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와 만나는 성인 이야기

첫 순교 성인 스테파노[36]

모든 2 2020. 1. 19. 21:30





안나발레 카라치「돌에 맞아 순교하는 스테파노 성인」

1603~1604,루브르 박물관



  스테파노는 열두 사도들이 직접 뽑은 일곱 명의 부제 중 한 사람이다. 스테파노에 관한 이야기는 사도행전 6장과 7장에서 자세히 전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사도들이 업무 과다로 설교와 기도에 전념할 수 없게 되자 신자들에게 음식을 배급하는 등 공동체의 일을 전담시키기 위해 부제라는 직책을 만들었다고 한다.

  어느 날 회당에서 회당사람들과 스테파노 사이에 논쟁이 벌어졌다. 논쟁자들이 스테파노의 지혜와 성령에 대항할 수 없게 되자 그들은 "우리는 그가 모세와 하느님을 모독하는 말을 들었습니다."라고 사람들에게 말하게 시킨 후 스테파노를 붙잡아 최고의회로 끌고 갔다. 예수님을 진짜로 모욕했는지 대사제가 묻자 스테파노는 아브라함에서 솔로몬에 이르기까지 구약의 역사를 물 흐르듯 유창하게 이야기하며 군중이 의로우신 예수님을 죽였다고 용감하게 질책했다. 이에 사람들은 화가 치밀어 이를 갈았으나 스테파노는 성령이 충만하여 외쳤다.

  "보십시오. 하늘이 열려 있고 사람의 아들이 하느님 오른쪽에 서 계신 것이 보입니다."(사도 7,56).

  군중은 스테파노를 예루살렘 성문 밖으로 끌고 가서 돌로 쳐죽였다. 사람들이 돌을 던지자 스테파노는 "주 예수님,제 영을 받아주십시오"라고 외친 후 순교했다. 그리고는 무릎을 꿇고 큰 소리로 "주님,이 죄를 저 사람들에게 돌리지 마십시오"라고 외친 후 순교했다. 역사상 첫 순교성인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비솔로「돌에 맞아 순교하는 스테파노 성인」

16세기,베네치아 근교,마르텔라고 성당



  위 그림의 「돌에 맞아 순교하는 스테파노 성인」은 사도행전의 바로 이 부분을 그린 것이다. 비솔로는 많이 알려진 화가는 아니지만 스테파노의 순교를 진솔하고 담대하게 그렸다. 배경에는 평화롭고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지는데 아마도 예루살렘에 가 본 적이 없었던 화가가 예루살렘 대신에 자신이 살던 이탈리아 북부 마을의 풍경을 그린 것으로 보인다. 순교 직전의 스테파노는 분홍색 부제복을 입고 두 팔을 들어 기도하고 있다. 돌을 던지기 위해 땅에서 돌을 집어든 사람. 막 돌을 던지러 손을 번쩍 들고 있는 사람, 그를 심판한 대사제와 최고의회 의원들도 보인다. 화가는 인체를 자유자재로 그리는 기술이 아직은 서툰 듯 돌을 던지는 인물들의 자세는 다소 어색해 보이지만 스테파노의 생애 마지막 모습을 고요하고 인상적으로 그려 냈다.

  맨 위의 그림 역시 바로크 회화의 선구자인 안니발레카라치가 그린 성 스테파노의 순교 장면이다. 예루살렘 성문 밖에서 군중이 각양각색의 자세로 스테파노를 향해 돌을 내리치거나 던지고 있다. 앞의 그림과 달리 등장인물들의 자세는 역동적이며 훨씬 더 자연스럽다. 스테파노의 얼굴은 이미 피투성이가 되었으나 평화로운 표정으로 기도하며 죽음을 받아들이고 있다. 그에게 천국의 왕관을 씌워 주기 위해 하늘에서는 천사가 내려오고 있고 하늘 저편에는 그가 죽기 전에 본 하느님과 예수님의 모습이 보인다.

  그런데 앞쪽 오른편에 한 인물이 앉아 있다. 그는 구석에 있음에도 다른 인물에 비해 크게 그려졌다. 그가 앉아 있는 바닥에는 옷가지가 보인다. 돌을 던지기 위해 사람들이 벗어 놓은 옷들이다.

  "그 증인들은 겉옷을 벗어 사울이라는 젊은이의 발앞에 두었다."라는 사도행전의 이 구절은 그가 사울임을 암시한다. 그는 가장 악랄한 예수의 박해자에서 열렬한 예수님의 증거자로 회심한 바오로다. 이 그림을 그린 화가는 스테파노가 순교하는 순간 사울도 그 자리에 있었음을 꼭 보여 주고 싶었던 것 같다.



  -고종희 마리아/한양여대 교수,미술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