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와 만나는 성인 이야기

부활하신 그리스도[48]

모든 2 2020. 6. 8. 20:41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그리스도의 부활」(부분)

 

부활하신 그리스도

 

  그리스도교에서 부활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후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난 사건을 가리킨다. 부활을 전하는 가장 중요한 자료는 4대 복음서이다. 복음서에는 안식일 아침 마리아 막달레나가 무덤에 가서 예수가 부활했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을 시작으로 이후 승천에 이르기까지의 행적이 기록되어 있으며 화가들은 성서의 이 내용을 근거로 성화를 그렸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리스도가 무덤에서 되살아난 순간을 그린 그림은 1000년 이전에는 그려지지 않았으며 그 이후에도 필사본에서만 간간히 그려졌을 뿐 대형 그림에서는 14세기 이후에서야 부활하신 예수님 모습이 등장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거장인 피에로 델라 프란치스카(Piero della Fracesca,1416~1492)는 예수님이 무덤에서 부활하는 순간을 그린 가장 중요한 화가다. 주보 표지에 소개한 <그리스도의 부활>이 바로 그 작품이다. 이 그림 이후 많은 화가들이 예수님이 무덤에서 부활하는 순간을 그리기 시작했으니 이 그림이 가지고 있는 의미는 매우 크다.

 

  부활 이미지가 탄생하는 데 예수님이 부활하신 지 1500년이나 걸린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4대 복음 어디에서도 그리스도가 무덤에서 부활한 모습에 대한 직접적인 기술이 없고,빈 무덤을 지키는 천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부활 소식을 전했는가 하면 마리아 막달레나를 비롯한 여인들이나 제자들에 의해 부활한 예수를 만난 모습만이 기록되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화가들은 성화를 그릴 때 성서적 근거가 정확하지 않으면 함부로 그리지 않았던 것이다.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그리스도의 부활>이 그려진 곳은 이 화가의 고향인 보르고 산 세폴크로라는 작은 도시다. 보르고 산 세폴크로라는 도시 이름은 '성 무덤"이라는 의미로 화가의 작품 이름과 마을 이름이 일맥상통한다. 당시 이 도시의 정치인들은 피렌체의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을 하게 되었는데 그 기념으로 도시 이름을 형상화시킬 수 있는 <그리스도의 부활>상을 시청건물 안에 그리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그리하여 도시의 대표들은 이곳 출신의 가장 유명한 화가인 피에로델라 프란체스카에게 그림을 의뢰하였다.

 

 

  주르바란「성 그레고리오」1626~27,198×125cm,세비아,벨라 아르테스 미술관

 

  이 그림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첫째는 관에서 예수님이  막 나오는 모습이다. 그는 한 쪽 발을 관 위에 올려놓고 있으며 한 쪽 손에는 부활을 상징하는 깃발을 들고 있다.

 

  두 번째는 잠에 푹 빠진 병사들의 모습이다. 경비병들에 대한 언급은 마태오복음에서 찾아볼 수 있다. 수석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은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신을 훔쳐서 '죽은 이들 가운데서 되살아나셨다."라고 말하는 것을 막기 위해 경비병을 세우게 했다는 대목이다.

 

  그림 속 예수님은 우리가생각하는 익숙한 예수님의 모습이 아니라 전혀 미화시키지 않은 농부와 같은 투박한 모습이다. 여기서 그리스도는 죽음을 이겨낸 승리자로서 인간의 역사에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였음을 말하려는 듯 정면을 힘차게 바라보며 서 있다.

 

  파올루치라는 학자는 잠자는 병사들의 그리스도 사이에 놓인 관은 제대의 형태로 무덤에서 솟아로는 그리스도는 성체거양을 의미하며 이는 미사를 통해 죽음과 부활의 신비가 새로워짐을 표현한 것이라고 해석한바 있다. 화가는 깊은 잠에 빠진 병사들의 얼굴 표정과 의상,그리고 각각의 자세를 자여스러우면서도 정교하게 표현함으로써 인체의 어떤 모습도 표현할 수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이 작품 이후 무덤에서 부활하는 예수님의 모습을 그린 성화들이 본격적으로 그려지기 시작했다. 이그림이 역사적 의미를 갖는 이유다.

 

-고종희 마리아/한양여대 교수,미술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