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코포 폰토르모「엠마오에서의 저녁 식사」(부분)
루카복음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일요일 제자 두 사람이 엠마오로 가던 중 예수님을 만난 일화를 전한다. 제자들은 부활한 스승과 바로 옆에서 걷고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눈이 가리어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고 기술하고 있다.
"저희와 함께 묵으십시오. 저녁때가 되어 가고 날도 이미 저물었습니다."
읽기만 하여도 위로가 되는 성경 구절이다. 이들은 여관에 들어가 예수님과 함께 저녁식사를 했다.
"그들과 식탁에 앉으셨을 때,예수님께서는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그들에게 나누어주셨다. 그러자 그들의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았다."
그 순간 예수님은 사라지셨다.
야코포 폰토르모「엠마오에서의 저녁 식사」1525년 제작,
240×173cm,캔버스에 유채,우피치 미술관,피렌체
폰토르모가 그린 <엠마오에서의 저녁 식사>는 루카복음의 바로 이 구절,즉 예수님이 제자들과 식탁에 앉아 빵을 집어 찬미를 드리는 순간을 그리고 있다. 미사 중의 성찬전례와 너무나 흡사하다. 예수님은 정면을 향해 관객을 바라보고 있고, 두 제자는 둥근 식탁 양옆에 앉아 있다.화면 왼쪽에 앉은 제자는 잔에 포도주를 따르느라 예수님이 빵에 찬미를 드리는 순간을 놓치고 있는 반면,다른 제자는 빵을 쥔 채 예수님을 응시하고 있다. 이분이 예수님이시라는 것을 빵을 자르는 바로 그 순간 알아차린 것이다.
많은 화가들이 이 주제를 그릴 때 식탁에 다양한 음식을 그려 넣어서 그림 솜씨를 자랑하고 있으나 폰토르모는 빵과 포도주만을 그려 놓았다. 대신에 빵을 담은 은제 접시,포도주 주전자,나이프 그리고 투명한 우리잔 등이 매우 사실적으로 정교하게 그려져 있다. 예수님 양옆에는 수도복을 입은 사람들이 보이는데 화면 왼쪽에 서 있는 인물은 당시의 수도원장 레오나르도 부오나페데로 이 그림을 주문한 사람이다. 예수님 시대 화가와 동시대인들이 그림에 함께 등장한 것이다. 시선을 식탁 바닥으로 돌리면 고양이 세 마리,강아지 한 마리가 그려져 있고, 작품의 제작 연대가 적힌 흰 메모지도 보인다. 작가가 그림의 디테일에 얼마나 신경을 썼는지,또한 성경의 이야기를 일상으로 변화시키고 있는지 감탄하게 된다.
이 그림은 색채가 무척 화려하고,빛이 강조되어 있다. 이 모든 빛의 근원은 예수님의 머리 위 주황빛 원안에 있는 삼각형 속 눈에서 나온다. 바로 하느님의 눈이다. 화가는 이 사건이 하느님의 뜻에 따라 이루어 지고 있음을 말해 주고 싶었던 것 같다.
"예수님께서는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그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라는 루카복음의 이 구절은 예수님이 붙잡히시기 전 제자들과 함께한 최후의 만찬이 예수님 부활 후인 엠마오의 저녁식사에서 똑같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래서 나는 이 식사가 예수님 부활 후의 첫 번째 성찬례라는 생각이 들었다.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과 예수님이 나눈 식사를 이천 년 후 대한민국에 사는 우리가 똑같이 나눌 수 있다는 것은 기적이 아닐까? 우리는 원하기만 하면 날마다 미사를 통해 예수님의 식탁에 초대받아 예수님의 몸으로 만든 빵으로 식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과 나누는 한 끼 식탁을 사랑한다.하지만 그 어떤 풍요로운 식탁도 영원한 생명을 약속한 예수님과 함께하는 미사 중의 성찬례에 견줄수 있을까? 요즘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지 못하니 성체를 모시지 못한 지도 벌써 한참이 되었다. 다행히 영상 미사 후 신령성체를 주시니 감사하다. 예수님께서는 어디에나 계시고 특히 우리가 미사를 보는 중에는 함께하심이 틀림없다.
-고종희 마리아/한양여대 교수,미술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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