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에 쓰여진 신앙 이야기

청양 다락골 성지

모든 2 2020. 12. 15. 21:24

 

 

청양 다락골 성지

1839년 일어난 기해박해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교우촌

 

 

  현재의 행정구역명 충남 청양군 화성면 농암리에 있는 다락골 성지는 새터와 줄무덤 성지 두 부분으로 나뉜다. 이 '다락골'이라는 명칭은 마을의 형태가 다락 모양과 같다는 데서 유래한 것인데,이곳을 다래가 많이 나는 곳이라 하여 '다래골'로 부르기도 하였다.

  새터 성지는 다락골에서 남쪽으로 700m 아래쪽에 위치한다. 새터와 그 일대는 박해시대 교우들이 삶을 영위하던 곳으로 최경환 프란치스코(1805-1839)성인과 그의 아들 '땀의 순교자'최양업 토마스(1821-1861)신부가 태어난 곳이다. 최경환 프란치스코 성인의 조부인 최인주가 12살이 되던 해에 서울에서 홀어머니 경주 이씨를 모시고 1791년 진산사건으로 시작된 신해 박해를 피해 다락골로 이주하였다. 최인주는 다락골에서 장성한 뒤 다락골에서 700m 떨어진 공토를 개간해 이주했다. 그 뒤 신자들이 모여들면서 자연스럽게 교우촌이 형성되었고, 새로 이루어진 마을이라는 뜻에서 '새터(新垈)'로명명 되었다.1821년 3월 최경환 성인과 결혼한 복자 이성례 마리아 사이에서 최양업 토마스 신부가 여섯 자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지금 새터 성지에는 최경환 프란치스코 성인과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의 생가터가 조성되어 있다.

 

  줄무던은 한 무덤에 여러 사람을 함께 묻었다고 하여 붙인 이름으로 '줄묘'라고도 부른다. 1866년 대원군에 의한 병인박해 때 순교한 치명자들의 묘소로 추정되는 37여 기가 줄무덤을 이루고 있다. 이 묘의 주인공들이 누구인지는 정확하지 않다. 홍주와 공주에서 순교한 교우들이라는 설과 해미나 갈매못에서 순교한 교우들이라는 두 가지 설이 있다. 다만 최양업 토마스신부 집안인 경주 최씨 집안의 신자들이 이들의 유해를 순교지로부터 야음을 타 급히 옮겨다가 이 마을 뒷산인 이곳에 매장하였다는 증언이 전해진다. 경주 최씨 집안의 신자들은 박해가 닥칠까 봐 이 무덤이 신자들의 것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있었으나 몇 년 뒤 이 사실을 안 조정에서 이 마을을 불살랐고,교우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다락골 성지는 1839년에 일어난 기해박해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교우촌이었다. 1839년 8월 모방 신부와 샤스탕 신부는 박해를 피해 전라도로 가던 중 모방 신부는 다락골에 남고 샤스탕 신부는 더 안전한 곳을 찾으러 전라도로 떠났다. 이때 먼저 체포된 앵베르 주교로부터 자수를 권고하는 편지가 모방 신부에게 도착했다. 이에 모방 신부는 샤스탕 신부에게 전갈을 보내어 다락골로 오도록 했다. 샤스탕 신부가 오기를 기다리는 열흘 동안 모방 신부는 다락골에서 프랑스로 보내는 마지막 편지를 작성했고, 샤스탕 신부가 도착하자 두 신부는 조선 교우들에게 사제가 없는 동안의 생활지침 등이 담긴 편지를 남기고 9월 7일 다락골을 떠나 홍주로 자수하러 갔다. 2021년은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의 200주년이 되는 해이기에 다락골 성지를 순례하며 전대사의 은총도 받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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