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파엘로「성 제오르지오와 용」
1505~06,워싱턴,내셔널갤러리
괴물에게 희생 제물로 바쳐진 공주의 목숨을 백마 탄기사가 나타나서 극적으로 구해주었다는 성 제오르지오의 일화는 한 편의 동화를 연상시킨다. 로마제국의 기사였던 제오르지오는 박해가 극심했던 디오클레시아누스 황제 시절인 303년 순교했다. 제오르지오의 영어식 이름은 조지로서 매우 흔한 이름이니 대중의 사랑을 많이 받은 성인이라 할 수 있으며 미술 작품 중에도 이 성인을 그리거나 조각한 작품들이 많다.
로마제국의 행정관이었던 제오르지오는 카파도키아출신으로 리비아에 속한 실레네라는 도시에 임무를 수행하기 위한 발령을 받았다. 이 도시 근처에는 바다처럼 넓은 호수가 있었는데 그곳에서 포악한 용이 출몰하여 도시민 전체가 피난을 갔는가 하면,도성에도 나타나 거대한 숨을 뿜어내며 시민들을 몰살시키기도 했다고 한다. 이 용을 진정시키기 위해 처음에는 희생 제물로 양을 바쳤으나 점차 젊은이들을 제물로 바치게 되었으며,귀족이나 왕족의 자녀들도 예외가 아니어서 도시의 젊은이란 젊은이는 다 희생되었고 마침내 공주만 남게 되었다. 그리하여 왕은 사랑하는 공주를 제물로 바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다.
제물로 바쳐지기 직전 왕인 아버지로부터 마지막 축복을 받기 위해 눈물범벅이 되어 무릎을 꿇고 있는 공주의 모습을 때마침 그곳을 지나가던 제오르지오가 보고 이유를 물었다. 공주는 흉포한 용의 출몰에 마을의 젊은이들이 모두 다 희생되었고 자신이 마지막 희생자라는 사정을 들려주었다. 그 말을 들은 제오르지오는 말에 올라타 성호를 그으며 용에게 돌진했다. 그리고는 하느님께 도움을 청하며 온 힘을 다하여 창으로 용을 찔러 치명상을 입혔다. 용이 땅에 고꾸라지자 제오르지오는 공주에게 말했다.
"두려워하지 말고 네 허리띠를 용의 목에 걸어라."
그대로 하니 용은 잘 길들여진 강아지처럼 온순하게 따라왔다.
용이 오는 것을 보고 "이제 다 죽게 되었구나,"라며 두려움에 떨고 있는 군중에게 제오르지오가 말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당신들을 이 괴물로부터 해방시키라고 하느님께서 저를 보내셨습니다. 그리스도를 믿고 세례를 받으십시오. 저는 이 용을 죽이겠습니다."
그리하여 도성 사람 전체가 세례를 받았으며 제오르지오는 마침내 그 흉포한 용을 죽였다. 그날 세례를 받은 사람은 모두 2만 명이었다고 한다. 왕은 제오르지오에게 거액을 하사했으나,그는 그 돈을 모두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고, 사람들에게는 교회의 가르침을 따를 것과 가난한 이들을 보살필 것을 당부하고는 떠났다.
도나텔로「성 제오르지오」
1415~16,바르첼로 미술관
성 제오르지오를 주제로 제작한 가장 유명한 작품은 15세기 피렌체의 조각가 도타넬로의 석조 조각으로 오르산미켈레라는 피렌체의 양모길드 건물 외벽에 세워졌다. 이 조각은 로마시대 군복을 입은 젊은 군인 상으로 방패를 땅에 세운 채 서 있는 모습을 표현한 대리석조각상이다. 도나텔로의 이 조각은 진짜 사람인 양 그 모습이 당당하고 안정감이 있다. 먼 곳을 응시하는 시선은 그가 조각이 아니라 영혼이 있는 인간처럼 느껴진다. 이 조각을 시작으로 조각은 건물 벽에 붙어 있는 장식품이 아니라 광장 한복판에 세워 놓아도 사방에서 다 볼 수 있는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조각이 만들어지는 단초가 마련되었다.
라파엘로는 백마 탄 기사 제오르지오가 칼을 들어 용을 내치려 하는 순간을 그렸다. 배경에는 두려움에 떨며 이를 지켜보는 공주의 모습이 보인다. 라파엘로의 초기작으로 화가의 온화한 성품이 그림에도 드러나 있어 용의 모습조차 흉포하기보다는 유머러스하여 웃음이 나온다.
-고종희 마리아/한양여대 교수,미술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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