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자미상「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 안토니오」개인 소장
성 안토니오의 빵
어느 날 한 수련생이 안토니오 성인이 직접 필사한 아끼던 책을 훔쳐 달아났다. 그가 강을 건너려던 찰나 갑자기 두려움이 몰려왔으며 강 건너편에서 누군가가 책을 되돌려 주라고 소리치는 것을 들었다. 수련생은 즉시 되돌아가 훔친 책을 원래 자리에 놓았다. 안토니오 성인께 잃어버린 물건을 찾아달라고 청하면 들어 주신다는 믿음은 바로 이 일화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외출해야 하는데 핸드폰이나 자동차 열쇠 등이 눈에 띄지 않으면 나는 "안토니오 성인님 찾아주세요~"라고 살짝 도움을 청한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안 보이던 물건이 눈에 들어온다. 나에게 안토니오 성인은 물건을 찾아 주시는 참 고마운 성인이시다.
오래 전 피사에서 유학하던 시절 우리 가족은 아파트의 관리인이었던 마라이 가족과 부모형제처럼 지냈다. 그들은 우리를 자식처럼 대해 주었고,나의 두 아들은 그들의 외아들을 삼촌이라 불렀다. 손녀 사라가 태어난 후에도 마라이 부부의 우리 아이들에 대한 사랑은 변함이 없었다. 할머니는 음식이나 선물을 줄 때면 친손녀에게 "오빠들 먼저 그리고 너는 세 번째"라고 늘 말씀하시곤 했다. 이들 부부와 손녀 사라는 지금은 하늘나라에 계시다. 눈부시게 아름다웠던 사라가 살아있다면 올해 서른이다. 우리 가족과 마리아 부부의 외아들 내외는 지금도 형제처럼 지내고 있으며,우리의 두 아들은 그들을 여전히 삼촌과 숙모로 생각하고 있다.
마라이 할머니는 취침하기 전 하루도 빠짐없이 변기 뚜껑에 앉아서 30분 정도 기도를 드렸다. 집이 좁기도 했지만 그녀는 화장실에서 기도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녀는 기도 중에 늘 우리 가족을 기억하셨다. 그녀가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나는 막상 기도할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이 참 신기하다. 하지만 마라이 할머니가 바치시던 30년간의 기도는 언제부터인가 내가 이어서 드리고 있으니 이 또한 신비롭기만 하다. 마라이 가족은 하느님이 우리 가족에게 보내 주신 천사들이었던 것 같다.
식탁 하나가 겨우 들어갈 정도의 거실을 겸한 작은 부엌에 자리 잡은 그 댁의 식탁 위에는 「성 안토니오의 빵」(Pane di sant'Antonio)이라는 잡지가 늘 놓여 있었다. 그 잡지의 표지는 대부분 아프리카 어린이들의 사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녀는 전 세계 가난한 이들을 돕기 위해 설립된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의 빵'이라는 자선 단체의 후원자였던 것 같다. 그들은 가난했지만 더 가난한 이들을 후원했고, 우리 가족에게는 부모와 같은 사랑을 베풀었으며,우리 아이들을 친손자처럼 돌봐준 것이다. 우리 집에는 할머니가 보내온 음식과 케익이 늘 넘쳤다. 이를 위해 얼마나 큰 정성이 필요했을 지 알게 된 것도 세월이 한참 흘러서였다. 그들은 '성 안토니오의 빵'으로 상징되는 자선과 사랑의 말없는 실천가였던 것이다.
포르투칼 출신의 안토니오가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로 불리는 까닭은 생애 마지막을 파도바에서 보냈기 때문이다. 안토니오 성인은 그림이나 조각에서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프란치스칸 수도사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아기 예수가 묵상 중이던 성인의 품에 잠시 안긴 것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주르바란「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 안토니오」1640,148×108cm,마드리드,파라도 미술관
위 그림은 17세기 스페인의 거장 주르바란의 작품으로 안토니오 성인이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데 무척이나 조심스러워 하는 모습이다. 아기 예수의 표정은 어른스럽고 근엄한 반면 안토니오 성인은 마치 어른을 모시고 있는 듯 겸손해 보인다. 강렬한 빛과 어두움 덕분에 성인과 아기 예수의 모습은 화면 가득히 모습을 잘 드러내고 있다. 배경에 보이는 교회는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대성당의 17세기 모습으로 보인다.
-고종희 마리아/한양여대 교수,미술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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