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매못순교성지 순교처
1866년 3월 30일 주님 수난 성금요일에 다섯 성인이 순교한 곳으로,200여 명의 군인들이 둘러서 있는 가운데 지역주민들과 신자들이 순교의 현장을 지켜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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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매못순교성지 충남 보령시 오천면 오천해안로 610/http:www.galmaemot.or.kt
+ 요한복음 6,51-58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
그러자 "저 사람이 어떻게 자기 살을 우리에게 먹으라고 줄수 있단 말인가?"하며,유다인들 사이에 말다툼이 벌어졌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질실로 질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을 먹지 않고 그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너희는 생명을 얻지 못한다.
그러나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나도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릴 것이다.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고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과 같이,나를 먹는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 것이다.
이것이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 너희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것과는 달리,이 빵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이다."
<말씀의 향기>
참된 양식 -오창호 사도요한 국립대전현충원 전담-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유다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 예수님의 이 말씀이 절대로 상징이나 비유가 될 수 없음을 다음 구절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저 사람이 어떻게 자기 살을 우리에게 먹으라고 줄 수 있단 말인가?'하며,유다인들 사이에 말다툼이 벌어졌다."유다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못했지만 성경은 하느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말합니다. "내 입에서 나가는 나의 말도 나에게 헛되이 돌아오지 않고 반드시 내가 뜻하는 바를 이루며 내가 내린 사명을 완수하고야 만다"(이사 55,11).하느님의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짐을 믿는 것은 그분께서 역사와 생명의 주인이심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몸과 피인 성체와 성혈을 실재적인 그분의 몸과 피로 받아먹고 마시는 사람은"저의 주님,저의 하느님!"(요한20,28)이라고 고백한 토마스 사도처럼 예수님을 역사와 생명의 주님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믿지 못하는 유다인들에게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피는 참된 음료다. ···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고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과 같이,나를 먹는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 것이다. ···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이다." 성체와 성혈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는 참된 양식이요. 참된 음료인 이유는 예수님께서 우리 구원을 위해 십자가 위에서 내어 주신 바로 그 살과 피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부족함과 한계,그리고 죄의 무게가 예수님께서 나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 위에서 바치신 희생의 무게보다 더 무거울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과 같이 우리도 예수님의 살과 피를 마심으로써 그분으로 말미암아 살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주는 참된 양식이요, 음료로 성체와 성혈을 받아 모시는 것은 예수님을 나와 온 세상의 구세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미사 후에 듣게 되는 '미사가 끝났으니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라는 말은 예수님께서 역사와 생명의 주인이시며,구세주이심을 전하러 가자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선포는 예수님과 같이 '빵'이 됨으로써 가능해집니다. 하지만 우리의 능력으로 우리에게 '빵'이 되어 주시는 그분의 조건과 제한이 없는 사랑을 실천하기에는 우리는 너무나 비참한 존재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다그칩니다."(2코린 5,14)라고 말하지만 동시에 이렇게 말합니다. "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있겠습니까? ··· 그 밖의 어떠한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로마 8,35~39).
<사회와 교회를 잇는 길잡이 사잇길>
한마음 한목소리로
초등학교에 들어가 음악시간에 '우리의 소원'이라는 노래를 배웠습니다. 이 노래의 가사 안에는 '이 나라'와 '겨례'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이 표현은 남과 북이 서로 같은 지향점을 가지고 통일을 이루어 나가야 한다는 것.그래야 모두가 산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그 시절 미술시간에는 통일에 대한 주제보다는 '반공'에 대한 그림을 많이 그렸던 것 같습니다. '반공'을 주제로 그림을 그리려 하면,주로 색상에 있어서 빨간색과 검은색 크레파스를 많이 사용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도 포스터의 느낌은,섬뜩함이 표현되도록 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생각을 가지고 그림을 그린듯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 아직도 '반공'에 대한 주제를 가지고 포스터를 그리고 있는지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아직도 포스터를 그리고 있었습니다. 포스터가 많이 올라와 있지 않았지만,그중에 이런 표현을 쓴 포스터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기 지겹다,통일해라."포스터를 그리기 싫은 것인지,빨리 통일이 되어야 한다는 것인지...
교회 안의 신자분들도 그동안의 역사 안에서 통일에 대한 관심과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이 안에서도 통일에 대해 서로 다른 소리(?)를 내는 경우를 보게 되기도 합니다. 통일에 대한 지향,그리고 방법론적인 것에 있어서 다른 성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신앙인들의 접근방식은 시대가 변한다 해도 모두가 일관되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우리는 누구입니까?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삶의 전부로 받아들이며 실천하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통일에 대한 접근방식은 서로에 대한 적대적 관계가 아닌,민족에 대한 화해와 일치에 대한 염원을 가지고 접근해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적어도 교회 안에 함께 머무는 이들이라고 한다면,통일에 대한 바람과 방법이 달라서는 안 될 것입니다. 모두가 한마음으로,한목소리로 기도하고 하나의 행동을 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권지훈 베드로 신부 대전교구 민족화해위원회-
힘이 들 때도 고맙습니다.
애가 탈 때도 고맙습니다.
절망스러워도 고맙습니다.
참 평화,참 기쁨,참사랑
우리에게 내어주신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이 모두가 고맙습니다.
-글.그림 이순구(베네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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