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자 미상 「성 베네딕토가 까마귀에게 빵을 주다」
13~14세기, 수비아코,베네딕토
이탈리아의 중부의 수비아코라는 산속에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베네딕토 수도원이 있다. 절벽 위에 세워졌기 때문에 보기만 해도 장엄하고 아찔한 이 수도원은 베네딕토 성인이 젊은 시절 은둔 생활을 했던 곳이다. 산이 험하여 차를 타고도 한참을 올라가야 하는데 지금으로부터 1500년 전인 6세기 초 수도자들이 이 깊은 산중에서 기도하며 은둔 생활을 했다고 하니 놀랍기만 하다.
베네딕토 성인은 『베네딕토 수도회 규칙서』를 썼는데 유럽의 많은 수도원들이 이 규칙서를 참고했다고 한다. 베네딕토를 유럽 수도원의 설립자라고 부르는 이유다. 베네딕토는 수도원이란 하느님을 찾는 이들의 가정이라고 생각했다. 수도자들의 주요 일과는 기도,독서,개인학습,노동 등이었으며 베네딕토 수도회는 특별히 가난,청빈,복종,전례를 중시했다. 베네딕토 수도회의 규칙은 7,8세기에 들어서면서 프랑스,영국,독일 등에서도 따르기 시작하면서 전 유럽 수도원의 모델이 되었다.
수비아코의 베네딕토 수도원은 바위 위에 지어졌기 때문에 실내 곳곳에도 거대한 바위들을 볼 수 있다. 수도원 내부 벽은 빈틈이 없을 정도록로아름다운 벽화로 장식되었는데 내용은 대부분 베네딕토 성인의 생애를 그린 그림들과 신약의 성화들로 연대는 14세기 중반 경으로 추정된다.
베네딕토 성인의 생애
이탈리아의 누르시아에서 태어난 베네딕토(480~547)는 일찍이 로마에서 유학했으나 세속적인 삶에 실망하여 500년 경 수비아코 근처의 한 동굴에서 은둔생활을 시작했다. 그가 수행하던 장소는 로마노라는 시종 외에는 아무도 몰랐으며,성인이 머물던 동굴에는 길이 없었기 때문에 로마노는 성인이 먹을 빵을 줄에 매달아서 올려 보냈고, 종을 쳐서 빵이 도착했다는 신호를 보냈다고 한다.
베네딕토는 이 깊은 산속에서 25년 동안 은둔 생활을 했는데 이런 곳에 은둔자가 수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용케도 알고는 수도자들이 모여들어 수도원이 하나둘 세워지게 되었다고 한다. 베네딕토는 12면 단위로 소공동체를 만들어 각각의 수도원마다 수도원장을 뽑아 이끌어 나가도록 했으며 자신은 전체 수도원 원장직을 맡았다.
베네딕토의 생애는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재위,590~604년)가 『이탈리아 교부들의 생활과 기적에 관한 대화집』에서 소개하였기에 비교적 자세히 알려져 있다.
여러 일화 중에 하나를 소개하자면 당시 수도사들 중에는 베네딕토를 시기하는 자들도 있었다고 있다. 피오렌초라는 수도자도 그중 한 사람으로 어느 날 베네딕토를 독살하기 위해 독이 묻은 빵을 보냈는데 성인은 이것을 먹지 않고 평소 먹이를 주던 까마귀에게 주며 말했다.
"주님의 이름으로 이 빵을 들어 아무도 해치지 않는 곳으로 던져라."
까마귀는 성인이 시키는 대로 빵을 멀리 물고 가서 버린 후 3일 만에 돌아왔다.
본문의 그림은 바로 이 이야기를 그린 것으로 수비아코 수도원의 중앙 홀에서 볼 수 있다.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는 벽에 그린 것으로 보아 성인의 대표적인 일화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림 속 식탁에는 빵과 그릇들이 보이고 베네딕토와 다른 두 수도자도 보인다. 이 그림은 아직 중세 방식이어서 주인공인 베네딕토를 다른 두 성인보다 더 크게 그려 놓았다.
-고종희 마리아/한양여대 교수,미술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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