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 내 십자가의 길에서 바라본 순교자 기념 원뿔 조형물
▲남방제 성지
충남 아산시 신창면 서부북로 763-42/http://cafe.daum.net/nambangiaeshrine
+ 마태오 복음 10,37-42
<내 어린 양들을 돌보아라. 내 양들을 돌보아라.>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그들과 함께 아침을 드신 다음,시몬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너는 이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예,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하고 대답하자,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 어린양들을 돌보아라."
예수님께서 다시 두 번째로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예,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하고 대답하자,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 양들을 돌보아라."
예수님께서 세 번째로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세 번이나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시므로 슬퍼하며 대답하였다.
"주님,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는 알고 계십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내 양들을 돌보아라,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네가 젊었을 때에는 스스로 허리띠를 매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다. 그러나 늙어서는 네가 두 팔을 벌리면 다른 이들이 너에게 허리띠를 매어 주고서,네가 원하지 않는 곳으로 데려갈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어,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할 것인지 가리키신 것이다.
이렇게 이르신 다음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
<말씀의 향기>
앞장서는 사람 -김용태 안드레아 청소년사목국 차장-
얼마 전 청소년사목국 마당에 앉아 있을 때,젊은이들 몇몇이 밥을 먹으러 간다며 메뉴를 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두 시간이 지나도록 어디 갈지 정하지 못하더군요. 삼겹살이 맛있겠다며 이야기를 하다가도,누가 다시 국밥이 맛있겠다고 하니 또 각자 자기가 좋아하는 밥집 이야기를 하고,다시 누가 불고기를 먹고 싶다고 하니 불고기 이야기를 한참 했습니다. 그렇게 두 시간이 지나도록 갈피를 못 잡다가 결국 배고프다며 가까운 음식점으로 향하는 모습을 바라봤습니다.
어느 모임을 가든 앞장서는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의견을 수렴할 줄 알고 결정을 내리며 좋은 길로 이끄는 사람, 내가 그런 사람이 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지만,그런 사람이 있으면 참 편할 때가 많습니다. 내가 속한 단체에 좋은 단체장이 있을 때 잘 따라가기만 하면 이루고자 하는 바를 쉽게 이룰 수 있기도 하고,내가 바라는 것 이상으로 좋은 결과를 얻게 되기도 합니다. 물론 함께하는 사람들이 좋은 지향으로 뜻을 같이 모아 주는 것도 중요합니다.
반대로 잘못된 길로 인도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아주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사람들이 원하는 바를 알아차리지 못하고,자신이 원하는 것만을 찾는 사람이 있다면 참으로 힘들지요. 어떤 경우에는 앞장서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힘들 때도 있습니다. 각자가 원하는 것만 하고 싶어 하고, 서로의 마음을 읽어 주지 않으면 상처투성이의 모임이 되기도 합니다. 이런 경우 모임에서 벗어나는 사람도 생기고, 심하면 모임 자체가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오늘은 교황 주일입니다. 우리 가톨릭교회를 이끌며 앞장서 나가시는 교황님을 기억하고 기도하는 날입니다.지난 3월 27일 저녁,코로나 비상사태 극복을 위한 특별기도 중에 성체강복을 주시기 위해 성광을 모시고 텅 빈 베드로 광장을 향하시던 교황님의 뒷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무거운 짐을 어깨에 한가득 지셨으나 하느님 백성을 위해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으시는 그 모습,. "제 목숨을 얻으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나 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라는 오늘 복음의 말씀을 그대로 보여 주는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교회를 이끄시며 늘 앞장서 가시는 교황님을 위해 기도하는 한 주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한국천주교와 이웃 종교 -주교회의 교회일치와 종교간 대화 위원회 편찬-
66. 쿠란은 무엇입니까?
"인간의 본성을 성찰하고 있는 쿠란에서도 인간이 자신들을 창조하신 분을 잊어버리고 언제나 자기 자신을 중심에 놓으려는 유혹을 받는다고 일깨워줍니다. 인간은 불의와 불신으로 기울기 쉽습니다.(쿠란14,34참조)그러나 참행복은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는 데에 있습니다."
(교황청 종교간 대화평의회,1422년/2002년 라마단 파재절과 경축메시지,4항)
쿠란(QUR' -an,코란 또는 쿠르안)은 예언자 무함마드가 하느님께 받아 사람들에게 전달한 계시를 기록한 책으로 이슬람교의 경전입니다.
쿠란은 우상 숭배 금지와 유일신 하느님에 대한 신앙,불신자들에 대한 경고,최후의 심판과 육신의 부활에 대한 메시지,하느님께서 보낸 예언자들의 이야기는 물론 이슬람 공동체가 지켜야 할 규범 등을 담고 있습니다.
67. 이슬람교의 핵심 가르침은 무엇입니까?
"그들은 도덕 생활을 존중하며 특히 기도와 자선과 단식으로 하느님을 섬긴다."(비그리스도교 선언3항). "주로 메카와 메디나로 향하는 여러분의 성지 순례는 하느님의 자비를 체험하는 특별한 시간임이 분명합니다....산 이와 죽은 이를 위하여 하느님께 죄에 대한 용서를 구하는 순례를 하는 것은 진정 믿는 이들이 행하는 중요한 관습입니다."
(교황청 종교간대화평의회,1437년/2016년 라마단 파재절과 경축 메시지,3항)
이슬람교에는 실천해야 하는 다섯 가지 핵심 규정이 있는데 이를 이슬람교의 다섯 가지 기둥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하느님(알라)이외에 신이 없으며 무함마드는 하느님의 예언자다."라는 신앙 고백,하루에 다섯 번 드리는 예배,일생에 적어도 한 번은 해야 하는 메카(Mecca)성지 순례,라마단 기간 동안 지키는 단식,희사(喜捨)입니다.
<사회와 교회를 잇는 길잡이 사잇길>
생명의 문화를 이루기 위한 키워드
생육성은 가도록 내버려둔다
생명을 전달하는 기쁨인 생육성은 결국 생명을 '가도록 내버려두는'행위에서 궁극적으로 '완성'을 이룬다. 이러한 '행위'는 되는대로 내버려두거나,가서 아무거나 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아니다. 또한 '완성'은 이제 끝난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원초적인)본질을 재발견하면서 자기완성을 발견한다는 의미다. 이때 원초적인 본질이란 "타인을 위해 자신을 내어 주고, 비우는,근본적인 사랑의 관대함에서 생명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도 삼위일체 하느님으로부터 신적 동기가 있으며 우리 인간 안에 새겨져 있다. 하지만 성령 안에서 생명의 일치와 친교를 이루시는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와는 다르다. 전적으로 다른 본성적 차이,창조주와 창조물 사이의 차이는 있지만 생명의 전달법칙은 동일하다.
'자기를 내어주는 것'은 하느님의 창조안에서 생명의 힘이 '차이를 유지하면서 친교의 기쁨'을 향유하기 위하여 정말 다른 한 존재를 생겨나게 할 수 있는 전능에까지 이른다는 것을 말한다. 부모는 자신과 다른,자식을 낳아 그와 함께 가정 안에서 사랑 충만한 친교를 이룬다.
'자기 비움'은 그리스도의 한 생명이 우리와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육화에서 십자가에 이르기까지 펼쳐진다. 오히려 자신을 비워나갈 때 비로소 자식을 위하여 생의 마지막까지 살아간다.
그리하여 '가도록 내버려두는 행위'는,사랑의 관대함을 지닌다. 이 관대함은 자신의 초연함에서 이루어지며 마침내 타인을 지극히 아끼고 사랑하기까지 이른다.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은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15,13)
이렇게 하느님께서 인간의 생명을 당신 안에만 가두지 않으시고,그대로 살아가도록 내버려두셨다는 것이 생육성의 본질적이고 원초적이며 최종적인 기쁨이다.
때로는 부모가 그 어떤 시련 속에서도,마침내 자기 자녀들이 때가 되어 사랑으로 자녀를 출산하고 생명을 전달하는,그들 역시 부모의 차례가 되었을 때는 자기의 자녀들이 가도록 내버려두며,그들이 떠나가는 것을 기뻐한다. 부모에게서 자식이 독립하고,결혼하여,생명을 탄생하는 모습에서 오는 기쁨을 분명 알고 있다. 누구나 자신이 생명을 전하며 겪는 이 관대한 사랑을 결코 불행으로 여기지 않아도, 남들처럼 꼭 이기적이지 않아도 된다. 왜냐하면 이미 그렇게 살아온 자신에게 새겨진 기쁘고 복된 삶을 금방 알아챌 수 있기 때문이다.
이로 말미암아 세대가 형성되고,계승된다는 것은 바로 인류를 영원으로 향하도록 하기 위해 창조주 하느님이 발견한 참 좋은 것이다. 그래서 지나가거나 앞선 세대들은 그저 생명이 끝나 죽은 이들이 아니다. 우리의 삶 안에 포함된 이들이다. 누구도 앞선 세대없이 지금이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오늘날 더욱 복잡해진 세상에서 '이전과,지금과,아직 오지 않은 다음 세대가 더불어 살아가는'데에 포함된 그 모든 것,미래 세대에게 우리가 전해 줄 생명과 심지어 다음 세대에 전해 줄 지구의 상태에 대한,지금! 우리의 책임을 동반한다.
-이영일 야고보 신부 주교회의 생명운동본부 대전교구 담당-
지난 봄볕이
너무 좋아
한 움큼 주머니에 넣었더니
이른 날 새벽
맑은 이슬에
부스스 싹을 틔우네요.
-글.그림 이순구(베네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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