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2020년 주보

사순 제1주일 2020년 3월 1일(가해)

모든 2 2020. 6. 8. 18:40

주르바란「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 안토니오」1640,148×108cm,마드리드,파라도 미술관

 

  +  마태오 복음 4,1-11

 

  <예수님께서는 사십 일을 단식하시고 유혹을 받으신다.>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성령의 인도로 광야에 나가시어,악마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그분께서는 사십 일을 밤낮으로 단식하신 뒤라 시장하셨다. 그런데 유혹자가 그분께 다가와,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이 돌들에게 빵이 되라고 해 보시오"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

  그러자 악마는 예수님을 데리고 거룩한 도성으로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운 다음 그분께 말하였다.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밑으로 몸을 던져 보시오.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지 않소? '그분께서는 너를 위해 당신 천사들에게 명령하시리라.' '행여 네 발이 돌에 차일세라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쳐 주리라.'"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이르셨다. "성경에 이렇게도 기록되어 있다. '주 너의 하느님을 시험하지 마라.'"  악마는 다시 그분을 매우 높은 산으로 데리고 가서,세상의 모든 나라와 그 영광을 보여 주며,"당신이 땅에 엎드려 나에게 경배하면 저 모든 것을 당신에게 주겠소."하고 말하였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사탄아,물러가라,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주 너의 하느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 그러자 악마는 그분을 떠나가고,천사들이 다가와 그분의 시중을 들었다.

 

 

<말씀의 향기>

 

  그 또한 나의 자유입니다  -김택민 마태오 순성 주임-

 

  만일 내가 아담과 하와였다면,나는 선악과를 먹었을까요? 먹지 않았을까요? 나라면 선악과를 먹지 않았을 것이라고,아담이 나 하와와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요?

 

  만일 하느님께서 선악과를 만들어 놓고 사람이 접근할 수 없도록 어떤 장치를 만들어 놓았다면 어땠을까요? 전기장치라도 만들어 선악과를 만질 수도,딸 수도 없게 조치해 놓으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설사 선악과를 딸 수 있다하더라도 입에 넣어 이빨로 씹으려 할 때 돌처럼 딱딱해서 먹을 수 없도록 최후의 보루를 만들어 주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하느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선악과는 딸 수도 있고, 입에 넣어 깨물면 씹히도록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든지 선악과를 먹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죄를 짓지 않고 싶습니다. 더 이상 죄의 굴레에 갇혀 살고 싶지 않습니다.마음으로는 그렇지만, 오늘 또 다시 우리는 죄를 짓고,미워하고.. 그렇게 오늘도 유혹에 넘어가곤 합니다. 만일 내가 죄를 지으려 할 때 하느님께서 죄를 짓지 못하도록,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물리적인 보호장치를 만들어 주셨으면 좋겠지만,주님께서는 그 보호장치를 주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자유의지라는 것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그 자유의지로 아담과 하와처럼 선악과를 딸 수도 있고, 먹을 수도 있습니다. 어째서 하느님은 우리를 연약하게 만들어 놓고는 스스로 선악과를 먹을 수도,먹지 않을 수도 있게 하셨을까요?

 

  여기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만나게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완력을 이용해 우리가 사랑을 고백할 수밖에 없게 만들지 않으시고, 우리가 자유의지로 하느님께 사랑을 고백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떠한 강박도 없이 자유의지로 하느님께 사랑을 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 나는 자유의지로 무엇을 하고 있나요? 선악과에 손을 대고 있나요? 나는 나의 자유의지로 죄를 짓고 있나요? 아니면 사랑을 고백하고 있나요? 오늘 자유의지를 지닌 나의 사랑을 고백하고 있나요? 오늘 자유의지를 지닌 나의 손은 무엇을 붙들고 있습니까?

 

  오늘 예수님께서는 40일간 단식하시며 세 가지 유혹을 받으십니다. 누구나 쉽게 넘어갈 수 있는 달콤한 유혹이었지만,주님께서는 그 유혹을 단호하게 이겨내셨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돌아가시기 전 겟세마니 동산에서 피땀 흘리는 기도를 통해 유혹을 이겨내십니다. 예수님도 유혹을 받으셨고,근심과 번민에 휩싸이실 정도로(마태 26,37)마음이 흔들리셨습니다. 그러나 끝내 이겨내셨습니다. "그러나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루카 22,,42)" 예수님은 자유의지를 그렇게 활용하셨습니다.

 

  친애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악은 오늘도 우리를 최선을 다해 유혹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최선을 다해 이겨내야 하지 않을까요? 예수님께서 피땀 흘리는 기도로 그 유혹을 이겨내셨듯이,나 또한 피땀 흘릴 만큼의 각오로 유혹을 이겨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그 또한 나의 자유입니다.

 

 

<사회와 교회를 잇는  길잡이 사잇길>

 

'우리농'은 '마음'

 

  우리농 전담 사제로 발령받고 이사를 하면서 무리가 되었는지 며칠을 앓았다.

  낑낑 앓다가 어머니께서 끓여 주시는 시원한 된장국이 생각나서 고향집에 가 오랜만에 어머니 손맛을 느껴 보았다. 어머니 '마음'이 담긴 오래묵은 된장국을 한사발 들이키니 허했던 속이 따뜻해지면서 새로운 기운이 솟았다.

 

  팔십 중반이신 아버지가 폐암 말기 진단을 받고 대전성모케어센타에 입원해 계셨었다.

  얼마 전 아버지의 상태가 위중하다는 메시지를 받고 달려가 봤더니 원장님과 두 분 간호사님들이 아버지 손발을 주무르시며 묵주기도를 하고 계셨다. 이분들의 퇴근 시간이 한참 지난 밤 10시 즈음이었다. 원장님과 간호사님들의 '마음'이 담긴 돌봄으로 아버지는 마지막 지상 여정을 은혜로이 마치셨다.

 

  이렇게 사랑이 담긴 '마음'으로 하는 일은 사람을 치유하고 온전하게 하며 세상을 살맛 나는 곳으로 만들어 준다.

  농산물에도 공장에서 대량으로 쏟아져 나오는 공산품 같은 곡물이 있는가 하면,농부의 '마음'이 가득 담겨 귀하게 생산되는 먹거리가 있다.

  그 귀한 농부의 '마음'이 담겨 있는 우리농 제품을 몰라보고,가격만 물어보거나 포장지 스타일을 보고 외면하는 이들을 만나면 '진주를 몰라보는구나..'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그러거나 말거나 진짜 고수는 논밭에 자라나는 작물에 '마음'을 주는 것에 몰두하고,풍요로운 결실로 응답하는 기쁨으로 한평생을 보낸다.

 

  우리 교구의 고수 한 분이 하느님 곁으로 홀연히 떠나가셨다. 최병욱(아오스딩)회장님의 영원한 복락을 빈다.

 

 

   - 강승수 요셉 신부 대전가톨릭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 -

 

 

 

비천한 오늘의 간절함이

내일은 희망으로

그 희망은

맑은 싹으로 움터

밝게 자라고 꽃 피워

자애의 믿음

풍성히 맺게 하소서.

 

 

-글.그림 이순구(베네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