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와 만나는 성인 이야기

베네딕토 성인(2)[39]

모든 2 2020. 2. 9. 22:00






변진의 「성 베네딕토」

2008,130×80cm,캔버스에 유채,왜관,베네딕토 수도원



  이탈리아에 몬테카시노라는 마을이 있다. 수도원의 대명사처럼 불리는 베네딕토 수도원이 있는 곳으로 베네딕토 수도회 총본부가 이곳에 있다고 한다. 베네딕토 성인은 젊은 시절 이탈리아 중부의 수비아코라는 깊은 산골에 들어가 은둔생활을 했으나 많은 이들이 찾아와 수도원의 규모가 커지자,보다 조용한 곳을 찾아 제자 몇 명만을 데리고 와서 생의 마지막을 보낸 곳이 바로 이곳 몬테카시노 수도원이다.


  몬테카시노의 베네딕토 수도원은 산 정상에 있다. 평지에서 차로 20분 정도는 올라갔던 것 같다. 산 중턱에서 내려 잠시 산 아래를 내려다보니 드넓은 평원이 장관을 이루며 펼쳐졌다. 산 정상에 있는 베네딕토 수도원은 거대한 성채를 연상시킨다. 지금의 보습은 2차 세계대전때 일부 폭격을 당한 것을 재건한 것이라고 하는데 막상 수도원 경내에 들어가니 고요하면서도 장엄했다.


  베네딕토 성인은 이곳에 와서 이교도들을 신자로 개종시켰으며 근처에 있던 아폴로 신전을 마르티노 성인께 봉헌한 교회로 개조했다고 한다. 그리고 산 정상에는 세례자 요한에게 봉헌한 경당을 세웠다고 하는데 그 자리가 지금의 수도원 자리일 것이다.


  성인은 이곳 몬테카시노에서 수도회 규칙을 썼다. 규칙의 내용은 사유재산을 금하고 평생 수도원에 머물면서 교회의 가르침을 따르고,전례를 중시하며, 수도생활의 중심으로 일과 기도가 중심이 되는 성무일과를 안재하는 것 등이었다고 한다. 이 규칙은 이후 서방 수도회 규칙의 기초가 되었는데 위에 소개된 변진 화백의 그림은 베네딕도 성인의 이 같은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다.


  수도원 경내에는 베네딕토 성인과 그의 쌍둥이 여동생 스콜라스티카 성녀의 조각상이 똑같은 크기로 세워져 있었으며 특히 하얀 비둘기들이 마당 여기저기에서 평화롭게 놀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넓은 수도원을 관람하고 있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억수처럼 쏟아지는 바람에 관람객들이 회랑에서 비를 피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그 당시 이탈리아 남부지방은 가뭄으로 인한 산불로 몸살을 앓는 비상상황이었다. 몬테카시노에 가까이 와서도 대형 산불로 산등성이가 거대한 붉은 띠모양으로 타들어가는 모습을 눈앞에서 지켜보아야만 했었다. 그러던 차에 수도원에서 소나기를 만나니 방금 전의 그 산불이 소나기로 꺼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 당시에는 몰랐었으나 몇 달이 지나서 나는 베네딕토 성인과 동생 스콜라스티카의 소나기에 관한 일화를 알게 되었다. 베네딕토 성인이 살던  수도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스콜라스티카 성녀도 수도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이들 남매는 일 년에 한두 번 만나 이야기꽃을 나누었다고 한다. 그날따라 스콜라스티카는 오빠에게 가지 말고 밤새 이야기를 나눌 것을 청했으나 성인은 규칙을 지켜야 한다며 일어서려 했다. 그러자 그녀는 비를 내려달라고 폭풍기도를 하였으며 과연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바람에 오누이는 밤새 이야기꽃을 나눌 수 있었다고 한다. 아마도 수도원에 쏟아진 그런 소나기가 아니었을까?

  그로부터 며칠 후 베네딕토 성인은 하얀 비둘기가 하늘로 날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동생의 영혼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임을 알았다고 한다. 동생이 그토록 함께 보내고 싶어 했던 이유가 그제야 깨달은 것이다. 그 후로 몬테카시노 수도원에는 하얀 비둘기들만 서식했다고 하는데 내가 방문했던 그날도 하얀 비둘기들이 수도원 여기 저기서 평화롭게 놀고 있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고종희 마리아/한양여대 교수,미술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