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와 만나는 성인 이야기

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52]

모든 2 2020. 5. 10. 20:30

 

 

 

도메니코 베카푸미「오상을 받는 성녀 가타리나」(부분)

 

  시에나의 성녀 가카리나(1347~80)는 이탈리아의 시에나에서 부유한 가죽염색업자 베닌카사의 스물다섯자녀 중 스물네 번째 딸로 태어났다. 여섯 살 때 도미니코 성당 위에서 성인들에게 둘러싸여 옥좌에 앉아 있는 예수님이 그녀를 축성하는 환시를 본 후 예수님께 자신을 봉헌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성인들의 생애를 접하다 보면 보통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은 일을 해낸 분들이 많다. 이들은 하느님에 의해 특별히 준비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곤 하는데 가타리나의 경우 사랑하는 언니와 동생이 사망한 후 빵과 생야채,물만을 섭취하는 금욕생활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지속했다고 하니 그녀 역시 범인과는 다른 삶을 산 것 같다. 이 무렵 그녀는 세속에 살면서 빈민층에 대한 봉사를 실천하던 도미니코회 제3회에 가입하였고,1374년 흑사병이 창궐했을 때에도 온 힘을 다하여 병자들을 보살폈다. 20세기 마더 테레사를 연상시킨다. 25세경인 1372년부터는 딱딱한 음식을 거의 입에 대지 않았으며,음식의 양을 줄였고 대신 영성체를 자주 했다고 한다.

 

  가타리나는 뛰어난 설교가였다. 그녀의 전기 작가이자 역시 성인품에 오른 카푸아의 라이몬디는 하느님이 여성인 가타리나를 선택한 것에 대해 예수님이 문맹자들을 제자로 삼은 것에 비유했다. 시에나와 인근 사람들은 가타리나의 설교를 듣기 위해 몰려왔다. 가타리나의 설교가 주는 파급력 때문이었는지 당시 시에나 교회는 그녀의 설교를 방해하기도 했으나 가타리나는 굴하지 않고 살아 있는 하느님의 사랑을 전파했다.

 

  "내가 너를 사랑했듯이, 너도 타인을 사랑하라. 내가 조건 없이 너를 사랑했듯이 너는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아무 조건 없이 타인을 사랑하라. 너는 나에게 보답하려 하지 말고 오직 타인에게 사랑을 주어라. 그들로부터 사랑받을 생각을 하지 말고 무조건 그들을 사랑하라.너의 정신적,육체적 이익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나의 영광과 이름으로 그들을 사랑하라. 내가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가타리나의 저서<대화>에서 환시 중 예수님이 그녀에게 하신 말씀을 소개한 부분이다.

 가타리나는 교황께 서한을 보내 교회의 잘못을 지적하였는가 하면 교회의 개혁을 부르짖었다. 교회의 부패와 권력 남용,성직자들의 부도덕과 인간적 야망에 대해서도 질타하며 개혁을 주장했다. 오늘날에도 교회에서 이런 개혁운동을 펼치는 여성들이 많지 않은데 참으로 대단한 용기였다고 생각한다. 당시 교황청은 1309년부터 아비뇽으로 천도해 있었는데 1375년 가타리나는 아비뇽으로 가서 교황 그레고리오 11세를 알현하고 교황청이 아비뇽에서 로마로 돌아올 것을 촉구했으며 실제로 이를 성사시키는 데 공헌했다.

 

 

도메니코 베카푸미「오상을 받는 성녀 가타리나」

1513~15,시에나,국립박물관

 

 

  위의 그림은 성녀 가타리나가 십자가상으로부터 오상을 받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1630년 교황 우르바노 8세는 성녀의 오상이 피에 의한 것이 아니라 빛에 의한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그녀의 위쪽에는 천사들에 둘러싸인 성모자가 보인다. 그림 앞쪽의 두 인물은 왼쪽이 성 베네딕토,오른쪽이 성 예로니모다. 화가 도메니코 베카푸미는 가타리나와 동향인으로 시에나가 배출한 대표적인 매너리즘 화가다. 초현실주의를 연상시키는 강렬한 색채와 형태로 유명한데 이 작품에서도 성 예로니모의 강렬한 붉은색의복과 천사들의 기괴한 표정이 당시 르네상스의 이상적 규범에서 탈출한 매너리즘 회화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고종희 마리아/한양여대교수.미술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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