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와 만나는 성인 이야기

동방박사의 여행[33]

모든 2 2019. 12. 29. 22:00






베노초 고촐리「동방박사의 여행」(부분)

멜카올의 모습,프레스코 벽화,피렌체,미디치 궁(리카르도 궁)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려 왔습니다."

  예수님이 베들레헴의 마구간에서 탄생한 후 동방 박사들이 헤로데 왕을 찾아와 한 말이다.

  "내가 임금인데 또 다른 임금이 태어나다니"

  헤로데는 깜짝 놀랐다. 그리고는 아에 씨를 없애기 위해 두 살 미만의 죄 없는 영아들을 모두 살해하라는 끔찍한 명령을 내렸다. 요셉과 마리아는 갓 태어난 아기예수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하여 그곳에서 헤로데 왕이 죽을 때까지 살았다고 마태오복음은 전한다.

  전승에 의하면 세 동방박사의 이름은 가스팔,멜키올,발다살이라고 한다. 동방박사에 관한 그림은 로마의 카타콤바에서 이미 등장하고 있으니 2천년 가까이 그려진 가장 오래된 성화의 주제 중 하나다.

  르네상스 시대 베노초 고촐리도 그중 한 사람으로 피렌체 메디치 저택의 경당 벽에 동방박사에 관한 그림을 그렸는데 제목은「동방박사의 여행」이다. 박사들이 아직 베들레헴에 도착하기 이전의 여행 모습을 그렸기 때문에 경배 대신에 여행이라고 제목을 붙였다.

  문화 예술 후원자의 대명사로 불리는 메디치 가문 사람들은 르네상스 시대에 피렌체를 실질적으로 지배한 정치인이자 유럽 최고의 기업인들이었다. 르네상스 이전의 통치자들은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산꼭대기의 높은 담과 굳게 닫힌 성문으로 상징되는 성(Castle)에 살았다. 반면 메디치 가문은 중세의 성 대신에 시민들이 살고 있는 시내 한복판에 저택을 지었다. 이같은 저택을 이탈리아어로 팔라초(Palazzo)라 부르는데 영어의 팰리스에 해당한다. 팔라초는 이후 베르사유 궁을 비롯한 유럽의 왕궁을 가리키는 건축용어가 되었으며 메디치 저택은 도심 속 왕궁의 첫 사례다.

  베노초 고촐리의 「동방박사의 여행」은 메디치 저택 안에 있는 가족 경당의 벽에 그린 벽화이다.


베노초 고촐리「동방박사의 여행」(부분)

발다살의 모습,프레스코 벽화,피렌체,

메디치 궁(리카르도 궁)


주보 표지는 그중 가장 어린 동방박사인 발다살의 모습으로 이 소년은 이후 미켈란젤로와 보티첼리를 비롯한 미술가들을 후원함으로써 르네상스를 꽃피게 한 문화 후원자의 대명사가 된 '위대한 자 로렌초'의 소년 시절 모습이다.

  로렌초는 백마를 타고 있으며 표지 그림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수많은 인파가 그를 따르고 있다. 인파 중에는 이 그림을 주문한 소년의 아버지 피에로와 '피렌체의 국부(國父)로 불린 할아버지 코시모, 그리고 이 그림을 그린 화가의 모습도 있다.

 두 번째 동방박사인 멜기올은 동방로마제국의 황제요하네스 8세의 모습이다. 그는 1439년 피렌체에서 개최된 종교회의에 참석한 거물급 정치인으로 메디치 가문은 새로 지은 저택의 경당에 당대의 영향력 있는 인물들을 그림으로써 가문의 위상을 높이고자 했다.

  소년 동방박사로 그려진 '위대한 자 로렌초'가 1492년 사망하기 전까지 피렌체는 당시 유럽의 강대국들과 대등한 외교를 펼쳐 나가며 전성기를 누렸고 르네상스를 꽃피웠다. 이 시기에 그들에게 예술은 국력이었다. 하지만 그의 사망 직후 프랑스와 스페인을 비롯한 군사 대국이 대군을 이끌고 침략하였고 실질적인 국방력에서는 약체에 불과했던 피렌체 공화국은 결국 외세의 지배를 받고 몰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권력은 짧고 예술은 길다."



   -고종희 마리아/한양여대 교수,미술사가-