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파엘로「성녀 마르가리타와 용」(부분)1518,패널에 유채,빈,미술사 박물관
성녀 마르가리타
꽃 이름이자,피자 이름이기도 한 마르가리타라는 이름의 성녀는 여러 명이 있지만 그 중 4세기경 소아시아의 안티오키아에서 살았던 분이 가장 유명하다. 초기 박해 시대의 성인들 대부분이 그러하듯이 이 성녀의 이야기 역시 <황금전설>이 전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마르가리타의 부친은 이교도의 제사장이었으나 그녀는 신심 깊은 유모에 의해 그리스도 교육을 받으며 자랐으며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이유로 부친에게서 쫓겨나 유모와 함께 양을 치며 살았다고 한다.
마르가리타가 15살쯤 되던 어느 날 초원을 지나가던 올리브리오라는 총독이 아름다운 마르가리타를 보고 한눈에 반하여 아내로 맞을 생각을 했다. 총독은 소녀가 그리스도 교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배교를 강요했으나 마르가리타는 단호히 거절하며 "저는 땅과 바다와 모든 창조물을 떨게 하시는 주 하느님을 믿습니다. 그리스도는 저희를 위해 희생 제물이 되셨습니다. 저 역시 그분을 위해 죽기를 희망합니다."라며 당당하게 자신의 뜻을 밝혔다.
이후 마르가리타는 몸이 쇠스랑으로 찍히는 고문을 당하면서도 "육체의 고통은 영원한 구원의 증거'라면서 "잔인한 사자와 개로 하여금 육체를 물어뜯어 죽게 할수는 있을지라도 나의 영혼을 지배할 수는 없다."며 신앙을 지켰다.
이후 마르가리타는 투옥된 후 참수당하여 순교했다. 순교 직전 그녀는 자신을 고문했던 모든 이들을 위해 기도했으며,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분만할 여인들을 위해서도 기도했다고 한다. 하늘에서 기도에 대한 응답이 들려오자 성녀는 일어나 사형집행인에게 목을 치라고 했으며 이에 사형집형인은 단칼에 마르가리타의 목을 베어 순교했다.
모진 고문을 받고 감옥에 투옥되었을 때 마르가리타는 하느님께 자신이 싸우고 있는 적,곧 사탄의 모습을 보여 달라고 기도했는데 그러자 거대하고 흉악한 용이 나타났으며, 마르가리타가 성호경을 긋자 곧바로 사라졌다고 한다. 성화에서 성녀 마르가리타가 용과 함께 그려지는 것은 이 일화 때문이다.
라파엘로「성녀 마르가리타와 용」1518,패널에 유채,빈,미술사 박물관
위의 그림 라파엘로의 <성녀 마르가리타와 용>은 아름다운 성녀 곁에 입을 쩍 벌리고 있는 거대한 용이 그려져 있다. 성녀는 성숙한 여인으로 그려졌으나 감옥에서 용이 나타났을 때 성호경을 긋자 용이 사라졌다는 일화를 암시하기 위한 듯 손에는 십자가를 들고 있다. 용은 구렁이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정면으로 그려진 쩍 벌린 입은 왠지 우스꽝스러워 보인다. 성녀 마르가리타의 일화를 전하는 자료들 중에는 그녀가 토굴에 던져졌다는 설도 있는데 라파엘로의 이 작품은 어두침침한 웅덩이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설을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이 그림은 배경은 어둡게 그려진 반면 인체는 조명을 받은 듯 강렬한 푸른빛을 발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육체의 볼륨이 강조되었다. 이 같은 빛의 대비와 강렬한 표현은 라파엘로의 후기 작품의 특징으로 이후 17세기 바로크 회화의 탄생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여기서 성녀 마르가리타는 마치 물에 빠진 듯 옷이 몸에 딱 달라붙은 모습으로 그려졌는데 이는 기원전 4세기에 유했했던 '젖은 옷 기법"으로 그렸기 때문이다. 흔히 르네상스를 고대의 부활이라고 하는데 고대 부활은 이 같은 회화기법에서도 이루어졌던 것이다. 이로 인해 성녀의 허벅지와 가슴 등은 여성성을 고스란히 드러내며 인체의 아름다움을 보여 주고 있다. 화가는 내면의 성스러움을 외적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키는 회화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라파엘로가 다빈치,미켈란젤로와 더불어 르네상스 3대 거장으로 꼽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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