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에로니무스 보스 「성 안토니오 은수자의 유혹」(부분),1505~06,리스본,국립고대박물관
성 안토니오 은수자
성 안토니오 은수자(251~356추정)는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1195~1231)와 동명인으로 두 사람 사이에는 천년의 간극이 있다. 이집트 북부의 고마에서 부유한 지주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그가 스무 살쯤 되었을 때 부친은 많은 재산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나라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마태 9,21)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을 때 안토니오 성인에게는 성경의 이 구절이 마음 깊이 와 닿았다고 한다. 그리하여 성경말씀대로 재산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준 후 사막으로 들어가 어느 은수자의 제자가 되었다. 이후 그는 공동묘지로 들어가 13년간 홀로 수도생활을 했으며 35세가 되자 인적이 없는 더 깊은 사막으로 들어가 20년이란 긴 세월 동안 연명할 정도의 음식만 취하며 극단의 은둔생활을 했다. 30년의 세월을 홀로 고행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보통 사람으로서는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이론적으로는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기고 인간적인 기쁨을 버린 채 하늘나라의 보물만을 생각할 때 가능할 것이다.
306년 그는 길고 긴 은둔생활을 마치고 명성을 듣고 찾아온 이들을 위해 수도원을 세웠고 이후 나일강 근처의 피스피르라는 곳에 수도원을 설립하고 제자들과 생활했다. 그는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물이 마르면 물고기가 죽듯이,수도자도 수도원에서 멀어져서 세속 사람들과 섞여 기도하기를 멀리하면 스스로를 잃게 된다. 물고기가 바다로 돌아가야 하듯이 우리는 우리들의 기도방이 있는 수도원으로 돌아와야 한다."
그의 명성을 듣고 많은 제자들이 모여들었다. 338년 87세 때 이단 아리우스파를 반박하기 위해 한 차례 더 알렉산드리아에 간 것 외에는 그는 줄곧 수도원에서 생활하며 105세의 긴 생을 살았다. 그의 평생에 걸친 수도원 생활과 수도회 설립은 이후 그리스도교의 수도회 규칙의 모델이 되었다.
성 안토니오 은수자와 관련해서는 그가 수도생활을 하던 중에 마귀가 끊임없이 그를 유혹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16세기에 활동한 네델란드가 낳은 위대한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스는 <성 안토니오 은수자의 유혹>이라는 그림에서 성인이 마귀로부터 당한 유혹들은 한 그림 안에 여러 장면으로 그려 놓았다. 그림 속 장면들은 화가의 기발한 상상력으로 인해 당시 그 어느 그림에서도 볼 수 없었던 괴상하고 익살스러운 마귀들이 다수 출현하여 무서움 대신에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히에로니무스 보스「성 안토니오 은수자의 유혹」(부분),1505~06,리스본,국립고대박물관
위의 그림은 안토니오 성인이 마귀들에 의해 유혹을 당하고 있는 장면을 그린 것으로 물고기 등에 타고 있는 마귀와 괴상한 행태의 마귀들이 안토니오성인을 하늘 높이 끌고 가서는 땅으로 떨어뜨리기 직전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바다에 사는 물고기를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모습으로 그린 것에서 이 화가의 상상력이 예사롭지 않음이 느껴진다. 마치 20세기 초의 초현실주의 작가의 작품을 보는 듯하다. 그 아래 수도복을 입은 안토니오 성인은 두 팔이 묶인 채 몸이 뒤로 젖혀져 있는데 땅으로 떨어질 듯 아슬아슬해 보인다.
맨 위의 그림은 마귀로부터 돈의 유혹을 받는 장면인데 마귀의 모습이 마치 오늘날의 특이한 캐릭터를 연상시켜서 역시 웃음을 자아낸다.
멀고 먼 시절 아프리카에서 살았던 성 안토니오라는 은수자에 대해 알게 된 것은 16세기 네델란드의 거장인 헤에로니무스 보스의 이 유머러스한 작품 덕이 컸다고 생각한다. 명작 한 점의 위력이다.
-고종희 마리아/한양여대 교수,미술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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