 바라고
사랑하던 님을
나도 믿고 바라고 사랑하며
민들레가 되고 싶은 이 땅에서
나도 당신처럼 남몰래
죽어가는 법을
잊혀지는 법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박해의 칼 아래
피흘리며 부서진
당신의 큰 사랑과 고통이
내 안에 서서히 가시로 박혀
나의 삶은 아플 때가 많습니다.
당신을 닮지 못한 부끄러움에
끝없는 몸살을 앓습니다.
당신을 향해
님을 더욱 알았고
영원의 한 끝을 만졌으나
아직도 자주 흔들리는 나를 조용히 붙들어 주십시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거룩한 순교자여
오래 전에
흙 속에 묻힌
당신의 침묵은
이제 내게 와서
살아 있는 말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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